을씨년스럽다? 을사년스럽다!
역사가 즐거워지는 시간, 라이크역사입니다. 하지만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결코 즐겁지 못합니다. 대한제국의 운명이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결정적 순간인 을사늑약이 오늘의 주제이기 때문이죠. 날씨가 우중충하면 “오늘 날씨가 참 을씨년스럽네”라고 말하는데 여기의 ‘을씨년’이 바로 ‘을사년’입니다. 을사년 당시의 분위기처럼 어둡고 무겁고 으스스하다는 뜻이겠지요.
을사늑약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한다면,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압하여 체결한 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 설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합니다. 한일합방은 1910년에 이루어지지만 외교권을 박탈당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사실상 대한제국의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매국노 이완용과 분노하는 대중들
을사늑약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을사오적’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을사조약 체결 당시 조약에 찬성하여 서명한 다섯 대신,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 그리고 매국노의 대표, 이완용. 이완용에 대해서는 라이크역사 4회 대한제국과 독립협회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등장을 했었죠? 독립협회의 간부로 활동했던 개화파 인사로 말이죠. 고종의 총애를 받던 엘리트 관료가 어째서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가 되었는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본 책이 『이완용 평전』(김윤희, 한겨레출판사)입니다.
이 책은 ‘극단의 시대 합리성에 포획된 근대적 인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이완용이 역사의 결정적 순간에 내린 선택들은, 어쩌면 굉장히 합리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완용은 을사늑약에 대해서도 어차피 힘으로 일본에 저항할 수 없으니 조약문구를 수정해서 최대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고자 했다고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고요. 현실에 순응해서 실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 그것은 사실 오늘날의 현명한 세상살이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극단의 시대에 부조리한 현실을 그대로 수긍한 채 내린 합리적 결정들이란 얼마나 허약하고 잘못된 것인지를 이완용의 삶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이완용은 ‘매국노’로서보다는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할 줄 모르는’ 또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이 호명하는 가치에 호응할 줄 모르는’ 인물로 비판되어야 할 대상이다.”
저자가 책 속에서 내린 이완용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름을 듣기도 싫은 사람의 평전에 쉽게 손이 가진 않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가 그들의 삶을 따라가고 있을지도 모르니 나를 돌아보고 경계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이완용뿐만 아니라 나머지 을사오적의 이름도 꼭 기억하기를 박광일 선생님께서 부탁하셨어요. 우리 아이들의 이름에는 을사오적의 이름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윤PD가 가져온 책 『한국인의 탄생』(최정운, 미지북스)도 함께 읽어보세요. 한국의 근현대 문학가와 사상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당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생각과 심리를 유추해볼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을사늑약에 대해 일반 대중들이 느낀 충격과 경악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자기합리화를 통해 일본의 지배를 승인했던 일부 권력자와 지식인들과 비한다면, 일반 대중들이야말로 보다 명확하게 진실을 바라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을사늑약의 배경이 된 덕수궁 중명전
오늘의 답사 장소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던 장소인 덕수궁 중명전입니다. 중명전은 1897년경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진 서양식 전각입니다. 1904년 덕수궁 화재 이후에는 고종의 거처로 사용되었고요. 그런데 중명전은 덕수궁 안에 없습니다. 덕수궁이 일제에 의해 조직적으로 분할 매각되면서 덕수궁의 영역이 크게 줄어들었고, 중명전은 현재의 덕수궁 밖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덕수궁에 입장권 끊고 들어가 한참을 헤매고 다녔지 뭡니까.
중명전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정동극장을 끼고 들어가는 골목길 안에 있습니다. 막다른 골목길에 헌병 한 명이 지키고 있는 문을 지나면 조금은 황량하고 쓸쓸해 보이는 건물이 보입니다. 한 때 민간에 매각되어 회사 사무실로도 쓰였다는데, 지금은 다행히 다시 덕수궁에 편입되어 문화재청의 관리를 받고 있다네요.
중명전을 방문한 때는 평일 점심 시간이었습니다. 중명전 골목 바로 앞 음식점은 직장인들 사이에 소문난 맛집인지 건물 밖으로 길고 긴 줄이 이어져 있었지만 중명전을 관람하러 온 사람은 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텅 빈 중명전 내부를 혼자 관람하려니 기분이 좀 묘했습니다. 을사늑약이라는 역사의 무게가 한층 무겁게 다가왔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