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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편] 6회. 안중근의 사형은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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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즐거워지는 시간, 라이크 역사입니다. 지난 5회에서는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독립운동가들을 만나보았는데요. 사실 시간이 너무 짧아서 아쉬웠어요. 우리가 기억해야 할 더 많은 분들, 더 많은 이름이 있지만 모두 언급할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분을 빼놓고 독립운동을 이야기하는 건 좀 아니다, 싶었어요. 네, 바로 안중근 의사입니다. 오늘은 을사조약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1910년 3월 26일, 여순 감옥에서 31세의 나이로 순국한 안중근 의사 삶의 여정, 그리고 그가 가지는 당대적 또 현대적 의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독립운동에 뛰어들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3남 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안의사 집안은 대대로 해주 지역의 향반 지주로 집안도 넉넉했고, 안의사의 부친인 안태훈은 소과에 합격한 진사였습니다. 꽤 높은 사회계층이었던 것이죠. 안태훈은 개화파와 교류가 깊었던 인물로 동학농민전쟁 때에는 군대를 이끌고 동학군과 전투에 나서기도 합니다. 안의사도 16세의 나이로 부친을 따라 동학군과의 전투에 나서고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책들을 섭렵하고 무예를 연마하던 안의사는, 1905년 을사조약 이후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들게 됩니다. 처음에는 실력양성운동에 뛰어들어 학교를 세워 교육운동에 힘썼고, 1907년에는 연해주로 망명해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두 차례 국내 진공 작전을 펼쳐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제조약에 따라 포로는 석방해야 한다’며 생포한 일본군을 풀어준 것은 안의사의 활동에 큰 제약이 되고 맙니다. 의병부대의 위치가 알려져 많은 부대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군을 풀어준 사람’에게 군자금을 대는 사람도, 부대원이 되겠다는 사람도 없었던 것이죠. 자신의 소신에 따른 일이긴 했지만 안의사에게는 큰 타격이 된 셈이죠.
안중근 의사는 무죄다
그렇게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 안의사였지만 독립에 대한 열망만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909년 9월,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를 시찰하러 온다는 사실을 듣고 이토 히로부미의 사살을 결행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1909년 10월 26일 새벽, 하얼빈 역에서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총소리가 울립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1909년 만주라는 시공간의 특수성입니다. 당시 하얼빈은 만주에 있었지만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대한제국은 을사조약 이후 실질적으로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지만 아직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 전이고요. 그리고 아이러니한 사실은,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는 범죄자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았지만 대한제국과 청나라 사이에는 체결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중국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범인은 본국, 즉 한국으로 이송해 한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었던 것이죠. 한국에서 재판을 받는다면? 안중근 의사가 누누히 주장했듯이 이토 히로부미 사살은 독립전쟁의 일환이었고, 전투 중 일어난 적군에 대한 살상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안의사는 무죄인 것입니다.
하지만 일제는 불법적으로 안중근 의사를 여순 감옥으로 이송해 형식적인 재판을 거쳐 사형을 선고 합니다. 일본은 제국주의적 야욕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안중근 의사를 빨리, 그리고 조용히 처리하길 바랬고 결국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여순 감옥에서 순국하고 맙니다. 일제는 안의사의 주검을 가족에게 돌려주지 않고 이름도 묘비도 없이 공동묘지에 매장해 버려 오늘날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죠.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
얼마 전 일본의 아베 총리가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해 사형선고를 받은 인물이다’라는 망언으로 동양삼국의 평화를 추구했던 안의사를 일개 살인범으로 깎아내려 공분을 샀습니다. 이것이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라면 이것은 매우 위험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일본국민들 중에는 일본이 전쟁을 도발한 만주사변, 중일전쟁, 그리고 태평양 전쟁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하지만 그 이전에 있었던 1894년 대만 점령이나 1905년, 1910년 한일병합에 대해서는 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이들에게 안중근 의사는 자신의 생으로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다, 1910년의 한일병합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이전의 을사조약에 대해서도 일본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찾아 하얼빈으로, 여순 감옥으로 갈 수도 있지만 서울에서도 안중근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장소들이 있습니다. 효창공원에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고, 남산에는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있습니다. 이곳들을 돌아보며 안중근 의사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들을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안중근 의사의 삶을 소설화한 작품들도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이문열 작가가 2권의 장대한 이야기로 서술한 「불멸』(민음사)도 좋고, 뮤지컬 《영웅》도 좋은 작품입니다. 역사책이 담지 못하는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 모습과 심장을 직접 두드리는 감정에 새로움을 느끼게 되실 겁니다.
| 글_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email protected]
영상_김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email protected]
사진 출처_『교과서 밖으로 나온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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