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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편] 8회. 역사를 먹고 자란 도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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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즐거워지는 시간, 라이크 역사! 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서양의 문물과 사상이 들어온 1920~30년대 모던 경성을 살펴봤는데요. 하지만 역사가 서울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오늘은 일제시대에 만들어지고 성장하게 된 지방 대도시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조선시대 팔도의 이름은 대개 그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습니다.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가 대표 도시였던 것이죠. 그런데 좀 이상하죠? 오늘날 경상도를 대표하는 도시는 누가 뭐래도 대구, 부산이고, 전라도에서는 나주보다는 목포, 군산이 더 유명한데 말이죠. 이 말인즉, 대구, 부산, 목포, 군산은 역사 속에서 꾸준히 성장해온 도시가 아니라 일제시대에 급속하게 성장한, 100년 안팎의 역사를 가진 ‘나름’ 신도시라는 얘기죠.
군산과 목포, 전라도의 미곡 반출 항구
일제는 왜 이들 도시를 발달시켰을까요?
먼저 전라도 지역의 목포와 군산은 전라도 곡창지대의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창구였습니다. 일본 본토는 산업화와 전쟁으로 인한 군비 확장으로 농촌인구가 급속히 줄어들고 이것은 심각한 식량부족현상을 일으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바로 조선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가져오는 것이었죠. 언뜻 보면 정당한 무역거래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에서 생산된 거의 대부분의 쌀이 일본으로 반출되면, 이 땅의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까요? 또 쌀을 보내고 대신 받아오는 비싼 공산품이나 사치품들은 조선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은 일본을 위한 쌀 생산기지이자 일본의 시장 역할을 하면서 이중으로 착취당하게 된 것입니다.
일제는 단순히 쌀만 빼앗아간 것이 아닙니다. 쌀을 생산하는 땅 그 자체를 빼앗아갔지요. 교과서에서 배운 기억이 나시죠? 바로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통해서요. 동양척식주식회사는 곧 경작지의 50%를 소유한 조선 최대의 지주가 되었고, 농민들에게는 50%가 넘는 고율의 소작료을 징수하여 착취에 앞장섰습니다. 또, 빼앗거나 헐값으로 매입한 땅은 일본인 이주자에게 싼값으로 양도되기도 했는데, 이때 식민지에서 한 몫 챙기기 위해 1만 명 이상의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들어와 농민들을 지배했다고 합니다.
군산, 목포 등에 남아 이 시대를 증언하는 근대건축물들은, 동양척식회사 지부, 일본은행 지점, 일본인 지주들의 거대한 저택 등입니다. 크기도 거대하고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하게 지어진 이들 건물들은 조선의 농민들에게 엄청난 위압감과 공포, 그리고 분노를 안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남겨진 이 건물들은 그 거대한 규모만큼이나 허망하고 쓸쓸합니다. 일부는 시간 앞에서 속절없이 쇠락해가고 있고 또 일부는 일제의 야만을 증언하는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근대건축물들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건축잡지 에디터 출신의 청춘녀와 건축디자인을 하는 청춘남 부부의 근대건축물 답사기인 『청춘남녀 백년 전 세상을 탐하다』(모요사)에서 보다 다채롭게 만날 수 있습니다.
부산과 일본 사이, 연락선 기적소리 들리고
부산은 전라도 지역의 도시들과는 성장의 배경이 조금 다릅니다. 목포와 군산이 오로지 물자 약탈을 위한 도시였다면, 부산은 일본과 인적교류의 중심지였습니다. 많은 일본인들이 연락선을 타고 부산에 내린 후 경부선 열차를 타고 서울로 갔고, 조선의 유학생, 지식인, 노동자들도 배를 타고 일본으로 오고 갔고요. 그렇기 때문에 광복 이후 미곡반출이라는 도시 성립의 목적이 사라진 목포와 군산이 속절없이 멈춰 섰다면, 부산은 교통과 인적 인프라를 기반으로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6.25 전쟁 당시 임시수도가 되면서 수많은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던 것이 부산이 성장하게 된 주요한 원인인 것도 있지만요.
부산이라고 하면 굉장히 역사가 오래된 도시 같죠? 조선시대에 왜관이 있어서 일본인들이 머물며 교류를 하던 곳이니까요. 하지만 사실 왜관이 있던 ‘동래’하고 지금의 ‘부산’하고는 좀 다른 곳입니다. 위치도 살짝 비켜났고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부산이라는 도시는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신도시였던 것이죠.
아무튼 부산은 일본과의 접근성과 잦은 교류로 부산만의 독특한 풍광과 문화를 만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부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른 책, 『부산은 넓다』(유승훈, 글항아리)에서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으니 이 책도 읽어보시고요.
라이크 역사 8회, <역사를 먹고 자란 도시들>은 이렇게 일제에 의해 성장하게 된 근대 도시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해운대와 자갈치시장으로만 알던 부산에 이런 역사와 사연이 있었는지, 요즘 군산과 목포가 왜 영화촬영지로 인기가 있는지 오늘 방송을 들으시면 새롭게 다가오게 될 겁니다. 저는 올 여름에 부산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휴양지가 아닌, 역사도시 부산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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