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랜 세월 동안 라면을 먹어왔다.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다.
그 맛들은 내 정서의 밑바닥에 인 박여 있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앉아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는 일은 쓸쓸하다.
쓸쓸해하는 나의 존재가
내 앞에서 라면을 먹는 사내를 쓸쓸하게 해주었을 일을 생각하면 더욱 쓸쓸하다.
쓸쓸한 것이 김밥과 함께 목구멍을 넘어간다.
라면이나 짜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인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세상은 짜장면처럼 어둡고 퀴퀴하거나,
라면처럼 부박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
이래저래 인은 골수염처럼 뼛속에 사무친다.
김훈, 라면을 끓이며
p. 11-31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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