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훤이 열고, 견훤이 닫은 후삼국 시대
삼국을 통일한 신라. 천년 왕국을 자랑하던 신라도 이제는 끝이 보입니다. 신라의 하대기를 살펴보면 점점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각 지방에선 저마다의 세를 주장하는 세력가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성주나 장군 등으로 칭하며 호족으로 성장했고, 중앙 정부는 이들을 통제할 힘을 서서히 잃어갑니다. 이들 중 단연 큰 세력을 형성했던 사람들은 바로 견훤과 궁예인데요. 특히 견훤은 자신의 근거지가 아닌 옛 백제 지역에서 세력을 모아 후백제를 건국합니다. 견훤의 후백제 건국은 다른 호족들을 자극하였고 결국 궁예는 후고구려를 건국하며 다시 한반도에 삼국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특히 후백제는 가장 강력한 나라로 급부상하여 후삼국시대의 대결 구도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합니다.
백제의 화려한 부활로 후삼국시대를 열었던 견훤. 그는 애석하게도 후삼국 시대의 종말도 결정지었는데요. 견훤은 백제의 후계자 싸움에서 밀려 자신의 아들들에게 유폐를 당하고 무려 석 달이나 금산사에 감금을 당합니다. 극적으로 탈출한 견훤은 며칠 밤을 도망쳐 고구려의 왕건에게 갔는데요. 한 나라의 군주였던 왕이 모든 것을 잃고 다른 나라로 망명을 한 것입니다.
“견훤의 금산사 탈출 사건은 후삼국을 완전히 뒤바꿉니다.”
견훤이 아들에게 감금을 당했던 금산사는 전라북도 김제에 있어요. 당시 나주가 고려 땅이었는데요. 김제에서 나주까지는 걸어서 며칠이면 가거든요. 나주까지 가서 배를 타고 개경으로 간 거죠. 만약 탈출을 했어도 나주가 고구려 땅이 아니었다면 견훤은 ‘후백제 어딘가에서 군사에 쫓고 쫓기며 비참하게 죽었다.’ 이렇게 끝날 텐데. 이게 고려가 되려니까. 될 집은 이렇게 해도 되고, 안되는 집은 이렇게 해도 안되는 건지(웃음). 견훤이 왕건에게 바란 건 하나였어요. “저 못된 아들 놈들을 없애줘라.” 견훤과 왕건이 어떤 사이였습니까. 장장 17년 동안 싸웠던 사이에요. 서로 죽이려고 했던 사이. 서로 보낸 편지를 보면 견훤은 왕건에겐 ‘넌 내 털 끝만도 못해.’ 이러고, 왕건은 견훤에게 당신은 도의도 모른다며 서로 욕하던 사이였어요. 그런데 여기서 왕건이 견훤을 받아주며 ‘상보’ (큰아버지)라고 하면서 극진한 대접을 해줘요. 그러니 견훤은 자신의 뜻을 더 확고하게 굳혀요. 아들들을 죽이겠다고.
견훤의 탈출 사건은 후삼국을 완전히 뒤바꿔 놓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아주 뜻밖의 상황을 만들어요. 신라의 경순왕이 견훤의 망명 소식을 듣습니다. 신라는 후백제에게 당할 만큼 당해서 회생할 수 없는 상태였어요. 그런 신라를 후백제로부터 보호자 역할을 한 것이 고려입니다. 고려를 보면서도 내심 속으로는 ‘왕건이 저렇게 착한 척을 해도 그래도 고련데, 거길 간다고 해서 우리를 가만두겠어? 목숨은 보전할지 몰라도 우리 지위나 명예는 없을 거야.” 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가만 보니 원수처럼 싸워오던 견훤도 그렇게 잘해줘요. 그럼 우리는!? 그래서 바로 경순왕이 회의를 열죠. 결국 신라는 나라를 들어 고려에게 항복을 합니다. 후에 견훤의 아들 신검, 양검이 고려에게 항복을 하면서 고려는 삼국을 통일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견훤이 900년에 후백제를 건국해 성립하게 됐던 후삼국이 936년에 후백제가 멸망하면서 끝이 납니다. 그러니까 ‘후삼국시대는 견훤으로 시작해서 견훤으로 끝났다고 볼 수 있고, 그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결국 자기 것으로 열매를 맺은 인물은 왕건이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위 내용은 라이크역사 10회 방송을 발췌한 것입니다. 라이크역사 10회 방송에서는 후삼국 시대를 열었던 후백제의 견훤과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 그리고 최종 끝판 왕으로 등극한 왕건까지! <견훤 VS 궁예 VS 왕건>의 대립 구도와 후삼국을 통일한 과정을 들려드립니다. 역사가 즐겁고 시험까지 쉬~워지는 시간, 라이크역사를 통해 어려운 전근대를 정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