펼쳐진 책 위로 주황빛 어둠이 연거푸 깃들었다.
서울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다.
터널이 이렇게 많았던가, 하고 생각하며 책에 눈을 돌릴라치면
또 다시 활자는 그림자 속에 몸을 감췄다.
책 한장 넘기는 것이 어려웠다.
핀란드에서의 첫 겨울도 그랬다.
잠시라도 가슴 속 전구 하나를 켜려고 하면
나만 바라봐야 하는 엄마가 감히 딴 짓을 한다며
아이는 나의 머리칼을 웅켜쥐어 당기고, 바지춤을 붙잡고 매달렸다.
문득, 문득 나는 멈추어 있었다.
오늘은 몇월며칠인지, 나는 지금 몇살인지,
몇년동안 직장을 다녔고, 친구들은 어디쯤 가 있는지.
인생의 좌표를 확인한다는 것이 그토록 사치스러운 1년을 보냈다.
이번 겨울에는 한국에 잠시 들어와 서울로 공부를 하러 다니고 있다.
터널을 지나는 버스 안에서 그때의 감정을 휴대폰 메모장에 그대로 옮겼다.
사진을 찍고 간단한 영상작업을 하나 했다.
핀란드에서의 감정을 100% 담아내긴 어려웠다.
하지만 아이가 노는 행복한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아이가 어지르는 장난감만 멍-하니 보는 나의 시선과
신경질적인 칼도마 소리는 그때의 마음을 고스란히 옮겼다.
다행히 치유중이다.
아이가 무척 사랑스럽다.
그리고 나의 인생이 이제야 사랑스럽다.
나를 도와주는 부모가 있었고,
나를 표현하는 방송이 있어서 가능했다.
나의 날것 같은 부끄러운 감정을 그대로 담은 Photo-roman(사진소설),
[터널]을 오늘 VOICE OF 유학생와이프에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