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의 길, 6바라밀의 실천법
윤홍식
한편으로는 참나의 각성을 통해
늘 세상을 초월한 고요함에 머물되,
한편으로는 6바라밀의 실천을 통해
생사윤회 속에서 아주 작은 선행도 놓치지 않는 이가 '보살'입니다.
'참나의 각성'이 없이는 고요함에 머물 수 없으며
'6바라밀의 실천'이 없이는 공덕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참나의 각성'은 '마음의 중심점'을 찾는 것이며
'6바라밀의 실천'은 '마음의 균형'을 잡는 것입니다.
이 둘을 두루 갖추고 나와 남을 이롭게 하여
널리 중생을 돕는 이가 '보살'입니다.
'바라밀'이란 '궁극, 완성'이라는 의미가 있으니
'보시바라밀'은 '보시의 궁극이자 완성'입니다.
집착을 가진 '에고'로 하는 보시는 '궁극의 보시'가 아닙니다.
무집착의 '참나'로 하는 보시만이 '궁극의 보시'입니다.
그러니 6바라밀의 실천은 오직 '참나각성'으로 가능합니다.
'에고'가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그냥 무시하자고 할 때
에고와 싸우지 말고
먼저 "오직 모른다!"라고 하여 '참나'와 하나가 되십시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에고'와 싸우지 마십시오.
에고와 싸워서는 '에고 놀음'에 빠질 뿐입니다.
곧장 '참나'와 하나가 되면(참나의 각성)
'나와 남을 가르지 않는 참나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남을 도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보시 바라밀'입니다.
'에고'가 온갖 욕망에 흔들릴 때도
곧장 '참나'를 돌아보십시오.
참나는 결코 욕망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욕망에 흔들리지 않는 참나의 힘'으로 유혹을 이겨내십시오.
이것이 '지계 바라밀'입니다.
'에고'가 분노로 이글거릴 때도
곧장 '참나'를 돌아보십시오.
참나는 결코 분노에 이글거리지 않습니다.
'분노에 흔들리지 않는 참나의 힘'으로 분노를 녹여내십시오.
이것이 '인욕 바라밀'입니다.
'에고'가 나태해지고 게을러질 때도
곧장 '참나'를 돌아보십시오.
참나는 결코 게으름에 빠지지 않습니다.
'게으름을 모르는 참나의 힘'으로 게으름을 극복하십시오.
이것이 '정진 바라밀'입니다.
'에고'가 흔들리고 산란해질 때도
곧장 '참나'를 돌아보십시오.
참나는 결코 요동하거나 산란하지 않습니다.
'산란함을 모르는 참나의 힘'으로 산란함을 다스리십시오.
이것이 '선정 바라밀'입니다.
'에고'가 어둡고 어리석어질 때도
곧장 '참나'를 돌아보십시오.
참나는 결코 어둡고 어리석지 않습니다.
'지혜롭고 광명한 참나의 힘'으로 무지를 극복하십시오.
이것이 '지혜 바라밀'입니다.
'6바라밀의 실천'은 '참나의 작용'이며
'참나의 각성'은 '6바라밀의 뿌리'입니다.
이러한 본체와 작용이 두루 갖추고서
온 우주의 중생을 널리 교화하고 돕는 것,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걸을 수 있는 최고의 길인 '보살의 길'입니다.
[출처] [홍익학당] 보살의 길, 6바라밀의 실천법 (홍익학당) |작성자 홍익학당Hi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