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다.
마르다는 이미 마지막 날의 부활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을 단지 먼 미래의 사건으로만 두지 않으시고,
그 부활과 생명이 바로 예수님 자신 안에 있음을 드러내신다.
부활은 예수님이 주시는 어떤 선물일 뿐 아니라, 예수님 자신에게 속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떠나서는 부활도 생명도 존재할 수 없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반드시 죽음을 이기는 생명이 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육체적 죽음을 피한다는 뜻이 아니다.
믿는 자도 나사로처럼 죽음을 통과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다.
예수님은 죽음 이후에도 자기 백성을 생명으로 일으키시는 분이다.
또한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자가 이미 하나님과의 생명 관계 안에 들어갔으며
그 관계를 죽음도 끊을 수 없다는 뜻이다.
죽음은 여전히 현실이지만, 예수님 안에서는 더 이상 마지막 권세가 아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믿음을 깊이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부활을 교리로는 믿지만, 실제 죽음과 상실 앞에서는 쉽게 무너진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끝난 것 같은 관계,
회복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앞에서 우리는 죽음이 마지막 말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신앙은 죽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보다 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죽지 않는 삶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시는 생명의 근원 예수님께 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매우 크고 깊은 고백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단순한 선생이나 기적 행하는 분이 아니라,
죽은 자를 생명으로 건져 내시는 메시아임을 고백한다.
그러나 동시에 마르다는 그 고백의 함의를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뒤에서 예수님이 돌을 옮기라고 하셨을 때,
그녀는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입술로는 생명의 주님을 고백하지만,
무덤 앞에서는 여전히 죽음의 현실을 먼저 본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고백을 점검해야 한다.
우리도 예수님을 생명의 주님이라고 고백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죽음의 냄새를 더 크게 느낄 때가 있다.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 일보다 현실의 불가능성을 먼저 계산한다.
믿음의 언어는 가지고 있지만,
그 믿음이 삶의 자리에서 실제 신뢰로 이어지지 못할 때가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참된 믿음은 예수님에 대한 바른 고백에서 멈추지 않고,
그 고백이 무덤 앞에서도 예수님을 신뢰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아버지께 감사하신다.
이 기도는 예수님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외식적 기도가 아니다.
예수님은 둘러선 무리를 위해 공개적으로 기도하신다.
그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의 기도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응답은 보이는 사건으로 주어진다.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오는 사건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시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생명 주는 일을 행하시는 분임을 드러낸다.
예수님은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신다.
이 음성은 단지 한 사람을 무덤에서 불러내는 소리가 아니다.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부르실 부활의 음성을 미리 보여 주는 소리이다.
나사로는 수족이 베로 동인 채 무덤에서 나온다.
그는 살아났지만 여전히 풀어져야 할 것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관심은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자신을 칭찬하는 데 있지 않다.
예수님의 관심은 생명을 회복한 사람이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돌보는 데 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예수님을 부활과 생명 그 자체로 믿고 있는가,
아니면 죽음과 현실의 한계 앞에서 그 고백을 잊고 있는가?
나는 마르다처럼 바른 신앙고백을 하면서도,
실제 무덤 앞에서는 냄새와 불가능성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예수님의 음성이 죽은 자를 불러내는 생명의 음성임을 믿는가?
또한 나는 생명을 회복한 사람을 풀어 놓아 다니게 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가?
신앙은 부활을 말로만 고백하는 삶이 아니라,
죽음의 자리에서도 생명의 근원 되신 예수님을 신뢰하는 삶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현실의 무덤 앞에서 절망을 마지막 말로 삼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부르시면 죽은 자도 살아난다.
그리고 생명을 얻은 사람은 묶여 있는 자리에서 풀려나 걸어가야 한다.
나는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생명을 받은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신뢰하는 자로 살아가는 삶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How?
1) 현실의 무덤 앞에서 절망을 마지막 말로 선택하지 않기
1)-1 거대한 벽 앞에서 ‘와 이건 끝났다’가 아닌 ‘와 이거 개꿀잼인데?’하기
2) 말씀을 듣고 마음에 걸리는 순종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오늘 하나 실천하기
2)-1 잘못한 것에 대한 사과, 헌신, 연락, 끊어야 할 습관 멈추기 등
3) 오늘 하루 공동체원을 위해 5분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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