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핵존잘 노빠꾸 상남자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티셔츠에 자주 등장해 많이들 알고 계실텐데요. 체 게바라는 원래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자본주의가 사랑하는 사람이 됐죠. 사실 체 게바라는 식민주의에 대항하고 빈곤한 나라에서 주로 활동하며 ‘희생’ 하면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인물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앤디 워홀의 포스터에도 등장했던 체 게바라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게요.
1928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체 게바라는 의과대학을 졸업했지만 이후 뭘 할지 모르는 잉여인간이었습니다. 체 게바라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의사가 되는 것보다 여러 곳을 여행하며 모험을 하고 사람들 면상에 총 쏘는 삶이 더 적성에 맞았나 봅니다. 의사면허를 따고 당시 23살이었던 체 게바라는 절친과 함께 오토바이를 가지고 남미로 여행을 떠나죠. 이 여행 동안, 체 게바라는 남미 독재정권의 부패를 보고 충격을 받았으며, 남미 사회의 엄청난 빈부격차도 눈 앞에서 보게됩니다. 체 게바라는 ‘이게 무슨 개거지 같은 상황이냐’ 라고 생각했고 개쎈 공산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체 게바라는 결심을 합니다. 혁명을 일으켜 독재자들을 무력으로 타도하기로 말이죠. 이게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가난과 불행의 사이클을 끊을 수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체 게바라는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멕시코로 떠났고 여기서 피델 카스트로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는데요. 이후 사람들을 모아서 쿠바를 침략합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말이죠.
1956년 체 게바라와 82명의 사람들이 탄 오래된 구멍난 나무보트가 쿠바 해안에 도착합니다. 도착하자마자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를 타도할 방도를 계획하며 바쁘게 지내게 되죠. 체 게바라는 원래 의무병으로 군대에 온 건데 병은 안 고치고 싸움에 직접 뛰어듭니다. 여기서 체 게바라는 자신이 엄청난 싸움꾼이라는 걸 증명했으며 혁명군의 부사령관으로 임명되기까지 합니다.
체 게바라는 노빠꾸였습니다. 10대 1로 싸우며 쿠바 깊은 산 속에 근거지를 두고 작전을 내렸습니다. 게릴라 부대는 여러 전투를 휩쓸고 다니며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었어요. 체 게바라는 잘 훈련된 쿠바 군대를 마치 별 것 아닌 것처럼 상대했죠. 체 게바라가 게릴라 전투에서 보여줬던 획기적인 전략과 전술은 현재까지도 전 세계 군대에서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체 게바라는 남미산 제갈공명으로 평가되는데, 한번도 공식적인 군대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다는 걸 고려하면 이는 정말 대단한 것 같네요.
체 게바라는 존경받는 동시에 무자비한 사형 집행인으로서 두려움의 대상이었죠.탈영병과 중도 포기자, 겁쟁이 등 자신을 지지하지 않거나 싫어하는 놈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바티스타 군대는 결국 산이나 외곽 지역에서 체 게바라를 상대로 싸우기 힘들다고 생각해 도심지역으로 후퇴합니다. 물론 체 게바라는 그냥 뭐 별 고민없이 덤벼들었고 도심을 둘러쌌죠. 사기가 꺾인 군대를 쉴새없이 공격하면서 도심지를 하나씩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안 되서 존나 식겁한 정부군은 백기를 들며 항복을 했죠.
1958년 12월, 체 게바라 혁명군은 쿠바 국민 정부군의 근거지 산타 클라라(SantaClara)를 공격합니다. 이 정부군은 6000명에 달하는 군인과 탱크12대, 폭탄,장갑차 등 엄청난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죠. 그런데 체 게바라는 눈깜짝 하나 안 한 채 장갑차를 포획하고 주요 군대를 장악했으며 대항군은 모조리 죽였어요. 바티스타는 자신의 군대가 끝나가는 걸 눈치 채고 똥쭐이 존나 탓다고 하는데요. 결국 산타 클라라가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나라를 떴다고 합니다. 체 게바라는 1959년 하바나에 입성했으며 서반구에서 최초로 성공한 사회주의 혁명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는 군대에서 활동한 경험도 없었으며 사전에 훈련조차 받지 않았는데 단독으로 제3세계 국가를 타도시키죠. 이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 고등학교 남자 애들이 상상하는 거 있잖아요. 친구들 몇 명 모아가지고 섬을 침략하는 그런 짜릿한 거 말이죠. 근데 체 게바라는 이걸 진짜 실행에 옮긴 셈입니다. 정말 미쳤습니다.
혁명이 끝나고, 체 게바라는 라 카바나 감옥의 수장으로 임명됩니다. 여기서 체게바라는 자신을 빡치게 만든 수 백명의 정부 및 군대 관계자를 처형 시키죠. 여기 사람들한테 체 게바라는 라 카바나의 도살자로 여겨졌습니다. 이 별명만 봐도 딱 알겠죠. 이 사람 건드리면 큰일나겠구나 하는걸요.
라 카바나에서 일을 마친 뒤에, 체 게바라는 국제 은행의 회장 및 쿠바의 재무부 장관을 지내는 등 여러 활동을 합니다. 체 게바라는 전 세계를 다니며 외교 임무를 맡아 활동했으며 유엔한테 몇 번이나 욕도 하고 피그스만 침공에 대항해 이들을 물리치기도 했죠. 1964년 콩고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체 게바라는 무슨 일인가 해서 직접 방문을 합니다. 120명의 쿠바 고문을 데리고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반역군과 동맹을 맺었으며 CIA의 훈련 된 용병과의 전투에서도 도움을 줬어요. 이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지만...뭐...매번 이기기만 하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1966년 체 게바라는 게릴라 전투 전문가 16명을 데리고 볼리비아로 가서 혁명을 시도합니다. 체 게바라는 이게 볼리비아 대중을 선동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고, 이는 실패로 끝이 났죠. 체 게바라를 추적하기 위해 미국은 CIA와 특수 부대를 보냅니다. 1967년 10월 체 게바라는 두 번이나 심각한 총상을 입은 후 결국 볼리비아 군인에 의해 처형 당하고 마는데요. 체 게바라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던 사형 집행 군인이 쫄아서 방아쇠를 당기는걸 망설이자, 체 게바라는 이렇게 소리쳤죠. “이 겁쟁아 안 쏘고 뭐하냐! 남자 한명 죽이는 게 뭐가 대수라고!”
이상 장 폴 사르트가 말한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에 대해 알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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