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맥주를 늘 드시고, 또 오래 드셨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따로 세 번쯤 만났는데 낮에도 책상 위에 막 마신듯한 맥주가 있었습니다. 원래는 소주를 좋아하지만 술자리에 앉을 시간이 없어서 맥주로 대충 때운다고 했습니다. 환갑을 바라보는 예술가가
소주 한잔할 시간도 없다니, 당시에는 그 말과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술잔을 놓지 못한 건 창작의 고통 때문이기도 했을 터이고 뭐든지 ‘그냥’, ‘대충’ 하지 못하는 날 선 ‘쟁이 기질’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상(理想)과 현실 사이의 괴리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걸 해나갔는데 그게 돈 되는 거만 찾는 ‘시장 논리’와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힘들었을 겁니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고 했던가요? 김민기는 끝까지 이상주의의 편에 서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상과 세상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서는 술이 필요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