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장우식의 시사토픽

(종영)장우식의 시사토픽

By 경인방송Music
Download on the App Store

(종영)장우식의 시사토픽 episodes

  • 한주의 다양한 문화소식을 알아보는 시간, 문화톡톡!
    3부 : [문화톡톡] 인천시립합창단 듀오 콘서트 With, 제36회 인천연극제, 엘림아트센터 오르간 연주자 마틴 슈메딩 독주회, 선데이 콘서트 바이올린 연주자 최병호 독주회, '그림 읽어주는 베토벤(고흐편)' 공연, 인천 계양문화회관 '콩알콩알' 체험 전시, 팝 칼럼니스트 이양일 '뮤직 북콘서트',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 개막전 리듬파워 공연 - 조화현 i-신포니에타 단장
    10 min
  • 인천 제물포의 역사
    3부 : [타박타박 인천] 인천 제물포의 역사 -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부장
    타박타박 인천 3월 6일 – 넘어가는 길, 건너가는 길 28, 제물포 2
    Q1. 오늘도 인천의 물길 이야기, 제물포에 대해서 소개해 주시는 거죠?
    네. 지난 시간에는 개항 당시의 제물포와 그 부두 시설, 그리고 부두 무역에 종사했던 객주 상인들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오늘은 제물포라는 지명이 언제부터 등장했는지, 그리고 인천의 역사 속에서 제물포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에 대해서 설명해 드릴까 합니다. 지난 시간에 지금의 인천역 인근으로 흘러드는 갯골을 제물포라고 불렀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하지만 제물포에 붙은 ‘제물’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니구요. 영종도에 있던 ‘제물사’이라는 사찰의 이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Q2. 영종도에 제물원이라는 사찰이 있었군요? 언제때 지어진 사찰이죠?
    이 사찰이 정확히 언제 창건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만 고려시대의 기록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고려시대의 사찰이 아니었나 생각되는데요. 다만, 제물사라는 이름과 이 사찰이 수행했던 기능을 통해서 볼 때 창건시기도 고려시대라고 추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물이라는 단어는 한자로 ‘건널 제(濟)’에 ‘만물 물(物)’자를 쓰거든요. 풀이하자면 ‘만물을 건네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요. 언뜻 보자면 사찰의 이름과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물사가 있던 영종도의 당시 위상을 보자면 조금은 이해가 가는 이름입니다. 고려시대의 영종도는 해상무역을 위해 중국 송나라의 무역선이 고려를 오가면서 처음 또는 마지막으로 기착하던 장소였기 때문이죠.
    Q3. 아~ 그러니까 고려시대 무역선의 기착점이었던 영종도에 사찰을 짓고 여기에 무역을 의미하는 ‘제물’이라는 이름을 붙인 거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아시다시피 조선이라는 나라는 외국과의 해상교역을 전면적으로 금지시켰는데요. 이에 비해서 고려는 바다를 통한 외국과의 무역이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영문표기인 ‘Korea’도 고려라는 이름이 아라비아 무역상인을 통해 서역과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불리게 된 이름이라고 하잖아요? 그렇듯이 고려는 중국을 비롯해서 매우 다양한 나라들과 무역을 하고 있었는데요. 고려의 국제무역항이 개성 아래에 있던 벽란도라는 나루터였습니다. 벽란도에서 출발한 무역선이 예성강을 따라 내려와 강화도와 교동도 사이를 지나면 영종도에 이르게 되는데요. 특히 불교를 숭상했던 중국 송나라 무역선의 경우에는 반드시 영종도에 기착했다고 합니다. 배가 영종도에 닿으면 배에 있던 상인과 사신들은 섬에 있던 제물사에 들러 앞으로의 항해가 무사하기를 부처님 앞에 기원했던 거죠. 반대로 벽란도로 향하던 무역선 역시 마지막으로 영종도 제물사에 들러 무사히 여정을 마친데 대해서 감사의 기도를 올렸던 거구요. 고려와 중국 송나라 모두 불교를 숭상했기 때문에 바다에서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첫 기착지인 영종도에 사찰을 짓고 이름을 제물사라 붙였던 거죠.
    Q4. 그런데 이 제물사에는 항해도중 사망한 송나라 사신의 위패를 두기도 했다면서요?
    그렇습니다. 고려 인종 원년이었던 1123년 중국 송나라의 사신으로 고려를 다녀갔던 서긍이라는 사람이 지은
    10 min
  • 안희정 충남도지사, 정무비서 성폭행 논란 일파만파
    4-1부 : [집중인터뷰] 정치권 첫 미투, 안희정 충남도지사 비서 성폭행 폭로 - 김홍국 정치평론가
    ▶오프닝
    어제 안희정 충남도지사 현 정무비서인 김지은씨가 JTBC뉴스룸에 출연해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지난해부터 4차례 성폭행과 수차례 성추행을 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안희정 지사는 결국 모든걸 인정하고 충남도지사 사퇴, 정계은퇴를 하게됐는데요. 지방선거를 앞두고 큰 폭탄이 터졌습니다. 김홍국 정치평론가 전화연결돼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질문내용
    1. 본론부터 들어가죠. 현재까지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추가 반응이 나온 것은 없습니까?
    2. 정무비서인 김지은씨가 폭로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지난해 6월 말부터 8개월 동안 4차례의 성폭행과 함께 수시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
    3. 일단 미투운동이 정치권으로 넘어왔는데요. 앞으로도 이런 폭로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까요?
    4. 지방선거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겠죠?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8 min
  • 잊지말아야할 우리 동포, 사할린 동포
    4-2부 : [인천적십자와 함께하는 이웃사랑 인천] 잊지말아야할 우리 동포, 사할린 동포 - 이현숙 인천적십자 구호복지팀장
    얼마전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3.1절이 지났습니다. 아픔을 갖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잊지말아야할 역사인데요. 그 아픔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시지사 이현숙 구호복지팀장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질문 1. 간단한 인사
    질문 2. 3・1절의 역사적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는데요. 그런데 아직도 그 아픔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어떤 건가요?
    - 오늘은 사할린동포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할린동포의 역사는 일제의 강제징용 등에 의해 러시아 사할린으로 이주되면서 시작됐는데요. 불행중 다행히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면서 이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올 갈 거라 이분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죠. 하지만 일본 정부의 귀환 불허와 1952년 일방적인 국적 박탈조치로 인해 이분들은 사할린에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분들은 또 한 번 좌절해야했죠. 그렇게 남은 한국계 동포는 후손까지 포함해 약 4만3천여명이나 됐습니다.
    질문 3. 그렇다면 이분들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이뤄졌나요?
    - 당시 인도적 사안 해결을 위해 1989년 7월 한일 정부의 요청으로 양국 적십자사는 사할린동포의 영주귀국, 일시모국 방문, 귀국자역방문 등 사할린에 거주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동포에 대한 지원하는 ‘사할린한인지원 공동사업체’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한인동포 중 우리 조국으로 귀국해 남은 여생을 보내고자 하는 분들은 영주귀국 시켜드리고 사할린 현지 한인동포 1세, 2세 모국을 방문한 분들은 국내에 7박8일간 체재하며 우리 전통문화와 발전한 고국의 모습을 시찰함으로써 고국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일시모국 방문사업도 하였고 영주귀국한 사할린동포들을 대상으로 1~3개월간 사할린 현지를 방문해 가족과 친지와 만남으로써 제2의 이산의 고통을 줄이는 등의 지원이 이뤄졌고 약 4천여명이 고국에 정착했습니다.
    질문 4. 알아본 바로는 이분들을 위한 요양시설이 있다고 하던데 설명 부탁드립니다.
    - 사할린동포 1세대 가운데 질병이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요양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지원하는 사업이 있는데 그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우리 인천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바로 인천 연수구에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인데요. 현재 우리동포 약 90여명이 여기에 살고 있습니다. 귀국당시 받았던 금의환향은 잠시, 현재는 간헐적으로 후원하는 시민만이 이들을 기억하고 있는데요. 점점 줄어드는 국민적 관심과 후원은 요양시설의 운영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질문 5. 말씀만 들어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사할린동포가 현재 얼마나 계신가요?
    - 지난 1994년, 한국과 일본 두 정부는 사할린 잔류 한인동포의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를 했습니다. 합의에 따르면 한인 1세대는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로서 1945년 8월 15일 이전 사할린에 이주하여 계속 거주중인 자’로 규정했는데요. 이 기준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시점 사할린에 약4만3천여명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죠. 지난해 외교부가 발간한 ‘재외동포현황 2017’에 따르면 사할린 거주 동포 수는 2만6491명으로 줄어들고 있는 추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생존한 한인 1세대 중 고국을 선택해 영주귀국한 분들은 약4300여명이고 잔류 1세대는 약 7백여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질문 6. 현재 이분들에 대한 지원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 1999년 정부에서 인천사할린동포회관을 설립할 당시 시설・운영 등 전반을 지원하는 걸 적십자에 위탁을 했습니다. 국고지원과 일본 지원금으로 운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2017년부터 일부 재정지원을 해온 일본정부가 중단을 했습니다. 일본지원금이 시설 전기료와 요양보호사 인건비를 지원한 부분이었는데 참 안타깝죠. 게다가 국고사용에 대한 애매한 부분이 있고 이분들이 정부기준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자로 편입되다보니 연간 따지면 약 2억5천여만원인데 세끼 식사값밖에 안되고 있습니다. 가끔 후원계좌로 조금씩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질문 7. 하루빨리 지역사회가 나서서 도움을 드렸으면 좋겠는데요. 돕고자 하는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 032-810-1318 / 032-810-1318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사회협력팀입니다.
    여기로 연락주시면 구체적으로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질문 8. 우리 지역사회에서 일반시민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안보이는 곳에서 적십자 활동이 없이사시는 분들에게는 희망으로 보여지는데요. 오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분이 계시다고요?
    - 오늘 소개해드릴 분은 남동구에 사시는 청각장애를 갖고 계신 84세 어르신입니다. 다리통증이 심해서 거동도 불편하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시는데요.
    - 한달에 독거노인으로 기초연금과 개인연금을 68만원 가량 수령하고 계신데요. 담보대출과 공과금 42만원을 내시고 나면 실질적으로 생활을 할 수 있는 금액이 얼마 없으세요. 게다가 청각장애가 있어 의사소통도 어려우시고요.
    - 도와달라고 요청해 오신게 큰 돈이 아니여서 놀랐는데요. 연체된 가스비 27만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분에겐 27만원은 한달을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큰돈이다보니 저희에게 어렵게 요청하신것같아요.
    - 저희가 급하게 연체된 가스비를 지원해드렸는데요. 실제 이분에게 필요한건 주기적으로 방문해 간병해주실 수 있는 분이 필요하거든요. 사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홀로 계시다 아프면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거든요. 혹여나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이 큽니다.
    -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에 계시다면 032-810-1318 / 032-810-1318로 연락을 부탁드리겠습니다.
    10 min

About (종영)장우식의 시사토픽

From the publisher's feed

인천과 수도권의 모든 소식을 논하는 시사프로그램. 경인방송 FM 90.7 오전 7~9시 방송. 공식메일: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