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커피 칸타타 / Coffee Cant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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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dio Company
The podcast currently has 9 episodes available.
좋은 커피는 좋은 원두에서 나온다. 하지만 좋은 원두란 내가 좋아하는 맛을 내주는 원두다. 그리고 마침내 난 찾았다. 내 인생 커피, 나만의 향기를 만들어 주는 원두를
얼마 후 나는 미국 바리스타 대회에서 다방커피를 선보인 당당한 한국 아가씨로 포장되어 커피매거진 바리스타에 실렸고, 칸타타는 덕분에 유명세를 치르며 경제난을 극복했다. 비싸고 화려하게 멋 부린 커피보다 어쩌면 지나치게 간단한 프림 둘 설탕 둘의 싸구려인스턴트 커피가 더 맛있을 때가 있다. 가끔 가진 것들을 꽉 쥔 손에 힘을 뺄 때, 욕심부려 짊어진 것들을 덜어낼 때 인생은 더 많은 것들을 가져다 주곤 한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가지고 있던 욕심들을 내려놓으며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나의 짧은 미국 생활이 종착역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헤이즐은 그날 내게 아포가토를 권해주었다. 마음이 힘들때는 아이스크림을 먹는거야 라면서. 하지만 아포가토는 아이러니한 선택이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 위로 진하고 뜨거운 에스프레소가 끼얹어지면서 아이스크림을 녹이고 아이스크림의 지나친 단맛을 에스프레소의 쓴맛이 중화시켜주었다. 마치 너무 행복하지 말라는듯이. 허황되고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마주하라는 듯이. 그렇게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달콤했던 내 첫 스물다섯의 사랑 위로…그날은 너무도 잔인하게 검은 비가 내렸다.
마끼아또는 이태리어로 점 또는 흔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에스프레소 위에 우유 거품이 올라가 하나의 점 또는 흔적을 남기고 더 이상 에스프레소의 강렬함만이 아닌 부드럽고 고소한 뒷맛을 선사한다. 어느 날 인가부터 헤이즐의 마음 또한 마치 한잔의 마끼아또처럼 지울 수 없는 점이 찍혔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방울방울 끓어올라 촘촘하고 부드러운 거품 막을 만들고, 씁쓸함 가득했던 마음 정 가운데에 동그랗게 떨어져 부정할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버렸다. 단 한가지 그녀가 몰랐던 건 그녀 역시 누군가의 마음에 점으로 지울 수 없는 흔적이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드립 커피 맛의 열쇠는 물과 커피 입자가 만나는 시간이다. 물은 커피 입자를 스치듯 빨리 빠져나갈 수도 있고, 천천히 시간을 두고 커피 입자를 적시고 맴돌다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날 태용이는 평소보다 훨씬 더 오래 내 옆에 머물러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만, 그냥 나는 그가 머물러 있는 시간이 아주 소중했고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오래 머물 길 바라고 있었다.
태용이는 라떼와 카푸치노의 차이는 우유와 거품의 양으로 정해진다고 했다. 라떼는 거품보다 많은 우유의 비율이 주는 달콤한 맛이 강조되는가 하면 카푸치노는 우유보다 많은 거품의 비율이 고소한 맛을 선사한다. 그 어느쪽이 맞거나 어느 한쪽도 더 맛있다고 할 수는 없다. 신기하게도 이 비율의 미학은 누군가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우리 태도의 부드러움의 정도와 매우 흡사하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마음을 실제의 크기 보다 더 크게, 더 다정하게 표현하는가 하면, 어떤 누군가는 실제의 마음보다 훨씬 더 작게, 더 거칠게 표현하고는 한다. 사랑의 감정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그 어떤 쪽이 맞거나 틀리다고 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중력이 만드는 커피, 콜드 브류. 오랜시간에 걸쳐 한방울 한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로 만들어지는 만큼 ‘천사의 눈물’이라고도 불린다. 숙성된 와인에 비견될 만큼 그 맛의 미학은 오랜 기다림에 있다. 우리의 기다림은 언제나 시간을 거쳐 외로움이 되고, 그렇게 한방울씩 모인 외로움은 그리움이 되어 마음 한켠에 자리하게 된다. 그때 우리는 25년간 채워지지 않은 각자의 갈증을 해소하고자, 때로는 친구의 우정으로 때로는 그 이상의 감정으로 끊임없이 위로받고 싶어하고 있었다.
카페 모카는 에스프레소의 쓴맛, 따뜻한 우유의 부드러움, 그리고 초콜렛의 달콤한 맛의 조화로 만들어진다. 뭔가 심심한듯 하지만 담백하고 몸에 좋은 우유같은 사람. 반면 몸에 안좋은줄 알면서도 끊을수 없는 달콤 쌉싸름한 사람. 그리고 한잔의 에스프레소. 이 세사람은 첫 만남부터 커피잔속 소용돌이치는 거품처럼 어쩐지 조금은 위태한 맛의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언젠가 내게 아메리카노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시며 말씀하셨다.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와 물의 조화로 맛이 좌우 된다고. 그렇다. 아메리카노는 물의 양, 온도, 질감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로 결정된다. 우리 모두는 어떤 물을 만나는지에 따라 끊임 없이 변화하고 성장한다. 어쩌면 이 두 사람은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로 씁쓸했던 나의 잔을 부드럽고 고소한 풍미로 바꿔준, 나의 첫 번째 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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