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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일 뿐 아니라 종말을 향해 치닫는 온 우주 역사의 핵심 축입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 역사가 의미가 있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의 예수부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차 있게 될 생명의 부활의 첫 열매로서의 예수부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기독교 신앙과 신자의 거룩한 순종의 삶이 이 헛되지 않는 것은 성경이 기록하는 대로의 예수부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 15:14).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 우리가 믿는 복음, 우리가 순종하는 복음은 예수부활이라는 이 한 사건이 있었기에 지금도 계속 전파되어야 합니다. 지금도 계속 믿어야 합니다. 지금도 계속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 부활은 예수의 삶과 사역이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이었음을 확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계속해서 예수의 부활을 그리스도의 부활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쓴 때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이 있은 이후입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고전 15:16).
성경에 예언되고 기록된 대로의 예수부활이 없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와 믿음이 계속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 신앙은 가장 불쌍하고 헛된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
한걸음 더 나아가 바울은 예수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 신앙은 한갓 인간적인 소망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고 그런 헛된 소망을 붙들고 사는 신자들이야 말로 가장 불쌍한 자였을 거라고 합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
하지만 예수는 부활했습니다. 부활의 첫열매로, 오는 모든 부활들을 위한 부활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렇다면 복음도 헛되지 않고습니다. 우리의 전파도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헛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우리는 더이상 죄의 권세와 심판아래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계명을 따라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경건도 헛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우리는 이 세상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더 나은 본향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율법과 상관없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가 신원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확증된 것입니다. 이 모든 의미의 중심에 자리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바울의 이 증거는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믿음과 증거의 제목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 1:16)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딤전 1:15).
무덤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면에서 예수의 부활과 비슷해 보이는 여타의 부활사건들은 예수의 부활과는 전혀 차원과 성격이 다릅니다. 여타의 모든 부활 사건들은 하나같이 예수의 부활을 대망하고, 예수 부활의 능력을 증거하고,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음을 증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 부활을 위한 리허설이었던 것입니다. 예수 부활의 권세를 힘입은 이적과 증거였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예수의 육체의 부활과 동일하지 않고 비견될 수도 없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모든 부활의 첫 열매요, 모든 부활들의 부활이기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로마서 6:9).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삼위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물론 성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동일하게 성자와 성령 하나님 역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세 위격이 한 본체로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죽은자들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셨다는 성경의 진술 역시 합당합니다. 이를테면 골로새서 2:12은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것을 “하나님의 역사”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2:24은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다”고 합니다. 같은 책 13:30 역시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니케아 신앙고백과 같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정통 신앙고백에 따라 엄밀하게 ‘예수는 성부의 영광과, 성자 자신의 능력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성경의 증거를 통해 예수 부활은 과연 삼위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함께 확인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진리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말이고, 죄인인 우리에게는 복음입니다. 계속해서 이 팟캐스트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혹시 삼위일체에 대하여 정통신앙고백에 따른 성경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책을 한 권 소개합니다. '복있는 사람'에서 출판된 마이클 리브스의 ‘선하신 하나님’입니다. 원 제목이 ‘Delighting in the Trinity’인 이 책은 본인이 번역하는 특권을 누린 책들가운데 입니다. 그러나 제가 번역한 책이라 추천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면 이 책의 판매는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번역자로서 책의 내용에 대해 알기에 이 주제와 관련하여 강력하게 추천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를 이룬 주체를 각각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라고 일관되게 증거합니다. 니케아 신조와 같은 삼위일체에 대한 정통 기독교 신앙고백과 원리를 통해서만 성경의 이런 일관된 증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이해할 뿐 아니라, 삼위 하나님을 복음의 하나님, 우리의 구원과 구원받은 우리의 거룩한 삶의 토대와 능력이 되시는 새생명의 하나님이신 것을 맛보아 갈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사십일을 이 땅에 계시며 사도들을 준비시키셨습니다. 사십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눅 24:46; 행 1:3).
이렇게 준비된 사도들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회개하라’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도들의 메시지에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거와 회개의 당위성이 연계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복음의 기록에 따르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친히 이 두 사실을 연결하여 가르치셨습니다. 그렇게 가르치실 뿐 아니라 사도들이 증거할 제목이라고 하십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누가복음 24:45–48)
과연 베드로와 사도들은 충성된 증인들로 드러납니다. 공회에 잡혀간 사도들이 담대히 설교한 내용 역시 승천하신 주님의 명령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제 회개할 때라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자들 가운데서 살리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사도행전 5:30–32)
무엇을 주시려고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시고 하늘로 높이셨다고 합니까? “회개함과 죄사함”입니다.
솔로몬보다 더 큰 임금이 여기 계십니다. 요나보다 더 큰 선지자가 여기 계십니다. 그분이 지금 당신에게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라고 하십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를 임금과 구주로 모시는 삶으로 돌이키라고 합니다. 지금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6:2
이르시되 ......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아멘.
지난 번 팟캐스트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의 타락이래로 온 우주의 역사는 예수부활 이전의 시대와 그 이후의 시대로 갈립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부활 이후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부활의 당사자이신 예수는 이 시대를 가리켜 마지막 때, 말세라고 하시며, 회개를 명령하셨습니다.
회개는 돌이킴입니다. 180도 돌아서는 것입니다. 정 반대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지옥을 향해 가던 길에서 돌이켜 천국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살던 길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웃을 위해 사는 길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 양 이 세상의 풍조와 가치와 이 세상에서의 안위를 위해 살던 삶에서 돌이켜 오는 세상의 영원한 나라의 질서와 가치와 원리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구주와 주가 되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의 말씀을 준행하며 그와 교통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 사는 것입니다. 주의 왕되심과 다시 오심을 입술과 삶으로 전파하며 사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함으로 남은 죄를 도말하며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초대교회때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뜻을 행함으로 그와 교통하는 연락와 안위를 누립니다. 중병에 걸리지 않는 한 머리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의 지체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움직이십시오. 우리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함으로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계실 때도 그랬고, 하늘 보좌에 좌정하신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 땅에 계시는 내내 우리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양식과 음료는 다름아닌 성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예수의 지체된 나 역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주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그의 지체된 증거입니다.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영께서 우리를 성전삼고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로 그와 더불어 진리안에서 행하기를 힘쓰는 하나님 나라의 친백성을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예수의 부활의 의미를 이해하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부활의 빛을 통해 제대로 이해할 수록, 그의 부활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아는 지식의 선순환이 우리의 일생을 통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사랑에 자라가게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예수의 부활이 이런 사실들을 인치는 하늘 법정의 선포요, 부활하여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하늘과 당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임금과 재판장이시라면, 이제 우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그의 아들을 통해서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를 통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부활하신 그를 만물의 후사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나라의 홀은 의로운 홀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보좌는 영영하며 그의 통치의 연대는 다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그의 복음의 홀이 내밀어져있는 지금 그의 통치아래로 들어오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에게 입마추십시오. 그를 믿음으로 여호와께 피하십시오 (시편 2:1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역사가 이미 이루어졌고, 또 그의 다시오심과 더불어 장차 완성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새생명 가운데 이런 ‘이미’와 ‘아직’의 간극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신자의 삶입니다. 이 때를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다름 아닌 날마다 하나님의 의와 진리의 거룩한 말씀을 준행함으로 모든 일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입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자기 백성의 일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해 이 일을 이루어가시겠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자기 아들이 많은 형제를 가진 맏아들로 드러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들어보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28–29, NKRV)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인 거룩입니다. 말씀으로 구별된 삶입니다. 부활의 새생명 가운데 사는 삶입니다.
예수의 말씀과 역사를 통해 계시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의 형상, 그것을 본받도록 우리를 부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 놀라운 일을 위해 수렴되도록 우리 안팎에서 행하시는 우리 구원의 주체, 그리고 이를 통해 날마다 자녀들의 마음에서 찬미의 주제가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로마서 4:25, NKRV)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항상 그가 부활하신 실제 안에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의 부활을 생각할 때 역시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인친 우리의 의의 확증으로서 부활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분리된 두 가지 사건이 아닌 우리의 구원을 성취한 단일한 구원역사로 이해되는 것이 정당하고 맞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씨앗과 같습니다. 이미 그 안에 부활이라고 하는 신비한 형체를 다 품고있는 앗말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렌즈를 통해서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에라야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를 제대로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와 능력을 모르는 사람은 성경이 말하는 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고백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에서 죽은 메시야가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사건입니다. 죽었던 그의 육신이 다시 살아난 사건입니다. 이 역사적인 부활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구속의 역사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제자들에게 온전히 증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은 이런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 일들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필요로 하는 만큼 그리스도의 부활 또한 없어서는 안됩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나를 위한 대속의 죽음으로 믿고 죄에서 돌이킬 때 그 회개가 하늘 법정에서 합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의롭다 선언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부활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속 사람이 즐거워하고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은 어디로 부터 옵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이 땅에서부터 참 자유와 희락과 경건의 신비를 누리도록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로마서 12장, 에베소서 4장 이후로 열거되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그러므로 남편들아” “그러므로 아내들아” “그러므로 자녀들아” “그러므로 아비들아” “그러므로 상전들아” “그러므로 종들아”....와 같이 시작하는 계명은 한갓 공자나 소크라테스의 교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이 역사적 사실이 맞다면 이런 계명들은 이 땅에서 신자들이 살아갈 유일한 삶의 내용과 원리입니다. 부활로 말미암아 이런 복음의 계명이 그리스도의 권세와 성령이 주시는 능력과 참 자유를 따라 내 속에서, 내 가정안에서, 내 교회안에서, 내 일상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를 무력하게 하고 자궤감을 느끼도록 하는 한갓 고상하고 피상적인 교훈이 아닌 우리를 위해 난 길로 드러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중단없이 걸어갈 신자의 복된 여정으로 드러납니다. 우리의 선구자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들어가신 하늘 지성소로 난 길로 드러납니다. 이 길은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 승리의 길입니다.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김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가운데서 행하도록 하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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