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드(COVID-19)로 온 나라는 물론 온 세계가 유례없는 때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다른 재해나 질병도 그렇지만 팬데믹(pandemic)이 유독 고약한 것이 사람을 고립시킵니다. 단절시킵니다. 두려움때문입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 각자의 발 앞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사망에 대한 두려움때문입니다. 팬데믹(pandemic)이 오기 전이라고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는 여러가지 것들로 애써 외면하면 그냥저냥 회피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원치는 않지만 피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한 편지에서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일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개인의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개인의 출생이라는 사실만큼 분명한 사실은 개인의 죽음이라는 사실 뿐입니다. 그 외 모든 것은 현실이 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무엇보다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무엇을 준비한다는 말입니까? 죽음의 방법? 죽을 장소? 그 순간을 함께 맞을 사람? 아닙니다. 죽음 이후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심판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영원한 심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것이라 말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죽음 이후의 심판을 준비합니까? 죽음을 이기신 이, 죽음 보다 강하신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의 죄로 인한 영원한 죽음과 심판을 다 친히 치르신 그분의 승리와 부활의 권세아래로 피하는 것입니다. (요일 2:1-3)
여기 사망을 이기신 이가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에서 성취하실 일의 그림자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것처럼 어린 소녀를 살리셨습니다, "아이야, 일어나라!" (눅 8:54)
이는 다름 아닌 장차 오셔서 발하실 말씀의 그림자입니다. 영광중에 다시 오실 그 때에 예수의 음성을 듣고 무덤에 있는 모든 자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은 생명으로, 그리스도 밖에서 잠자던 자들은 멸망으로 각자의 무덤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요 5:28-29)
예수의 십자가 구속과 의의 부활이 그를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라 하지 않습니까? 스스로 권위가 되어 사는 반역의 삶에서 돌이켜 예수를 주로 믿고 그의 뜻을 배우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