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 : 33-46 (조무제 목사님)
오늘의 본문은 포도원의 악한 일꾼에 배한 비유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는 하나님의 때와 열매맺는 삶에 대해서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기 원합니다.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잘 만들어 놓고 농부들에겟 세를 주고 외국에 갔습니다. 이에 때가 흘러 세를 받으러 종을 보내자 때리고 죽인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이에 참다 자신의 아들을 보냅니다 그러자 농부들은 이에 상속자다 죽이고 우리가 포도원을 차지하자 하여 아들을 죽인다는 예화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포도원 주인이 하나님입니다. 인내하시고 모든것을 제공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포도원 농부들은 그 시대의 백성들 이스라엘 백성들 또 종교 지도자들이 되겠습니다. 포도원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이 비유속에서는 이스라엘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주인의 아들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써 이해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먼저 이 이야기의 배경에 대해서 좀 더 알아야 합니다 왜 이런 대화가 시작 되었을까?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전에 성전에 가셔서 성전정화를 하신 후의 이야기로 마태는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 지도자를 입장에서는 예수님꼐서 소동을 일으키신 그 사건 후에 예수님꼐 따져 물으러 간것입니다. 도대체 당신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행하냐고 채근을 하는 상황인것입니다.
이런 제사장들의 질문에 대해 주님께서 세가지 비유로 답을 하셨는데 오느르이 비유가 바로 그 두번째 비유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의 비유를 통해 때에 대해서 말씀하시고도 계신것을 살펴 보길 원합니다.
오늘은 2월 29일입니다. 사년에 한 번 돌아오는 날입니다. 윤년이라고도 하는 오늘은 자연의 시간과 인간이 정한 시간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불가불 인간이 만들어놓은 날입니다. 그래서 생일이 사년에 한 번 돌아오시는 분들도 생기게되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때는 먼저 이런 인간이 정해놓은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말씀하시고 있는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34절은 열매를 거둘 때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 때를 즈음해서 우리 주님이 오신것이라고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추수철 수확의 계절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종들을 보내신후에 우리 주님이 오신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의미를 분명히 오늘의 예회는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때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오늘의 말슴으로 깨달을 수 있는 또 한가지는 하나님꼐서 축복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의 어느 시범에 분명히 열매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이 악한 종들과 같이 행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기에 연관지어서 생각 할 수 있는 예화가 이미 나왔던 무화과나무의 비유입니다. 주님께서 시장하신차에 열매를 찾으셨지만 열매가 없어 저주받아 말라죽은 무화과 나무에 관한 예화, 기억 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해 볼 것은 예수님꼐서 무화과를 찾으신 유월절즈음은 무화과 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연적으로 무화과가 필 계절이 아닌데 무화과를 찾으신것이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거세게 몰아치던 폭풍도 주님을 알아보고 순종하였고 배를 삼킬듯 달려들던 파도도 그러했으며 보리떡 두개와 물고기 다섯마리는 자기들을 불려 오천명을 먹이기까지 순종한일을 생각해 보면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열매맺는 계절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꼐서 정하신 열매맺는 때인 카이로스가 훨씬 중요함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이 무화과 나무는 절대적인 카이로스의 현현이신 예수님앞에서 그 때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그 기가막힌 기회를 놓치고 마지막 기회되신 예수님의 때를 놓쳐 말라죽게 되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회로 우리에게 분명한 말세의 경고와 마지막 기회되시는 예수님의 은혜의 의미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자 그리고 오늘의 예화는 그 마지막 때를 몰라보는 인간의 군상의 악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기회되시는 우리 주님이 우리의 주인의 아들로 오셨을때 농부들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밥아 죽이게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대신 자신들이 하나님의 지으신 나라 이스라엘을 다스리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차지 하려고 하던 그 나라는 이방인의 손에 떨어지고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구원의 복음은 이방인된 우리들에게 들려지게 됩니다.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자가 먼저되는 일이 정말로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때를 무시한 인간들에게 업한 심판이 이르고 마는것을 볼 수 가 있는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때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완악한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알 수가 없다는것도 잘 압니다 그래서 성경은 때를 얻던지 못 얻었던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에 힘쓰라고 하는 것입니다.
때를 얻던지 못 얻었던지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살아 내는 데 힘써야 겠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임박한 심판을 피하는 법이요, 복받는 길이요, 나중되었던 자로 먼저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최선으로 살고 연약한 자에게 하나니므이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요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통해 오늘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고아인 서울대 생을 이끌어준 이 주인 아주머니, 사실 가능성이라고는 쌀 알 만큼도 보이지 않는 이 아이에게 가르침을 ㅈ주고 돌보아준 이 아준머니가 저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길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인 때를 얻던지 못얻던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카이로스의 때를 대비하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서울대생 가장 페이스북 사연 전문>
동기들끼리 술을 마시다가 말이 나왔다.
"야, 근데 너는 군대 안 가냐?" "군대? 가야지."
나는 그리고 서둘러 잔을 들었다. "야, 잔 비었다 잔."
나는 군대를 안 간다.
못 간다고 쓸 수도 있는데, 그렇게 쓰기에는 군대를 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나는 가장이다. 엄마아빠는 둘 다 고아라고 했다. 보육원에서 같이 자라고 결혼했다고.
그리고 내가 열두 살 때, 두 분은 버스사고로 돌아가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었을까, 일곱 살짜리 동생과 두 살짜리 동생을 위해서.
공부를 하고, 새벽엔 배달을 하고, 다섯 평짜리 방에서 셋이 잤다.
학교에서는 장학금도 줬다. 수급자비도 정부에서 줬다.
분유, 기저귀, 대부분 그런 걸 사는데 썼다. 물론 그 때는 지금보다는 쌌다.
그래도 꼬박꼬박 저축도 했다. 한 달에 오만 원, 많은 돈은 아니었다.
사실 그것도 주인집 아줌마 명의였다. 그리고 몇 년 뒤에 아줌마가 나를 앉혀두고 말했다.
"너, 대학 갈 거니?"
"아, 일하려고요."
"아니야, 잘 들어.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 그래서 과외를 하렴."
어린 나이에 몸이 상하면 나중에 더 먹고 살기 힘들다고 했다.
몸도 커서 다섯 평에서 자기도 힘들 텐데, 돈 많이 벌어서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라고.
세상에 착한 사람이 있다는 걸 나는 이 아줌마 덕에 믿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믿기 어렵게도 이 대학에 붙었다. 물론 기회균등 전형이었지만.
과외 전단지를 만들어 돌렸다. 한 달만에 내 손에 60만원이라는 돈이 들어왔다.
학교에서는 생활비 장학금을 줬다. 정부에서도 아직 지원을 끊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아줌마한테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
그리고 동생들과 며칠 전에 아줌마를 찾아갔다.
뭘 사갈까 고민하다가 고구마케이크랑 음료 세트를 양 손에 들고 갔다.
아줌마는 고생했다고 우리 등을 다독여주셨다.
큰동생은 이제 고삼이다. 작은동생은 이제 중학생이 된다.
그렇게 계산하더니 아줌마는 정말 빠르게 컸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괜히 눈물이 났다. 결국 우리 넷은 울었다.
이 자리를 빌어,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 아줌마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
저는 이제 졸업을 합니다 아줌마. 다 아줌마 덕분입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