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4 : 13-21(정인수 담임 목사님)
예수님께서 지상의 공생애 사역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것은 사람을 키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양육하시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따라 살고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훈련의 방법으로 주님의 모든 사역의 장소에 제자들을 동행시키셔서 예수님께서 사역하기는 모든것을 보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모든 곳에 데리고 다니신것은 그 장소와 시점에 특별히 임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이 일어나는 그 모든 장소와 시점을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때 그 안에서 깨달을 수 있는 주님의 깊은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베스다 들판에 주님을 보러 나아온 수많은 무리들을 보시게 되었습니다.
마태 14: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있는곳을 본문은 빈들이라고 말합니다 원어로는 ἔρημος-에레모스 광야라는 뜻 입니다. 어떤 번역은 광야를 고독한 곳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고립무원의 땅에서 느끼는 그 감정이 바로 고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 결핍이 많은 곳, 필요가 채워지지 않는곳 그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빈들은 나의 가진 모든것이 바닥이 난곳입니다. 나의 영혼에 각성이 찾아오는 곳입니다. 나에게 깨져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빈들에서 우리를 부리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광야에서 하나님앞에 겸손해지고 그래서 지존자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관야에 서있는 수많은 무리를 보고 마음에 불쌍히 여기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 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여기서 불쌍히 여기시다는 원어는 σπλαγχνίζομαι-스플랑크니조마이 라는 말로 창자가 끊어지는듯한 고통을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꼐서 절망과 좌절로 그들의 관야에 서있는 백성들을 보시고 애간장이 끊어지는듯한 아픔을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보시며 주님의 긍휼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기적은 주님의 불쌍히 여기심에서 시작 됩니다. 기적은 언제나 하나님이 인간을 불쌍히 여기심으로 시작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기적을 일으키기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안에 기적으로 역사하시는것을 보시기 원한다면, 우리안에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 또 나의 가정이 정말 치유되기를 원한다면 나의 고집과 생각을 내려놓고 나의 가족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그 마음이 우리 안의 작은 불씨가 되어 그것이 기적의 파동을 일으킬 줄로 믿습니다.
인도의 어머니 마더 테레사는 서구의 가장 큰 병으로 자신을 원하고 사랑하고 돌봐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몸의 병은 치유할 수 있지만 고독과 절망의 병은 오직 사랑으로만 치유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늘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사랑의 도전을 하십니다.
에이미 카마이클-Amy Carmichael 이라는 기도의 작가는 사랑없이 줄 수 있지만 주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다는 금언을 남겼습니다. 사라은 주는 것입니다,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병문안을 많이 가지만 그 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아픈 성도들을 정말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작지만 진심으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가가서 안수하고 기도하면 거기에 바로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사랑의 마음으로 모두에게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이런 사랑의 마음으로 나악ㄹ 수 있겠습니까?
마태14: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이 말씀은 너희들이 책임지라는 말씀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제자들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에서 보면 빌립의 계산으로는 200 데나리온의 떡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먹을것을 주라고 명하셨고 여기에 자신의 계산을 앞세웠던 빌립은 교회사에서 불신앙의 아이콘이 되고 맙니다.
오늘날도 이들과 같이 부족한 광야의 삶을 사는 백성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생며의 양식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고난받는자 어려운 자들에게 공금을 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 우리들은 사랑의 선교를 해야 합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치유의 은총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로 마을에가 스스로 먹을것을 구하게 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처럼 비 현실적인 해결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갈것 없다 너희가 먹을것을 주라라고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가진것을 드리면 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우리가 가진것은 어린 소녕이 가진 물고기 두마리와 떡 다섯덩이라고 항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이 놓치고 있었던것은 이들과 같이 하고 계시는 분이 예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모든것을 지으시고 충만하게 이루신 주님앞에 부족이란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꼐서는 그 떡과 물고기를 받아 축복하시고 나누어 주십니다.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작고 보잘것 없는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왜 내가 너희와 동행하는것을 알지 못하느냐! 다만 너희가 가진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우리의 작은것이라도 받아 쓰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진것을 드리면 됩니다.
우리가 선교를 하지만 그 큰 아프리카의 작은 마을 깔레문양하나 돕는다고 어떻게 아프리카가 구원이 되겠느냐? 니카라과의 작은 선교세터 하나를 세운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말씀과 같이 너희의 작은것 너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너희가 가지고 있는것을 내게 가지고 오면 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내가 한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따라 드리면 됩니다. 주님! 제가 지금 오불밖에 없습니다 이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오불을 드리면 됩니다!
이번에 니카라과 선교를 갔을때 처음 시작은 유치원 교실 하나로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0000명의 인원이 모이는 집회를 하고 500명의 목회자가 모이는 집회를 할 수 있는 큰 선교의 기회로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보기에 너무 미약해도 주님앞에 진실되게 드리는 작은것에 늘 기적이 뒤따르는 줄로 믿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허락하신것들 털어서 주님께 드리면 됩니다. 재물도 시간도 헌신도 기도도 다 주님 주신것들 주님께 드리면 됩니다.
그러면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줄 믿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럴때 하나님의 빈드르이 기적이 나타나게 되는것입니다. 교회도 마찬 가집니다. 자근 교회들이 엄청난 선교의 사역을 시간이 흐른 후에 감당 합니다. 그들은 이 당의 궁핍함에 영혼의 핍절함에 책임을 갖고 이들을 불쌍히 여겨 자기의 있는 최선의 것을 드리는 순종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요한 복음은 이 보리떡과 물고기가 어린 소년의 점심이었다고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우리의 가진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것에 감사할 때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드러납니다. 작은것을 드리지만 큰 기쁨과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작은것이지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선교하고 헌싱 할 때 우리의 것을 드릴때 하나님의 기적이 언제나 우리안에 넘치도록 일어날 줄을 믿으며 그러한 역사가 메세지를 듣는 모든 성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