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27-37 (조근상 목사님)
예수님께서는 지상에 오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든자와 약한자를 치유하시는 3중의 사역을 하십니다.
이 때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는 사역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오자 사람들을 피하셔서 산으로 올라가 가르치시는 사역을 하시고 이것이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는 산상수훈이 됩니다.
산상수훈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8가지 구체적인 삶의 원리를 다루게 됩니다. 그리고 또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어떻게 우리가 율법의 의를 이룰수 있는가에 대하녀 구체적으로 6가지 율법을 가지고 다루게 되십니다.
그 여섯가지율법은
먼저 살인하지 말라
두째로 간음하지 말라
세째로 이혼하지 말라
네째로 거짓 맹세하지 말라
다섯째로 보복하지 말라
여섯째로 원수갚는 일에 관한 율법에 관하여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다루어 주시고 오늘의 본문은 그 중에 간음하지말라, 이혼하지 말라, 거짓 맹세하지 말라에 관한것들입니다.
마태 5:27,28)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십계명중 제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은 마음이야 어떠하든지 행위로 실천만 안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마음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이성의 문제로 마음에 죄지은 사람도 아무런 문제없이 성전에 나아와 제사도 드리고 이것은 하나님앞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죄를 지은 자들에게는 무자비하고 잔혹할 정도의 처벌을 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발앞에 끌려왔던 간음한 여인을 보게되면 얼마나 사람들이 이 여인을 가혹하게 다루고 있었는지가 드러납니다. 그 순간 사람들은 이 여인 한명을 돌을 들고서 쳐서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낮아진 심령과 마음속의 회개를 보시고 오히려 구원하여 주시지 않습니까? 오히려 물으시길 어희중에 죄없는자가 돌로 치라? 라고 묻지 않으십니까?
예수님께 야단을 들은 자들은 오히려 바리새인들입니다 화있을진저 독사의 자식들아 회칠한 무덤아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축소시켜 단순한 행위의 문제로 치환해 버린 바리새파인들의 죄를 너무나 중히 보셨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겉 모습보다 행위의 문제보다 오직 심령의 문제가 해결되고 그 치유받은 심령으로 온전히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은 한 손을 잘라내도 다름 한 손으로 도박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육신을 아무리 쳐봐야 심령이 해결이 안되면 절대로 이 문제들로부터 헤어나올수가 없다는것 그리고 이 심령의 문제는 오로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만 해결이 된다는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혼에 관한 말씀을 주십니다.
5:31,32: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현대인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이혼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당부분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이혼에 관한 말씀을 하신것은 예수님 당시에 연약한 자들인 여성을 너무나 쉽게 이혼하는 것에서 보호 하고자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모세가 이혼증서에 관한 규례를 주었지만 그 규례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그 규례를 악용하는 세태를 비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5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결혼의 중요성인것입니다. 이런 중요성을 안다면 예수님 당시 시대처럼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쉽게 이혼하지 않을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정말 피치못할 사정으로 이혼 했다면 또 그 삶을 주님 앞에 드리는데 주저함이 없을것입니다.
그것이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지키는것이기 때문일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맹세에 관한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맹세는 무엇을 걸고 하는것만을 말씀하시는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하는 말에 대한 책임을 지는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한 말을 비키지 않으면 누가 욕을 먹습니까? 성도가 말과 다른 삶을 살면 누가 책을 잡히게 됩니까? 본인은 물론이고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맹세에 관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 삼계명에 직결되는 말씀인것입니다.
오믈 살며본 모든 율법을 지키는데 있는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자신들의 올바르지 못한 마음이었습니다. 내 자신을 위해 울법의 정신을 행위의 문제로 바꿔 버리고 그 가운데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합리화하는 그런 죄를 예수님꼐서는 신랄하게 비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메세지를 받으시는 모든 분들이 심령의 문제를 말씀과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결하시고 하나님앞에 자유로운 삶 사시는 모든분이 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