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타 연합 장로교회 말씀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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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타 연합 장로교회 말씀 강해 episodes

  • 마태복음 7 : 1-12(정선기 목사님)
    마태복음 7 : 1-12(정선기 목사님)
    간디에게 하루는 한 여인이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부탁하기를 선생님 제 아들이 너무 설탕만 좋아하는데 먹지말라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설탕은 건강에도 나쁜 것이니 그만먹으라고 선갱님이 말씀하시면 혹시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설탕을 먹지 말라고 말씀해 주세요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간디가 말하기를 열흘있다 오라고 하는것이었습니다.
    열흘후 그 어머니가 아들과 같이 다시 간디에데 나아왔고 간디는 그 아이에게 설닽 먹지 마라 건강에 안좋다 그러자 아이는 알겠습니다 하고 너무 쉽게 문제가 해결이 됬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물어보기를 이렇게 쉬운일을 왜 열흘이나 기다리라고 하셨습니까? 물어 봤습니다. 그러자 간디가 말하기를 열흘전에는 저도 설탕을 맛있게 먹고 있었거든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간디는 평생 산상수훈을 묵상하며 추동했던 산상수훈의 추종자 였습니다. 이 일화는 오늘의 말씀중 3절에서 5절 까지의 말씀과 잘 맞는 예화라고 생각합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이 말씀은 남에게 흠이 있다면 분명히 나에게도 흠이 있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죄하기 보다는 나의 문제를 하나님앞에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 문제의 해결이 훵씬 급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형제의 조그만 흠이라도 보이면 참지를 못합니다. 입은 근질거리고 마음으로는 정죄를 쏟아붇습니다. 이러때는 사실 눈을 감아버리고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나 자신에게 그 입 다물라 명령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서면 남의 티끌보다 나의 들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럴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것입니다. 그럴때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나의 변화를 간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에 7절로 1절에 적혀있기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하십니다.
    선한것으로 좋은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주신다는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물질같은 것들뿐 아니라 내 인생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나의 인격 또 나의 속사람을 변화시켜 주시길 간구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과 같은 말씀을 다루고 있는 누가복음 11:13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하나님이신 성령님이신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받으면 우리의 인생이 바뀝니다. 우리의 속사람도 바뀝니다. 인생의 목표도 바뀌고 나의 말과 행동과 생각과 가치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본문인 마태 7:12절과 같은 황금률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남을 정죄하는 삶, 나쁜것만 보는 삶, 남한테서 나의 이익을 구하는 삶, 남을 이용만 하려는 삶, 남을 통해 내가 덕을 보려는 삶에서 남에게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삶, 복음을 전하는 삶, 하나님을 소개하는 삶으로 바뀔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것은 당연히 내 힘으로 되는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감동을 주실때 가능합니다. 그런데 오늘 그 성령을 구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구하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오늘 이 메세지를 들으시는 모든 분들께서 성령 하나님을 구하시어 성령으로 충만해져 변화된 인생을 살게 죄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11 min
  • 마태복음 6 : 25-34(조무제 목사님)
    마태복음 6 : 25-34(조무제 목사님)
    오늘도 역시 산상수훈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먼저 산상 수훈은 우리 주님께서 가버나움에 머무시면서 대중을 대상으로 하신 설교가 아니라 산위에서 제자들을 대상으로 하신 설교로 생각되어지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평범한 유대인이나 아니면 예수님을 따라오기 시작한 초신자들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 가족과 자기 소유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온 제자들 곧 성숙한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으로 생각되어질 수 있는 170절 가량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들을 나눠보면 약 3개로 구분 할 수 있습니다.
    1. 우리의 정체성을 말씀하시는 - 팔복의 구간
    2. 세상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말씀하시는 - 빛과 소금의 구간
    3.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 갈 것인가 말씀 하시는 구간.
    오늘의 말씀은 세 번째 구간인 믿는자로써 세상을 사는법에 관한 말씀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적은 자들아 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라 실제 그 때의 제자들의 심리가 그랬다는것으로 보시면 될 것입니다. 마치 우리 믿는자들도 때로는 그럿듯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중에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재물이 나쁘다로 받아들이시면 안 될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우리에게 물질이 필요함을 잘 아셨습니다. 단 이 말씀은 우리가 필요를 넘어서 물질을 하나님대신 우리의 삶의 목표로 살기 시작할 때를 경고 하시는 것입니다.
    개그 콘서트라는 프로에서 소고기형님이라는 코너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코너는 이런 얘기를 다룹니다.
    소고기 먹으면 힘 나겠지?
    힘나면 뭐하지?
    열심히 돈 벌겠지?
    돈 벌면 뭐하지?
    소고기 먹겠지?
    소고기 먹으면 힘 나겠지?
    힘나면 뭐하지?
    열심히 돈 벌겠지?
    돈 벌면 뭐하지?
    소고기 먹겠지?
    이런 끊임없는 순환을 개그로 승화시킨 일명 허무개그입니다. 이렇게 보면 인생 참 허무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콜링을 따라 사는것이 아닌 먹고사는 문제에만 사로잡혀 사는 삶은 이렇게 허무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꼐서는 25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라고 말씀 하십니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삶에는 있다는 말씀입니다. 먹고사는것은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신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우리 주님은 목숨, 곧 생명이라고 표현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육신의 생명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진짜 참 생명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콜링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해야 할 복음의 사명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면서 쏟아져들어오는 걱정가운데 파 묻히면 이 부르심을 잊고 살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써 사는 것이 아니라 소고기 형님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을 예수님꼐서는 경고하고 계십니다.
    헬라어로는 염려가 나눠진 마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세상살이에 대한 불안과 하나님의 부르심속에서 갈등을 한다면 우리의 삶도 나눠질 것이고 분열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건강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너무나 어려운 삶이 될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비밀을 가르쳐 주십니다. 부르심도 또 우리의 모든 삶도 다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씀데없는 걱정을 버리라는 말씀 입니다.
    재물과 하나님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은 결국 하나님만 따라가라는 말씀입니다. 나의 부르심도 나의 재물도 내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 소유이고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모든것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33절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것이 믿는자의 삶의 비밀입니다. 먼저 구해야 할 것이 우리 삶에는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그일이 해결되면 나머지는 따라서 해결 됩니다. 염려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슴을 믿으십시오, 결구 하나님께서 모든것을 주관 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나의 비천한 계획보다 높으싣고 넒으시며 선하십니다.
    오늘의 메세지를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ㅁ
    21 min
  • 마태복음 5 : 38-48(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5 : 38-48(정인수 담임 목사님)
    미국에 사시는 분들중에 마음이 황폐하고 딱딱하게 굳어진 분들을 봅니다. 대부분의 경우 관계의 문제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마음에 미움이 가득할 때 마음은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해 단단해 집니다.
    사람은 사랑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 마음에 감동이 오고 마음이 따뜻하게 녹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장기를 이식해 주고 환우들을 따뜻하게 돌봐주는 이야기를 들을 때 얼마나 감동이 오고 좋습니까?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사랑을 먹어야 합니다. 사랑이야말로 행복이고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주신 새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하시지 않습니까?
    미움은 멸망과 불행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역사가 그런 미움의 역사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미워 합니다. 왜 미워 합니까? 시기와 질투로 미워 하는 것입니다. 에서가 야곱을 미워 하는것도 다 시기와 질투때문입니다.
    창27:41)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그래서 에서는 결국 저주를 받고 맙니다. 미움은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울도 다윗을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 미워하고 죽이려 합니다. 그러나 역시 사울도 도리어 그의 자손들과 그 자신이 저주에 빠져 버리는것을 우리는 잘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기를 죽이려 한 형들을 용서한 요셉은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가는곳바다 다루는 것마다 병회를 가져오고 축복을 가져 온것을 성경은 적고 있습니다.
    미움은 필연적으로 멸망을 초래합니다. 먼저 미움은 내가 미움의 또 내가 미워 하는 사람의 노예가 되게 합니다. 늘 뮈워하는 사람 생각에 잠못 이루게 되고 미워하는 사람생각에 치를 떱니다. 미움은 이처럼 엄청난 정서적 손실을 가져오고 결국 나의 에너지와 건강 마저도 좀먹어 가게 됩니다.
    저도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저를 힘들게 하던 분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그 분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 분과 다투고 말았습니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그러고 나니까 전혀 이상이 없던 튼튼했던 저의 위에 궤양이 오고 말았습니다.
    그 때 깨달은 것이 이 미움이 육신을 상하게 하고 병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절대로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미워하다가는 내가 죽는데 말입니다? 어떤한 악을 당하더라도 선으로 악을 이겨야겠다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 미움에 빠젺을 때 우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습니다.
    마태 5:44,45)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핍박하는 자들을 기도하고 그들을 사랑할 때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입니다. 이사랑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미워하면 또 영생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요한일서 3: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사망에 머믈러 정욕에 불타는 복수의 종이 되기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어떻게 천국 영생이 임하겠습니까?
    미움의 삶에서 사랑의 삶으로 옮겨가는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적인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 할 때 그 엄청남 용서의 은혜를 체험 할 때 우리는 비로서 미움과 저주의 굴레를 끊고 사랑의 역사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미움과 저주에서 끊어지게하는 사랑은 그러므로 가장 큰 능력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 께서는 용서와 사랑의 능력을 충만하게 받으시길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5 min
  • 마태복음 5:27-37 (조근상 목사님)
    마태복음 5:27-37 (조근상 목사님)
    예수님께서는 지상에 오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든자와 약한자를 치유하시는 3중의 사역을 하십니다.
    이 때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는 사역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오자 사람들을 피하셔서 산으로 올라가 가르치시는 사역을 하시고 이것이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는 산상수훈이 됩니다.
    산상수훈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8가지 구체적인 삶의 원리를 다루게 됩니다. 그리고 또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어떻게 우리가 율법의 의를 이룰수 있는가에 대하녀 구체적으로 6가지 율법을 가지고 다루게 되십니다.
    그 여섯가지율법은
    먼저 살인하지 말라
    두째로 간음하지 말라
    세째로 이혼하지 말라
    네째로 거짓 맹세하지 말라
    다섯째로 보복하지 말라
    여섯째로 원수갚는 일에 관한 율법에 관하여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다루어 주시고 오늘의 본문은 그 중에 간음하지말라, 이혼하지 말라, 거짓 맹세하지 말라에 관한것들입니다.
    마태 5:27,28)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십계명중 제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은 마음이야 어떠하든지 행위로 실천만 안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마음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이성의 문제로 마음에 죄지은 사람도 아무런 문제없이 성전에 나아와 제사도 드리고 이것은 하나님앞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죄를 지은 자들에게는 무자비하고 잔혹할 정도의 처벌을 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발앞에 끌려왔던 간음한 여인을 보게되면 얼마나 사람들이 이 여인을 가혹하게 다루고 있었는지가 드러납니다. 그 순간 사람들은 이 여인 한명을 돌을 들고서 쳐서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낮아진 심령과 마음속의 회개를 보시고 오히려 구원하여 주시지 않습니까? 오히려 물으시길 어희중에 죄없는자가 돌로 치라? 라고 묻지 않으십니까?
    예수님께 야단을 들은 자들은 오히려 바리새인들입니다 화있을진저 독사의 자식들아 회칠한 무덤아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축소시켜 단순한 행위의 문제로 치환해 버린 바리새파인들의 죄를 너무나 중히 보셨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겉 모습보다 행위의 문제보다 오직 심령의 문제가 해결되고 그 치유받은 심령으로 온전히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은 한 손을 잘라내도 다름 한 손으로 도박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육신을 아무리 쳐봐야 심령이 해결이 안되면 절대로 이 문제들로부터 헤어나올수가 없다는것 그리고 이 심령의 문제는 오로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만 해결이 된다는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혼에 관한 말씀을 주십니다.
    5:31,32: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현대인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이혼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당부분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이혼에 관한 말씀을 하신것은 예수님 당시에 연약한 자들인 여성을 너무나 쉽게 이혼하는 것에서 보호 하고자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모세가 이혼증서에 관한 규례를 주었지만 그 규례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그 규례를 악용하는 세태를 비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5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결혼의 중요성인것입니다. 이런 중요성을 안다면 예수님 당시 시대처럼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쉽게 이혼하지 않을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정말 피치못할 사정으로 이혼 했다면 또 그 삶을 주님 앞에 드리는데 주저함이 없을것입니다.
    그것이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지키는것이기 때문일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맹세에 관한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맹세는 무엇을 걸고 하는것만을 말씀하시는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하는 말에 대한 책임을 지는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한 말을 비키지 않으면 누가 욕을 먹습니까? 성도가 말과 다른 삶을 살면 누가 책을 잡히게 됩니까? 본인은 물론이고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맹세에 관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 삼계명에 직결되는 말씀인것입니다.
    오믈 살며본 모든 율법을 지키는데 있는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자신들의 올바르지 못한 마음이었습니다. 내 자신을 위해 울법의 정신을 행위의 문제로 바꿔 버리고 그 가운데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합리화하는 그런 죄를 예수님꼐서는 신랄하게 비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메세지를 받으시는 모든 분들이 심령의 문제를 말씀과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결하시고 하나님앞에 자유로운 삶 사시는 모든분이 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6 min
  • 마태복음 5 : 17-26(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은 담임 목사님 주청사 설교 청취 운행과 취재관계로 새벽 설교본문 목취 요약은 없습니다. 이에 양해 바랍니다. 늘 예수안에서 은혜 충만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마태복음 5 : 17-26(정인수 담임 목사님)
    17 min
  • 마태복음 5 : 1-16(정인수 담임 목사님)
    마태복음 5 : 1-16(정인수 담임 목사님)
    우리가 이제 보게될 말씀은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의 산상수훈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가르치신 귀한 가르침이라 산상보훈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어도 우리의 죄성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산상의 가르침으로 우리 구원 받은 사람들이 지향해야할 삶의 목표를 이 가르침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가르침의 경지는 너무나 높고 깊어서 산상수훈은 우리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비 기독교인들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준것으로 유명합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이 산상수훈에서 많은 영간을 얻고 늘 애독하던것으로 유명합니다.
    먼저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라고 말씀은 적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입을 열지 않으시면 가르침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입을 여시는 순간에는 그 가르침을 들어야하는것입니다. 지금 우리 주님이 입을 여십니다.
    그 가르침의 첫번째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복이 있는자가 과연 누구인가라는 것입니다. 참된 복이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시편 일편은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율법을 묵상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 사모하는 것만큼의 축복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저주는 말씀이 없는것입니다. 말씀이 임하지 않는것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도무지 없는것이 바로 저주인것입니다.
    아모스 8장11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배가 고픈 주림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있다는것이고 그것이 정말로 괴로와 할 기갈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를 키울때 녹용을 먹였다고 잘 크는것이 아니라 말씀이 그 아이에게 전해질 때라야 잘 크게 되는 것이고 말씀을 먹어야 우리의 육체와 정신에 복이 깃들게 되는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없는 건강은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 건강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에 필요한 축복이 있는줄 믿게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던 평범했던 어찌보면 보잘것 없던 링컨의 삶이 위대해 진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삶을 위대하게 바꾸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슴에 복이 있나니 할때 쓰는 단어는 마카리오스 μακάριος 라는 단어 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만물이 질투하는 위치를 가리키며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5절은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인간의 진정한 복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진정한 복이시고 하나님의 심령이 임하는자가 바로 행복한 자인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누릴 첫번째 복을 산상수훈에서는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 약속은 절대적인 복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복도 복이고 건강의 복도 복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영원한 복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의 복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에게 이 복이 임하는것일까요? 그 답을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해야 한다는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첫 관문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영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 공간은 하나님이외의 것으로는 도저히 채워질 수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지길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가난이라는 단어는 πτωχός 프토코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완전한 파산의 상태를 지칭합니다. 굶주림으로 몸이 오그라 붇어 구부러질 정도의 가난을 말하는데 구걸을 할 정도로 완전히 낮아진 심령을 수반하는 가난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심령처럼 대 기근중에 마지막 자신에게 남은 기름을 엘리야에게 바치고 자신의 생명과 모든것을 하나님앞에 맡기는 그러한 심령이 바로 가난한 심령인 것입니다. 절박한 심령입니다, 하나님앞에 구걸이라도 마다 않는 심령인것입니다.
    자신에게 하나님이 절대로 필요한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자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인것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채울것이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나를 채우실 수 있다는 인정함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심령의 가난함이 이 이 메세지를 듣는 모든분들께 임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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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태복음 4 : 12-25(이성혜 목사님)
    마태복음 4 : 12-25(이성혜 목사님)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대로 스물론과 납달리 지경의 가버나움에서 사시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짜와 왔는니라 외치시며 천국복음의사역을 시작 하시게 됩니다.
    나사렛을 떠나신것을 몇번이나 오늘의 본문은 강조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공간상의 이동이상의 것을 지금 본문이 말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단순히 사는곳, 거주지를 옮겼다는 뜻 이상의 말인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시는 공생애를 살게 되심을 말씀하시고 있는것입니다. 육신의 고향인 나사렛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예수님꼐서 살게 되신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을 보셨습니다. 고기를 잡는 평범한 사람들 즉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어쩌면 그보다도 못한 사람들을 보고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로 불러 주셨습니다.
    천하의 랍비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때 스승을 찾아가 수업료를 내야만 학생으로 받아주는 세상의 랍비들과 달리 제자들을 직접 찾아가시고 이름을 불러주시고 가르치시고 또 가르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셨을때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했을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무엇을 기대하고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라 하셨을때 그들의 배와 가족을 뒤로하고 따라 갔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영적인 직관으로 강력한 능력을 느껴 따라 갔는지 아니면 단순한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들을 부르신 콜링은 확실하게 적혀 있습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것이 부르신 이유입니다. 바로 이 부르심으로 온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계획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제자는 그러므로 사람을 낚는 어부일때 비로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꼐서 사역을 시작하시도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것도 들었고 기적을 베푸시는것, 또 병자들을 고치시는것을 다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성경은 제자라고 적지 않고 무리라고 적고 있습니다.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능 전하는 자라야 제자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수님이 전하신 것 곧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의 삼중의 복음 첫째는 천국의 복음을 전하는것이요, 둘째는 병을 고치는 것이요, 세째는 약한것을 고치시는것의 삼중복음 곧 그리스도의 3대 사역을 행하고 전하는것입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예수님의 시대와 다름 시대를 삽니다. 먹는것도 보는것도 듣는것도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스스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아니면 예수를 따라다니던 무리의 한명인가 물어 봐야 합니다.
    무리는 예수님을 추앙하고 따라다니고 또 심지어는 왕으로 세우려다 실망하고 배반하고 또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그 복음을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세상이 품는 자들이 아니라 세상이 버린자들 소외된자들 연약한 자들을 부여안고 천국의 복음을 전해 그들의 인생을 어둠에서 해방시키는 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의 복음을 전할때 우리가 제자라는것을 다시 생각해 보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이 메세지를 들으시는 모든 분들께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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