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 문화센터 등에‘커피와 여행’강의를 나가면 청중에게 꼭 던지는 질문이 있는데, 그것은‘지금까지 마셔본 커피 중에 가장 맛있었던 커피는 무엇입니까?’이다. 대답을 하는 청중가운데는 어느 유명한 까페에서 경험한 드립 커피도 있고, 어느 해 추운 겨울날 산 정상에서 마신 인스턴트커피도 있으며, 지금은 헤어진 옛 애인과 대학로 어느 까페에서 함께 한 커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의 경우는 커피의 품질과 까페 분위기가 커피 맛에 영향을 준 것이며, 두 번째는 따뜻한 커피에 대한 간절함이 그 맛을 결정했고, 마지막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 추억이 커피 맛을 좌우했다고 볼 수 있다.
즉 맛있는 커피의 조건은 추출된 커피의 품질에 있지만, 가장 맛있는 커피는 못 마실 정도의 커피만 아니라면 분위기·상대방·기분·상황 등이 그 맛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맛있는 커피는 항상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 추억 속에 간직하기로 하고, 맛있는 커피의 조건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크게 네 가지로 신선하고 결점 없는 생두, 생두의 특징을 살린 적절한 로스팅, 실력 있는 바리스타에 의한 추출, 마시는 사람의 기분과 태도이다.
네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생두에 있다. 혹자는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생두가 100%라고 조금 과장해서 말하는데, 그 만큼 생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보면 된다. 미슐랭 가이드로 부터 별을 세 개 받은 세계적인 요리사라도 나쁜 재료를 가지고 훌륭한 요리를 할 수 없는 것처럼 커피 역시 좋은 생두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맛있는 커피 맛을 기대할 수 없다.
커피는 코페아 속에 속하는 다년생 상록쌍떡잎 식물로 흔히 커피의 원종이라 불리는 아라비카, 로부스터, 리베리카로 나뉜다. 아라비카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아라비아반도를 통해 커피가 세계로 전파되면서 붙여진 것으로 타이피카 종이 원종에 가깝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브라질, 케냐 등의 이름이 붙은 것이 아라비카 종이다. 로부스터는 아프리카 콩고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름 자체가‘강하다’라는 의미를 가질 정도로 병충해에 강하고 생육조건이 까다롭지 않다. 다만 아라비카에 비해 카페인이 높고, 쓴 맛이 강해 상품성이 떨어진다. 보통 아라비카 커피와 블렌드할 때 사용되며, 품질이 좋은 것은 단종으로도 쓰인다. 리베리카는 아프리카 리베리아 공화국을 원산지로 하며, 워낙 양이 적고 품질이 뛰어난 편이 아니어서 자국에서 거의 소비되기 때문에 시중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
생두는 생산한 지 1년 미만의 것을 뉴 크롭, 1년에서 2년 사이의 것을 패스트 크롭, 2년이 넘은 것은 올드 크롭이라고 부른다. 햅쌀로 지은 밥이 묵은 쌀로 지은 것보다 맛이 좋은 것처럼 생두 역시 뉴 크롭의 품질이 가장 좋으며, 가격 역시 패스트 크롭이나 올드 크롭 보다 비싸다. 로스터의 경우, 커피 맛을 좋게 하고 싶다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더라도 1년 미만의 신선한 생두를 구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로스팅이란 생두를 볶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몇 만 원짜리 수망으로 하든 수 천만 원을 호가하는 영업용 로스터기로 하든 모두 커피를 볶는 것은 매 한가지다. 생두를 볶는 로스터기는 사용하는 연료에 따라 가스식, 전기식, 오일식, 숯불식 등으로 나뉜다. 또한 화력을 어떻게 공급하느냐에 따라 직화식, 반직화식, 열풍식, 대류식으로 분류된다.
스페셜티급 생두가 아닌 이상 우리가 흔히 상업용으로 사용하는 커머더티급 생두 가운데는 소량이기는 하지만 결점두 라는 것이 섞여 있다. 결점두에는 벌레 먹은 것, 미성숙한 것, 깨진 것, 심지어 작은 돌이나 나뭇가지 등도 포함된다. 결점두가 포함되면 커피의 향미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시큼한 맛, 떫은 맛, 비릿한 맛 등이 있다. 요즘은 과거에 비해 시설투자를 많이 하고 기술이 좋아져서 커피산지와 국내 대형 생두도매상에서 결점두를 많이 걸러낸다. 그러나 벌레 먹은 것, 미성숙한 것, 깨진 것 등은 걸러내기 어렵다. 나 역시 국내 여러 생두도매상으로부터 생두를 받아쓰고 있지만, 많고 적음이 있을 뿐 모든 생두에는 결점두가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번거롭더라도 로스팅을 하기 전에 손으로 결점두를 제거해야만 양질의 원두를 얻을 수 있다.
로스팅을 하면 생두에는 물리·화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물리적 변화로는 열과 압력을 받은 생두가 팽창하면서 부피는 50 ~ 60% 증가하고, 수분이 증발하면서 질량은 15 ~ 20% 줄어든다. 로스팅이 진행될수록 생두의 색깔은 녹색, 노란색, 갈색, 검은색 순으로 변한다. 화화적 변화로는 원두의 세로 홈(센터 컷)이 갈라지는 1차 크랙 후 생두 표면의 주름이 펴지는 2차 크랙 시점에 원두 내부의 오일이 표면으로 올라오는 카라멜화가 있다.
로스팅 정도에 따라 라이트부터 시나몬, 미디엄, 하이, 시티, 풀시티, 프렌치, 이탈리안까지 8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로스팅은 화력과의 고된 싸움이며, 순식간에 로스팅 포인트가 달라지기 때문에 찰나의 순간을 잡아야 하는 뛰어난 집중력과 감각이 요구된다. 나 역시 로스팅을 하다가 잠시 딴 생각을 하거나 급한 전화를 받는 바람에 로스팅 포인트를 놓쳐 아까운 원두를 버리고 말았다. 생두의 종류와 사용 목적에 따라 로스팅 포인트가 매번 다르므로 로스팅을 하기 전에 그 포인트를 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로스팅이 끝나면 원두 가운데 탄 것은 골라내야 불쾌한 쓴 맛을 줄일 수 있다. 표면이 전체적으로 새까맣게 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원두 표면이 조그맣게 떨어져 나간 것 역시 골라내야 한다. 그것들은 틀림없이 원두 내부가 새까맣게 타 있다.
커피는 추출방법에 따라 몇 가지로 나뉜다. 고온·고압으로 짧은 시간에 추출하는 에스프레소, 커피주전자라는 의미의 가정용 수동식 에스프레소 머신인 모카포트, 프랑스 사람들이 까페오레를 즐길 때 사용하는 프렌치프레스, 일명 사이폰이라 불리며 증기압과 진공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진공식 커피포트, 우리말로는 손 흘림이라 하며 사람의 정성까지 느껴지는 핸드드립, 에스프레소 보다 강렬하며 자칫하면 입안 가득히 커피 가루를 경험하게 하는 체즈베 등이 바로 그것이다.
원두, 에스프레소 머신, 물 등의 조건을 동일하게 해도 누가 추출하느냐에 따라 추출시간과 추출양이 다르기 때문에 에스프레소의 맛에 차이가 난다. 더욱이 핸드드립의 경우에는 추출하는 사람에 따라 실력 차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불쾌하게 쓰기만한 커피부터 쓴맛, 신맛, 바디감 등이 적절한 발란스가 좋은 커피까지. 심지어 인스턴트커피라 하더라도 물의 온도, 커피를 타는 방법 등에 따라 커피 맛에 차이가 난다고 한다. 모 그룹에서 수십 년 간 회장비서로 일한 분에 따르면, 인스턴트커피(스틱믹스커피)를 가장 맛있게 타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데운 잔에 커피를 넣고 뜨거운 물을 커피가루를 녹일 만큼 붓고 잘 젓는다. 그 다음 약 90도씨의 뜨거운 물을 잔의 8할 까지 부으면 된다고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생두를 구매해 로스팅을 하는 것은 번거롭고 어렵기 때문에 볶은 후 1주 미만의 신선하고 질 좋은 원두를 구매해 직접 추출해 마시는 것이 맛있는 커피를 즐기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베토벤은 커피를 무척 좋아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세운 원칙에 따라 커피를 추출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항상 손으로 원두 60알을 헤아려 커피를 끓였는데, 에스프레소 한 잔에 들어가는 원두의 양이 약 8g이므로 이를 원두 알갱이(1알= 0.14g)로 환산하면 크기에 따라 55 ~ 60개가 된다. 우리가 베토벤의 음악은 넘어설 수 없지만, 조금만 신경을 쓰면 그보다 커피를 맛있게 추출할 수 있으니 커피애호가라면 도전해 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맛있는 커피의 조건은 마시는 사람의 기분과 태도에 있다. 신선하고 질 좋은 원두로 제 아무리 실력 있는 바리스타가 정성껏 추출을 했다 하더라도 마시는 사람이 그 커피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맛은 반감된다. 또한 위염이나 소화불량으로 속이 불편하거나 방금 전 친구와 다투어 마음이 상했다면 오히려 커피는 속만 쓰리게 할 뿐 위로가 되지 않는다.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의 저서“새로운 무의식”에 따르면, 피험자들은 가격표만 붙은 와인들을 한 모금씩 마신 후 10달러보다 90달러가 붙은 와인에 대해 더 후한 점수를 줬다. 피험자들이 마신 와인은 모두 90달러짜리였다. 와인을 맛보는 동안 fMRI(기능적 자기공명 영상)로 뇌를 촬영했는데, 와인이 비쌀수록 눈 뒤쪽에 있는 안와전두엽피질(쾌락적 경험 관장)의 활동이 증가했다. 같은 와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험자들은 비싼 와인이 맛있다는 기대 때문에 실제로 느낀 맛은 달랐던 것이다. 인간의 뇌는 가격까지 맛을 본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또한 맛에 대한 기대감이 같은 맛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느낀 맛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커피 역시 마시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같은 커피라 하더라도 반응은 제 각각이 될 수 있다. 양질의 원두로 실력을 갖춰 정성껏 커피를 추출해야 하는 것은 바리스타의 가장 큰 소임이다. 더불어 고객에게 더 큰 기쁨을 주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커피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고객이 생각할 때,“아, 이 사람의 커피는 더 맛이 있을 거야”라는 기대감을 주는 것 말이다. 내가 가배무사수행기를 떠나고, 계속해서 커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이유 또한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신선하고 흠 없는 원두를 재료로 실력을 갖춘 바리스타가 정성껏 추출한 한 잔의 커피와 좋은 커피를 마시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충만한 고객이 만날 때 비로소 맛있는 커피는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