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것이 반드시 사실이거나 팩트이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 어떤 프레임 속에서 팩트나 사실이 아니고 픽션이라도
그것을 팩트처럼 믿고 받아들이면서 반응을 하게 된다.
그런 경우에 '불신의 유예' (Suspension of Disbelief)라는
전문용어가 적용된다.
예를 들어,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우리는 그 내용을 팩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것을 다큐와 같은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그냥 만들어 낸 이야기, 즉 픽션으로 여긴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것이 픽션임을 알면서도
'그것은 픽션이니까 믿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그 내용을 '불신'하거나
가짜 이야기라는 이유로 무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잠시 동안이나마 그 내용에 대한 '불신'을 접어두고
불신의 마음이나 판단, 평가하는 것을 유예하게 된다.
현실처럼 우리는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 그 내용의 팩트 여부와 상관없이
픽션 즉 가상의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상식적으로나 현실 차원에서
전혀 말이 안 되는 내용이나 부분에 대해서도
문제 삼지 않는다. 그 대신에 자연스레 그것을 받아들이는
불신유예의 심리를 발휘하게 된다.
최면도 그러하다. 최면이나 전생체험과 같은 것에서 경험되는 일들은
현실이나 상식과 다를 수도 있고 비논리적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픽션'에 해당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최면이 픽션이라는 의미는 아님을 주의바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면에서 현실과 논리를 따지게 되면
어쩌면 최면이나 최면경험과 같은 것이 성립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최면이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과거의 트라우마를 다루는 것이라도
치료나 상담적 효과를 위해서는 그 사실성 여부를 따질 필요가 별로 없다.
전생체험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문제를 만드는 것은 상황 어떤 상황 그 자체
즉 팩트가 아니라 그것을 특정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주관적 인식(perception)일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그 인식과 관련해서는 픽션에서도 마찬가지다.
픽션이나 가상세계에서 그것을 현실로 인식한다면 팩트나 다를 바 없다.
물론 법최면과 같은 분야에서는 기억의 정확성이 중요하지만
그것은 특별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최면경험은 비현실적인 속성을 갖고 있음을
알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볼 때 영화나 소설 앞에서 사실성을 따지는 것이
어리석은 일일 수 있듯이
특히 전생체험과 같은 경우에서도 사실성이나 논리성을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
심지어는 최면에 걸렸음을 확인하려는 것도 부질없는 일일 수 있다.
최면에 걸린 것처럼 느껴지지 않더라도 그냥 걸렸다고 생각하는 것,
그렇게 믿는 것 또한 불신의 유예가 적용되는 상황이다.
믿고 따라가는 것, 그것도 최면의 또 다른 본질이다.
사실성 여부가 법적인 문제가 될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러므로 최면이나 전생체험에서는 따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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