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11월 06일 세속성자 수요모임
갈라디아서 강해 3.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1. 본문 이해
1) 14년후 예루살렘 방문(2:1-10)
- 바나바와 디도가 동행(2:1). 아포칼립스를 따라 이루어진 방문(2:2). 그러나, 두 가지 점('복음'을 소개한 것은 사적인 모임이었고, 디도에게 할례를 강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것은 사도적 권위의 인증이나 선포하는 복음의 내용 승인과는 상관이 없다.
- '거짓' 신자들이 '비밀리'에 들어와, 우리를 '노예' 삼으려고, 그리스도안의 자유를 '엿보려고' 했으나(2:4), 우리는 그들에게 '한순간도' 틈을 내어주지 않고, 복음진리가 너희와 '항상' 있게 하였다.(2:5)
- '인정받는 지도자'로 '간주'되는 (그러나, 하나님이 편애하시지 않기 때문에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들은 내게 '아무 것도' 기여한 바가 없다.(2:6) 반대로,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사역하도록 위임받은 것처럼 내가 무할례자에게 사역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를 통해 역사하는 이가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만든 것처럼,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삼아' 나를 통해 일하셨다),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 '그 인정된 기둥들'은은 내게 주어진 은혜를 '인식'하였고, 나와 바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사귐을 청하였는데, 우리는 이방인에게,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향한다는 것을 동의한 것이다. (2:7-9) 내게 부탁한 유일한 내용은 가난한 자를 기억하라는 것인데, 그것은 사실 내가 힘써 하고 있는 바이다.(2:10)
2) 게바의 안디옥 사건(2:11-14)
- 그런데, 게바가 안디옥에 왔을 때 그를 면전에서 대적한 적이 있다. 그 스스로 자충수를 행했기 때문이다. (2:11) 야고보에게서 사람들이 오기 전에는 이방인들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자 물러나 거리를 두었는데, 할례당과 문제가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2:12) 다른 유대인들도 이런 '위선'에 동참하게 되었고, 심지어 바나바도 그들의 '위선'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2:13)
- 나는 그들이 '복음진리를 따르는 일관성' 없이 행동하는 것을 보고, 모두 앞에서 게바에게 "당신은 유대인이면서도 이방인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방인을 유대인처럼 살라고 하는가?"고 말했다. (2:14)
3)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신실함(The Faith(fulness) of Christ, 2:15-21)
- 우리는 날 때부터 유대인(Jews (the ****))이지, 이방인 죄인(Gentile (the) sinner)이 아니다.(2:15)
- 그런데, 우리는 사람이 의롭다고 선언되는 것(justified)은 '율법의 일(works of the law)'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the faith of Jesus Christ)'을 통해서란 점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다고 선언되기 위함이지, '율법의 일'을 행함으로서가 아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율법의 일'로는 의롭다고 선언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2:16)
-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선고되려고 하다가, 죄인으로 판결된다면 그리스도가 죄의 종이 되는 것인가, 단연코 그렇지 않다. (2:17)
- 그러나, 만약 내가 이미 찢어버린 바로 그것을 다시 일으키려 한다면, 나는 내가 죄인임을 입증하는 것이리라. (2:18)
- 율법을 통해 나는 율법에 대해 죽었기에, 나는 하나님을 향해 산다. 나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혔으니, 더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내가 지금 육체 안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2:19-20)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무효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의롭다 선언되는 것이 율법에 의한 것이면, 그리스도는 헛되이 죽은 것이다. (2:21)
2. 생각할 포인트
1) 복음과 '할례', 혹은 율법의 문제: '할례'와 '무할례'가 뭐 그리 중요한가?
2) 'pistis Kristou': '그리스도의 믿음(faith(fulness) of Christ)'인가, '그리스도를 믿음(faith in Christ)'인가?
3) 'piste mou': '나의 신실함(faithfulness of mine)'인가, '나를 믿음(faith in me)'인가, 혹은 '내가 믿는 어떤 것(the thing I have faith in)'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