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타 연합 장로교회 말씀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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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타 연합 장로교회 말씀 강해 episodes

  • 여호수아 7장 1, 3, 6, 8-9, 12절,"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김병삼 목사)
    여호수아 7장 1, 3, 6, 8-9, 12절,"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김병삼 목사)
    7:1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7:3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7: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7:8 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7:9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7:12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48 min
  • 여호수아 5장:4-5, 8-12, 15절, "하나님의 임재가 인생을 바꾼다" (김병삼목사)
    여호수아 5장:4-5, 8-12, 15절, "하나님의 임재가 인생을 바꾼다" (김병삼목사)
    5: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5: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5: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5:10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5:11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5: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5: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34 min
  • 여호수아 4장 4-7, 17-18, 20-22절 "기념비를 세워라" (김병삼 목사)
    여호수아 4장 4-7, 17-18, 20-22절 "기념비를 세워라" (김병삼 목사)
    4: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준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
    4:5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4: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4: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4:17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에서 올라오라 하매
    4:18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에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서 전과 같이 언덕에 넘쳤더라
    4:20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4:21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4:22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1 hr 1 min
  • 여호수아 3:3-5, 14, 17 "인생의 위기는 하나님의 기회" (김병삼 목사님)
    여호수아 3:3-5, 14, 17 "인생의 위기는 하나님의 기회" (김병삼 목사님)
    3: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3: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3: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3: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3: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42 min
  • 여호수아 1:7-9 "그 길은 순종의 길이었다"(김병삼 목사)
    여호수아 1:7-9 "그 길은 순종의 길이었다"(김병삼 목사)
    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1 hr 4 min
  • 여호수아 2 : 1-14(심우진 목사)
    여호수아 2 : 1-14(심우진 목사)
    가나안 침공을 앞두고 여호수아는 첩자를 보내 여리고성의 내부상태를 살핍니다. 객관적인 현실파악을 할때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고 크리스챤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생 라합을 통해 정탐꾼들을 살리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 하셨던 하나님의 도우심처럼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뜻하지 않은 도우심을 하나님은 도우심을 베푸시고 예비 하십니다. 주님의 은혜 가운데 온전하여지는 것이 성도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것은 라합의 고백에서처럼 여리고성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들었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편에 섰던 사람은 라합한명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관계와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편에 설 줄 아는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여리고 정탐꾼과 라합(2:1~7)
    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2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의 몇 사람이 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3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4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5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하였으나
    6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7 그 사람들은 요단 나루터까지 그들을 쫓아갔고 그들을 뒤쫓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라합의 믿음과 용기(2:8~14)
    8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12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13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 내라
    14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17 min
  • 요한삼서 1 : 1-15(유병훈 전도사)
    요한삼서 1 : 1-15(유병훈 전도사)
    진리를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1:1~8)
    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선한 것을 본받으라(1:9~15)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2 데메드리오는 뭇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13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14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
    15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
    이 새벽에 기도의 자리를 지키러 나오신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이 연합의 성전에 가득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다보면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그런 오해를 받을 때 막상 변명할 기회도 반박할 방법도 변변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만큼 억울한 때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의 진심을 몰라주고 사실과 진실은 가리워 집니다.
    왜 제가 오해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하는가 하면 바로 요한 삼서가 그런 오해를 요 근래들어 많이 받은 서신서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삼서는 ‘장로인 나는’ 이라고 시작합니다. 편지를 쓰는 사람이 사도가 아니라 장로라고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이 서신의 저자는 사도 요한으로 이미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들어오면서 이 서신의 저자에 대한 의심을 하는 학자들이 있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확실한 외적인 증거 즉 저자의 이름이 어떤 식으로든 표현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자의 정확성을 의심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 서신이 사도요한에 의해 씌어졌다고 믿는 학자 들은 내적인 증거에 집중합니다. 이 서신들이 사도요한이 요한 복음에서 설파하신 내용들을 얼마나 일관되게 반영하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한의 복음서에서 다루는 주제들을 서신들에서도 다루고 있는가? 요한의 복음서에서 중요하다고 한것을 서신서에서도 중요하다고 하는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 내용들을 살피는 기준이 되는 복음과 서신서의 공통 주제들을 살피면 빛과 어두움의 대비, 하나님안에서 누리는 생명과 하나님을 떠나 겪는 죽음, 하나님안의 사랑과 이와 반대되는 죄된 미움 혹은 증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와 세상의 거짓과의 구분이 있습니다.
    이 내용을 잣대삼아 서신서들과 요한복음을 비교하면 결론적으로는 똑같은 주제들을 너무나 일관되게 서술하고 있는 이 요한복음과 요한 일이삼서의 저자는 사도 요한으로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흥미로운것은 마태와 누가복음에서 나오는 나무는 열매로 알아본다는 말씀이 학문적인 성찰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을 통하여 요한 복음과 요한의 서신들로 열매를 맺고 가지인 요한과 본체이신 하나님이 연결되어 있음을 증거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무를 보지 않고 열매만 보아도 이게 감나무에서 나온 열맨지 포도나무에서 나온 열매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을 통해 주장하신 성령의 열매인 서신서들을 보고 사도 요한이 보이는것과 우리 주님과 하나님이 보이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열매는 가린다고 가려지거나 보기 싫다고 안 볼수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열매는 살아있는 생명의 열매입니다 살아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온것임을 기어이 증거 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만약 나의 인생자체가 의심받고 오해받는 중에 있는 분이 계시다면, 또 만약 우리의 교회가 의심받고 오해 받는 경우가 혹시라도 있다면 그럴수록 더욱 더 하나님께 붙어있어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하나님께서 맺게 하시는 성령의 열매가 나를 우리를 우리 교회를 그리고 하나님을 증거 하시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붙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요한의 복음과 서신서들을 오늘도 생생히 증거 하시듯이 나와 우리와 교회를 하나님의 열매로 자녀로 증거하시는 변호인이 되어 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요한삼서는 사도 요한이 정말로 사랑한 가이오에게 쓴 개인적인 편지입니다. 얼마나 사도 요한이 이 가이오를 사랑했는지 이 짦은 서신에서 다섯번이나 사랑하는 자 라고 가이오를 호칭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적인 편지를 쓸때 공식적인 직분을 사용해서 쓰는것이 어색한 일이듯이 요한 사도도 자신의 사도로의 직분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정인수 목사님께서 살아계실 때 저한테 전화를 주시면 ‘유전도사 나야’ 라고 하셨지 ‘유전도사, 아틀란타 연합 장로교회 담임목사 정인수야’ 라고 하지 않으셨던것과 같은 이야기 입니다.
    사도요한이 자신을 지칭한 장로라는 표현은 원어로 ‘프레스부테로스’ 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프레스부테로스’ 이 말씀은 장로를 지칭하는 동시에 또 나이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이 자기를 지칭해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사용한 이 말씀은 ‘장로인 나는’ 보다는 ‘나이든 내가 편지를 쓰니’ 라고 보던지 ‘늙은 내가 편지를 쓰니’ 로 이해할 때 그 뜻이 더 분명해 진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자신의 자녀와 같은 가이오에게 아버지가 편지를 쓰듯 어머니가 편지를 쓰듯 사도 요한이 글을 써내려 간 것입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늙은 사도 요한이 자기 친 자식같은 가이오가 꼭 알아야 할 것, 꼭 행해야 할 것, 정말로 중요한것을 적은 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내용이 이해하기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그네된 자들을 전송하고 영접하라는것이 요한의 부탁이자 명령이기는 한데 이 나그네 된 자들이 정확하게 누구인지를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지 않는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이 나그네들은 사도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교회에서 장로의 직분을 받은 자들도 아닙니다. 직분상으로는 도무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다만 사도요한은 이들이 주의 이름을 위해서 이방인들에게 사역하던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교회가 전혀 모르던 사람들 원어로는 케노스라고 적는 낯선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들 사이에서 교회가 없이 떠돌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내가 만난적도 없던, 전혀 알지 못하는 순회 선교사들을 이야기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께서는그들을 영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선교사니까 힘드니까 불쌍하니까 도와주라고 사도 요한께서 말씀 하시고 계시는것일까요? 아니면 교회는, 성도는 선교하는 사람이면 무조건 도와주어야 하는 걸까요?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지금 사도 요한은 자기 친 자식과도 같은 가이오에게 자신의 사도라는 직분도 내려놓고 평생 진리를 경험한 그러나 이제는 나이든 노인으로써 진리를 이야기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이 나그네된 자들은 주님의 이름을 직접 자기몸으로 전함으로써, 그리고 가이오와 가이오의 교회는 이들을 영접함으로써, 오늘의 본문 팔절에서 이야기 하시듯 하나님안에서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영접하다라는 말씀은 원어로 후포람바노라는 단어입니다 받아서 올린다는 뜻의 이 단어는 귀하게 받아서 하나님께 올려드린다고 해석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영접한다는 뜻은 나는 사실 알지도 못하고 들어본 적도 없는 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십자가를 지고 있을 때, 진리를 위해 일하는 십자가를 지고 있을 때 그 십자가를 보고 이들을 귀하게 받아 하나님게 영광을 돌려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 복음을 전하는 자나 영접하는 자나 영접 받는 자나 모두 다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진리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같은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께 합당한 동역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안에서 연합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모두가 하나 되는것입니다.
    이 영접하는 자들은 자기 자신이 으뜸되길 좋아해 심지어는 사도 요한이 보낸 형제들을 비방하고 내쫓는 교회의 연합을 깨는 본문에 나오는 디오드레베같은 사람과는 너무나 다른 사람들인것 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낸 형제를 내 쫓을 수 있을 정도로 교회 안에서 큰 힘을 행사할 수 있었던 디오드레베는 어찌보면 신실한 하나님의 성도들보다도 더 하나님을 잘 모시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형제를 돕는일과 같은 육의 일을 너무나 무시하던 성도의 삶에 무관심하고 무지했던 영지주의자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교회안에서 자기를 드러낼수 있을 만큼이나 힘은 있으되 사랑이 없었던 디오드레베는 정말로 비참한 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이렇게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무지하고 또 그렇게 무지한 삶을 사는것이 죄인줄도 몰랐던 이런 사람들을 악한자라고 말씀으로 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무법한자들 악을 행하는 자들이 성도의 삶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었던 것과는 달리 영접하는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성도된 자들은 나의 이웃이 나의 형제가 지고 가는 십자가가 무엇인지 유심히 살펴 그 십자가의 무게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고있는 그 십자가가 하나님의 진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십자가라면 자신들도 기쁘게 그 십자가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올릴줄을 아는 영접하는 자, 사랑의 진리를 아는 자. 연합의 능력을 지닌 자,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 주님의 이름앞에 합당하게 돌릴 줄 아는 자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 가운데도 하나님의 복음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복음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인생의 많은 것을 포기한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복음을 위해 목숨을 희생한 분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복음을 위해 가족의 목숨을 희생한 분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복음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친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복음을 위해 자신의 어려움과 상처를 동여매고 같은 상처를 입은 영혼들을 치유해 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다해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고 그 이름을 지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진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분들이 지고 가시는 십자가를 알아봅니다.
    또 그 십자가를 인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서로가 서로를 영접 하시는 것입니다. 서로를 귀하게 받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사도 요한이 특별히 요한 삼서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진리입니다.
    가이오가 사도요한을 영접했듯이 사도요한이 가이오를 귀하게 영접했듯이 이들이 나그네 전도자들을 귀하게 영접했듯이 우리도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안에서 또 우리 밖에서도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을 서로 귀하게 영접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서로 영접하는것만큼 우리 주님을 받아들이는 일이 또 있겠습니까?
    우리가 서로의 십자가를 알아보고 서로 영접하기에 힘쓸때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연합의 능력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과 권능이 언제나 같이 하실 것을 믿고
    또 그런 서로를 영접하는것이 우리와 교회와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세상에대해 증거하는 성령의 열매가 되심을 깨달아 그대로 행하는
    그 크신 영광이 오늘 새벽의 성전에 나오신 모든 분들 위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 합니다.
    18 min
  • 요한일서 5 : 13-21(조근상 목사)
    요한일서 5 : 13-21(조근상 목사)
    사도요한의 별명은 천둥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만큼 속에 화가 쌓여 있었고 폭발하는 분노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문체와 서신서들의 문체의 변화보다도 훨씬 큰 속사람의 변화가 요한에게는 있었습니다. 그런 사도요한이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두가지 중요한점이 있습니다.
    첫째: 영생의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어 얻는 영생을 확신함으로 자유함을 얻고 인생의 궁극적인 죽음의 문제에서 놓여나라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세가지 입니다. Yes, No, Wait! 하나님은 기도에 즉각 응답하시기도 하시지만 거절하시기도 하시며 하나님의 때와 나의 때가 다를 때는 기다리시고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이를 알아 하나님의 응답이 나의 뜻과 ㅏ다를 때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어 세상을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들으시는 하나님(5:13~17)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우리가 아는 것(5:18~21)
    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30 min
  • 요한일서 5 : 1-12(고신영 목사)
    요한일서 5 : 1-12(고신영 목사)
    요한일서는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특히 교회안에서의 사랑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믿게되면 나타나는 변화가 사랑하게 되는것입니다. 사도요한의 독특한 사랑의 방법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것입니다 그럴때 우리는 하나님의 다양한 사랑의 방식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제한적인 사랑의 방법을 초월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하나님보다 먼저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힌의 대부분을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시는데 쓰신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5:1~5)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하나님의 증거(5:6~12)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4 min
  • 요한일서 4 : 11-21(심우진 목사)
    요한일서 4 : 11-21(심우진 목사)
    사도요한은 요한일서를 통해 사랑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중요함을 계속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사랑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것이고 만약 자신이 사랑이 부족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랑은 첫째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지켜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둘째 주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사랑입니다 세째 사랑의 삶은 담대함을 가져다 줍니다.
    서로 사랑과 신앙 고백(4:11~16)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 사랑, 형제 사랑(4:17~21)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13 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