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타 연합 장로교회 말씀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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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타 연합 장로교회 말씀 강해 episodes

  • 잠언 29 : 15-27(이성혜 목사님)
    잠언 29 : 15-27(이성혜 목사님)
    존웨슬리의 어머니 수잔나는 열한명의 자식들 모두를 훌륭하게 키운 비결로 아이들이 다섯살이 되기전부터 성경을 보데한 것이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역시 유대민족의 성공비결도 숱한 어려움가운데서도 신앙교육을 그치지 않은것이라는것도 많은점을 시사한다고 하겠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정은 신앙교욱의 현장이고 부모는 성경교사인것입니다.
    그 위에 부모의 삶의 일관성이 더해질때 아이들이 부모의 가르침을 신뢰하고 따르게 되는것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럴때에만 때로는 강한 훈욱이 필요할 때에도 부작용없이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것입니다.
    잠언은 인간은 하나님의 묵시가 없다면 방자히 행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묵시가 없을때 인간은 자기 살ㄴ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자신인것처럼 행동하고 동시에 도덕적 윤리적 성적타락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꿈을 통해 묵시를 통해 말씀을 통해 끝까지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보여 주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가 말씀가운데 아이들을 양육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인생의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가 말씀을 따라가는 훈련이 되어있다면 우리의 자녀들이 훈련이 되어있다면 이 인생의 미래가 얼마나 밝겠습니까?하나님께서 종국에 이끌어주실 인생이 얼마나 복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앞에서 겸손히 말씀에 청종할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또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겸손해야할 것입니다, 겸손이 어뵤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의 작정조차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것을 잊지 마시고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시는 하루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1 min
  • 잠언 27 : 23-28:11(정인수 담임 목사님)
    잠언 27 : 23-28:11(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의 말씀은 두 종류의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의인과 악인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원래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한 의인으로 창조되었던 인간이 범죄함으로 악인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 됨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자는 의인이 되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악인이 되는 결과가 생겼습니다.
    의인은 말씀 드렸듯이 하나님을 찾는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아즌 사람은 모든것을 깨달은 자 입니다. 하나님을 아는것외에 진짜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오직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음으로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사람들위에 악이 둥지를 틉니다 그러나 그런 자들일 지라도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가 임하고 죄인이 하나님을 찾믄다면 그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고 악인이 변하여 의인이 되는것입니다.
    의인은 담대함으로 세상을 살아 갑니다.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인생에 갑자기 고속도로가 뚫려서가 아니라 오히려 어려울 때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에 마음이 활짝 열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장 해결할 방법이 없는 어려움에 싸였어도 주님의 따뜻한 품을 느끼게되면 두려움도 없어지고 감당할 눙력도 생기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통은 하나님께 의인이 부르짖게하는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방아쇠입니다. 이 관저응ㄹ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고 하나님을 신뢰하게되는 과정의 일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악이능ㄴ 공의과 진리를 거부하고 죄악에 사로잡혀 스스로 멸망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떠난자는 불안하고 늘 공포에 떱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함으로 생겨난 불안과 공포가 있습니다.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두려움에 도망가는 삶이 악인이 살게되는 저주의 삶입니다. 이 근원적인 공포는 오직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때에만 사라지게 됨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와 말씀을 붙드셔서 구원과 용서의 역사를 늘 누리시는 모든분들이 되시기를 이 메세지를 통해 축원드립니다.
    19 min
  • 잠언 27 : 1-22(김재홍 목사님)
    잠언 27 : 1-22(김재홍 목사님)
    지난주에 니카라과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특별히 안경을 가지고 가 안경사역을 했는데 중남미 사람들이 평소에 안경을 거의 끼지 않아 눈이 좋은줄 알았는데 검사를 해보니 눈이 않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놀라고 안경을 끼고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경사역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시력교정이 참 중요하듯이 인격의 교정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잠언은 한구절 한구절 인격의 교정을 위한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이나 주님이라는 말씀이 잘 안나오는 성경말씀인데도 성경에 포함되는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이격의 성숙을 얼마나 중요하게 보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17절에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사람이 사람을 빛나게 한다는 말은 사람의 인격 교정은 오직 사람사이에서 나의 부족한 모습, 피해 받는 모습, 공격하는 모습 이런것들이 반복되면서 그 가운데 나를 깨달아갈 때 가능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깨 나의 미성숙함을 아파하면서 주님만을 잡을 때 나의 인격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무서운것은 사람이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가는 것입니다. 감추려고해도 아무리 잘 감춰도 나의 속 사람은 드러나고야 맙니다 다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난것을 자기 본인만 모르기가 쉽다는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진심으로 견책과 책망을 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나를 정말로 생각하는 귀한 충고가 숨은 사랑보다 훨씬 나은 것 이라는 것입니다. 원수의 사탕발림은 나를 옭아매는 덫이 됩니다.
    그애서 오늘의 잠언은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칭찬을 들었을때 나타나는 나의 반응이 결국 나의 훈련이 된다는것입니다. 칭찬을 들은후에 그의 속사람이 금방 드러납니다. 친창 한마디에 교만이 드러나는 사람은 쓰디쓴 인생의 교훈을 배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고 살아야겠습니까? 나에게 충성된 권고가 그렇데 귀한 것이라면 우리도 우리 이웃에게 그런 권고를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충성된 권고가 무엇이겠습니까? 전도입니다, 선교입니다, 예배 입니다. 그래서 전도와 선교와 예배로의 초대가 그렇게나 우리 신앙의 핵심이 되는것입니다.
    그런니 이 귀한것을 분노와 투기로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기 욕심으로 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전도와 선교를 할 지라도 우리안의 분노와 투기를 내려놓지 않고 한다면 결국 상처만이 전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과 충성과 충직이 아니면 우리가 권고하지 않는게 오히려 낫습니다.
    슬기로운 자는 이것들을 잘 살펴서 숨어야 할 때, 말해야 할 때, 잠잠해야 할 때를 구별할 것입니다. 때를 그래서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부족함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철이 철을 날카롭게하듯 우리의 인격을 다듬으시고 벼르시고 성숙하게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찬송하며 오늘 이 말씀을 받으시는 모든 연합의 성도들께 하나님의 비밀한 성숙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7 min
  • 잠언 26 : 13-28(정인수 담임 목사님)
    잠언 26 : 13-28(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의 잠언의 주제는 게으른자와 말을 만드는 말쟁이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게으름에 대해 단호히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게으름은 쉽게 범죄하도록 사람을 이끕니다. 게으른 사람은 거리에 사자가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핑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승리하는 사람들은 핑계가 없습니다, 해야할 일이 있으면 그냥 해 버리면 되지 핑계를 만들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패배하는 사람들은 핑계가 많고 핑계에 묶여 자신이 처한 처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좀더자자 좀더 눕자 하는것은 꼭 해야만 하는 일을 피하려고하는 그 일에 동반되는 수고로움을 피하려고하는 그 것이 게을음입니다. 수고로움을 감당하지 않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가정도 이런자들은 망치고 맙니다, 교회에도 이런자들이 있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성도는 절대로 부지런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맞서서 돌파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새벽기도고 그냥 나오면 될 것을 오늘좀 춥네, 비가오네하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 자세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교회에 나오면서 교회 뜰만 밟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 섬기지 않는 사람들, 사역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세상이 됬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약한 신앙으로 살게 됩니다.
    성경은 게으른 자와 어리석은 자를 형제로 봅니다. 게으른 자는 자신의 잘못과 실패를 합리화 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자입니다. 남을 깎아내려서라도 그렇습니다. 게으른 자들은 일이 없으니 시간이 많습니다 그 시간에 남을 험담하는 톤화만 합니다. 그런 인생이 얼마나 한심한 인생입니까?
    오늘 말씀에 남의 싸움에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자와 같다고 했으니 남의 일에 주제 넘게 간섭하는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 또 자신에게 화를 불러오는 행동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살면서 가장 못할 일은 남을 해치는 일입니다. 남과 다투는 일입니다 이런 일들은 얼마나 소모적인 일들인지 모릅니다.
    교회에서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사라집니다. 게으른 사람이 없어 지면 말쟁이가 사라집니다. 이 메세지를 듣는 모든 연합의 성도들은 절대로 게으르지말고 다투지 말고 서로 사랑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8 min
  • 사도 행전 27:22-26 (박승로 목사님)
    사도 행전 27:22-26 (박승로 목사님)
    키에르 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표현한 절망, 이 절망과 죄를 그는 두가지로 연관시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이 절망하는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절망하면서 하나님을 찾지 않을때 죽음에 이르게 된다라는 것이고 두번째는 절낭하지 않는것이 죄다라고 했습니다. 절망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에 죄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찾지 않는것이 죄다라는 것이고 하나님을 찾으면 인간은 살 수 있다라는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탄광 목회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탄광에서 일어나는 사고와 믿음의 삶과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사고가 나면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그정도 수준의 사건이 아닙니다. 절대로 외부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거 돌아올 수 없는 사건이 바로 탄광의 사고입니다. 이 와 마찬가지로 구원의 은혜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오는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것이 인생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유라굴라 광풍앞에서 사도 바울이 전혀 두려워 하지 않는 믿음의 모습을 보이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세가지 믿음의 확신으로 두려움을 이겨냈음을 본문을 잘 보시면 나타납니다.
    첫째로 바울은 하난미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내가 절망가운데 있는듯해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도와 주신다는 임마누엘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두번째로 바울은 사명이 있었고 사명을 위해 살아가는 사명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부르심이 있고 이에 맞는 사명이 다 있음을 믿으시기 자랍니다. 바울은 확고한 소명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세번째로 바울에겐 하나님의 말슴이 있엇습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너한테 아직 할 일이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바울은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삶도 바울의 처지와 다를게 없습니다 이민생활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면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 붇드시면 우리가 살 수 있는것입니다.
    오늘 이말씀으로 하나님을 더욱더 붇드시는 여러분모두가 되시길 축워합니다, 하나님으로 승리 하시길 축원합니다.
    22 min
  • 잠언 25 : 14-28(조근상 목사님)
    잠언 25 : 14-28(조근상 목사님)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지혜의 원칙들이 있습니다. 잠언은 이 원칙들을 한 시점에서가 아니라 다양한 시점에서 보여줌으로 저희가 살면서 겪는 다양한 모습의 사건 속에서도 이 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조명해 주는 책입니다.
    특별히 오늘의 말씀의 15절을 보시면 "15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우리의 신체의 부분들인 뼈와 혀로 비유를 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혀는 인체중에 가장 부드러운 부분이기도 하고 우리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이상이 생기는 곳이 바로 혀입니다. 백태가 끼고 이상을 보이면 우리는 병원을 가는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성 생활에 이상이 있을때 제일 먼저 반응하는곳도 혀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언어가 가장 먼저 이상을 보이게 되는것입니다. 그 런데 우리의 언어 즉 말은 우리의 가장 단단한 뼈를 꺽는것이라고 그렇게도 말의 문제가 중요한것이라고 말씀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떻게 이 혀를 다스리는가 어떻게 혀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받는 많은 복과 동시에 또 마주하는 많은 문제의 뒤에 이 혀라는 뿌리가 있다는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삶속에도 억울한 일도 분한 일도 생깁니다. 그런데 그 때 중요한것이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가 하는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되받아 주거나 공격하고싶어지는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 흥분해서 정말 하지 말아야할 말을 한다면 얼마나 후회가 되는 결과들을 불러들입니까? 분명히 절대로 해선 안되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얼마나 억울한 일인지 모릅니다 잘못한게 없는데도 심할때에는 적이 생기기도 하는것입니다.
    그럴때는 사람에게 말해서 일이 해결 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어떤말과 행동에도 나의 속을 정확히 아시는 성령하나님께 우리의 속을 쏟아 놓을때 문제가 해결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벽기도를 하시는 분들만큼 강력한 분들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새벽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정리하는 사람들을 세상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으로 말을 다스리는 지혜와 하나님께 나의 속을 토설하는 강력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께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2 min
  • 스바냐 3 : 1-8(정인수 담임 목사님)
    스바냐 3 : 1-8(정인수 담임 목사님)
    스바냐 선지자는 왕족 출신 선지자라는것을 기억하고 계시면 이 스바냐서를 이해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먼저 왕족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정치 문화적인 상황에 대해 정확한 지적을 할 수 있었고 그의 사역이 요시야왕의 개혁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스바냐 선지자의 예루살렘을 대표한 회개와 반성에 해당합니다. 인간은 어떤문제가 생기면 그 원인을 외부의 영향으로 돌리기 좋아하는데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모든 문제의 원인을 심지어 사회와 나라의 문제도 자신을 돌아보는데 부터 시작해서 찾아간다는것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스바냐 선지자 역시 예루살렘의 타락과 닥쳐올 멸망의 원인을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내부에서 찾고 지적하고 계십니다. 자기민족과 자기사회의 타락과 문제를 먼저 왕족으로써 철저히 반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스바냐 선지자가 지적하는 세가지 거민의 잘못은 패역하고, 더럽고, 포악하다는 것입니다. 패역하다는것은 예루 살렘이 하나님을 배반하였다는 것이고 포악하다는것은 예루살렘의 지배계층이 백성을 탄압하고 착취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북한에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과 교회가 탄압 받는것이 포악의 한 예라 하겠습니다.
    또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네가지 이유를 또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책망과 견책을 받지 않고 자기 듣기좋은 말들만 쫓아 가는것이 교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며 하나님대신에 이방나라를 의지하는것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것입니다. 또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않는것이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는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나 오늘도 공의로 세상을 비추시고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 이 우주가 지탱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예정된 멸망일지라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회개하면 살아날 길을 마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자비와 공의의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가 살아날 길임을 믿으시고 우리의 인생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인생은 하나님의 종이 되는것임을 하나님의 뜻을 노예가 그 주인의 뜻을 받들듯 받는것임을 그래서 멸망을 피하고 생명의 길로 들어가는것임을 믿게되시길 축원합니다.
    21 min
  • 스바냐 1 : 14-2:3(정인수 담임 목사님)
    스바냐 1 : 14-2:3(정인수 담임 목사님)
    스바냐서의 기본 주제는 여호와의 날, 심판의 날입니다. 이 여호와의 날에는 두가지 종말론적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역사적인 의미에서의 종말과 심판이고 두번째는 온 우주적인, 예수그리스도의 재림때 이루어질,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공의가 100% 드러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도 드러나는 날이며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공의가 심판으로 임하는 날인것입니다.
    행전17:1을 보면 이 하나님의 날 천하를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할 날이 작정되었다 적고 계신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 심판에 대한 경고가 스바냐서의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바냐 2:1-3은 이 책의 핵심구절입니다. 스바냐 선지자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예정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우리가 속히 행해야 할 세가지일을 적고 계십니다.
    첫째는 여호와를 찾는일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과 같은 말이 됩니다.
    둘째는, 공의를 찾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절대진리로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절대 진리임을 깨달으라는 말슴입니다.
    마지막으로 겸손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교만은 하나님 없이도 내 힘으로 살 수 있다는 태도입니다. 겸손은 반대로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고백하는것입니다.
    우리는 스바냐 선지자가 모이라 말씀하신것처럼 하나님 앞에 언제나 모여서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구해야겠습니다. 나의 가족을 대표해서 연합교회를 우리나라를 대표해 모여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구원을 얻어야 겠습니다.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절대로 구원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앞에 나아와 언젠가 곧 단혀질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야겠습니다. 결국 인생의 끝은 하나님앞에 서서 결산을 받는것입니다. 그 간단한 진리를 절대 잊지 말고 우리 주님을 붇잡는 구원의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19 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