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타 연합 장로교회 말씀 강해

아틀란타 연합 장로교회 말씀 강해

Download on the App Store

아틀란타 연합 장로교회 말씀 강해 episodes

  • 에스겔 23 : 22-35(서석훈 목사님)
    에스겔 23 : 22-35(서석훈 목사님)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오홀리바에 대한 준엄한 심판의 경고입니다. 오홀리바는 바로 예루살렘, 남 유다를 의인화시킨 말입니다. 에스겔은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을 오홀라와 오홀리바라는 자매로 의인화 시켜서 이야기하고 있고 특히 어제의 말씀에서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하던 사마리아 곧 북이스라엘 곧 오홀라가 어떻게 심판을 받아 멸망했는지 말씀하겼습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은 이 동생인 오홀리바의 심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 심판의 정도가 동생과는 비교할 수고 없이 강력합니다. 즉 예루살렘과 남유다가 겪게될 심판은 북이스라엘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없이 강하다는 경고입니다.
    22절에서는 사방에서 와서 너를 치겠다 하시고 남유다의 사람들을 이방의 법으로 심판한다고 하시고 25절에서는 그들의 귀와 코를 잘라버린다고 하시는데 이것은 고대 중동에서 노예나 간음한 여인을 처벌하는 극형의 하나입니다. 29절에서는 벌거벗은 몸으로 두고 행음하던것을 드러앨 것이다 모든 수치를 드러낼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떼서는 남유다에대해 이렇게 더 심한 심판을 이야기 하셨을까요? 바로 이들이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하나님의 심판을 다 보고 들었음에도 이들이 하나님께 메달리는것이 아니라 세상의 힘센자들 바벨론과 애굽을 의지하며 나아갔기때문입니다.
    행음하는 아내에게 분노하지 않는 남편은 그 아내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남편입니다. 분노가 치밀고 화가 나는것이 너무도 당연한 인지상정인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분노의 크기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당신의 백성들에게 대한 사랑의 크기를 나타내는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한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신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는 무한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간다면 하나님의 분노도 이와같이 거대할 것입니다. 작금의 세상의 에스겔 23 : 22-35(서석훈 목사님)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오홀리바에 대한 준엄한 심판의 경고입니다. 오홀리바는 바로 예루살렘, 남 유다를 의인화시킨 말입니다. 에스겔은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을 오홀라와 오홀리바라는 자매로 의인화 시켜서 이야기하고 있고 특히 어제의 말씀에서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하던 사마리아 곧 북이스라엘 곧 오홀라가 어떻게 심판을 받아 멸망했는지 말씀하겼습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은 이 동생인 오홀리바의 심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 심판의 정도가 동생과는 비교할 수고 없이 강력합니다. 즉 예루살렘과 남유다가 겪게될 심판은 북이스라엘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없이 강하다는 경고입니다.
    22절에서는 사방에서 와서 너를 치겠다 하시고 남유다의 사람들을 이방의 법으로 심판한다고 하시고 25절에서는 그들의 귀와 코를 잘라버린다고 하시는데 이것은 고대 중동에서 노예나 간음한 여인을 처벌하는 극형의 하나입니다. 29절에서는 벌거벗은 몸으로 두고 행음하던것을 드러앨 것이다 모든 수치를 드러낼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떼서는 남유다에대해 이렇게 더 심한 심판을 이야기 하셨을까요? 바로 이들이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하나님의 심판을 다 보고 들었음에도 이들이 하나님께 메달리는것이 아니라 세상의 힘센자들 바벨론과 애굽을 의지하며 나아갔기때문입니다.
    행음하는 아내에게 분노하지 않는 남편은 그 아내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남편입니다. 분노가 치밀고 화가 나는것이 너무도 당연한 인지상정인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분노의 크기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당신의 백성들에게 대한 사랑의 크기를 나타내는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한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신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는 무한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간다면 하나님의 분노도 이와같이 거대할 것입니다. 작금의 세상의 유혹은 강력하며 간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홀라와 노홀리바 자매의 멸망의 비유에서 교훈을 배웠다면 하나님을 슬프게하고 분노케하는 죄악으로부터 멀리하는 지혜를 발휘 할 것이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에 우리를 맡기는 도리를 다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사 주시는 경고의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단련하시고자 하시는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축복이 무궁하시길 축원합니다.
    유혹은 강력하며 간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홀라와 노홀리바 자매의 멸망의 비유에서 교훈을 배웠다면 하나님을 슬프게하고 분노케하는 죄악으로부터 멀리하는 지혜를 발휘 할 것이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에 우리를 맡기는 도리를 다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사 주시는 경고의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단련하시고자 하시는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축복이 무궁하시길 축원합니다.
    12 min
  • 에스겔 22:1-16(정연권 목사님)
    에스겔 22:1-16
    오늘 본문을 잘 정리해주는 한 단어는 '관영하다'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를 통해 세상을 심판 하실때 세상을 묘사하시면서 사용하신 단어입니다. 그때 세상에는 사람의 죄악이 괸영함과 사람의 생각이 악함을 보시고 심판하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자면 이 단어는 컵에 더 이상 물을 부을 수 없을때까지 컴에 물이 찬 상태와 같음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루살렘에 죄가 관영했다는 것은 예루살렘이 사람을 죽이고 우상을 섬기는 죄를 지었음이요 고관들은 권력을 남용해 사람을 죽이고 사람들은 부모를 업신여기고 소외된 사람을 버려두고 제사장들도 타락해서 성물을 업신여기고 안식일을 더렵혔습니다. 그리고 이외에도 입에 올리기도 힘든 많은 죄들을 저지른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읍에는 더 이상 하나님의 공의도 율법도 사라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오직 인간의 탐욕만이 가득찬 세상이 괸것입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
    하나님을 잊어버린 나라
    하나님을 잊어버린 교회
    이들로 가득찬 곳이 되었습니다.
    죄가 관영한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심판의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오게 하려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수단이 심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우리마음속에 나의 모습이 비추어 지는것 그래서 나의 죄가 깨달아 지는 그 때가 바로 하나님께 돌아오실 때 입니다.
    13 min
  • 에스겔 20 : 40-49(정인수 담임 목사님)
    에스겔 20 40-49
    오늘 본문은 다시 회복에 대해 이야기하고있습니다. 심판이 주된 내용인 에스겔에서 회복에 관한 내용은 참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먼저 본문은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임을 예언합니다. 또 그들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드리는 회복의 증거,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감동으로 예배를 드리고 인생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는 그 증거가 나타날것을 이야기 합니다.
    회복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자신의 그동안의 죄를 미워하고 눈물로 회개하고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말씀하신 모든것을 이루심을 말씀하십니다. 어느날 은혜를 경험하고 내가 회복 될깨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깨닫는 그것이 온 민족에게 드러나리라 말씀하시는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면 만약 하나님의 백성의 전적인 회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을 받을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이뤄딜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구원사역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고 한 백성은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45절부터는 다시 심판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것은 다시한번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대로 심판하시지 않으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회개하라고 회개하면 산다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회개만 하면 소망이 있습니다. 과거의 어떤죄로 물들은 죄인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위해 우리의 구원의 약속을 지키시려 일하시는 한 우리의 구원은 확증적입니다. 그 구원의 메세지를 사모하시는 분들은 오늘의 메세지에서 은혜 받으시기 축언합니다.
    15 min
  • 에스겔 20 : 30-39(김재홍 목사님)
    선교지를 가보면 청결하지 못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하고 돌아와도 손을 씻을 줄도 모르고 이도 닦지않고 우물물도 그냥 마시고 아무렇게 담아놓은 물을 거듭해서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위생적인 삶을 살면서도 이 병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바로 이 무서운 병들이 손을 안 씻으면 이를 안 닦으면 세수를 하지 않으면 물을 끓여먹지 않으면 시작 될 수 있다는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교를 가면 이 사람들에게 청결을 제일 먼저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 청결이 원주민들에게는 고통일 수 있습니다. 손을 씻고 이를 닦고 세수 하고 물을 끓여 먹는것이 이들에게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와 마찬가지 인것이 영적인 청결입니다. 영적인 청결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 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청결함이 없을 때 모든 문제가 이 곳에서 시작 되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문제 뿐 아니라 우리사이의 관계의 문제도 건강의 문제도 그리고 재산의 문제도 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로부터 시작되는것을 볼 수 있고 언약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의 문제의 해결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함으로 시작되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의 외침도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자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하나님을 얼마나 대적하고 있는가 돌아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믿어도 나라가 망하지 않았느냐는 적반하장의 태로로 차라리 바벨론의 우상을 강대국의 우상들을 섬겨보자는 자세로 나아가는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일제시대에 신사를 참배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런 우상 숭배 가운데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실 수 없고 또 응답하셔도 그 음성을 우리가 들을 수 없는것입니다. 하지만 에스겔은 경고하기를 이런 패악이 계속 될깨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공의와 하나님의 분노로 붙잡아 되 돌이신다는 경고를 주시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패역한 우리일 지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심판의 모습으로도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동시에 이뤄 질 수 있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모습을 경외하심으로 은혜의 관계에 들어가시고자 하는 모든 분들은 오늘의 메세지에서 킁 도정과 은혜 받으시기 축언합니다.
    15 min
  • 에스겔 20 : 10-29(정인수 담임 목사님)
    에스겔 20 : 10-29 (정인수 담임 목사님)
    오늘의 본문에서 에스겔은 뛰어난 역사적 감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하고 있습니다.
    광야의 1세대는 시내산에서 언약을 받음과 동시에 율례와 규례의 선물을 받았다는 말슴하시며 이들은 생명을 살리는 말씀이라는고 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님께서 또 하나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안식일이고 하나님께서는 이 안식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사이의 표징으로 삼으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 율례와 규례를 멸시하고 안식일을 더럽혔으며 이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였다는 이야기 입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것은 회개한다는 이야기이며 우리 주변의 가난한 자들을 돌아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것으로부터 떠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욕심을 숭배하는 죄악으로 물들었다는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로의 정체성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삼십년전 미국의 영적인 정체성은 얼마나 건강하고 아름다웠습니까? 지금의 미국의 모습은 이 나라가 자신의 영적 정체성을 얼마나 쉽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잃어버리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심판은 죄악을 방치하는것입니다. 죄인들로 하여금 스스로 멸망하게 하는것입니다. 바로 이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방치에 들어가고 있었음을 에스겔이 경고하며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선포는 바로 오늘 우리에게, 미국에게, 한국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고 패역한 세태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더욱 더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시고 회개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시는 분은 오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큰 도전을 받으시길 축언합니다.
    17 min
  • 에스겔 20 : 1-9(정인수 담임 목사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인들의 생활은 비참 했으며 언제나 조국으로 돌아갈 생각 뿐이였습니다. 이때 거짓 선지들이 사람들의 바람에 비위를 맞추는 거짓된 예언을 남발할 때 였고 또 이런 거짓예언과 불안한 미래로 무척 혼란하였습니다.
    이에 장로 둘이 에스겔에게 찾아와 유다백성의 미래를 묻습니다. 하지만 이미 패역한 유다 백성들에게 분노하실 대로 분노하고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대답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에스겔은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나아가야 할 바를 하나님의 뜻을 배워 선포해야만 하는 사람입니다. 어떻게든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백성에게 전해주어야하는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더더욱 하나님앞으로 나아갑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이렇게 유다 족속을 질책 하십니다. 먼저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흘히 하여 가증한 것으로 부터 떠나지 않았고 또 우상을 숭배했다는것입니다.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 심판받아 멸절되 마땅할 이스라엘 족속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애굽으로부터 구원해 내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이렇게나 중요하며 능력이 있으며 위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죄인들도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고 죄와 저주를 끊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것입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수많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한 하나님의 이적들을 보시면 이 말씀의 뜻을 아실 수 있을것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이름을 붙잡음으로 복된 삶을 누리고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습니다. 오늘 이 메세지를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능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언합니다.
    14 min
  • 에스겔 19:1-14(이성혜 목사님)
    에스겔 19:1-14
    예스겔에게 하나님은사람이 죽었을 때 부르는 장송곡인 애가를 부르게 하십니다.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는 두마리의 사자의 비유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설명하여 주십니다.
    애굽으로 끌려간 첫번째 젊은 사자는 백성을 압제하다가 애굽에 사로 잡혀간 여호아하스왕을 말합니다. 두번째 바젤론으로 끌려간 다른 사자는역시 자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여호야긴왕을 말씀하시는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포도나무의 비유을 말씀하시는데 가지에서 불이나와 열매를 태워 버리는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종국에 멸망할 것을 말씀 하시는것입니다. 이 모든 왕들이 권세와 능력이 뛰어 났고 또 거느리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누구의 희망도 되어주지 않음을 보여 주십니다.
    유다의 왕들은 유다왕국을 멸망케하고 또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자신의 목숨을 건졌지만 자신의 목숨을 바쳐 만국과 만민을 구원하신 한 왕이 계셨으니 그 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히 유일하고 진정한 왕 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찬송하고 찬송하는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심으로 은혜받고 싶으신 분들은 오늘의 메세지에 귀를 기울이시길 축언합니다.
    15 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