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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후에 뭐가 있습니까. 나는 어떻게 됩니까.
-그게 왜 중요하지? 살기 싫어했잖아. 죽고 싶어 했던 게 아니었나.
나는 씩 웃으며 인간의 눈을 바라봤다. 놈이 눈길을 피하면서 말했다.
-죽고 나서는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그렇게 될 거다. 그게 너의 천국이구나. 그럼 너는 그 무(無)에 속하게 될 거다.
-죽은 이들이 가는 곳이 모두 무 입니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다시 태어나기도 합니까.
-너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너의 직감, 직관, 생각, 뭔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의 덩어리들. 그게 정답이야. 죽음은 사실 너무 간단해. 간편하기도 하고. 인간이 살면서 기대하는 딱 그 정도지.
-무의 세계는 천국 인가요 지옥인가요?
-천국과 지옥은 각자 선택 하는 거야. 각자가 만드는 거고. 지금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너의 천국이다. 혹은 지옥이다. 혹은 그 둘도 아닌 무엇이다.
-죽고 제가 후회하지 않을까요?
-죽음과 생은 아주 가깝지만 생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에게 죽음이 뭐 특별하겠나. 대개는 일종의 도피처쯤으로 생각하지. 그게 사실은 아주 위험해. 생에 일말의 의지가 없는 사람은 죽음과 생의 경계가 점차로 흐려지지. 우리식으로는 ‘경계코마’라고 부르는데 그야말로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게 아닌 상태를 말해. 그 때 숨이 끊어지면 죽기 전 생이 권태롭게 이어지게 되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완전한 지루함, 고독, 출구 없는 권태상태에 빠지는 거야. 그렇게 애착 없던 생이 끊임없이 지속돼. 심각하게 최악이지. 지옥이야. 가장 혹독한 지옥.
-저도 경계코마에 걸려있나요?
-그 역시 너 스스로가 알고 있다. 이미 많은 것을 말했다. 모든 것을 알면 당장 죽어야만 해. 너는 3일 후 죽을 건지만 결정하면 된다. 너를 담당하는 신으로서 꼴도 보기 싫은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선택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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