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죽었다]
“다들 어디 나가지 마러. 니들 아버지, 오늘 돌아가실 것 같어.”
어쩐지 최후통첩 같은, 엄마의 얘기에 핸드백을 도로 장롱에 넣었다. 형제들 모두 묵묵히 외투를 벗었다. 집구석이 유난스럽게 조용했다. 그 누구도 울거나 적어도 훌쩍이는 흉내조차 내지 않았고 늘 그랬듯 각자의 방에 들어가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했다.
아버지가 죽는다. 4개월 전 골수암3기를 진단 받은 노인에게 병원은 입원을 거부했다. 이미 소생가능성이 없다. 그래, 어차피 아버지는 죽을 거였다. 이제와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단 말이 놀랍거나 생경하거나 애틋하거나 하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아버지는 길게 주무셨다. 앙상한 당신 몸뚱이를 흔들어대도 간신히 눈꺼풀을 들었다 그냥 놓아버리는 식이었다. 혹 눈을 뜨고 있어도 시선은 허공에 가 맺혔고 돌아가신 당신 엄마와 어릴 때 죽은 둘째아들 영규를 작게 불러댔다.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하며 늙은 마누라와 다 큰 다섯 자식은 무얼, 할 수 있었나. 암세포는 끈질겼고 재빨랐다. 불쌍한 그 양반은 고통에 몸을 뒤틀어댔다. 그때마다 자식새끼들은 어쩔 줄 몰라 할 뿐이었고 늙은 마누라는 아픈 남편의 남은 살 거죽들을 끌어 모아 진통제 주삿바늘을 꽂을 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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