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카롤린 기에라 응우옌(Caroline Guiela Nguyen)은 올해 마흔다섯 살로, 2023년부터 스트라스부르 국립극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9월 27일과 28일 자 주말판에 실은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을 이 자리까지 이끈 원동력으로 가족 여성들의 비극을 꼽았습니다. 시니어 독자께서는 이 이야기에서 개인의 생애가 시대의 격랑과 어떻게 맞닿는지, 그리고 상처를 안고 사는 세대가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기는지를 함께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베트남에서 프랑스로, 수용소에서 시작된 가족사
그녀의 어머니 시몬은 제2차 세계대전 말 베트남 사이공에서 태어나 9남매의 장녀로 자랐습니다. 1956년, 열한 살의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온 어머니는 남서부 지방의 비아스와 생트 리브라드에 마련된 수용소에서 생활했습니다. 기에라 응우옌은 이 수용소를 모멸적인 곳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처음에 가족과 동행하기를 거부하고 짧은 편지 한 통만 남겼으며, 그 뒤 외할머니는 크게 무너졌다고 합니다. 가족 사이에서는 외할아버지가 베트남 독립동맹(비엣민)의 전투원이 되어 남았다고 전해졌으나, 실제로는 총을 든 적이 없고 다른 여성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입니다. 그녀는 '전투원'이라는 이야기가 외할머니가 겪은 굴욕을 감싸기 위한 방어 기제였다고 해석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이 역사를 모르도록 오랫동안 애썼습니다. 딸이 2017년 연극 '사이공(Saigon)'을 준비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가족사를 묻기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이야기가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침묵으로 남은 부분이 있어, 그녀는 지금도 폭력의 크기를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삶의 고비마다 '이제 괜찮아질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는데, 기에라 응우옌은 이를 세상이 뒤집히지 않도록 붙드는 일종의 허구로 이해합니다. 허구가 존엄을 지키는 동맹자였다는 표현은 그녀의 창작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문화 사이의 어린 시절
그녀는 세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프랑스 남부 바르 지역의 빌크로즈라는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친가는 알제리 출신 유대계 프랑스인, 곧 피에누아르(pieds-noirs, 북아프리카 식민지 출신 프랑스인)였고, 부모는 종신 연금(viager) 방식으로 큰 집을 구입했습니다. 집주인이 위층에 살던 그 집에서 어린 그녀는 위층에서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치는 소리를 들었고, 훗날 그것이 자살 시도였음을 알았습니다. 폭력은 늘 곁에 있으나 눈앞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감각이 이때 각인되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남부 억양이 강한 소녀였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어머니를 '중국 여자'라 불렀습니다. 반면 여름이면 집은 베트남 가족의 모임 장소로 바뀌어, 하루 종일 베트남어가 오갔습니다. 그녀는 베트남 땅을 밟아 본 적이 없으면서도 언젠가 '위대한 귀환'을 준비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습니다. 반면 알제리에 관한 이야기는 어린 시절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웃음과 기쁨이 이 집안에 분명 있었으나, 기쁨이 때로는 폭력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말하며, '완벽한 통합'의 신화와 '회복탄력성(résilience)'이라는 원칙에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글쓰기, 유일한 생존 방식
그녀는 거의 말이 없는 아이였고, 불안을 달래려고 비극이 일어나지 않는 여러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지어내곤 했다고 합니다. 연극과의 첫 만남도 어머니가 지역 아이들과 함께 이반 오두아르의 〈목가(La Pastorale)〉에서 성모 마리아 역을 맡기면서 우연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녀는 연극을 보고 어떤 계시를 받은 적은 없으며, 자신에게 글쓰기는 속한 집단에서 한 걸음 물러나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고 밝혔습니다.
니스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던 그녀는 오크어 민중 연극에 열정을 쏟던 학과장 클로드 알랑을 만나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언어와 기억을 온몸으로 지키려는 사람을 처음 본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그녀의 글은 '죽은 단어'였습니다. 어머니가 정확히 발음하도록 배운 프랑스어처럼 흔들림 없이, 자신과 가족이 훌륭한 공화국 시민임을 증명하는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체호프와 셰익스피어, 라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어머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조금씩 떨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자기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모든 떨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했으며, 그것이 어머니의 유일한 단점이었다고 평했습니다.
공감이 아닌 '순종'을 경계하며
그녀의 연극은 흔히 '공감의 연극'으로 불립니다. 그러나 그녀는 공감이라는 말 곁에서 순종(docilité)이라는 단어를 듣게 된다며, 그렇게 표현하는 시선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현재 집필 중인 희곡 〈비극: 방법(Tragédie : méthode)〉은 어머니가 2년 전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가 위험하고 쓸데없다고 여길 공연을 만들기로 결심하는 대목으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또한 2027년 가을 팔레 드 도쿄에 이어 아비뇽의 콜렉시옹 랑베르에서 선보일 전시 '그녀를 빛으로 덮으소서(Couvrez-la de lumière)'를 통해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의 시성(canoniser)을 교황에게 청원하는 형식을 취할 계획입니다. 그녀가 말하는 기적은 어머니가 살아남았다는 것, 다리에서 뛰어내리지 않았다는 것, 미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연극 '사이공'은 초연 10년 만에 10월 8일부터 니스 국립극장에서, 12월에는 뉴욕 세인트 앤스 웨어하우스(St. Ann's Warehouse)에서, 2027년 6월에는 파리 시립 극장에서 다시 무대에 오릅니다.
보수적 시각에서 되새기는 가족과 기억의 의미
이 인터뷰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녀가 폭력이 시간을 파괴한다고 말하며, 딸을 위해 시간이 조금 더 연속적이 되도록 애쓰고 있다고 밝힌 점입니다. 상처는 세대를 건너 전해지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이름 붙이는 일이 다음 세대에게 안정된 시간을 물려주는 길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녀가 어머니를 시성해 달라는 청원의 형식으로 경의를 표하려 한다는 점도, 과거 세대의 희생에 대한 존중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다만 균형 있는 시각도 필요합니다. 그녀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과거의 잘못을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관점입니다. 시대적 맥락을 고려해 역사를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도 여전히 유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통합의 신화'와 '회복탄력성'을 비판한 대목은 이민 사회가 겪는 어려움을 짚은 것이지만, 이를 곧바로 사회 전체의 통합 노력에 대한 부정으로 확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예술가의 개인적 경험이 갖는 무게와 사회 일반에 대한 평가는 구분해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시니어 세대는 전쟁과 이산, 가난을 지나오며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살아오신 분이 많습니다. 기에라 응우옌의 어머니가 끝내 침묵한 부분이 있었듯, 우리 가정에도 채 전하지 못한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자녀와 손주에게 조금씩 들려주는 일은 가족의 시간을 잇는 소중한 유산이 될 수 있습니다. 상처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기억으로 남기는 것, 그것이 이 인터뷰가 시니어 독자께 건네는 조용한 제언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