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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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pisodes

  • 5회 조선시대 이혼, 패가망신의 지름길이었다.
    ‘조선시대라면 얼마나 좋을까. 처첩을 마음대로 들이고 내칠 수 있는 시대였으니….’
    그럴 리 없겠지만 혹 이렇게 상상하는 남자들이 있다면 한마디 하겠습니다. “꿈깨세요. 잘못하면 패가망신할 터이니…”
    조강지처를 버릴 수 있는 7가지 죄악, 즉 칠거지악으로 걸어 쫓아냈다는데 무슨 걸림돌이 있었겠느냐고 항변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칠거지악을 무색케 만드는 삼불거(三不去), 즉 아내를 쫓아낼 수 없는 3가지 조건이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지요. ‘삼불거’란 ‘돌아갈 곳이 없는 아내는 쫓아내지 못하고, 부모의 삼년상을 함께 지냈다면 역시 쫓아내지 못하며, 처음에 가난하게 지냈다가 후에 부자가 됐을 경우에도 쫓아내지 못한다’는 조항입니다. 한마디로 어려움을 함께 한 조강지처는 버릴 수 없다고 못박은 것입니다.
    게다가 조선의 법률에는 제대로된 이혼법이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멋대로 이혼하고 재혼하는 법을 만들어 놓으면 조선 사회의 근간이 되는 신분질서가 흔들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으니 양반가에서 이혼소송이 일어나면 조정의 공론까지 일고, 임금이 나서 최종판결까지 해야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가끔씩 명나라 법전인 <대명률>에 있는 ‘지아비가 이혼을 원하면 들어준다’는 조항을 들고나와 이혼을 원하는 사대부가 있었는데요. 그러나 <대명률>의 해당 조항은 ‘아내가 남편을 구타했을 때’라는 조건이 달려있었습니다. 그러니 이혼소송은 번번이 남편 측의 패소로 끝나고 맙니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현장의 증거가 없으면 간통죄가 성립될 수 없다’는 판결이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는 겁니다. ‘간통하는 현장을 잡지 못하면 죄를 묻지 않는다(非奸所捕獲 勿論)’는 실록의 언급이 있을 정도이니까요.
    정처가 있는데 또 처첩을 얻거나, 혹은 ‘혼테크’로 재산을 축재하는 경우 패가망신하기 일쑤였습니다. 폭력남편의 말로는 더욱 비참했구요.
    남의 집 이혼소송에 신료들은 물론 국왕까지 나서 ‘감놔라배놔라’ 하고, 심지어는 ‘강제이혼명령’을 내리기도, 거꾸로 ‘이혼불가판결’도 내리기도 하고…. 알고보니 혼인도, 이혼도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사회가 바로 조선사회였던 겁니다.
    32 min
  • 4회 조선판 ‘바바리맨’ 어떻게 했을까?
    요즘 성(性) 관련 추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장삼이사는 물론이고, 사회지도층까지 줄줄이 성 추문에 연루되고 있습니다. 그래놓고는 ‘딸 같아서 그랬다’는 둥, ‘귀여워서 그랬다’는 둥 흰소리를 남발했답니다.
    며칠전에는 15살짜리 알바생을 껴안고 입을 맞춘 음식점 주인이 항소심에서 실형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됐다고 합니다. ‘(음식점 주인에게) 부양해야 할 두 자녀가 있다’는 점이 감안됐답니다. 이 대목에서 한숨이 나옵니다. 두 자녀가 있다는 사람이 딸 같은 아이에게 그럴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봤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성범죄에 어떤 처벌을 내렸을까.
    놀라웠습니다. 상습범들은 요즘처럼 전자발찌를 차는 정도로 처벌이 끝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겁니다. 조선시대 성폭행범은 교수형은 물론 심지어는 능지처참형까지 당했으니까.
    강간미수범에게도 곤장 100대에, 유형 3000리의 중형을 내렸답니다. 조선시대 때는 성폭행범을 모반대역죄와 한묶음으로 봤다고 합니다.
    잘못 놀렸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했다는 얘기죠. 물론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억울한 사연을 품고 죽었던 여인들도 있었지만….
    자 이번에는 조선시대 성범죄를 둘러싼 갖가지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못말리는 남자들과, 그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아픈 삶을 살아야 했던 여인들의 이야기입니다.
    32 min
  • 3회 환향녀, 화냥년, 그녀들의 외침
    ‘환향녀’를 아십니까.
    혹시 ‘화냥년’이라는 욕을 연상하십니까. 호로자식이라는 욕과 함께? 그러나 이 ‘환향녀’의 단어 속에는 우리네 할머니들의 가슴 아픈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뭐 다 아시는 얘기겠지요. 그러나 막연하게 아시는 분들을 위해 ‘환향녀’에 담긴 여인들의 슬픈 역사를 풀어보려 합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강화도가 함락되자 뭇여인들이 오랑캐에게 절개를 잃지 않으려 강화해협의 차디찬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연려실기술〉은 “몸을 던진 여인들의 머릿수건이 연못에 떠있는 낙엽이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남자들은 어땠을까요. ‘적병에게 욕을 보느니 빨리 죽으라’고 다그쳐 자진하게 만들고, 혼자 살아남은 남정네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옵니다. 〈인조실록〉과 〈연려실기술〉 같은 기록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용케 살아남아 청나라군에게 붙잡혀 인질로 잡혀가던 여인들은 어땠을까요, “차마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고 옷으로 머리를 덮었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이른바 ‘환향녀’들을 어떻게 대했을까요. “청나라에 사로잡힌 부녀들은 본심은 아니었다 해도 변을 만났는데도 죽지 않았다. 절의를 잃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답니다. 죽었어야 한다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한가지 묻겠습니다. 오랑캐로 손가락질한 청나라 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이른바 삼배구고두의 치욕을 당한 임금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죽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이제 절대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될 아픈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이것은 환향녀, 그녀들을 위한 변명, 뭐 그 정도가 아닙니다. 못난 임금, 못난 남편, 못난 아비를 향한 그녀들의 당당한 외침입니다.
    36 min
  • 2회 삼전도의 비극···남겨진 이야기들
    1637년 1월 30일은 조선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날일 것입니다.
    평소 오랑캐라 낮춰보던 청나라에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세 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림)의 굴욕 속에 항복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청나라에 볼모로 붙잡힌 백성들은 항복 후 도성으로 돌아가는 인조를 향해 외쳤습니다. “임금님 임금님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역사는 이 날의 치욕을 ‘삼전도의 굴욕사건’이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청나라는 항복의식이 벌어진 삼전도에 ‘청나라 황제 승첩비’를 세우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면서 ‘황제의 공적을 칭송하는 비문을 직접 쓰라’고 지시했습니다.
    조선 조정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아무도 글을 짓지 않겠다고 피했습니다. “한때의 굴욕을 참자”는 인조의 신신당부에 따라 글을 지어 청나라의 낙점을 받은 이는 백헌 이경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은 삼전도비문은 두고두고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유림의 영수 송시열은 왜 이경석을 ‘오랑캐에 아부함으로써 오래오래 잘 먹고 잘 살았다’고 비아냥댔을까요. 후세의 박세당은 왜 그런 송시열을 ‘올빼미’라 비난했을까요. 삼전도 비문을 둘러싼 굴욕의 사연들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치욕’도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역사이니까요.
    30 min
  • 1회 정조의 담배사랑
    5년 만에 조선을 물들인 남령초(담배)…. 그래서 <인조실록>에서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담배를 요망한 풀, 즉 요초라 했습니다.
    담배는 1616~18년 사이 들어왔는데, 처음 피운 이는 조선 중기 한문 4대가 중 한 사람이었던 장유였다고 합니다. 담배예절이 없었던 시절이라 어전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장인에게 혼쭐이 났다고 합니다. 그래도 장유는 “누가 이 신비로운 약제를 전했는가”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의 중흥군주라는 정조 임금은 지독한 골초였는데, 담배사랑이 끔찍했습니다. “담배를 치국의 도로 삼는다”고 하면서 “조선을 담배의 나라로 만들겠다”고 선포까지 했답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담배예절도 엉망이었는데요. 정조 시대의 명재상 채제공은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새파란 유생들에게 “담배 좀 끄라”고 지적 좀 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답니다.
    잠깐 감옥에 가두고 경계로 삼으려다가 학당 유생들이 “유생을 욕보였다”며 철야농성을 벌이고 채제공 타도를 외쳤다네요. 채제공은 “정승짓 못해먹겠다”고 사직을 청하고….
    요즘 담배는 공공의 적인데, 애연가들은 조선시대가 그리울까요. 담배로 본 조선시대의 사회상을 더듬어 보고자 합니다.
    31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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