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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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pisodes

  • 45회 거세 당한 사마천 ‘사기’를 쓴 이유
    2017학년부터 한국사가 수능과목에 포함된다고 합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고 봐야죠. 하지만 여전히 역사는 암기과목으로 기억됩니다. 그 지긋지긋한 ‘태정태제문단세~’로 이어지는 암기의 행렬이 뇌를 떠나지 않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역사란 과연 암기과목이고 어려운 것일까요. 지금으로부터 2000년도 훨씬 지난 시기에 역사가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기〉를 쓴 사마천이라는 분이죠. 알다시피 남성의 중요부위를 잘리는 형벌, 즉 궁형의 처벌을 받고도 ‘발분의 저작’이자 ‘불후의 역사서’인 사기를 남긴 분입니다. 사마천은 왜 거세형을 당했으며, 왜 그런 치욕을 받고도 살아남으로 했을까요. 그가 남긴 〈사기〉는 천하의 역사서라 할까요. 이번 주 팟캐스트의 주제입니다.
    34 min
  • 44회 이색의 굴욕과 이순신 가문의 중국어 교육법
    예나 지금이나 외국어는 ‘통곡의 벽’입니다. 천부적인 언어능력을 자랑하면 모르되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옛날의 기록을 살펴보면 외국어 때문에 절명하고 망신당한 사람들이 꽤나 있었습니다. 고려말의 대학자이자 신진사대부의 스승으로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목은 이색이 바로 굴욕의 대표주자입니다. 조기중국어교육에, 유학은 물론 북경에서 관리로까지 일했던 이색이 황제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그대의 중국어는 꼭 오랑캐 같다’는 핀잔을 들었으니까 말입니다. 반면 이순신의 5대조 할아버지인 이변은 서른이 넘어 급제했지만 그야말로 불철주야 중국어를 공부한 덕분에 역사에 남는 문신 출신 통역관이 됐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증조할아버지(이거)도 그 어렵다는 외교문서를 줄줄 읽을 정도로 중국어에 능했습니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무장의 길을 걷지 않고 외교관이 됐다면 어찌 됐을까요. 싸우지 않고도 승전보를 안겨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역사엔 가정이 없으니 뭐라 말 할 수 없겠지요. 외국어 공부 때문에 울고 웃었던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28 min
  • 43회 침략의 속죄양이 된 조선 호랑이 절멸 사건
    〈트로피 사냥? 조선 호랑이 절멸의 내막〉
    아프리카 국민사자 ‘세실’의 비참한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조선호랑이의 운명을 보는 것 같아 그렇습니다.
    그래도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트로피 사냥’은 인간의 야만성을 비난하고 대책을 마련하면 됩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의 조선호랑이 멸종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조선 호랑이의 멸종을 주도한 것은 일본인들이었습니다. 예로부터 호랑이 사냥은 일본인들에게 ‘로망’이었다. 섬나라 일본에는 호랑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창칼로 호랑이를 잡아 죽인 일은 대륙침략의 향수를 자극하는 자료로 활용됐습니다. 침략의 수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보양식으로 조선 호랑이의 고기를 먹었답니다. 그 후 300년 뒤 조선을 집어삼킨 일제는 호랑이와 표범·곰 등을 몰살시켰습니다. 명목은 해로운 맹수를 죽인다는 것이었지만 속내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일본영토가 된 조선 땅에서 마음껏 호랑이를 잡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 조선의 호랑이는 멸종됐습니다.
    26 min
  • 42회 여자 안중근 독립투사 남자현 선생의 삶
    광복 7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만 35년간 굴종의 역사를 견뎌온 우리네 어르신들의 고단했던 삶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니다. 이번 주 주제는 ‘여자 안중근, 독립투사 남자현 선생의 삶’입니다. 19살에 의병전쟁에서 남편을 잃고 47살에 만주망명을 결행했으며, 3번이나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썼던 남자현 선생이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사이토 총독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남자현 선생은 61살이라는 나이로 중국거지 변장을 한 뒤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일본전권대사(부토 노부요시)를 죽이려다가 그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그 때 선생은 37년 전 의병전쟁에서 전사한 남편의 피묻은 적삼을 입고 있었습니다.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남자현 선생을 기리며 팟캐스트를 들어주십시요. 미리 썼던 기사내용을 팟캐스트에서 보충했습니다.
    27 min
  • 41회 고려청자 장물 ‘싹쓸이 쇼핑’한 이토 히로부미
    광복 70주년입니다.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와신상담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는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무자비하게 도굴된 문화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세계적으로도 우수성을 인정받는 고려청자 이야기입니다. 특히 초대 조선통감을 지냈고, 안중근 의사에게 처단된 이토 히로부미가 도굴품, 그러니까 개성과 강화도, 파주 장단 일대에서 마구 파헤친 고려자기들을 닥치는대로 사들인 장물아비라는 것을 소개할까 합니다.
     동방예의지국에서는 무덤에 함부로 손대는 것은 오랑캐나 하는 짓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무덤 속 부장품들이 완벽한 상태로 남아있었습니다. 특히나 최상급의 고려청자가 안장돼있는 고려시대 무덤들은 오죽했겠습니까. 일제의 도굴범들은 바로 그걸 노렸습니다. 백주대낮에 총검을 들이대고 100여기의 무덤을 파헤쳤다니 이런 천인공노할 일이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파헤쳐 얻은 고려자가를 이토가 ‘싹쓸이 쇼핑’했다는 것입니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23 min
  • 40회 김무성 대표가 과공비례인 까닭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일행이 미국 방문 중에 잇달아 ‘큰절 외교’를 펼친 게 인구에 회자된 것입니다. 혹자는 과공비례(過恭非禮)라 꼬집었습니다. 당과 국민을 대표해서 미국을 방문한 정치지도자가 공적인 출장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서양에는 없는 예법을 남발한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습니다. 초대 주한 미 8군사령관을 지낸 월튼 워커의 무덤에 가서는 ‘아이고 장군님!’ 하면서 묘비에 묻은 새똥과 진흙까지 닦았다고 합니다. 여당대표가 미국을 방문했으면 정당외교의 격에 맞는 외교를 펼칠 것이지, 연신 굽실거리는 모습을 보인 것은 어쩐지 거북하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어떤 이는 지금부터 1883년 9월 미국을 처음 방문한 조선보빙사가 당시 체스터 아서 미국 대통령에게 큰절을 올린 것까지 인용하면서 김무성 대표 일행을 꼬집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저는 132년 전에 미국을 방문한 민영익 정사 등 조선보빙사의 큰절과 2015년 7월 25~26일 김무성 대표일행의 큰절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검증해보았습니다. 성균관과 한국전례원 같은 곳에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큰절’의 의미를 깨닫게 됐습니다.
    한마디로 김무성 대표 일행의 큰절은 ‘과공비례’였습니다. 왜 과공비례라 하는 것일까요.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은 물론 우리 역시 배우도 가야할 것 같습니다. 큰 절 때 두 손을 모아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벌려야 할까요. 상가(喪家)에서는 어찌해야 할까요. <흔적의 역사> 블로그에 있는 기사를 참조해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차근차근 검토해보겠습니다.
    25 min
  • 39회 눈싸움, 자리싸움, 유치찬란한 휴전회담
    이번 주 팟캐스트는 아주 먼 이야기 아닙니다. 지금부터 62년 전 이야기입니다. 7월27일은 3년 넘게 끌었던 비극적인 한국전쟁이 휴전협정 발효로 끝난 날입니다.
     그런데 이 전쟁은 무려 2년 전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유엔군과 공산군이 이미 1951년 7월부터 휴전회담을 벌여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회담은 지지부진했습니다. 그 사이 코미디 같은 사건들이 이어졌습니다. 회담장에서 자리싸움은 물론 2시간이 넘는 눈싸움까지 벌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유치한 싸움이었지만 좋게 말해 심리전이라 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유치한 말싸움을 벌이는 동안 어마어마한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지금의 휴전선 일대에서 19개국 젊은이들이 죽거나 부상당하는 비극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번 주 팟캐스트 주제는 ‘눈싸움, 자리싸움, 유치찬란한 휴전회담’ 이야기입니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흔적의 역사〉 블로그에 게재된 기사와 함께 팟캐스트를 들어주십시요.
    32 min
  • 38회 왕조시대를 욕보이지 마라
    요즘 ‘무슨 왕조시대냐’는 말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불통과 오만, 그리고 신하 위에서 군림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을 찍어내려고 하는 대통령을 두고 왕조시대의 여왕이니, 왕조시대에나 있을 법한 행태라느니 하면서 걸핏하면 ‘왕조시대’ 운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묻습니다. 왕조시대가 뭐 어떻다고 왕조시대 왕조시대 하는 것입니까. 이번 주 팟캐스트에서 다룰 주제가 바로 ‘함부로 왕조시대를 욕보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왕조시대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요즘 돌아가는 정치상황을 보면 왕조시대가 100번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왕조시대는 임금이 적어도 백성을 하늘로 여기고 받들었습니다. 임금은 기상이변이나 예기치 않은 재난이 일어나면 어김없이 ‘모든 게 내 잘못이며, 백성을 아프게 하고 있으니 나를 위해 쓰디쓴 직언을 서슴지 말라’고 했습니다. 특히 다산 정약용은 “직언을 하는 자는 결코 임금을 배신하지 않는다”고까지 했습니다. 옛 군주들은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왜 쓴소리, 즉 직언을 구했을까요. 그리고 신하들은 왜 죽을 각오로 바른 말, 곧은 말로 군주를 다그쳤을까요. 마지막으로 궁금합니다. 군주들은 왜 거슬리는 신하들의 쓴소리를 벌하지 않고, 되레 장려했을까요. 이번 주 팟캐스트 역시 관심있게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32 min
  • 37회 애완동물은 망국의 지름길입니다
    얼마 전 고려 태조 왕건이 거란의 외교선물로 보낸 낙타 50마리를 굶어 죽인 사건, 즉 만부교사건을 다룬 적이 있는데요.
    이 사건은 고려사 최대의 미스터리로 꼽히고 있다는 말씀 드렸죠. 그런데 후대의 임금들은 태조 왕건이 낙타를 굶어 죽인 사건을 나름대로 해석하는데요.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사치를 경계한 것이라 했습니다. 아니 임금의 지위에 있으면서 애완동물 한 마리 쯤 키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진시황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진2세 호해는 아방궁 건축을 반대하는 대신들의 목소리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답니다. “내가 천하를 얻은 까닭은 내 맘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맘대로 하겠다는 데 무슨 헛소리냐.”(〈사기〉 ‘진시황본기’)
    그런데 위대한 역사가인 사마천은 그런 진2세를 두고 “사람의 머리를 하고 짐승의 소리를 내뱉는다(人頭畜鳴)”고 장탄식 했습니다. 군주가 됐다고 마음대로 한다면 이는 곧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대신들은 왜 임금의 자리에서 애완동물 한 마리 쯤 키워보겠다는 데 그 때마다 ‘아니 되옵니다’를 외치며 반대했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이번 주 팟캐스트에서 알려드립니다. 변함없이 〈흔적의 역사〉 블로그와 단행본을 참고해주세요.
    25 min
  • 36회 허난설헌은 표절작가인가
    27살에 요절한 천재 여류시인이 있습니다. 여성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뚫고 조선은 물론 중국대륙에까지 필명을 떨친 조선의 대표작가…. 허난설헌입니다.
    그녀의 유고시집이 출간되자 중국대륙은 ‘난설헌앓이’에 휩싸였습니다. ‘난설헌의 시는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됐다’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난설헌의 시가 출간되자 명나라 문사들이 열광했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무슨 일입니까. 유고집인 〈난설헌집〉이 출간(1608년)된지 44년만엔 1652년 명나라에서 표절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난설헌의 시 대부분이 당나라의 시를 베낀 것이라는 의혹이었습니다. 그러자 조선문단에서도 파문이 일었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조선이 자랑했고, 그의 필명이 중국대륙에까지 떨친 허난설헌은 과연 표절작가일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36회의 주제는 〈허난설헌은 표절작가인가〉 입니다. 반드시 블로그나 인터넷 기사를 참고삼아 보시면서 팟 캐스트를 들어주십시오.
    31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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