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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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pisodes

  • 55회 그 혹독했던 조선의 왕세자 교육
    이번 주 팟캐스트는 ‘그 혹독했던 조선의 왕세자 교육’입니다.
    흔히 군주를 가리켜 ‘지존’이라 합니다. 지극히 존귀한 존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왕조시대의 군주는 그리 편안한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하늘의 뜻, 즉 천명을 받아 만백성의 어버이 노릇을 제대로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극히 존귀한 지위만 생각해서 자리만을 보전하는 임금이라면 그것은 곧 역성혁명의 대상 될 수도 있었습니다. 순자나 맹자는 한목소리로 ‘민심을 잃은 군주는 곧 쫓겨나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니 조선의 임금이 되려는 이는 혹독한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버지(부왕)와 어머니는 태어날 왕자를 위해 합궁일까지 받아야 했으며, 임신 후에는 철저한 태교에 돌입해야 했습니다. 모두 ‘뱃속의 10개월 공부가 태어난 후 10년 공부보다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죽을 때까지 성군이 되기 위한 공부에 불철주야 매달려야 했던 조선의 임금, 그들은 과연 어떤 공부를 해야 했을까요.
    35 min
  • 54회 어느 사관의 절규, “사관 위에는 하늘이 있습니다”
    “‘사관 위엔 하늘이 있다’고 한 선배들의 자랑스러운 직필 전통을 계승하고….”
     최근 28개 역사 관련 학회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에서 자랑스런 사관선배들의 직필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고 했습니다. 궁금합니다. 과연 지금 위기에 빠진 역사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존경하는 바로 그 ‘사관 선배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조선조 태종시대의 사관 민인생과 홍여강이었습니다. 이 분들의 계급은 7~9품에 불과한 전임사관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이름은 포털사이트 인물 검색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분을 비롯한 태종 시대의 사관들은 ‘제발 내 곁으로 오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싫어한 태종 임금의 곁을 절대 떠나지 않으려 했습니다. 태종이 누굽니까. 어린 이복동생들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동복의 형마저 쫓아낸 뒤 옥좌에 오른 무시무시한 임금 아닙니까. 그런 태종이 “편전에는 들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자 사관 민인생은 하늘을 가리키며 응수했답니다. ‘사관 위에는 하늘이 있습니다.’ 임금이 편전 출입을 끝내 막자 민인생은 문틈으로 임금을 엿보다가 유배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홍여강은 어떻습니까. 그 분은 공신들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직필을 위해 몸을 던졌고, 편전 앞 섬돌에서 내관들의 부축을 받고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과연 왜 이렇게 임금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을까요. 왜 임금과 신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려 했을까요. 지금의 역사가들은 왜 이 분들을 새삼스레 기억하고자 할까요. 이번 주 팟캐스트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주제는 바로 〈어느 사관의 절규, 사관 위에는 하늘이 있습니다〉입니다.
    31 min
  • 53회 화장실에 얽힌 사람의 역사
    이번 주는 화장실에 얽힌 역사를 이야기를 하렵니다.
     무슨 화장실에 역사가 있겠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아닙니다. 있습니다. 왜냐면 화장실 역시 인간의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인간의 틈에서 살지 않는다면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필요없었겠지요. 사람 틈에 끼어있지 않으면 굳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볼 필요가 없었을겁니다. 그래서 일찍이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화장실의 역사는 곧 인간의 역사’라 했습니다. 독일의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곳(화장실)은 분명 혼자서도 첫날 밤을 치른 사람처럼 행복할 수 있는 경이로운 곳, ~당신이 그 어느 것도 몸에 지니지 않는 한갓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겸손의 장소~ 그 곳은 인간이 휴식을 취하는 곳, 하지만 부드럽게,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가 감행하는, 그런 장소.”
     뭐 이렇게 말입니다. 지난 2003년 익산 왕궁리에서는 잘 갖춰진 1300년 전에 지은 백제시대 공중화장실 유적이 발견됐습니다. 일본 땅에서도 백제인 신라인의 체취가 묻은 화장실 유적이 또 확인됐습니다. 또하나 중국의 화장실은 왜 그렇게 더럽다는 인상을 주고 있을까요. 오죽했으면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화장실 혁명’을 외치고 있을까요. 사람이 모여 살면서 공동체를 이룰 때부터 역사를 만든 화장실 이야기.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가 전해드립니다.
    33 min
  • 52회 선조실록과 수정실록
    요즘 역사가 뜨거운 화두에 올라있는 때입니다. 이번 주는 그래서 정권에 따라 역사서술을 바꿨던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을 한번 다뤄보겠습니다.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이 남긴 흔적….’ 뭐 이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선조실록을 수정하게 된 것은 첨예한 당쟁의 결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말은 일정 부분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 보태자면 선조실록은 애초부터 부실덩어리였다는 점도 있습니다. 임진왜란의 와중에 사관들이 사초책을 불태우고 줄행랑 쳐버리는 바람에 선조 즉위년(1567)~임진왜란 직전(1592년 4월) 사이 25년의 역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갖가지 개인기록들을 모아 겨우 실록을 만들었지만 부실덩어리라는 오명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광해군대에 정권을 잡은 대북파가 사필을 잡고 역사를 농단하면서 더욱 누더기가 됐습니다. 그러다 인조반정(1623년)으로 정권이 교체되자 수정의 운명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 역시 정권의 입맛대로 역사가 바뀌는 그야말로 악순환의 고리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대목이 있습니다.
    50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당대의 역사가들은 원본인 선조실록을 폐기하지 않고, 수정본과 함께 볼 수 있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가들의 위대함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32 min
  • 51회 실록이냐 승정원일기냐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51회 주제는 ‘실록이냐, 승정원일기냐. 무엇이 더 센가’입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공한 프랑스군 해군장교인 주베르는 이렇게 혀를 내둘렀답니다. “우리(프랑스인)들을 감탄하게 하고, 또한 자존심 상하게 하는 것은 이곳(조선)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반드시 책이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입니다.
    그만큼 조선인들은 책 혹은 기록물을 엄청 사랑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과거형’인 ‘했었다’는 표현을 쓰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는 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대단한 기록물이 많습니다. 얼마 전에 유교책판과 이산가족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는데, 13번째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독일(21건), 영국 및 폴란드(각 14건)에 이어 러시아 및 오스트리아와 함께 세계에서 4번째입니다.
    물론 중국(10건)과 일본(5건)에 비해서도 엄청 많은 거죠. 이번 주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가운데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비교해서 다뤄보겠습니다. 흔히들 역사는 재미없는 암기과목이라 하는데요. 제가 얼마 전에 사마천의 사기를 언급하면서 생동감 넘치는 역사이야기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치켜세웠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사기에 버금가는 재미있는 역사책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실록과 승정원일기입니다.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팟캐스트에서 확인하세요.
    38 min
  • 50회 비인류로 취급받은 역사 속 성소수자
    50회를 맞은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는 ‘비인류로 취급받은 역사 속 성소수자’입니다. 요즘도 성소수자는 엄청난 편견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엔 바티칸 고위 성직자까지 커밍아웃했지만 아주 불편한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진보적이며, 소수의 인권에 남다른 애정을 표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동성애는 비정상이라 말씀하시죠.
    그런데 성소수자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전부터 성정체성이 다른 이들이 있었고, 이들은 엄청난 차별을 받고 살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취향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신라 혜공왕부터 조선조 세종 임금의 며느리까지. 이번 주 팟캐스트에서 다룰 주제입니다.
    ‘이기환 기자의 흔적의 역사’ 블로그 http://leekihwan.khan.kr/
    29 min
  • 49회 황희 정승 스캔들의 내막
    이번 주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의 주제는 ‘황희 정승 스캔들의 내막’입니다.
    황희 정승이 누구입니까. 어진 재상이라 하기도 하고, 청백리의 상징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록을 보면 좀 다른 평가가 있습니다. 어진 재상이고, 검소하기는 했지만 청렴하지 못했고, 대사헌 시절에는 황금을 뇌물로 받아 ‘황금대사헌’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역적의 아내와 간통했다는 충격적인 내용까지 기록돼있습니다. 그렇다면 황희는 두 얼굴의 재상이었던 걸까요? 이번 주 팟캐스트는 이 황희 정승을 둘러싼 기막힌 스캔들의 사연을 풀어드릴까 합니다. 과연 황희 정승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세종실록〉 편찬자들이 비상대책회의까지 열어 다뤘던 황희 스캔들의 내막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27 min
  • 48회 기생의 화대까지 거둔 일제하 애국기 헌납운동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이번 주 주제는 ‘기생의 화대까지 거둔 일제하 애국기 헌납운동’ 편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수많은 친일 사례 가운데서도 극적인 친일행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일제의 침략전쟁에 쓰인 비행기 헌납행위일 것입니다. 물론 전쟁의 광란 속에서 일본인들은 물론 조선의 장삼이사까지 강요된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코흘리개 아동부터 기생들의 화대까지 거둬들인 것이지요. 하지만 일제에 아부하려고 지금으로 치면 수 십 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돈을 쾌척하면서 비행기를 헌납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일제는 쾌척자의 이름을 딴 비행기 명명식을 열어 격려해주었다지요. 일부 친일인사들은 애국기, 즉 비행기 헌납 운동을 독려하는 캠페인을 벌였답니다. 일제하 애국기 헌납운동을 둘러싸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번 주 팟캐스트와 블로그 기사가 다룰 주제입니다.
     이 기사와 팟캐스트는 변성호의 논문(2009년 경북대 석사논문) ‘전시체제기 조선에서의 군용기 헌납-일제에 의한 강제동원의 사례를 중심으로’와 민족문제연구소의 2015년 기자간담회 자료 ‘김용주 과연 애국자였나’를 주로 참고해서 작성했습니다. 반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파 99인’(돌배개)과 ‘친일파 그 논리’(학민사), ‘친일파’(학민사) 등도 참고했습니다.
    30 min
  • 47회 소동파는 왜 고려를 증오한 ‘혐한파’가 되었을까
    소동파를 아십니까. 북송시대의 대문호입니다. 당대 고려에서는 소동파 열풍에 휩싸였습니다. 고려의 문호 이규보는 ‘소동파의 문장은 금은보화가 가득 찬 부잣집 같다’고 했고, 이제현은 ‘소동파 가문의 3명, 즉 소순 소동파 소철 등을 가리켜 천리마와 봉황 같다’고 극찬했습니다. 아니 오죽했으면 김부식의 아버지 김근은 두 아들의 이름을 소식(소동파)과 소철 형제의 이름을 따서 부식과 부철로 지었겠습니까. 요즘 중국에서 한류가 유행이라지만 고려시대 때는 소동파를 대표로 하는 ‘송류’가 풍미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고려와 고려인들이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했던 소동파가 고려와 고려인들을 무지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싫어한 정도가 아니라 혐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동파는 왜 그렇게 고려를 싫어했을까요. 왜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오랑캐라 했을까요. 이번 주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주제입니다. 〈소동파는 왜 고려를 증오한 ‘혐한파’가 되었을까〉입니다.
    30 min
  • 46회 연산군은 왜 두려운 것은 역사뿐이라 했나
    이번 주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주제는 〈연산군은 왜 두려운 것은 역사뿐이라 했나〉입니다.
     그렇습니다. 희대의 폭군이라는 연산군은 왜 역사가 두렵다고 했을까요. 또하나 궁즘증이 생깁니다. 역대 임금들은 왜 사관을 싫어했을까요. 만고의 성군이라는 세종 역시 예외는 아니었답니다. 사관의 입시를 막고 정사를 논했답니다. 태종은 사관은 보기 싫으니 편전에서 나가라고 명했답니다.
     그러나 사관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관의 위에는 하늘이 있다고 당당히 말했답니다. 그렇다면 사관들은 왜 임금이 싫다는데 목숨을 걸고 역사를 기록했을까요.
     하나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역사와 사관을 싫어했던 임금들이라도 역사와 사관을 존중했다는 겁니다. 예컨대 중종 임금은 임금의 곁에서 일거수일투족 기록하고야 마는 귀찮은 사관들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 붓과 먹으로 모든 나의 과실을 숨김없이 마음껏 쓰도록 하라.(以是筆墨 凡吾過失 百書無隱)”
     이것이 역사와 사관을 존중했던 조선시대 임금들의 태도였습니다. 요즘엔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할 위정자들이 감히 역사가 잘못 됐다느니, 긍정적인 역사만 배워야 한다느니, 일관된 역사교육이 필요하다느니 하는 해괴한 논리를 펴가며 국정교과서를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가소로운 일입니다. 뭔가 가리고 싶은 과거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런 오해를 받기 전에 왕조시대보다 못한 작태를 그만 두어야 합니다.
    33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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