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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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pisodes

  • 35회 낙타를 굶겨 죽인 태조 왕건의 숨은 뜻
    얼마 전 온라인상에 우스갯소리가 나돌았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거란이 보낸 낙타 50마리를 굶겨 죽인 이유’를 역사 문제에 어느 학생이 ‘메르스 때문’이라고 답했다는 겁니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별의별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마냥 웃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942년(태조 25년) 일어난 ‘낙타 굶겨 죽인 사건’, 즉 만부교 사건은 고려 475녀 역사 가운데서도 최대 미스터리로 꼽힙니다. 물론 <고려사>에는 ‘고려가 거란이 보낸 사신 30명을 절도로 유배시키고, 낙타 50필을 만부교 밑에 묶어 굶겨 죽인 것은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켰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기사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6260946211&code=960100
    25 min
  • 34회 불통의 여왕이여! 제발 망해라!
    이번 팟캐스트 주제는 ‘불통의 여왕이여! 제발 망해라!’입니다.
     지금부터 1200년 전 신라 서울 서라벌에 진성여왕을 비난하는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삼국유사〉는 길에 비방문을 던졌다고 했으니, 전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대자보는 암호문처럼 알 수 없는 주문으로 일관됐는데 한마디로 “진성여왕이여! 위홍(여왕의 숙부 혹은 정부)과 같은 간신 때문에 망하리라!”는 저주문이었습니다.
     신라는 대자보가 붙은 지 47년 만에 망하고 맙니다. 조선 시대 명종 때도 양재역에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를 ‘여주(女主)’라 칭하면서 ‘그 여주와 여주를 따르는 간신들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자보가 붙은 지 12년 만에 임꺽정이라는 도적이 출현, 3년간이나 황해도 일대를 휩쓸었습니다.
     이복형을 독살했다는 혐의를 받은 영조 임금 때도 대자보가 15차례나 붙었습니다. 특히 1728년에 남원과 전주, 서울에 대자보가 동시다발적으로 붙은 지 25일 만에 무신란이 일어납니다. 이 난에는 무려 20만 명이 가담하는 등 세상 인심에 영조 편이 아니었음을 알려줍니다. 대자보는 왜 붙을까요. 하소연할 길이 없는 백성들이 붙이는 마지막 호소는 아닐까요. 우리는 그것을 불통이라고 합니다. 이번 주 팟캐스트의 주제입니다.
    31 min
  • 33회 정도전이 꿈꾼 세상
    이번 주 팟캐스트는 〈정도전이 꿈꾼 세상〉 편입니다.
     지난 주엔 정도전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정도전이 자기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성계라는 군주를 택했음을 술김에 왕왕 발설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도전이 꿈꿨던 세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정도전 자신과 같은 똘똘한 재상이 다스리는 유교국가였습니다. 그렇다면 군주란 존재는 누구였을까요. 군주란 바로 똘똘한 재상을 잘 뽑아서 그 재상과 더불어 정사를 논하는 존재라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과격한 사상이 아니었을까요. 너무 앞서간 정도전은 그만 왕권 중심의 이방원 세력에게 칼침을 맞고 맙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좌절됐지만 조선은 그의 밑그림대로 그려졌습니다. 정도전, 그는 조선왕조의 설계자였습니다.
     이번 주 팟캐스트도 〈흔적의 역사〉 단행본과 같은 이름의 블로그 기사 내용을 참고해서 들어주시면 더 도움이 됩니다.
    20 min
  • 32회 정도전, “내가 이성계를 등용했을 뿐이네.”
    고려의 숨이 아직 붙어있던 1383년, 정도전이 이성계를 찾아 동북면을 방문했답니다. 거기서 이성계의 군대를 보고는 이렇게 속삭였답니다.
     “훌륭합니다. 이 군대로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요컨대 당신의 군대는 고려를 갈아엎고 혁성혁명을 일으킬만큼 매우 훌륭한 위용을 갖추고 있다고 운을 뗀 것입니다. 그러자 이성계는 “무슨 말이냐”고 딴청을 피웠답니다. 선문답을 주고받은 셈이죠.
     이로써 조선 개국을 위한 두 사람의 의기가 투합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정도전은 조선 개국 후 술자리에서 종종 이런 말을 했답니다.
     “한고조(유방)가 장자방(장량)을 쓴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고조를 쓴 것일 뿐이야.”
     이 무슨 말일까요. 조선을 개국하려고 내(정도전)가 이성계를 기용한 것 뿐이지 이성계가 나(정도전)를 등용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정도전은 그렇게 무시무시한 인물이었던 겁니다.
     여하튼 조선은 정도전이 그린 틀에 따라 개국하게 됩니다. 이번 주와 다음 주 팟캐스트는 정도전의 삶을 알아 보고, 그가 추구했던 재상정치의 요체는 과연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이번 주는 파란만장했던 정도전의 삶을 추적해보겠습니다. ‘흔적의 역사’ 블로그에 관련 자료가 있으니 읽으면서 들으시면 귀에 쏙쏙 들어오실 겁니다.
    28 min
  • 31회 매 맞는 남편 열전
    이번 주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주제는 ‘매맞는 남편 열전’입니다.
    고려 때 23살 어린 부인에게 지팡이로 맞고 그저 울기만 했던 임금이 있었답니다. 충렬왕입니다.
    충렬왕은 왜 어린 부인에게 얻어터졌을까요. 왜구 섬멸의 주인공인 최운해 역시 독한 부인 때문에 식겁했답니다.
    부인은 도망가는 남편을 쫓아가 칼로 내리치기까지 했다는군요. 조선 시대 어떤 부인은 “너는 추한 얼굴에 나이도 늙고 기력도 없는데 무엇을 믿고 결혼했냐. 빨리 죽어라”고 남편을 구박했답니다. 이 때문에 남편은 파직되고 부부는 강제이혼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뿐인가요. 어떤 아내는 장애인 남편을 구박하면서 “이 애꾸눈 놈아!”하고 외치는 등 못할 말을 내뱉었답니다. 태조 이성계의 사촌동생은 아내에게 급소를 잡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답니다.
    실학자 박제가가 통탄했다네요. “요즘 ‘대장부답게’ 집안을 다스리는 남자가 전혀 없다”(<북학의>)고….
    그렇다면 ‘대장부다운’ 게 무엇일까요. 요즘은 어떻습니까.
    28 min
  • 30회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정혼녀를 아시나요
    이번 주 팟캐스트 30회는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정혼녀를 아시나요’입니다.
     최근 문화재청이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부부를 모신 영원(英園·경기 남양주 홍유릉 경내)을 공개했답니다. 영친왕이 1970년 세상을 떠났다니까 45년 만이겠지요. 사실 영친왕이나 부인인 이방자(일본명 마사코)나 정략결혼의 희생양이라는 점에서 한많은 삶을 살았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그나마 두 사람의 혼백 만큼은 함께 묻혀 있지 않습니까. 그 결혼 때문에 평생 수절하며 살았던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가 영친왕의 정혼녀 민갑완 규수입니다.
     10살 때 딱 한 번 본 남편감 때문에 61년 간이나 독신으로 살아야 했던 여인. 황실과 가문을 위해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살았던 그녀의 삶을 이번 주 팟캐스트에서 들어보십시요. 블로그를 참고해서 들으시면 더 좋습니다.
    33 min
  • 29회 두 노인은 왜 이승만에게 방아쇠를 당겼나
    얼마 전 1952년 6월25일 일어난 이승만 대통령 암살시도 사건의 장면을 포착한 사진이 공개됐습니다.
    6·25 2주년을 맞아 부산 충무로 광장에서 연설 중이던 대통령의 뒤에서 62살 유시태 노인이 총을 겨누기 직전의 사진이었습니다. 물론 사건은 권총불발로 미수에 그쳤습니다. 사건의 배후에는 역시 69살의 노인 김시현이 있었습니다.
    의열단 출신의 독립투사 두 사람이 벌인 저격사건이어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의문이 생깁니다.
    피 끓은 젊은이들도 아니고…. 호호백발 두 노인은 왜 이 대통령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일까요.
    저는 한 장의 사진에 담긴 현대사의 발자취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주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의 주제는 바로 ‘두 노인은 왜 이승만에게 방아쇠를 당겼나’ 입니다. 문제의 사진과 기사 내용을 ‘흔적의 역사’ 블로그 등을 통해 보고 읽으면서 팟캐스트를 청취해주십시오.
    27 min
  • 28회 X조와 X종에 얽힌 비밀
    평소 가졌던 의문점 하나를 풀어보겠습니다.
     옛 임금을 보면 어떤 분은 ‘X조’인데, 도 어떤 분은 ‘X종’일까요. 그러니까 세종은 왜 세종이고, 세조는 왜 세조일까요. 다 같은 반정으로 등극한 임금인데, 중종은 왜 중종이고, 인조는 왜 인조일까요.
     또 있습니다. 원래 영조는 영종, 정조는 정종, 순조는 순종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영조, 정조, 순조가 되었다지요. 무슨 곡절이 있어 이름이 바뀌었을까요. 또 만고의 성군인 세종은 원래 문종이라는 묘호로 역사에 남을 뻔 했다지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28회는 ‘X조와 X종에 얽힌 비밀’을 풀어보려 합니다.
     관련기사를 참조하면서, 혹은 단행본 〈흔적의 역사〉를 읽으면서 팟캐스트 내용을 귀담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25 min
  • 27회 패장 신립을 위한 변명
    이번 주 팟캐스트는 ‘패장 신립을 위한 변명’입니다.
     서애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충주 전투에서 대패한 신립 장군을 두고 “장수가 군사를 쓸 줄 모르면 그 나라를 적군에게 넘겨주는 것”이라고 폄훼했습니다. 그러면서 “신립(1546~1592)은…전투의 계책에는 부족한 인물이다.”라 했습니다. 명나라 사령관인 이여송도 “천혜의 요새지(조령)를 몰랐으니, 신립은 지모가 부족한 장수였다”고 촌평했습니다. 그 뿐인가요. 1801년(순조 원년) 탄금대를 지나던 다산 정약용은 “신립을 깨워 ‘왜 문(조령)을 열어 왜적을 받아들였는지 묻고 싶다”고 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신립이 천혜의 요충지라던 조령(해발 642m) 대신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가 대패한 것을 비판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궁금증에 생깁니다.
     과연 조선의 종묘사직이 급속도로 기운 책임이 전적으로 신립에게만 있을까요. 신립은 1583년 여진족의 침범을 막아낸 용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징비록>은 시종일관 신립을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신립은 성질이 잔인하고 사납다는 평판이 있다.… 신립이 무사를 모집했지만 따라가려는 사람이 없었다.”
     서애는 장수(신립)를 잘못 썼음을 토로하면서 “지금 후회한들 어쩌겠냐만 훗날의 경계를 위해 기록한다”고 썼습니다. 서애는 신립을 ‘징비(懲毖)’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립은 그리 용렬한 장수가 아니었습니다. 전쟁에 총지휘할 체찰사(류성룡)와 부체찰사(김응남)가 문신들로 채워지자 “무장인 내가 나서겠다”고 화를 내며 고집했을 뿐입니다. 신립은 결국 오합지졸 8000명을 이끌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왜적은 이미 조령 인근까지 접근해있었습니다. 게다가 조령 주변에는 몇군데 우회로가 있었습니다. 만약 천험의 요새지라는 조령만 막았다가 왜적이 우회라도 한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서울의 임금과 조정은 피할 틈도 없이 화를 입었을 지도 모릅니다.
     결국 신립은 왜병이 반드시 거쳐가야 할 요로, 즉 충주(탄금대)에 병력을 집중한 것이 아닐까요. 그 잘난 임금과 종묘사직을 위해 옥쇄를 결심한 것은 아닐까요. 신립을 위한 변명 한마디 해봤습니다. 이번에도 관련 기사와 함께 팟캐스트를 애청해주세요.
    29 min
  • 26회 1400년의 혈맹, 한국과 이란의 끈끈한 인연
    이번 주 팟 캐스트는 지난주에 이어 ‘신라공주와 페르시아 왕자의 사랑과 결혼’을 다룬 이란의 구전 서사시 〈쿠쉬나메〉 이야기입니다. 굳이 제목을 말한다면 〈2000년의 혈맹, 한국과 이란의 끈끈한 인연〉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란 하면 무슨 단어가 떠오르십니까.
     ‘불량국가(rogue state)’, ‘악의 축(axis of evil’)이 아닙니까. 미국은 소련의 붕괴로 동서냉전 체제가 무너지자 이란을 새로운 적으로 규정했죠.
     “대량파괴무기를 생산하고, 테러를 지원하는 몹쓸 나라”라는 이유로 말입니다. 미국은 그들이 짠 새로운 국제질서를 거부한 이란과 같은 나라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은 겁니다.
     최근 미국-이란 간 핵협상이 사실상 타결됐지만 이란에 대한 이같은 좋지않은 인식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이란은 ‘불량국가’도 아니요, 더군다나 ‘악의 축’도 아닙니다. 물론 지금 우리 사회에 미국이 끼친 영향이 절대적입니다. 하지만 한국-이란의 관계는 2000년 가까운 질기디 질긴 인연의 끈을 부여잡고 있습니다. 지난 주 대강의 내용을 소개했지만, 최근 이란에서 발굴된 대서사시 〈쿠쉬나메〉는 1400여 년 전 신라-페르시아의 혈맹관계를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사산조 페르시아 왕족의 후예가 신라로 망명한 뒤 신라 공주와 혼인하고, 그 아들이 이란으로 귀국하여 아랍의 폭정자인 자하크를 타도하고 이란의 영웅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의문점이 생깁니다. 이란에서 구전으로 전해졌다는 이 〈쿠쉬나메〉 이야기는 마냥 허황된 신화나 전설이었을까요. 한번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의 단군신화도 역시 신화입니다.
     하지만 신화는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만큼이나 엄청난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게다가 신화를 입증할만한 고고학 자료들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쿠쉬나메〉 이야기는 어떨까요.
     지금부터 〈쿠쉬나메〉의 내용을 문헌기록과 고고학 유물로 비교 검토해보겠습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블로그 내용을 보면서 팟캐스트를 함께 듣는다면 더욱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26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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