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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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pisodes

  • 65회 임금의 이름이 외자인 까닭은?
    역사서를 읽으면 한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대체 임금의 이름은 무엇일까. 그래서 이름을 찾아 보면 또 의문점이 생깁니다. 왜 임금의 이름은 외자일까. 다시 임금의 한자 이름을 찾아보면 또다른 궁금증이 피어납니다. 임금의 한자이름은 왜 이렇게 한결같이 어려울까. 그렇습니다. 임금의 이름은 절대다수가 외자였으며, 그것도 어려운 한자만 골라 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왕조시대 임금이나 황제의 이름을 둘러싼 갖가지 사연들을 풀어 놓으려 합니다. 여기에는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씨가 담겨있습니다. 중국 황제를 사대(事大)했기에 어쩔 수 없이 이름을 바꿔야 했던 가슴아픈 이야기도 담겨있습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65회 주제는 ‘임금의 이름을 외자로 지은 까닭은?’ 입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블로그 글(http://leekihwan.khan.kr/)과 함께 들으신다면 더욱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28 min
  • 64회 ‘원숭이 똥구멍보다 못한 인간들’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원숭이는 흔히 잔나비라 했습니다. 원숭이띠보다는 잔나비띠라 하는데 더 자연스러웠습니다. 왜 원숭이를 잔나비라 했을까요. 사실 잔나비가 더 먼저였답니다. 원숭이라는 한자어는 18세기부터나 등장한답니다. 그러나 ‘빠른(잰) 원숭이(납·申)’라는 뜻의 잔나비는 16세기 정철의 가사 ‘장진주사’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요즘엔 잔나비가 다소간 원숭이를 폄훼하는 말로 일컬어집니다. 사실 잔나비, 즉 원숭이라는 동물은 사람의 얼굴로 사람의 흉내를 낸다고 해서 ‘혐오·흉악’스러운 인물의 상징으로 꼽혔죠. 예컨대 조선을 침략한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은 “태어난 해(1536년)와 태어난 월·일·시 모두가 병신(丙申)이어서 원숭이왕(猿王)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간신이거나 대역죄인에게는 죄다 ‘원숭이 같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하지만 원숭이에게 그러한 오명을 씌운 것은 바로 인간입니다. 원숭이를 간사하거나 어리석은 동물로 폄훼한 가해자가 바로 사람이라는 겁니다. 단적인 예로 순진한 원숭이를 속여 ‘조삼모사(朝三暮四)’한 장본인이 누구였습니까. 송나라 사람인 저공(狙公)이었습니다. 굳이 원숭이의 새끼를 잡거나 죽여서 원숭이 어미의 애간장을 마디마디 끊어놓은 ‘단장(斷腸)’의 애끊는 고사를 만든 자가 누구입니까. 인간입니다. 이중환의 〈택지리〉를 보면 “300마리로 구성된 원숭이부대가 임진왜란 때 왜적을 쳐부수는 선봉대가 되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고려말 승려 조의선은 ‘사람의 얼굴을 닮은 원숭이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동물’이라는 시를 지으면서 “너(원숭이)처럼 속임수가 많은 놈이(怪汝偏多詐) 사람을 만나면 도리어 사기 당하곤 한다.(逢人却被欺)”고 동정했습니다. 인간은 자기를 쏙 닮은 원숭이(잔나비)를 앞세움으로써 그 자신의 추악함을 가리려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30 min
  • 63회 의리의 사나이, 정몽주으리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는 질문만큼이나 곤란한 것이 바로 이성계(혹은 정도전)가 나쁜 사람이야, 정몽주가 나쁜 사람이야 하는 질문입니다. 아들이나 딸이 그렇게 물어온다면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네가 보기에 나쁜 사람이면 나쁜 사람이고, 네가 보기에 좋은 사람이면 좋은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무슨 시답지 않은 이야기냐고 하겠지만 그 말이 정답입니다. 아니면 이렇게 말해도 좋습니다. 왜냐면 역사라는 것은 해석하는 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읽고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는 전적으로 읽는 자의 몫이니까요. 요즘 텔레비전 사극은 여말선초의 사건과 인물을 집중해서 다루는게 트렌드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조선왕조실록〉이나 〈고려사〉처럼 기록도 풍부한데다 워낙 드라마틱한 상황이 많으니 그럴만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개국의 주역들이 더 조명을 받습니다.
     아무래도 기존의 것을 지키는 세력보다는 뭔가 새롭게 바꾸려는 세력이 더 역동적이니까요. 그래서 다 쓰러져 가는 고려를 지키려 했던 정몽주보다는 정도전이나 이방원 등이 더 각광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의리의 사나이’ 정몽주를 주목하고자 합니다. 정몽주가 지키려했던 의리의 실체는 무엇이고, 요즘의 의리와 어떻게 다른 것인지 한번 짚어보고자 합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63회 주제는 ‘의리의 사나이, 정몽주으리’입니다.
    32 min
  • 62회 세종이 고려임금의 어진을 불태운 까닭은?
    옛 초상화를 보고 있노라면 한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쭈글쭈글한 노인들만 주인공으로 등장했을까. ‘꽃청년’들은 왜 초상화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을까.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수양도 덜됐고, 학식도 부족하며, 경륜도 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상화에 등장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옛 사람들은 초상화를 그저 사람을 본떠 그린다는 의미의 ‘초상(肖像)’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寫眞)이라 했습니다. 내면의 ‘참됨(眞)’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랬으니 아직 모든 면에서 설익은 젊은이들은 ‘사진’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랬으니 ‘터럭 한올, 털끝 한오라기(一毫一髮)’라고 허투루 그릴 수 없었습니다.
    임금의 초상화도 어진(御眞)이라 했습니다. ‘임금의 참됨’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임금의 초상화라는 것입니다. 이번 주는 초상화의 의미를 알아보고, 나아가 임금의 초상화, 즉 어진을 둘러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62회 팟캐스트 주제는 ‘세종이 고려임금 어진을 불태운 까닭은?’입니다.
    33 min
  • 61회 혼용무도, 혼군과 용군 사이…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전세계적으로 발표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다사다난 했던 한 해를 정리해서 한글자나 한단어, 한문장으로 축약해서 발표하는 ‘올해의 단어들’입니다. 우리의 경우엔 교수신문이 한 글자가 아니라 사자성어로 한 해를 정리하는데 올해는 ‘혼용무도(昏庸無道)’가 꼽혔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어리석고 무능한 지도자가 무도한 정치를 했다는 뜻입니다. 너무 혹독한 평가가 아닐까요? 아니면 그런 평가를 당연히 받아야 했을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 캐스트에서 ‘혼군과 용군, 그리고 폭군, 아니면 성군과 현군, 명군의 이야기’들을 들어보시고 평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61회 주제는 ‘혼용무도, 혼군과 용군 사이…’입니다.
    30 min
  • 60회 지구는 끝내 지옥별 금성의 운명을 따를 것인가
    얼마 전 일본의 금성 탐사선이 금성 궤도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 보도를 계기로 천의 얼굴을 가진 금성 이야기에 흠뻑 빠져보겠습니다.
    금성을 부르는 이름이 엄청 많지만 그 중에는 샛별과 개밥바라기별이 가장 운치 있습니다. 새벽에 가장 빛나는 별이라 해서 샛별이라 했고, 하루 일을 끝낸 뒤 컹컹대는 강아지에게 밥을 주며 바라보는 별이라 해서 개밥바라기별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금성은 그렇게 낭만적인 별이 아닙니다. <사기> ‘천관서’를 보면 “금성이 낮에 나타나면 변란이 일어나 백성들이 유랑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금성은 지구 안쪽에서 도는 내행성입니다. 그러니 낮이나 밤중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태양빛이 희미할 경우 낮에도 보일 수 있는데, 이게 바로 흉조라는 겁니다. 즉 태양을 상징하는 군주와 밝기를 다투니까 곧 변란이나 전쟁의 조짐이라는 것이다. 문헌을 살피면 그런 사례는 꽤 있습니다.
    ‘이기환 기자의 흔적의 역사’ 블로그 http://leekihwan.khan.kr/
    30 min
  • 59회 고려판 한류붐을 일으킨 기황후
    “공녀로 뽑혀 원나라로 끌려가는 날 옷자락을 부여잡고 끌다가 엎어집니다. 울부짖다가 우물에 몸을 던지거나 스스로 목을 매 죽는 자도 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원나라의 간섭이 극에 달했던 1335년이었습니다. 이곡(李穀·1298~1351)이 상소문을 올려 원나라가 강제로 뽑아가는 공녀(貢女)들의 피맺힌 사연을 호소했습니다. 말 그대로 ‘공물(貢物)’로 끌려가는 여인이었으니 얼마나 비극적입니까. 끌려간 소녀들의 상당수는 고된 노동과 성적인 학대에 시달렸습니다.
    원나라 조정에는 고려풍의 옷, 즉 고려 패션이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고려여인들로 구성된 여악이 춤과 노래로 원나라 백성들을 매혹시켰습니다. 원나라 시를 보면 “보초 서는 병사들은 고려언어를 배우네. 어깨동무 하며 낮게 노래 부르니 우물가에 배가 익어가네.”(연하곡서)라는 대목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마치 〈소녀시대〉가 전세계에 K팝 열풍을 이끌 듯이…. 하기야 K팝의 K가 코리아, 즉 고려 아닙니까. 그러고보면 기황후는 고려판 한류의 원조였던 셈입니다.
    31 min
  • 58회 복면사관과 삼장(三長)의 조건
    임금은 사관들을 존중했습니다. 에를 들어 중종 임금은 사관들이 속한 예문관과 승정원에 붓과 먹을 내리면서 이렇게 신신당부했습니다.
     “이 붓과 먹으로 내 과실을 숨김없이 마음껏 쓰도록 하라.(凡吾過失 百書無隱)”
     지금 어떻습니까. 정녕 제대로 된 사관을 뽑고 있는 것입니까. 또 우리의 지도자들은 과연 중종처럼 자신의 잘못을 숨김없이 마음껏 쓰게 하고 있습니까.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할 일입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이번 주의 주제는 ‘사관의 조건-욕을 먹는 자, 절대 사관이 될 수 없다’입니다.
    29 min
  • 57회 당나라군 무찌른 신라의 비책
    이번 주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주제는 ‘당나라군 무찌른 신라의 비책’입니다.
     신라는 알다시피 당나라와 연합해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습니다. 외세를 끌여들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요. 그런데 신라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당나라는 처음부터 백제 고구려를 함락시킨 뒤에 신라까지 도모하여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는 야욕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나라의 야욕은 백제를 멸망시킨 뒤부터 마각을 드러냅니다. 군량미와 군복 등을 모두 신라 땅에서 조달해서 신라백성들을 도탄해 빠뜨리고, 그것도 모자라 신라 군대를 이리 오라 저리 오라 하여 피곤하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는 백제의 부흥운동을 도와 신라를 압박하는, 신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신라 문무왕은 가만 있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충성을 맹세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야금야금 군사작전을 펼칩니다. 눈치챈 당나라가 5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옵니다.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빠졌을 때 그야말로 임기응변의 전술이 채택됩니다. 신비의 ‘문두루 비법’입니다. 이 비법으로 당나라군은 두 차례에 걸친 신라 침공에서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한채 물러납니다. 과연 무슨 비법이었을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가 소개합니다.
    34 min
  • 56회 금수저 아닌 책 들고 태어난 아이-조선의 왕자들
    이번 주 팟캐스트 주제는 ‘금수저 아닌 책 들고 태어난 아이-조선의 왕자들’입니다. 흔히들 임금의 자리를 지존이라 합니다. 지극히 존귀하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지존’의 자리만 누렸던 것은 아닙니다. 임금이 될 자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공부, 또 공부 해야 했습니다. 무슨 공부였느냐. 바로 백성을 사랑하고, 또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공부였습니다. 그러니 늘 몸가짐을 갖추고 늘 책을 펴서 도덕이 숨쉬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도 조선이 꿈꿨던 태평성대, 즉 ‘요순의 시대’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요순 시대’를 지향하는 마음가짐 몸가짐으로 공부하고,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원자가 태어나 세자 책봉을 받으면 성균관에 가서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인들에게 술잔을 올리고,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학생이 된 세자의 앞에는 책상도 놓여지지 않았습니다. 엎드려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제아무리 임금이라도 배울 때는 늘 겸손해야 한다는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주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이 시대 교육의 가치를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32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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