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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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pisodes

  • 85회 퇴계가 음담패설의 주인공이 된 까닭
    퇴계 이황(1501~1570)은 조선을 대표하는 도학자입니다. 하늘의 이치를 따르며 인간의 욕망을 없애는(存天理 滅人慾) 학자라는 소리죠. 그래서 퇴계 선생을 두고 공자와 주자의 맥을 잇는 성인이라는 뜻에서 이자(李子)라 높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민간에 전승된 구비설화를 보면 퇴계는 음담패설의 주인공으로 종종 등장하니 말입니다. 뭐 ‘낮퇴계, 밤토끼’니 하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퇴계 선생은 심지어 “부부관계란 너무 점잖게 하면 안되는거야. 비바람 치듯 요란하게 해야 하는 거야”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퇴계를 둘러싼 요절복통의 음담패설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참으로 반전 캐릭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독 퇴계 선생에게 이런 음담패설이 집중되는 걸까요. 평소 “부부란 손님 대하듯 서로 공경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던 퇴계 선생은 왜 이렇게 음담패설의 주인공이 됐을까요. 팟캐스트 85회는 ‘낮퇴계 밤토끼’ 퇴계가 음담패설의 주인공이 된 사연‘입니다.
    ‘이기환 기자의 흔적의 역사’ 블로그 http://leekihwan.khan.kr/
    32 min
  • 84회 ‘승리한 패배자’ 경순왕이 비무장지대에 남아있는 까닭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무덤은 경주에 없습니다. 경순왕릉은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임진강변에 있습니다. 그것도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50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궁금증이 생깁니다. 경순왕은 왜 고향땅을 두고 머나먼 임진강변에 묻혔을까요. 거기에는 의미심장한 이유가 있답니다. 경순왕을 흔히 신라의 천년사직을 고려에 고스란히 바친 무능한 군주로 치부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우선 망국 후에도 43년을 더 살았고, 고려 태조 왕건보다 35년을 더 장수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의 후손들이 고려왕조를 지탱했습니다. 그래서 사가들은 경순왕을 두고 ‘승리한 패배자’라는 소리를 합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84회 주제는 ‘승리한 패배자 경순왕이 비무장지대에 남아있는 까닭’ 입니다.
    33 min
  • 83회 간신과 혼군은 영원한 콤비
    얼마 전 여권에서 간신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뭐 ‘한번 간신은 영원한 간신이니, 비루한 간신이니, 입안의 혀처럼 구눈 간신이니’ 하는 사나운 말이 나왔습니다. 이왕 간신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간신에 담긴 모든 사연을 한번 담아보겠습니다. 살펴보니 간신이라는 낱말과 세트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혼군(암군) 혹은 폭군입니다. 간신과 혼군(암군, 폭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고려사〉를 쓴 편찬자들은 ‘간신열전’을 집필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간신이 존재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현명한 임금이 있으면 간신들이 술수를 부릴 수 없었다”고…. 한때 ‘개원지치’의 태평성대를 구가한 당 현종은 명재상 한휴의 존재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한휴 때문에 백성은 살찌고, 나는 두 다리 뻗고 잠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자명합니다. 만약 지도자가 지금 이 순간 밤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국사를 걱정한다면 주변에 간신이 득실거린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이기환의 팟캐스트 83회 주제는 ‘간신과 혼군은 영원한 콤비’입니다.
    34 min
  • 82회 인간의 살을 녹이는 설탕, 혈당, 꿀오줌…
    세종대왕과 엘비스 프레슬리…. 시대를 초월한 두 인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당뇨병에 시달렸다는 것입니다. 세종대왕은 하루에 물을 한동이씩 들이킬 정도였고, 엘비스 프레슬리는 땅콩버터와 꿀, 바나나, 베이컨을 얹은 샌드위치를 한 번에 4개씩이나 먹는 등 탄수화물 중독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설탕…. 그것은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유혹입니다. 6~7세기 벵골지방에서 처음 정제된 이후 인류전체를 단맛으로 물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흑인역사가 바로 이 설탕 때문에 시작됐습니다. 바로 이 설탕 때문에 아프리카는 지금도 기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토록 달콤한 설탕 한덩어리에 바로 흑인, 즉 인간의 피와 살이 녹아있습니다.
     그 설탕은 지금 이 순간엔 인간의 건강을 해치고 있습니다. 전세계 4억2000만명이 당뇨에 시달리고 있다니 어인 일입니까. 당뇨란 무엇입니까. 설탕이 섞여, 오줌으로 빠져나가는 질병입니다. 오죽하면 꿀오줌이며, 그 꿀오줌을 먹으러 벌떼가 모인다고 하겠습니까.
     정부가 최근 ‘설탕과의 전쟁’을 선포했는데 여전히 이런저런 말들이 많습니다. 당은 인간의 에너지원인데 ‘전쟁’이 웬말이냐는 거지요. 하지만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는 ‘설탕과의 전쟁’이 아닌 ‘설탕과의 성전’을 선포합니다. 팟캐스트 82회의 주제는 ‘인간의 살을 녹이는 설탕, 혈당, 꿀오줌…’입니다.
    34 min
  • 81회 천세, 구천세, 만세…. 김정은의 만세 12창
    얼마전 북한의 제7차 노동당 대회 때 김정은 위원장에게 ‘만세’가 연호됐다고 합니다. 연설이 끝나자 12번이나 만세를 불렀다네요. 그만 하라는 손짓을 해도 그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만세 삼창’이 아니라 ‘만세 12창’이라 할까요. 그래서 제가 이 만세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아는 분은 알겠지만 군주라고 해서 다 ‘만세’라 할 수 없었다는군요. 황제에게만 ‘만세’라 할 수 있었다네요. 제후국의 임금에게는 ‘천세’라 했답니다. 내심 황제국을 자처한 고려의 경우 강화도 천도시절엔 ‘만세’라 했답니다. 물론 조선시대 들어서는 ‘천세’라 했다고 하고…. 그런데 중국에서는 천세도, 만세도 아닌 ‘구천세’의 칭호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누구일까요. 그는 왜 천세도, 만세도 아닌 구천세의 구호를 들았을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81회는 만세의 역사를 다룹니다. ‘천세, 구천세, 만세…. 김정은의 만세 12창’입니다.
    32 min
  • 80회 출산 도중 사망한 산모…아! 5분만 참았어도
    최근 대만에서 엄마가 아이를 품에 안고 아주 다정스럽게 바라보는 모습의 미라가 발견됐습니다. 뭐 형체는 비록 흉하지만 아이를 안고 있는 품새에서 따뜻한 모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미라 뿐 아니라 모두 48구의 유해가 확인됐는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원전 2000년 쯤 발생한 강진 때 엄마가 아이를 보호하려 했던 모습이 아니냐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이집트처럼 일부러 시신을 미라로 만들지는 않지만 이따끔씩 생생한 미라가 발견되곤 합니다. 특히 회곽묘를 썼던 조선시대 무덤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묘곽과 관에 흠이 없도록 싸바르는 회 때문에 관 내부가 완정 밀봉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발견된 조선시대 미라 가운데는 아주 드라마틱한 미라가 있습니다.
     2002년 경기 파주 파평윤씨 묘역에서 발견된 모자 미라입니다. 왜 이 미라를 두고 극적이라 할까요. 바로 어떤 여인이 아이를 낳다가 죽은채 미라가 됐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막 출생하기 이전에 죽었기 때문에 미라의 자궁 속에는 태아가 남아있습니다. 아! 조금만 버텼어도 태아는 나왔고, 산모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텐데... 너무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이번주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80회 주제는 ‘출산 도중 사망한 산모…아! 5분만 참았어도’ 입니다.
    31 min
  • 79회 조선의 안(평대군)빠들, “안평대군 작품을 소장하라”
    최근 도난 당한 〈삼국유사〉 ‘기이편’을 갖고 있던 문화재 사범이 적발됐습니다. 이 사람은 1999년 도난된 〈삼국유사〉 ‘기이편’을 어떤 경로인지 모르지만 입수해서 보관했다가 공소시효가 끝난 줄 알고 올해 1월 경매시장에 내놨다가 잡혔습니다. 범인을 잡고, 문화재까지 찾았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난문화재 가운데 국보로 지정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2001년 도난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행방이 묘연한 문화재인데, 바로 안평대군이 직접 쓴 〈소원화개첩〉입니다. 1987년 국보 238호로 지정된 문화재인데요. 크기가 A4용지보다 작은 크기인데 안평대군의 낙관과 도장이 찍힌 진적이어서 국보 대우를 받았습니다. 아직 오리무중인 이 안평대군의 글씨를 언제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번 주는 〈소원화개첩〉의 출현을 갈망하면서 안평대군의 삶과 글씨를 되돌아보려 합니다. 안평대군의 글씨는 조선시대 내내 국보급 보물로 꼽혔고, 중국인들도 반드시 소장하고 싶은 보물로 여겼답니다. 안평대군의 작품을 갖고 있다는 것이 조선 뿐 아니라 중국 사대부들의 로망이었습니다. 안평대군을 좋아하는 이른바 ‘안빠’들도 많았답니다. 이번 주 제79회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주제는 ‘안평대군의 작품을 소장하라-조선의 안(평대군)빠들’입니다.
    32 min
  • 78회 지진 속 구마모토에 서려있는 조선의 역사
    최근 규수지방을 강타한 지진으로 40여명이 사망하면서 가하면 구마모토성(熊本城) 일부도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히나 규슈 지방과, 특히 이 구마모토 지역, 그것도 이 구마모토성이 우리 역사와 친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규수지방은 옛날 백제인들이 이주 혹은 망명해서 터전을 잡고 살았던 곳입니다.
     지금도 직역하면 ‘백제(くだら) 없다(なぃ)’는 ‘구다라 나이(くだら なぃ)’는 ‘쓸모없다’ ‘재미없다’ ‘시시하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입니다. ‘백제없다’는 말이 ‘시시하다, 쓸모없다, 재미없다’는 뜻이면 ‘백제있다’는 말은 얼마나 근사하고 멋지고 재미있다는 뜻이었을까요. 일본열도에 도착한 백제인들이 얼마나 근사했는지 짐작할 수도 있겠습니다.
     비단 백제인들 뿐이겠습니까. 일본의 3대성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구마모토성에는 조선의 역사가 듬뿍 담겨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출병한 가토 기요마사는 울산성 전투에서 당한 뼈저린 경험을 이 성을 쌓는데 백분 활용했답니다. 1597년 12월~1598년 1월 사이 울산성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어떤 일이 있었기에 가토 기요마사가 그토록 참담한 경험을 겪어야 했으며, 그 기억을 잊지않고 구마모토 성을 쌓는데 반면교사로 삼았을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78회 주제는 ‘지진 속 구마모토에 서린 조선의 역사’입니다.
    32 min
  • 77회 떠나볼까. 여행을 떠난 조선의 여인들
    꽃피운 봄이 왔습니다. 싱숭생숭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입니다. 예전에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러나 과거의 여성들에게 담장 밖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경국대전〉에 “산천에서 놀이를 즐기는 부녀자는 장 100대에 처한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몇몇 여성들은 훌훌 떠났습니다. 제주 출신 김만덕은 임금의 허락까지 얻고 임금이 내린 특전까지 누리며 나름 호화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또 한 분이 계십니다. 김금원이라는 원주 여인입니다. 기녀출신은 김금원은 불과 14살의 나이에 남장차림으로 호서지방-금강산-관동8경-설악산-한양 등을 유람한 전문여행가였습니다. 여행만 다니지 않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음풍농월했고 훗날엔 그렇게 지은 시까지 묶어 기행문까지 썼습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77회는 ‘떠나볼까. 여행을 떠난 조선의 여인들’입니다.
    30 min
  • 76회 과거4수생 이규보의 변명
    ‘주필(走筆) 이당백(李唐白)’은 당나라 천재시인 이태백에 빗댄 고려 문인 이규보(1168~1241)의 별명입니다. 고려를 대표하는 천재문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규보를 상징하는 이미지도 많습니다. 천재, 결벽, 대쪽, 주당, 풍류, 방랑, 광기, 운둔, 거사…. 대서사시인 동명왕편을 짓는 등 평생 8000수의 시를 지은 인물이니 뭐 어떤 수식어라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이규보는 당대 최고명문사학인 최충의 문헌공도를 다녔던 영재였습니다. 학창시절엔 문헌공도가 실시한 일종의 과거모의고사에서 거푸 1등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랬던 이규보도 생원·진사를 뽑는 과거시험(국자감시)에서 3번이나 거푸 떨어진 끝에 4번째 기회에 겨우 합격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뭅니다. 3전4기 끝에 국자감시에 장원급제로 합격했지만 대과(예부시)에서는 밑바닥 성적으로 겨우 턱걸이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과거의 관문을 통과한 이규보는 출세를 위해 무인독재정권에 끊임없이 아부했던 속물로도 평가되기도 합니다. ‘최충헌-최우’ 등에 대를 이어 충성했으니 그런 평가를 받습니다. 대시인 이규보와, 아부꾼 이규보…. 이규보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기에 이런 극단의 이미지가 중첩되는 걸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76회는 ‘과거 4수생 이규보의 궁색한 변명’을 들어봅니다.
    34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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