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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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pisodes

  • 105회 녹두장군 전봉준의 최후진술
    지금 전북 정읍 옹동면 비봉산 자락에서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2013년 8월 이곳에서 ‘장군천안전공지묘군(將軍天安全公之墓)’라는 비석이 발견됐는데 혹시 동학농민군 지도자인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의 무덤일지도 몰라 확인 발굴하는 것입니다.
    전봉준 장군은 1895년 3월29일(음)변란을 일으킨 죄로 교수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장군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이는 서광범이었습니다. 전봉준 등 농민군 지도자들은 근대사법제도가 출범한 이후 첫 사형선고의 희생양이 된 셈입니다. 장군은 다음날 새벽 다른 농민군 지도자들과 함께 사형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장군은 사형선고를 받은 뒤 최후진술을 통해 “정부의 명이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치지만 바른 길을 걷었던 자에게 대역죄를 적용한다니 천고의 유감”이라고 일갈했습니다.
    팟캐스트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105회는 ‘녹두장군 전봉준의 최후진술’입니다.
    32 min
  • 104회 진시황 시대의 개그콘서트…그리고 김제동 발언
    요즘의 개그맨이나 예능인이라 할만한 사람들이 2500~260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사마천 같은 역사가는 그런 이들을 골계가라 했습니다. 음악에 능하고, 우스갯소리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골계가들은 군주의 곁에 머물며 군주의 귀를 즐겁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역할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군주가 잘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신랄한 풍자와 멋들어진 해학으로 군주를 올바른 길로 이끌었습니다. 직접적인 말이 아니었습니다. 은유법과 반어법을 섞어가며 절묘한 말솜씨로 군주의 그릇된 마음을 되돌려놓았습니다.
    요즘으로 친다면 풍자개그였던 셈이죠. 심지어 우전이라는 골계가는 천하의 폭군이라는 진시황 앞에서 스스로 직접 ‘짠’ 개그로 멋들어진 ‘개그콘서트’를 선보였습니다. 호위군사들을 위한 개그코너였습니다. 최근 개그맨이자 방송진행자인 김제동씨의 군 관련 발언이 논쟁중입니다. 국방부 차관을 지낸 국회의원과 국회 국방위원장, 국방부장관까지 나서 ‘사실과 다른 발언이니 입장을 밝히고 사과하라’는 등의 요지로 김제동씨의 발언을 문제삼았습니다. 이 참에 개그의 본질이 무엇인지 한번 짚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104회는 ‘진시황 시대의 개그콘서트…그리고 김제동 발언’입니다.
    34 min
  • 103회 ‘이성계의 불온한 대권출정식’
    지금부터 80여 년 전 금강산 월출봉에서 희한한 유물 세트가 발견됩니다. 태조 이성계와 두번째 부인 강씨의 이름을 새긴 사리장엄구였습니다. 즉 이성계가 불사리를 봉안한 의식이 1391년 5월 이곳 금강산에서 벌어졌음을 알린 유물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의식에 1만 여 명의 지지자가 따라나섰다는 것입니다. 1391년 5월이면 조선이 개국하기 1년 2개월 전입니다. 이성계는 왜, 그것도 금강산에서 불사리를 모시는 성대한 의식을 치렀을까요. 더욱이 사리기를 보면 ‘미륵의 하생을 기다린다’고 했답니다. 이성계가 기다린 미륵의 하생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을까요. 또하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조강지처가 시퍼렇게 살아있었던 때, 이성계는 왜 두번째 부인인 강씨만 데리고 금강산에 올랐을까요. 금강산에서 발견된 사리기에 그 엄청난 사연들이 숨어있습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103회는 ‘이성계의 불온한 대권출정식’입니다.
    34 min
  • 102회 ‘18년 기러기 아빠’ 다산 정약용의 꾸지람
    ‘하피첩’이라는 보물이 있습니다. 지난 2004년 폐지 할머니의 수레에서 우연히 발견된 유물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편지입니다. 유배생활중인 다산은 아내 홍씨가 보내온 다홍치마를 재단해서 두 아들에게 전하는 편지 4책과 외동딸에게 주는 매조도 그림을 그려 보냈습니다. 딸에게 준 매조도(매화병제도)는 고려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었지만 아들 둘에게 보냈다는 편지 4첩은 기록으로만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폐지 할머니의 수레에서 4책 중 3책이 극적으로 발견된 것입니다. 다산은 이 책을 〈하피첩〉이라 했습니다. 붉은 다홍치마에 쓴 편지라는 뜻입니다. 다산이 이 편지 글에서 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책에서는 그래도 정제된 말씨를 쓰지만 다른 편지글에서는 두 아들을 사정없이 꾸짖는 내용도 심심찮게 있습니다. 다산은 왜 그렇게 두 아들을 심하게 야단쳤을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102회에서 전해드립니다.
    36 min
  • 100회 무령왕릉 발굴, 고대사의 블랙박스를 열었지만…
    1971년 7월 공주에서는 한국 고고학사에 길이남을 발굴이 있었습니다. 공주 무령왕릉 발굴이었습니다. 배수로 공사중 우연히 현현한 무령왕은 ‘내가 무덤의 주인공’임을 선언하고 나선 첫번째 임금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습니다 이 발굴은 고고학 발굴사에 길이남을 흑역사였기 때문입니다. 하룻밤에 유물 수습을 끝내고, 빗질까지 해서 말끔히 정리해버린, 아 이런 무자비한 발굴이 어디 있습니까. 이번주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는 100회를 맞아 ‘무령왕릉 발굴, 고대사의 블랙박스를 열었지만…’입니다. 다음 주의 주제는 ‘무령왕 그는 누구인가’입니다. 2회에 걸친 주제입니다.
    36 min
  • 99회 황금보검 주인공은 금수저가 아니었다
    1973년 경주 계림로에서 발굴된 무덤(계림로 14호분)은 희한했습니다. 적석목곽분치고는 상당히 작았는데, 그 안에 성인 남자 두 명이 누워있던 흔적이 있었습니다. 오른쪽 남자는 대도를 찬 흔적이 있었는데, 왼쪽 남자가 달고 있던 유물이 군계일학이었습니다. 길이 36㎝에 불과했지만 눈부신 황금보검이었습니다. 분명 신라 고유의 제품은 아니었습니다. 1928년 옛 소련 카자흐스탄 보로보에에서 확인된 검의 파편과 비슷했습니다. 이밖에도 비슷한 양식의 벽화 그림들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깁니다. 무덤의 주인공은 왜 외국산 황금보검을 차고 있었을까요. 서역인이 이역만리 신라의 수도 경주에 묻힌 것일까요. 아니면 신라인일까요. 신라인이라면 당시로서는 해외명품이었던 황금보검을 찰만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일까요. 또하나, 나란히 누워있는 대도를 찬 남성은 과연 누구일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99회는 ‘황금보검 주인공은 금수저가 아니었다’입니다.
    37 min
  • 98회 박애주의자 묵자는 왜 독가스를 발명했을까
    중국이 최근 발사한 양자위성에 모쯔, 즉 묵자(墨子)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묵자는 바로 겸애론을 주장한 춘추전국시대 사상가입니다.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은 왜 인공위성 이름에 공자·노자와 어깨를 나란히 한 철학·사상가의 이름을 붙였을까요. 그런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묵자는 철학·사상가이기도 했지만 불세출의 과학자이면서 무기개발자이기도 했습니다. 묵자는 기하학·역학·광학·수학에서 뛰어난 이론을 전개했으며, 그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무기를 여럿 개발했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독가스를 전쟁에 사용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묵자가 누구입니까. 나를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라고 외쳤던 겸애론자 아닙니까. 평화와 사랑을 부르짖으면서 독가스를 만들고, 그 외에 다른 신형무기까지 개발했다니요. 과연 묵자는 이중인격자일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98회가 그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박애주의자 묵자는 왜 독가스를 발명했을까’ 입니다.
    35 min
  • 97회 ‘세종시대 장애인 시위사건의 전말’
    지금 대한민국 한복판 광화문 광장 지하도에 가면 4년 넘게 이어진 농성장이 있습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등의 철폐를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농성입니다. 장애인들은 온갖 참지 못할 야유를 들어가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그래서 제가 역사서를 들춰봤습니다. 왕조시대 조정의 장애인 정책은 어땠는지 한번 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2000년 전부터 장애인은 물론 환과고독이라 해서 홀아비와 홀어미, 독거노인, 고아 등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신라 유리왕 때였다니 할 말이 없을 지경입니다. 유리왕은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의 모든 책임이 바로 임금에게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다른 임금들도 한결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의 장애인 정책은 어땠을까요. 역시 만고의 성군이라는 세종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합니다. 세종 때 벌어진 장애인 시위사건에 대처하는 임금의 태도는 어땠을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97회는 세종시대 장애인 시위사건의 전말입니다.
    30 min
  • 96회 하룻밤 만리장성 설화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 쌓는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하룻밤 짧은 인연이라는 소리니 사뭇 낭만적인 설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설화의 원래 내용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여자한테 잘못 걸렸다가는 죽을 고생을 하기 십상이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하룻밤 만리장성’ 이야기가 한반도에서만 전해진 설화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영남지방에서 주로 들을 수 있는 설화랍니다.
    신기합니다. 왜 중국 진나라 때 쌓은 만리장성 축성의 이야기가 이역만리 영남지역에서 퍼졌을까요. 거기에는 그럴수밖에 없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역사기록들이 남아있습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95회는 바로 ‘하룻밤 만리장성-왜 한반도에만 있는 전설일까’입니다.
    34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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