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북 정읍 옹동면 비봉산 자락에서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2013년 8월 이곳에서 ‘장군천안전공지묘군(將軍天安全公之墓)’라는 비석이 발견됐는데 혹시 동학농민군 지도자인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의 무덤일지도 몰라 확인 발굴하는 것입니다.
전봉준 장군은 1895년 3월29일(음)변란을 일으킨 죄로 교수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장군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이는 서광범이었습니다. 전봉준 등 농민군 지도자들은 근대사법제도가 출범한 이후 첫 사형선고의 희생양이 된 셈입니다. 장군은 다음날 새벽 다른 농민군 지도자들과 함께 사형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장군은 사형선고를 받은 뒤 최후진술을 통해 “정부의 명이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치지만 바른 길을 걷었던 자에게 대역죄를 적용한다니 천고의 유감”이라고 일갈했습니다.
팟캐스트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105회는 ‘녹두장군 전봉준의 최후진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