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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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pisodes

  • 95회 신안선 동전 800만개의 비밀
    지금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바로 ‘신안 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을 주제로 한 특별전입니다. 9월4일까지 열리니까 한번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신안 해저선이란 어떤 배일까요. 1975년 한 어부가 전남 신안군 증도 앞바다에서 중국제 청자와 백자 6점을 인양했습니다. 그물에 우연히 걸린 거지요. 바로 신안 해저선, 혹은 신안 보물선, 혹은 그냥 신안선이라 일컬어지는 14세기 중국의 무역선에서 인양된 것이었습니다. 무역선이 그만 이곳에서 침몰한 것이지요. 1984년까지 9차례 수중발굴결과는 경이적이었습니다. 도자기 2만 여 점과 자단목 1000여본, 그밖에 진귀한 생활용품들이 줄줄이 인양되었습니다. 이 배는 1323년 엄청난 상품을 싣고 중국 닝보를 떠나 일본 하카다항으로 가는 국제무역선이었습니다. 특히 이 배의 밑바닥에는 무려 800만개에 달하는 동전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무게로 따지니까 28톤에 이르렀습니다. 가히 신안보물선이라 해도 되겠지요. 그렇다면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 어마어마한 800만개의 동전이 왜 배에 실렸을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95회는 바로 ‘신안선 동전 800만개의 비밀’을 조명해보겠습니다.
    38 min
  • 94회 작은 공(탁구공)이 큰 공(지구)를 흔들었다
    올림픽 탁구경기를 관전하다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니폼은 분명 유럽선수이고, 아메리카 대륙 선수인데 얼굴은 동양인 일색인 것입니다. 선수 대부분이 중국계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대륙에는 등록선수만 5000만명에 달합니다. 중국에서 대표선수가 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겠지요.
     그러니 다른 대륙, 다른 나라의 대표선수가 되겠다는 겁니다. 한국 대표선수 가운데도 전지희가 중국계 귀화선수입니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중국에서 탁구가 국기의 대접을 받고 있을까요.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왜 핑퐁외교라는 말이 생겼을까요. 정리하자면 탁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닙니다. 탁구공의 무게는 불과 2.5g에 지나지 않지만 그 작은 공이 지구라는 엄청난 큰 공을 뒤흔들었습니다. 탁구가 바꿔놓은 세계역사입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93회는 ‘작은 공(탁구공)이 큰 공(지구)를 흔든 사연’을 다뤄봅니다.
    41 min
  • 93회 동이족 역사상 최강의 궁사는 누구?
    2016 리우올림픽이 한국 시간으로 6일 아침 개막됩니다. 아무리 금 은 동메달보다 참가에 의의가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치열한 승부끝에 얻을 수 있는 승리의 쾌감은 그 무엇과 견줄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 한국선수단의 확실한 금맥인 양궁의 경우는 어떨까요. 오히려 국내 선발전이 더 치열할 정도로 올림픽 대표로 뽑힌 선수들의 기량은 출중합니다.
     신궁의 피가 흐르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나 봅니다. 전설속 동이족 군장인 예라는 인물부터 고구려 창업주 주몽, 그리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까지. 저마다 신기에 가까운 활 솜씨를 자랑했지요. 20년 전인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김경욱 선수가 10점 만점의 한가운데 과녁을 두번이나 정통으로 맞췄고, 1994년 한승훈 선수가 30미터 거리에서 36발 전부 10점 만점을 쏘아 360점을 기록했습니다. 가히 태양 9개를 쏘아 떨어뜨렸던 예, 120미터 거리에서 옥반지를 박살낸 주몽, 그리고 180미터 거리에서 백발백중을 기록한 태조 이성계와 견줄만한 신궁이지요. 이번주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93회는 그래서 ‘동이족 역사상 최강의 궁사는 누구’를 주제로 다뤄보겠습니다.
    34 min
  • 92회 올림픽 첫출전, 춤바람난 한국선수단 이야기
    곧 리우 올림픽이 열립니다. 올림픽 열기가 예전같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시작이 되고, 메달레이스가 펼쳐지면 관심을 끌 것입니다. 세상에 즐거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4년간 선수들이 흘린 땀을 보상받는 올림픽 무대를 감상하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겠지요. 한국은 지금으로부터 68년전인 1948년 런던올림픽에 처음 참가했습니다. 당시의 신문을 보거나 당시의 증언을 들으면 정말로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같습니다. 참가비를 마련하려고 복권을 발행한 이야기, 금메달은 따논 당상이라고 큰소리쳤다가 줄줄이 탈락한 마라톤 선수들, 최소한 은메달 동메달은 확실하다고 떵떵 거리다가 0-12로 참패한 축구 선수들, 경기 전날 공업용 용액을 술로 착각해서 마셨다가 밤새도록 뒹굴었던 선수와 아나운서 이야기 등등. 참으로 파란만장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겨우 동메달 2개에 그친 선수들에게 당시 언론은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혹독한 비판을 가했지요.
     외신들은 ‘한국선수단이 영국 소녀들과 딴스(댄스)를 추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비아냥 댔답니다. 올림픽을 앞둔 지금,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92회’는 ‘올림픽 첫 출전, 춤바람 난 한국선수단 이야기’를 풀어보렵니다.
    39 min
  • 91회 전하! 사면은 소인의 다행이요, 군자의 불행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을 맞아 사면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맞습니다. 대통령은 헌법 79조에 따라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면권은 대통령이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권한일까요. 아닙니다. 헌법 11조를 보면 대통령의 사면권 보다 더 중요한 대목이 나옵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왕조시대에도 사면권은 임금의 절대권한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역대 군주들은 사면권을 되도록이면 신중하게 처리하려 했습니다. 물론 만백성의 어버이로서 용서해주고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역대 군주와 신하들의 뜻은 분명했습니다. ‘잘못된 사면은 임금과 백성 모두를 해치는 행위’라는 구양수의 지적과 ‘사면은 소인의 다행이며, 군자의 불행’이라는 당나라 태종의 천명을 금과옥조로 삼은 것입니다.
    35 min
  • 90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은 3000년도 넘은 속담입니다. ‘여자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핑계입니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어땠습니까. 최초의 여성지도자인 선덕여왕을 두고 “아녀자가 정치를 하다니,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라고 비난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당장 파면당해도 시원치않을 지독한 ‘여혐발언’입니다. 그러나 김부식은 옛날 남자라 칩시다. 요즘도 걸핏하면 ‘여자탓’하고, 툭하면 ‘여자가~’하는 못난 남자들이 곧잘 보입니다.
     최근들어 브렉시트 후유증과 글로벌 경제 침체, 테러 다발 등 혼란에 빠진 지구촌을 지켜낼 구원투수들이 등장했다는 기사가 봇물을 이룹니다. 그 구원투수들은 바로 여성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어지럽힌 쓰레기는 여자나 나서서 치운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 여전히 여자니 남자니 하는 편가르기의 속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성이 어지러운 세상을 깔끔하게 정리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90회 주제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입니다.
    37 min
  • 89회 황룡사 9층탑, 콘크리트로 복원될 뻔 했던 사연
    경주는 1000년을 버틴 신라 왕국의 서울이었습니다. 실로 장구한 세월이었습니다. 전성기 때는 무려 18만호에 이르는 사람들이 경주에 살고 있었으며 35채의 ‘금입택’, 즉 황금이 드나드는 저택이 있었다고 합니다. 880년 헌강왕 때는 “서울 백성들의 집은 모두 기와집이었고, 그 기와집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으며, 밥을 짓는데 장작이 아니라 숯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53년 뒤 신라는 멸망하고 맙니다. 이후 경주, 특히 834년 동안이나 궁성이 자리잡고 있던 월성 지역은 금단의 땅이 되고 맙니다. 신라 삼국통일의 정신적인 지주였고 상징건물이자 랜드마크였던 황룡사와 황룡사 9층탑은 덩그러니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몽골군 침략 때인 1235년 불타버리고 맙니다.
     그후 700여 년이 지났을 때 큰일날 뻔한 일이 벌어집니다. 80미터의 위용을 자랑했던 황룡사 9층목탑을 콘크리트로 복원한다는 계획을 세웠던 겁니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기자는 경향신문 70주년 기획인 ‘70인과의 동행’에 참여했습니다. 고고학자 조유전 박사와 함께 경향독자 35명를 모시고 경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지난주 감은사와 대왕암 기행에 이은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 주 주제는 월성과 황룡사터 기행입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89회는 제목은 ‘황룡사 9층탑, 콘크리트로 복원될 뻔 했던 사연’입니다.
    36 min
  • 88회 1000년 전 신라를 가다-죽어서도 나라를 지킨 문무왕의 옛터 감은사
    지난 6월18일 필자는 경향신문 70주년 기획인 ‘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이라는 답사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답사단원은 35명이었는데, 매우 즐거운 여정이었습니다. 답사단을 이끈 분은 저의 스승님이자 저명한 고고학자인 조유전 선생이었습니다. 조유전 선생은 서울대 고고학과 2기 졸업생으로 문화재청 전신인 문화재관리국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속으로 경주의 감은사·황룡사지·안압지·월성과, 백제 무령왕릉을 발굴하신 고고학자입니다. 이번 경주여행은 감은사-대왕암-장항리사지-월성-황룡사지-분황사지를 돌았습니다. 공통점은 ‘터’이자 ‘흔적’입니다. 하고많은 경주의 수많은 볼거리중에 왜 하필 터이고 흔적일까요. 저명한 고고학자와 떠나는 신라 1000년의 여행을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34 min
  • 87회 왜 그렇게 탯줄에 목숨을 걸었을까
    요즘 제대혈(탯줄 속 혈액)을 보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2015년 제대혈 보관 건수가 60만건에 달했다지요. 제대혈에 적혈구·백혈구·혈소판을 만드는 조혈모 세포가 풍부하고 연골·근육·뼈·신경 등을 만들 수 있는 간엽줄기세포가 다량 함유돼 있어서 백혈병 같은 혈액질환과 뇌성마비 및 발달장애 치료에 활용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제대혈 보관은 신라시대부터 면면이 이어온 안태의식, 즉 태를 묻는 의식과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태를 묻는 의식은 중국에는 없었던 우리 고유의 풍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왜 그렇게 태를 묻는데 정성을 쏟았던 걸까요. 태를 어떻게 생각했기에 그렇게 신주 단지 모시듯 했을까요. 한가지 더. 조선조 영조 임금은 왜 도승지(비서실장)를 불러 ‘내가 하는 말을 토씨 하나 빼놓지 말고 그대로 써서 교서로 반포하라’고 했을까요. 이번 주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87회는 ‘우리 조상들은 왜 탯줄에 목숨을 걸었을까’입니다.
    38 min
  • 86회 두동강 비석으로 현현한 허준 선생
    지난 1991년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민통선 이북 파주시 장단에서 두동강 난 비석이 발견됐습니다. 동양의 의성 허준 선생의 무덤이었습니다. 서지학자가 10년 가까이 신분을 숨겨가며 찾아낸 것입니다. 도굴꾼에 의해 파헤쳐졌지만 두동강난 비석에는 ‘陽平○ ○聖功臣 ○浚’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바로 ‘양평군 호성공신 허준’이었습니다.
     허준 선생이 누구입니까. 타고난 천재성을 바탕으로 독학을 의술을 공부한 분입니다. 정치색이 없었으며 오로지 임금과 백성의 병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찼습니다. 천생 의사였던 셈입니다. 뭐니뭐니해도 허준 선생의 특등 공적은 〈동의보감〉 저술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나오는 637개의 향약 이름을 한글로 표기해서 백성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동의보감 편찬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병든 백성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 바로 그것입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86회 주제는 ‘두동강 비석으로 현현한 허준 선생’입니다.
    36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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