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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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2월 7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보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미국인들은 매일 평균 수천 개의 미디어에 노출된다. 광고판, TV, 라디오, 잡지, 홍보물, 우편물 등 수많은 매체가 존재한다. 미디어는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스마트폰과 와이파이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미디어를 접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주유기에도 스크린이 달려 있고 슈퍼마켓에서도 영상물이 재생되며 식당 화장실에 TV가 놓인 곳도 있다. 미디어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듯하다.
    미디어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인 대부분은 하루에 5시간 넘게 TV를 시청하고 7시간 정도를 온라인상에서 보낸다. 쉴 새 없이 미디어에 빠져들면 우리의 감각은 과부하에 걸린다. 좋은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은 해로운 것이다.
    세속적인 것들과 영적 위험 요소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미디어는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폭격을 가하고 있지만 성령께서는 끊임없는 적들의 유혹과 사회의 소란으로부터 방패가 되어 주신다. 로마서 8장 5절에서 바울은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말씀, 예수님의 임재, 천사들의 도움으로 지탱받는 사람은 세상 유혹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하늘의 것을 감상하는 법을 배운다면 이 땅의 싸구려 오락이나 부끄러운 술수에 전혀 관심이 가지 않을 것이다. 미디어의 영향을 줄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미디어를 적게 접하는 것이다. 아예 접하지 않는다면 훨씬 좋을 것이다.
    현재 우주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거대한 영적 대쟁투는 마음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다. 사탄은 무엇보다도 그대의 사고방식에 손을 대고 조종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면 그분께서는 우리 마음을 올바른 곳에 온전히 보존하실 것이다. 무자비한 세상이 그대를 점령할 필요는 없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지성배, 김영란 선교사(파키스탄)
    파키스탄 천명선교사 훈련원 건축과 선교사 훈련을 위해
    4 min
  • [2월 6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매 순간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영적 실패를 겪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같은 지점에서 실패를 거듭하며 좌절하는 사람은 많다. 인내심이 바닥나고 나쁜 생각이 머리에 스치고 금지된 것들에 손을 대는 일이 반복된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이란 성공과 실패의 끝없는 순환처럼 보이며,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가 어김없이 영적 패배로 이끄는 롤러코스터와 같다.
    그러나 탈출구가 마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신다고 바울은 보증한다(고전 10:13). 모든 시험에는 피난처가 있다.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시험도 그대는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노력하고 기도를 더 한다고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성령의 인격을 통해 임하셔서 우리의 삶을 장악하실 때 승리할 수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셨다. 우리도 그런 기도를 배운다면 놀라운 승리의 능력이 우리 삶에 실현될 것이다. 예수님에게는 패배란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으로 다가가면서 교만, 시기, 부정직함이 자신의 품성에 계속 남아 있을 거라고 체념할 필요가 없다. 요한계시록 22장 4절에서는 하나님의 성품이 그분의 자녀들의 마음에 새겨질 것이라고 보증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시험이 닥쳐올 때 하나님은 피할 길을 주신다. 시험의 순간마다 습관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한다면 승리가 일상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되새기라. ‘주여, 주님께서 피할 길을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그렇게 해 주실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권순범, 강지희 선교사(대만)
    대만 대학생선교센터의 운영
    4 min
  • [2월 5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걱정에서 벗어나려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요인 중 절대다수는 사실이 아니거나 일어나지 않거나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따라서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도 훨씬 줄어들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다.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는 삶의 현실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스트레스는 고통을 유발한다. 스트레스는 흔히 두통, 고혈압, 수면 장애의 원인이 된다. 또 다른 질병이나 증상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삶에서 모든 스트레스를 지워 버릴 수 없고 필요한 스트레스도 있다. 그럼에도 무거운 짐에 억눌렸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서는 스트레스 가득한 순간마다 하나님께로 돌이켜 하늘의 도움을 받으라고 권한다.
    하나님이 정말 우리를 돌보신다면 우리는 짐 덩어리를 혼자 다 떠맡게 버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온 우주를 통치하신다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도 하나님께는 우리를 위해 완벽한 계획이 있으니 결국 일은 잘될 거라는 믿음을 지닐 수 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복된 희망”(딛 2:13, 현대인)이며 언젠가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것이라고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실 뿐 아니라 우리의 근심을 잠재우고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고자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며 환난 때에 언제나 돕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시 46:1, 현대인). “언제나” 돕는 분이라는 시편의 표현을 눈여겨보라. 하나님 앞에 염려를 내려놓고 맡긴다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평화를 누릴 것이다. 그분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 사실을 안다고 모든 어려움과 스트레스가 사라지지는 않지만 영생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그 사실은 희망과 도움이 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교린, 이미화 선교사(아랍 에미리트)
    걸프 필드(아랍 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오만, 예멘)의 선교 사업과 현지인 선교를 위해
    4 min
  • [2월 4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 11:35)
    예수님을 따른다고 매일 기쁜 소식과 웃음과 감격이 가득한 것은 아니다. 예외도 있었다. 고통, 비애, 상실감은 가장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에게도 흔한 일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대해야 할 것은 순탄한 앞날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점이었다.
    성경에서 가장 짧은 구절인 요한복음 11장 35절은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라고 간단히 말한다.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그 친구들의 슬픔에 영향을 받으셨다. 슬픔은 그때도, 지금도 예수님께 영향을 준다. 인정 많은 우리 구주께서는 여전히 무거운 짐 진 자들을 가여워하신다. 어떤 상황에 처해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인간은 두려움과 죽음, 상실을 겪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이들은 침입자인 셈이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만족, 기쁨, 안정감으로 두르셨다. 그러나 6,000년 동안 사람들은 삶의 참담한 현실과 씨름했고 그 모든 시간을 겪고도 고난과 상실의 삭막한 현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자살 폭탄 테러로 아들을 잃고 비탄에 빠진 중동의 한 어머니, 집을 파괴하고 살림을 휩쓸어 간 대홍수를 애써 받아들이는 여자 소작농, 65년간 함께한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망연자실해 차로 걸어가는 노인을 떠올려 보라. 일평생 죽음과 슬픔, 상실을 겪으면서도 그러한 난관에 대처하기란 결코 수월하지가 않다.
    억장이 무너지고 힘든 일이 계속될 때 어디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그대를 불쌍히 여기는 구주가 계시다. 상실과 상처가 무엇인지 그분은 아신다. 또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그분은 그대를 떠받치신다.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으셨고 그 느낌이 무엇인지도 아신다. 상실의 고통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경험을 통해 알고 계신다. 하늘은 인생의 역경과 씨름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있음을 보여 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양의식, 배지현 선교사(몽골)
    한석희 몽골대회장과 전은경 사모를 위해
    4 min
  • [2월 3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선발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사 41:9)
    코리 한은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뛰어난 야구 유망주였다. 그러나 대학 경기 도중 2루 베이스에 머리를 세게 부딪쳐 목이 부러졌고 가슴 아래가 완전히 마비됐다. 그의 선수 생활은 끝났다. 하지만 코리는 이례적으로 메이저 리그 34라운드 선발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선수로 지명됐다.
    경기를 할 수 없는데도 프로 팀에 섭외된 것이다. 코리 한의 이야기에는 동정과 선의가 넘쳐 난다. 그런데 여기 아주 유사한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놀라운 사랑과 은혜로 하나님께서는 망가진 인류를 자신의 팀으로 선발하셨다.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사 41:9). 에덴에서 범죄 한 이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무슨 쓸모가 있었겠는가? 죄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과 끊어졌고 다시 하나님의 편에 서기 위해서는 회복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회복은 하나님 아들의 목숨을 대가로 한 매우 고된 과정이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구속하신 이유는 단순히 아량을 베풀거나 제스처만 취하거나 인류의 시조에게 선심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분께서는 사랑으로 아담과 하와를 구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아담과 하와를 구속하실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서는 독생자의 생명을 내주어야 했다. 그 때문에 천사들은 전무후무한 쟁론에 휩싸였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온 우주에서 가장 값비싼 구원 작전이 세상에서 가장 무기력한 존재를 위해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사랑하기에 하신 일이다.
    하나님은 그대를 영원한 한 팀으로 발탁하셨다. 그대의 능력과 무관하게 선발된 것이며 개인의 성공이나 실패는 그 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직 사랑과 놀라운 은혜 덕분에 그대는 하나님의 대표가 된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에스라 선교사(기타 지역)
    지하 성도들의 안전을 위해
    4 min
  • [2월 2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아내를 존중하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 3:19)
    부부는 서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결혼이란 두 사람이 평생을 기약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 시간은 종신형처럼 느껴질 수 있다.
    삶이 그리스도인 경험에 걸림돌이 될 때가 있다. 인생은 바쁘게 흘러가고 분주함은 스트레스를 야기한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는 타인과의 상호 작용, 심지어 사랑하는 이들과 소통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장 큰 애정으로 대해야 할 상대에게 감정을 터뜨리는 사람이 많다. 하나님께서 복된 선물로 주신 결혼이 전혀 그렇지 못할 때가 허다하다.
    오늘의 성경절은 남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적용되지만 바울의 조언은 분명 배우자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럼에도 바울은 특히 남성들에게 조언할 필요를 느꼈다. “아내를 사랑으로 대하십시오. 아내에게 그대의 감정을 쏟아 내지 말고 아내를 비롯한 다른 이들의 행동에 화내거나 짜증 내지 마십시오.”
    이 구절에서는 빠져나갈 여지가 없다. 바울은 ‘물론 여러분의 아내가 대하기 힘든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죠.’라든가 ‘까다로운 아내를 만난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럴 경우 아내한테 짜증 좀 낸다고 뭐라 할 수는 없겠죠.’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울의 의도, 즉 바울을 통해 전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친절과 사랑으로 아내를 대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가능하다. 서로를 경멸하던 부부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간 후에야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으면 너그럽고 친절하게 대할 수 있다. 하나님은 가장 비판적인 남편도 진심으로 아내를 응원하는 사람이 되게 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과 가정에 복을 내리고자 하시며 남편과 아내가 성령을 힘입어 서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내도록 초청하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신영천, 김혜림 선교사(캄보디아)
    캄보디아 재림교회의 영적 부흥을 위해
    4 min
  • [2월 1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의지가 있다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미국 아칸소주 북쪽 외곽 지역의 어느 교회 간판은 복음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해 놓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그대의 뜻을 바꾸지는 않으신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 때문에 생명을 내주셨고 뜻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구원의 선물을 주신다. 더 뛰어난 사람이라서 구원받고 수준 미달이라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신다(벧후 3:9, 현대인).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막 8:34).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도 “그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구원을 바란다고 모두 구원에 이르지는 않는다. 구원은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얻는 것이며 하나님과 각별한 관계를 맺는 사람만이 구원을 바라고 원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열어 주신 흥미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이기적인 마음을 지녔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를 그분의 의지와 섞어 주실 수 있다. 그 과정이 바로 회심이다. 엘렌 화잇이 말한 대로 “모든 것은 의지에 따라 올바르게 행동하는 데 달려 있다”(정로, 47). 성령의 뜻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은 거듭날 수 없다.
    야고보는 “하나님께 복종”하라고 말했다(약 4:7). 이것이 바로 복음을 체험할 수 있는 열쇠이며 아칸소의 어느 교회 표지판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내 안에서 하나님이 그분의 일을 하시도록 우리가 허락한다면 그분은 우리 스스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내신다. 하나님께 동의하고 협조하면서 의지를 보인다면 그분께서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영적으로 미숙하다고 해서 절망하지 말라. 뜻이 있으면 승리의 길을 시작한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10/40 선교 프로젝트를 위해
    4 min
  • [1월 31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너를 용서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한 남자의 운전 부주의로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망했다. 깊이 뉘우치고 있는 그 남자에게 고인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을 용서합니다. 저의 가족도 당신을 용서합니다.” 간단하지만 강력한 말이었다. 물론 그를 용서한다고 해서 그가 저지른 잘못을 돌이킬 수는 없다. 그러나 용서를 베푼 덕분에 고인의 가족은 끝없는 상처와 원한에서 벗어나 앞날을 살아갈 수 있었다.
    ‘너를 용서한다. 가족들도 너를 용서한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바라시는 자세이다. 골로새서 3장 13절에서는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라고 말한다. 믿을 수 없는 용서에 예외란 존재하지 않는다. 용서는 어려워 보이지만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에게 남을 용서하라고 하신다.
    용서를 강조하지 않는 교회는 세상에 내놓을 것이 없다. 기독교인들의 표준이 높다는 것을 비신자들은 알고 있으므로 교회가 표준에 이르지 못한다면 비난과 비웃음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안에 예수님이 사셔서 우리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하시도록 허용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어떤 능력보다도 위대한 능력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다. 아픔과 상실을 겪으면서도 남을 용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인간은 용서를 거부할 때가 많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기로 택하셨기에 우리에게 영원한 기회가 펼쳐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요일 1:9)라는 성경절처럼 놀라운 말씀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얼마나 잘못을 많이 저질렀든지 하나님은 기꺼이 용서해 주고자 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도 남들에게 그와 똑같이 사랑과 동정을 베풀라고 요구하신다. 우리의 마음이 그분에게 활짝 열려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고종식, 김은아 선교사(필리핀)
    필리핀 아드라 사업을 위해
    4 min
  • [1월 30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아버지 용서하소서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골 3:13, 공동번역)
    부당하게 취급받았다고 느낄 때 생기는 분노나 원한은 좀처럼 삭이기가 힘들다. 그래서 바울은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라고 권한다(골 3:13).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극심한 고통을 견뎌야 할 때가 자주 있다. 어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올림픽 경기에서 자기를 이겨 놓고 나중에 약물 남용으로 드러나 실격당한 여자에 대해 “절대로 용서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살인 사건 재판 도중이나 재판 후에 사람들은 피고인을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런 감정을 유발하는 아픔과 고통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원한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상처와 고통에만 매달리면 신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에도 해롭다. 용서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은 독약을 먹고 나서 상대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 있다. 바울은 용서할 만한 경우에만 용서하라고 말하지 않고 주님께서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서는 무엇보다 용서하는 그 자신에게 가장 큰 효과가 있다. 용서하지 않고 원한을 품기로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 가해자가 통제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한참 시간이 흘러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는데도 피해자의 마음에서는 여전히 그가 머물면서 고통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코번트리의 대성당이 폭격을 당한 뒤 성당 주임 신부인 리처드 하워드는 건물 잔해 안쪽의 제단 뒤에 ‘아버지 용서하소서.’라는 문구를 써 놓았다. 도시가 적군에게 폭격당하고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리처드 하워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알았다.
    용서의 대가는 예수님이시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면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오늘날 그분은 우리 모두에게도 용서의 손길을 펼치신다. 아무도 받을 자격이 없는 용서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형우, 배현경 선교사(일본)
    동경 한인교회 이전 및 건축을 위해
    4 min
  • [1월 29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두 번째 기회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6)
    1849년, 러시아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반정부 활동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고 그해 12월 22일에 총살형을 당하기로 되어 있었다. 사형수는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도스토옙스키는 한쪽에서 자신이 처형될 차례를 기다리며 동료들이 줄줄이 기둥에 묶이는 모습을 보았다. 사형 집행인들이 총을 들었고 사형수들은 발사 명령을 기다렸다. “준비, 조준!” 하는 명령 소리를 들으면서 그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사격 명령은 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에 전령이 도착해 러시아 황제가 그들을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시키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전했기 때문이다. 황제는 진작부터 집행 유예를 허락했지만 그 사실을 최대한 늦게 알려 주고자 했던 것이다.
    몇 년 뒤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이 쓴 소설에서 처형대에 올라 죽음을 기다리는 인물을 묘사했다. 주인공은 만약 삶의 기회가 다시 한번 더 주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며 이렇게 말한다. “1분을 일생처럼 바꾸어 놓겠다. 아무것도 낭비하지 않고 매분을 계산하겠다.”
    인생에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살겠는가?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바꾸겠는가? 사실 모두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 로마서 6장 23절에서는 “죄의 값은 죽음”이라고 말하며 바울은 같은 책 앞부분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게” 되었다고 진술했다(롬 3:23, 쉬운성경).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시기에 모든 사람에게 죄의 형벌을 면할 길을 제공해 주셨다. 우리는 죽어 마땅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다(롬 6:23).
    예수님을 믿는 죄인은 누구나 두 번째 기회를 얻는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 모두는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얻는다. 하나님은 새로운 시작을 주신다. 사형 선고는 취소되고 온갖 것이 가능한 삶이 우리에게 펼쳐진다. 놓치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진수, 이주연 선교사(대만)
    교회 이전과 리모델링을 위해
    4 min

About 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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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