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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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1월 8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왕의 탄생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조지라고 지었다. 온 세상의 눈길이 그에게 쏠린 듯했다.
    언론 매체들은 그 순간순간을 대서특필했다.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왕세손비 사이에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다. 왕실 소식통들이 분 단위로 실황을 전했고 기념품 업계는 매출 대박을 기대했고 따뜻한 분위기가 영국 전역에 흘러넘쳤다.
    놀랍게도 2천 년 전에 베들레헴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을 때는 어떤 매체도 이 소식을 다루지 않았다. 사실 대부분이 그 탄생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아기야말로 참된 왕이었다.
    이 왕족의 탄생은 역사를 바꿔 놓았다. 그날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는 맹인을 보게 하고 청각 장애인을 듣게 하고 불구자를 걷게 하고 병든 자를 치유할 장본인이었다. 이 아기는 혼란에 빠진 이에게 평화를, 비난 대신에 자비를, 죄와 수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베풀 왕이었다. 그는 세상에 둘도 없이 독창적이고 비범한 능력을 지녔고 그의 지혜는 당대 최고의 학자보다도 뛰어났다. 그런데 이 왕족의 탄생은 눈길을 끌지 못했다. 그의 탄생은 오래전에 예언되어 있었지만 여행자들이 거룩한 아기를 찾아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보니 사람들은 그 왕의 탄생을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언론 매체들이 베들레헴의 사건을 대서특필하지 않았어도 이 아기는 세상을 바꾸었고 각 시대 각 사람에게 영생을 선물했다. 이 놀라운 사건을 대다수가 무시하고 넘어가도 베들레헴의 겸손한 아기께서는 여전히 세상을 바꾸신다. 여러분이 승낙한다면 그분은 오늘 여러분의 세상도 바꾸어 주실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광성, 이은정 선교사(대만)
    매일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4 min
  • [1월 7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도발을 당해도 잠잠히

    “그분은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셨으며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정의대로 심판하시는 분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셨습니다”(벧전 2:23, 공동번역)
    여러분이 뱀을 자극하면 뱀은 곧바로 공격을 가하거나 공격 태세를 갖출 것이다. 몇 미터 앞에서 독사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개는 건드리면 짖거나 물고, 고양이는 괴롭히면 쉭 소리를 내거나 할퀴고, 말은 난폭해지면 발길질을 한다. 인간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끼면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며 달려드는 것이 안타깝게도 인간의 면모이다.
    죄의 본성을 지닌 인류에게 베드로전서 2장 23절은 도전장을 제시한다. 예수님은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셨다는 것이다. 인류의 창조주이자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거절만 당한 게 아니다. 악인들은 그분을 처단하려고 음모를 꾸몄다. 그분의 뜻은 곡해되기 일쑤였다. 당국자들은 “기회를 엿보다가 밀정들을 선량한 사람처럼 꾸며 예수께 보냈”고 “예수의 말씀을 트집 잡아 사법권을 쥔 총독에게 넘겨서 처벌을 받게” 하려고 했다. 정작 분통을 터뜨려야 할 쪽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온갖 도발과 자극에도 예수님은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으셨다. 잠잠했고 친절했고 자비로웠다.
    그분은 친구에게 버림받고 제자들에게 배신당하고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 그런 뒤에 두들겨 맞았고 침 뱉음을 당했고 자신의 피를 요구하는 군중의 고함질을 들었다. 온종일 먹지 못하고 밤새 한숨도 잘 수 없었지만 그래도 화내지 않으셨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인 동시에 ‘그렇다.’이다. 자기 힘으로는 그런 의인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예수님이 삶에 함께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대응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불길 앞에서 태연하고 압박을 받으면서도 차분하다면, 저주를 복으로, 악을 사랑으로 갚는다면 이보다 더 강력한 증언이 어디 있겠는가? 예수님은 그리스도인 각자의 삶에서 그분의 성품이 드러나기를 바라신다. 그렇게 되도록 우리가 허락하기만 한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배진성, 정해옥 선교사(인도)
    선교사들의 안전과 영성 관리를 위해
    4 min
  • [1월 6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구속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행 22:4)
    우리는 소름 끼치는 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뉴스는 연일 무시무시한 범죄 행각을 보도하고 사람들은 비난을 쏟아 낸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끔찍한 범죄자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으며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도행전 22장 4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을 무자비하게 박해했다고 고백한다. 또 다른 성경절에서는 자신을 “죄인 중에 내가 괴수”(딤전 1:15)이며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13절)라고 표현한다. 바울은 악당이었고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럼에도 바울은 성경의 여러 책을 기록했고 기독교 역사상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 되었다. 당연히 우리는 그를 하늘에서 만날 것이다.
    서아프리카 국가 라이베리아에 퇴역한 군 지도자 한 명이 있었다. 90년대에 발생한 그 나라의 내전에서 이 지도자 때문에 대략 2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자신이 상상하기도 어려운 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고 진상 조사 결과 그의 주장은 사실로 드러났다. 현재 그는 목회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만행으로 피해를 입은 수많은 가족에게 찾아가 일일이 사과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표징으로 삼길 바라신다고 믿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얼마나 멀어졌든지 그분께서는 그 사람을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사업을 계속하시며 가장 무자비한 사람도 돌이키실 수 있다. 한 가닥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경우라도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잔인한 권력자와 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은 누구나 치러야 할 죄의 값이 있고 그 값은 사망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구속 사업을 벌이고 계신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자신에게는 그 어떤 계획도 어렵지 않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거듭거듭 보여 주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종철, 윤미경 선교사(몽골)
    교회 건축을 위해
    4 min
  • [1월 5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굴복하라는 부르심

    “아그립바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행 26:27)
    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왜 어떤 사람은 신앙을 유지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을까? 두 사람이 똑같이 영적인 유익과 기회를 경험하고 심지어 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도 결과는 전혀 다를 때가 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는 따르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그립바왕에게 바울은 “아그립바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라고 묻고 나서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라고 자문자답한다. 바울에 따르면 아그립바왕은 믿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듣고 있는 말이 진리임을 알았다.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참된 증인이며 바울의 메시지는 진리의 메아리임을 그는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그분께 굴복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심각한 것은 그가 옳고 그름, 참과 거짓을 분별할 줄 알았고 영생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알면서도 끝끝내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그립바의 어리석음을 탓하기는 쉽지만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도 아그립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화와 시대는 많이 바뀌었지만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다름 아닌 마음의 문제이다. 내가 누구에게 굴복해야 할까 하는 문제인 것이다. 아그립바가 그토록 추구한 것은 무엇일까? 명예? 권력? 칭송?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보다 더 숭고하고 더 값진 것, 영원한 것을 찾으라고 부르셨다. 그럼에도 아그립바는 믿음을 버리고 자신의 길을 택했다. 그렇게 아그립바는 구원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복종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면 누구나 하나님께 완벽하게 순종하면서 그 어떤 죄도 짓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복종한다는 것은 시험이자 시련이며 삶의 최상위권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맡겨 버리는 것이다. 내려놓으라. 하나님이 마음대로 하시도록 맡겨 버린다면 여러분은 옳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병섭, 이세주 선교사(대만)
    타이동 교회가 예배소에서 교회로 차질 없이 승격할 수 있도록
    4 min
  • [1월 4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유혹이 극심할 때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시 91:15)
    성경에 따르면 죄는 유혹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삶에서 유혹은 피할 수 없다. 유혹이 모두 사라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날씨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모양만 바뀔 뿐이지 유혹은 늘 존재한다.
    문제는 유혹받느냐가 아니라 유혹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 배우자에게 고함을 지르고 싶거나 남의 물건을 슬쩍하고 싶거나 말을 둘러대고 싶은 유혹이 들 때라도 그 과정에는 유혹을 뿌리칠 기회들이 늘 있다. ‘어쩔 도리가 없었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발생한 일이야.’와 같은 핑계로 유혹의 실체를 얼버무리려 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부르는 자에게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환난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시 91:15)고 보증하신다. 유혹이 다가올 때 하나님을 찾으면 그분이 유혹의 손아귀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께 그럴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인간이 극심한 유혹을 당하면서도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거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매섭게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하나님께 힘을 달라고 기도하면 그분이 도와주실 것이다.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인간적인 능력이나 부족함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유혹을 이겨 낼 수 없다. 그러나 그 어떤 유혹도 하나님의 능력을 이기지는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을 시험에서 건져 내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다. 차분하게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극심한 유혹 속에서 그분을 찾는다면 하나님은 자신의 은혜와 능력을 뚜렷이 보여 주실 것이다. 유혹이 다가올 때 그분께 의지하는 법을 배우고 그렇게 계속 그분을 의지한다면 머지않아 하나님을 찾는 삶이 일상이 될 것이다. 그러면 죄를 이겨 내는 삶도 일상이 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정훈, 정슬기 선교사(러시아)
    사할린 한인교회에 코로나로 낮아진 안식일 출석률이 회복될 수 있도록
    4 min
  • [1월 3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폭탄 돌리기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한 남성이 아파트 14층에서 문이 잠겨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상황이 절박했던 그는 위층에 찾아가 발코니를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밤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돌아와 취한 상태였으므로 그게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판단은 하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추락했고 윗집에서 13층 정도 아래에 있는 이웃 건물의 지붕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놀랍게도 그는 목숨을 건졌고 크게 다치긴 했지만 생각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 죽지 않았으니 대단히 운이 좋았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매일 이와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도 죄를 귀여운 아기 고양이 다루듯 하는 것이다. 하지만 죄란 맹독을 지닌 독사에 더 가깝다. 죄는 치명적이다. 죄 때문에 죽음이 찾아왔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했고, 노아가 살던 시절 온 세상이 물에 잠겼다. 죄의 결과로 모든 재앙과 불행이 생긴 것이다. 죄는 결국 예수님의 생명도 빼앗았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에서는 죄를 그저 ‘재미있는 것’, ‘좀 떨리는 것’, ‘약간 짓궂은 것’ 정도로만 여길 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명 인사들이 줄줄이 도덕적인 추문에 휩싸여도 대체로 사람들은 ‘그게 뭐 대단한 일이야?’라고 반응한다. 한때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부끄럽게 여겼던 일들이 이제는 인기와 성공을 얻기 위한 필수 코스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죄에 익숙해지면 사람들은 그 위험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다. 죄에 무신경한 것은 폭탄 돌리기와 같다. 50미터 높이의 아파트에서 창문을 타고 다른 집으로 넘어가는 행동이나 마찬가지이다. 죄에 대해서는 몸을 사리고 최대한 멀리해야 한다. 죄가 가져다줄 수밖에 없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목숨을 앗아 가는 추락의 위험을 무릅쓰지 말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지성배, 김영란 선교사(파키스탄)
    재정적 어려움으로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의 장학금 지원을 위해
    4 min
  • [1월 2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수적 열세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삿 7:7)
    성경에서 기드온의 이야기는 놀랍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이스라엘 군사를 이끌고 미디안에 맞서 싸우라고 명하셨는데 3만 2,000명은 적군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수였다. 성경은 적군을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다고 표현한다(삿 7:12). 이렇듯 기드온이 이길 확률은 매우 낮았는데도 하나님은 기드온의 군사를 300명으로 더 줄이셨다. 기드온은 300명을 데리고 엄청난 군대에 맞섰고 전쟁에서 승리했다.
    하나님은 왜 기드온의 병력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줄이셨을까? 3만 2,000명으로 승리한다고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대거 이탈한 뒤에 남아 있던 1만 명을 데리고 승리했어도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적군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그런데 기드온이 눈앞의 어마어마한 적군을 고작 300명으로 물리쳤다면 그 승리의 비결은 단 한 가지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에 앞서 아무리 해도 안 될 것 같은 상황 속에 그들을 놔두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구원받는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해방, 하나님의 치유이다. 한편 다윗의 인구 조사는 그와 정반대의 상황이다. 인구 수효를 확인했다면 다윗과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힘으로 승리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으로 구원과 번영, 행복이 이른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기 바라신다.
    기드온처럼 절망적인 상황일 때도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우리는 보잘것없는 존재가 아니라 넘볼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적으로 전혀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승리를 가져다주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권순범, 강지희 선교사(대만)
    베이툰 교회 건축을 위해
    4 min
  • [1월 1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영광의 소망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
    우리는 대쟁투에 휘말려 있다. 이것은 우주에서 가장 어두운 세력이 하늘의 하나님과 맞서며 벌이는 싸움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태초에 창조된 인간들에게 타락한 천사들은 악의를 품고 있다. 사탄은 6천 년 동안의 죄로 쇠약해진 인간들을 분노의 표적으로 삼고 있다.
    그에 대응해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온전히 교제할 수 있는 길을 인류에게 알려 주신다. 그분은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으라 하시며,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고, “하나님의 계명과…믿음을 지키는 자”가 되라고 촉구하신다(골 3:10; 벧전 1:15; 계 14:12). 그뿐 아니라 성경에서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 그대로가 될 수 있는지를 알려 준다.
    바울은 골로새서 1장에서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다고 이야기한다(26절). 그리고 그 ‘비밀’이 가리키는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라고 설명한다(27절).
    이 엄청난 전투에서 단 한 사람도 붙잡혀 갈 필요가 없다. 보이지 않는 원수로부터 우리를 지키려고 천사들이 에워쌀 만큼(시 34:7) 이 싸움은 맹렬하지만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길을 마련해 놓으셨다.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과 우리의 나약함을 하나님은 잘 알고 계신다. 6천 년의 죄악으로 얼룩진 우리가 원수에게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시기에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거듭날 수 있는 ‘비밀’을 보여 주신다. 그 비밀은 바로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다. 패배한 죄인에게는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을 힘입어 회복되고 재창조될 수 있다는 약속이 주어진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두운 세상에서 방황하도록 홀로 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만이 아니다. 가까이 계시는 것 그 이상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이야말로 성경의 위대한 약속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영광의 소망”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전 세계 선교지에서 섬기는 선교사들을 위해
    4 min
  • [12월 31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인류의 보증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그때 하나님이 계시는 도성의 문들이 활짝 열리고 황홀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천사의 무리가 그 문들을 통해 들어갑니다.
    그곳에는 보좌가 있고 주위에는 무지개가 둘려 있습니다. 그룹과 스랍들도 있습니다. 하늘 군대의 지휘관들과 타락하지 않은 세계의 대표자들이 모입니다. 전에 루시퍼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을 고발했던 하늘 의회, 곧 죄가 없는 세계의 대표자들이 거기서 구주를 환영합니다. 예전에 사탄은 그들도 자신의 손아귀 아래 두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왕이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힘껏 경축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데 그분은 손을 들어 그들의 경배를 멈추게 하십니다. 아직 영광의 화관과 왕의 옷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아버지께로 나아가 자신의 상한 머리와 옆구리와 상처 난 발을 보이고, 못 자국이 나 있는 손을 들어 보이십니다. 그분은 승리의 증표들을 가리키며 요제(搖祭)의 곡식단, 즉 자신과 함께 부활한 자들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무덤에서 일어날 큰 무리를 상징합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해도 즐거워하고 기뻐 노래하시는 아버지께로 그분이 다가가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땅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이미 인류가 사탄에게 정복당할 경우를 대비해 인류를 구속하기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두 분은 손을 굳게 잡고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보증이 되기로 엄숙히 서약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서약을 이루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라고 부르짖었을 때 그분은 아버지께 그 사실을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계약이 완전하게 이행되었기에 그분은 이제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아버지, 다 이루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시여! 제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구속 사업을 마쳤습니다. 아버지의 공의가 충족되었다면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해 주십시오”(요 17:24).
    공의가 충족되었다고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울려 퍼집니다. 사탄은 정복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고생하며 힘겹게 싸우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엡 1:6) 영접을 받습니다.
    『시대의 소망』, 833~834
    4 min
  • [12월 30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둘째 아담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 15:47)
    구주께서 마음속에 그분의 평화를 넣어 주시면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완전한 일치를 이룰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과 말씀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다루는 모든 과정에서 자신의 말씀을 높이십니다. 말씀은 그분의 뜻이며 사람들에게 나타난 그분의 음성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 이외에는 그분의 자녀들에게 알려 줄 새로운 뜻이나 진리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나오는 분명한 가르침과 어울리지 않는 어떤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것을 의심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것은 하늘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는 성경에 계시된 예수님에 관한 지식에서 얻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근원에서 얻는 행복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화는 변함없이 꾸준합니다. 그것은 삶의 상황이나 세속적인 물질의 많고 적음이나 세상 친구들의 수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생명 샘이시므로 그분에게서 나오는 행복과 평화는 결코 쇠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불순종하여 잃어버린 하늘나라를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순종으로 되찾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범죄 한 탓에 그의 후손들도 그의 범죄와 그 결과에 동참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아담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께로 피하는 아담의 모든 후손은 죄의 형벌을 피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담이 통과하지 못한 시험을 견디시고 인간을 위해 하늘나라를 되찾으셨습니다. 그분이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셨으므로, 구속의 계획을 올바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범하고서는 구원받을 없음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을 범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은덕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믿음과 행함』, 88~89
    0 min

About 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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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