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Download on the App Store

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12월 19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결코 지는 법이 없으신 조력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사 41:10)
    지금은 예수께서 하나님 앞에 올라가셔서 우주의 보좌에 함께 앉으셨지만 자비로운 그분의 본성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괴로움 당하는 모든 인간을 향해 그분의 부드럽고 동정적인 마음은 오늘도 똑같이 열려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백성에게 더 큰 은혜를 베풀려고 못 박히신 분의 손이 오늘도 펼쳐져 있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라고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바친 영혼은 그분의 눈에 온 세계보다 더 귀중합니다. 구원받아 그분의 왕국에 이르는 사람이 한 명뿐일지라도 구주께서는 갈보리의 고통을 당하셨을 것입니다. 자기 목숨과 바꾼 사람을 그분은 단 한 명도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따르는 사람이 스스로 떠나기로 결정하지 않는 한 그분은 그들을 꼭 붙잡으실 것입니다.
    어떤 시련을 겪든지 우리에게는 결코 지는 법이 없으신 조력자가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홀로 유혹과 싸우고 악에 맞서다가 끝내 부담과 슬픔에 짓눌리도록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지금은 비록 우리 눈에 예수님이 보이지 않지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우리는 믿음의 귀로 들을 수 있습니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계 1:17~18). 그분은 “나는 너의 슬픔을 견뎠고 너의 투쟁을 경험했고 너와 같은 유혹을 당했다. 너의 눈물을 알고 있다. 나도 역시 울었다. 인간의 귀로 차마 들을 수 없는 극한 슬픔을 나는 안다. 쓸쓸하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너의 고통에 이 세상 그 누구도 마음을 쓰지 않는다 해도 나를 바라보고 살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목자가 자기의 양을 사랑한다 할지라도 사실은 자기 자녀들을 더욱 사랑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일 뿐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이십니다.
    『시대의 소망』, 480~483
    0 min
  • [12월 18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구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 3:10)
    바울은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마쳤습니다. 그곳에서 목회하면서 그는 끝없는 수고와 수많은 시련 그리고 깊은 고뇌의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는 공공장소에서 또는 가정에서 사람들을 가르쳤고 수많은 눈물로 그들에게 교훈하며 훈계했습니다. 바울은 지속적으로 유대인들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그들은 호시탐탐 바울을 대적하며 민중의 감정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런 반대에 맞서 지치지 않는 열성으로 복음 사업을 진전시키고 아직 연약한 교회의 이익을 보호하는 동안에도 바울은 모든 교회를 위한 무거운 부담을 안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세운 교회에서 들려오는 배도의 소식 때문에 그는 매우 슬펐습니다. 그는 그들을 위한 자신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지 않을까 염려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업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용된 방법에 대해 알고 나서 여러 밤을 기도와 염려로 지새웠습니다. 기회가 생기면 바울은 교회의 상황에 맞게 책망과 권고, 권면과 격려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서신들 안에서 사도는 자신의 시련에 관하여는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한 자신의 수고와 고통에 대하여 간혹 암시를 남겼습니다. 태형과 투옥, 추위와 굶주림, 산과 바다의 위험, 도시와 광야의 위험, 동족과 이방인과 거짓 형제의 위험 등 이 모든 것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견뎠습니다. 바울은 “비방”과 “욕하는 소리”를 들었고,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으며, “답답한 일”과 “사방에서 억눌림”을 당했고,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며”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을 당했습니다.
    두려움을 몰랐던 사도조차 지속적인 반대의 폭풍과 원수들의 발악 그리고 동료들의 외면 가운데서 낙심에 빠질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갈보리를 떠올리며 새로운 열정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에 전진했습니다. 그는 단지 그리스도께서 자기보다 먼저 밟고 가신 피 묻은 길을 따라갈 뿐이었습니다. 그는 구주의 발아래서 자신의 갑옷을 벗을 때까지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기를 구했습니다.
    『사도행적』, 296~297
    0 min
  • [12월 17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모든 진리의 창시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리스도께서 오랫동안 금식하여 기진하셨을 때 세상의 임금이 그분께 와서 돌들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해 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수립된 하나님의 계획은 그리스도께서 굶주림과 가난과 인간적인 모든 경험을 맛보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인간이 구하면 얻을 수 있는 힘을 활용해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보좌를 붙잡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으면 그리스도께서 얻으셨던 동일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거룩한 성품에 참여할 수 있고 누구든지 시험과 시련 가운데서 천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신의 능력이 어디에서 말미암는지를 보여 주신 이유는 절대로 인간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 자기 능력만을 의지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승리하려면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거룩한 능력을 얻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모본이 되셨고 인간이 거룩한 성품의 참여자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정욕으로 세상에 임한 더러움을 피하면 그럴 수 있습니다. 사탄은 그리스도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는 구속주의 영혼 위에 발을 올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분의 머리가 아니라 겨우 발꿈치를 상하게 했을 뿐입니다. 인간이 완전무결하게 죄를 이겨 낼 수 있음을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모본으로 입증하셨습니다. 인간은 악을 물리칠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능력은 이 땅이나 사망이나 지옥이라도 이길 수 없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힘입으면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듯이 우리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업은 복음으로 진리를 제시하고 타락한 인류에게 교훈과 원칙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제시한 모든 사상은 그분의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다른 사람의 사상을 차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모든 진리의 창시자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만물보다 먼저 계셨고 자신의 교훈을 통하여 모든 시대에 필요한 영적인 지도자가 되셨습니다.
    『가려 뽑은 기별 1권』, 408~409
    0 min
  • [12월 16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오시기로 약속된 분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요 1:30)
    침례 요한은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사건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소년 시대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셨던 일과 랍비들과 대화하면서 생긴 일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그는 죄가 없으셨던 예수님의 생애에 대하여 알았으며 그가 메시아이심을 믿었지만 아직 결정적인 확신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그처럼 여러 해 동안 은둔해 계시고 자신의 사명에 대해 특별한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았기에 그분이 과연 ‘오시기로 약속된 분’이실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이르면 모든 것이 다 분명해지리라고 믿으며 기다렸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메시아가 침례를 요구할 것이며, 그때 그의 신성이 나타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면 메시아를 백성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기 위해 오셨을 때 요한은 전에 어떤 사람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순수한 성품을 그분에게서 보았습니다. 그분이 계신 그 자리는 분위기까지도 거룩하고 엄숙했습니다. 요한은 요단강에서 자기 주위로 모여든 무리로부터 어두운 범죄 이야기들을 듣고 죄 짐에 눌린 사람들을 접촉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분처럼 신령한 감화를 나타내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은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메시아에 관하여 요한에게 계시된 것과 일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요구에 응하기를 주저했습니다. 죄인인 그 자신이 어찌 죄가 없으신 분에게 침례를 베풀 수 있단 말입니까? 침례는 죄를 고백하며 그것을 씻는 의식인데 어찌 회개할 필요가 없으신 분께서 그런 의식에 순복해야 한단 말입니까?
    『시대의 소망』, 109~110
    0 min
  • [12월 15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손님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차분한 가정, 흥미 있게 듣는 사람을 우리 주님은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적인 친절과 예의와 애정을 갈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기울이시는 하나님의 관심을 사람들이 더 온전하게 깨닫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군중은 말귀가 어두웠고 그리스도는 공중 봉사의 피곤한 투쟁에서 벗어나 베다니의 가정에서 안식처를 얻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분은 식별력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섭리의 책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 사적인 모임에서 그분은 뒤섞인 군중에게는 전하지 않았던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
    그리스도께서 놀라운 교훈을 주실 때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발 앞에 앉아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반면에 음식 준비하는 일로 정신이 없었던 마르다는 예수님께 나아와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베다니에 처음 방문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구주와 제자들은 여리고에서 걸어와 힘든 여정을 마치고 막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마르다는 그들을 접대하기 위한 준비에 신경을 쓰다가 손님에게 갖추어야 할 예의를 잊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온화하고 느긋하게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했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마리아는 구주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귀중한 말씀으로 그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마르다에게 필요한 “한 가지”는 침착하고 헌신적인 정신과 장래와 영생에 관한 지식을 깊이 갈망하는 마음 그리고 영적인 향상에 필요한 은혜였습니다. 마르다는 잠시 후면 사라질 일을 위해서는 덜 염려하고, 영원한 일을 위해서는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시대의 소망』, 524~525
    0 min
  • [12월 14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고통의 달인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마지막 고통을 겪는 순간에도 예수님은 슬픔에 빠질 홀어머니를 위한 준비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와 같은 정신은 주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에게도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 공양을 신앙의 일부로 여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에 간직한 사람은 부모에게 세심한 보살핌과 자상한 동정을 베풀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영광의 주께서는 인류를 위한 대속물로서 죽어 가고 계셨습니다. 그 귀중한 생명을 바칠 때 그리스도께서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숨 막힐 듯이 침울했습니다. 그분을 억누른 것은 죽음의 공포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의 고통과 치욕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민에 빠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통의 달인이셨으나 그분의 고통은 죄의 잔혹함을 실감하는 데서 오는 고통, 죄악에 친숙한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 심각성을 아는 데서 비롯한 고통이었습니다. 죄가 인간의 마음속에 너무도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죄의 권세를 깨뜨리고 나오려는 사람은 너무도 적었습니다. 그분이 보시기에 하나님의 도움이 없다면 인간은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대속자요, 보증이신 그리스도께 우리 모두의 죄가 얹혔습니다. 율법의 단죄로부터 우리를 구하기 위해 그분은 범죄자로 취급받았습니다. 아담의 모든 자손의 죄가 그분의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곧 불법에 대한 그분의 지독한 불쾌감에 아들의 영혼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타락한 세상에 아버지의 자비와 용서와 사랑을 전하는 복음의 기별이었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는 것이 그분의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은 자신이 짊어진 엄청난 무게의 죄 때문에 화해를 청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고뇌가 절정에 이른 시간에 하나님이 구주로부터 얼굴을 돌리심으로 인간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 그분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이 고뇌가 너무도 컸기 때문에 그분은 육체적 고통을 거의 느끼실 수조차 없었습니다.
    『시대의 소망』, 752~753
    0 min
  • [12월 13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지켜보시는 분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잠 15:3)
    역사의 활동 무대에 등장한 나라마다 이 땅에서 자기 영역을 차지하도록 허용되었습니다. 지켜보시는 분, 거룩한 분의 뜻을 과연 그 나라들이 이룩해 내는지 마는지를 똑똑히 확인할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예언은 세계의 대제국, 곧 바벨론, 메대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출현과 성장 과정을 추적합니다. 군소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이 모든 나라에서도 역사는 반복되었습니다. 각 나라에 시험 기간이 주어졌고 시험에 실패하면 그들의 영광이 사라지고 능력이 떠나갔습니다.
    그 나라들 역시 하나님을 거절하면 그 결과로 멸망을 자초했습니다. 그럼에도 절대적이고 거룩한 목적은 각 시대를 통하여 분명하게 작용했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이 갈대아 지역에 유배되어 있을 때 그에게 이와 같은 놀라운 장면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시야에는 세상 통치자들을 다루시는 절대적인 분의 능력이 여러 상징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발강 언덕에 있던 에스겔은 북방에서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겔 1:4). 서로 교차하는 여러 바퀴가 네 생물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았습니다(겔 1:26). 그리고 “그룹들의 날개 밑에 사람의 손 같은 것”(겔 10:8)이 있었습니다. 바퀴들은 매우 복잡하게 배열되어 처음에는 혼잡해 보였으나 그것들은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움직였습니다. 그룹의 날개 아래 있는 손에 의해 유지되고 인도되는 천상의 존재들이 이 바퀴들을 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위에 놓인 사파이어 보좌에는 영존하시는 분께서 계셨고 보좌 주위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바퀴와 같은 복잡한 것들이 그룹의 날개 아래 있는 손의 지도를 받듯이 인간의 복잡한 사건들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습니다. 나라들의 분쟁과 소요 속에서도 그룹 위에 좌정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이 지상의 일들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선지자와 왕』, 535~536
    0 min
  • [12월 12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오류가 없는 진리의 근원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그리스도의 말씀에는 불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산상 보훈은 일종의 뛰어난 작품이지만 어린이도 알 수 있을 만큼 단순합니다. 축복의 산은 그리스도께서 밟으셨던 영적인 향상을 상징합니다. 그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분은 하늘의 권위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가장 높은 인류의 야망과 가장 심오한 탐구조차 비교할 수 없는 고상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진리로 가득합니다. 그분은 인류에게 드리워진 참혹한 파멸을 익히 아시고, 자신의 의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셔서 확실한 소망의 보증과 완전한 구원을 세상에 가져다주셨습니다.
    불신앙이 횡행하고 죄악이 만연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교육 현장에서 차선 순위로 밀려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부차적인 것들에 마음을 빼앗긴 교사가 수두룩합니다. 진리의 형식에 불과한 수많은 전통이 세상 학교에서 제공하는 학습 과정에 도입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가르침이 힘을 얻는 이유는 그 내용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주장이 강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의 교사들은 과거의 교사들이 가졌던 능력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사상가들의 말에 아무리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해도 제1원리, 즉 오류가 없는 진리의 근원이신 분에게 이르기란 불가능합니다. 세상은 고통스러운 불확실성 가운데 있으며 확신에 도달하고자 끊임없는 연구를 반복하고 있지만 확신은 오직 하나님 안에 있을 뿐입니다. 인간이 위대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런 주장은 확실하지 않고 신뢰할 수도 없습니다. 영혼의 구원은 그런 주장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지식을 습득하면 마치 보화를 얻은 듯 여기며 성경은 제쳐 둡니다. 그리고 성경에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는 보화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무시합니다. 인류가 말씀 연구와 순종하는 삶에 실패했기에 세상에 혼란이 이르렀습니다. 인류는 그리스도의 지도를 저버리고 큰 반역자와 어둠의 임금에게 이끌렸습니다. 그래서 낯선 불이 거룩한 불과 섞였습니다.
    『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439~440
    0 min
  • [12월 11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위대한 치료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혼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생명의 원칙과 강력한 감화력으로 마음에 품는 모든 사람은 죄의 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살아 있는 기별처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존귀한 말씀을 하나님 아들의 살처럼 여기며 먹어야 합니다. 증언이 무기력하고 따분해서는 안 됩니다.
    의심을 키우기보다 모든 말과 태도와 행위를 통하여 믿음을 강화하십시오. 우리는 영적으로 진실한 생명을 받고 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생명, 곧 살아 계신 구주께서 계시다고 사람들에게 알리십시오. 모래 위에 있는 자들을 인도해서 반석 위에 서게 하십시오. 세상에는 회복시켜야 할 영혼들과 구원의 기쁨을 알아야 할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과오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른 성품을 기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쁨을, 심지어 그분에게 기름 부음 받는 기쁨을 회복시키십니다. 이러한 기쁨은 만족과 행복과 거룩한 확신을 보여 주고 살아 있는 기별을 제시할 것입니다. 바른길에서 벗어난, 가난하고 낙심한 자들에게 실망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십시오. 누구든지 그리스도께로 오면 치유받고 깨끗해집니다.
    …구름이 영혼을 뒤덮을 때도 그리스도는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분이자 인류의 불행을 고칠 위대한 치유자가 아니면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습니다(요 6:68). 주를 신뢰하고, 사랑으로 행하며,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믿음을 지닌 모든 자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요 15:11; 히 11:6).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야 할 영적인 신경과 근육에 일종의 마비가 일어났습니다. 지금 당장 일어나십시오. 지체하지 마십시오.
    Letter(편지), 1896년 93
    0 min
  • [12월 10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디딤돌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벧전 2:6)
    하나님이 선포하신 그 민족은 왕 같은 나라요, 특별한 백성이며 거룩한 제사과 같았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의 피를 요구하는 외침을 들었고 그들이 구주를 못 박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겪을 고뇌가 그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구주께서 승천하시는 장면을 보고, 자신이 친히 구주를 모시고 영원한 문을 여는 자 중 하나가 될 것을 알았을 때, 모세의 얼굴 표정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말과 글로 표현하거나 묘사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과 영광이 그의 얼굴에서 빛났습니다. 모세는 변화산에서 그리스도를 위로했던 사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을 당시에 함께 부활하여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에게 나타났던 무리에 대한 장면이 그에게 제시되었습니다. 밤에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시신을 훔치지 못하도록 무덤을 지켰던 로마 병사들은 매수되어 거짓을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이 무리의 부활은 죽음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의 부활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아들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르치는 진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사탄은 그들의 사업을 방해할 별도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했듯 아버지와 그분의 율법을 거부하도록 그는 사람들을 선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늘과 땅에서 그분의 통치의 기초가 됩니다. 그러나 인류는 사탄에게 속아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초림을 예언한 구약 성경을 이제 하찮게 취급합니다. 그러고는 “그리스도, 그리스도, 복음, 복음!”을 외칩니다. 그러나 복음이란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가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구주로 초림 하신다는 모든 예언에 복음이 계시되었습니다. 사람을 죄에서 돌이키거나 용서하는 옛 시대의 행위는 모두 장차 오실 구주와 관련하여 행해진 것입니다. 그분은 인류를 끌어 올리는 디딤돌이 되셨습니다.
    『Manuscript Releases(발행 원고)』 제10권, 155~156
    0 min

About 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From the publisher's feed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