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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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11월 29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해와 달과 별의 빛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요일 1:5)
    하나님이 백성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 빛은 항상 그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빛이 어둠에서 비쳐 나왔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에, 밤에는 불기둥에 둘러싸인 빛이 이스라엘 대군을 인도했습니다. 시내산에서는 빛이 여호와를 둘러싼 장엄한 광경과 더불어 번쩍였습니다. 또 빛은 지성소 안의 시은좌 위에 머물렀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을 봉헌할 때도 성전은 빛으로 충만했습니다.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구원의 기별을 가져왔을 때에도 빛이 베들레헴의 들판을 비추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과 하나님이 하나임을 선언하셨고 자신과 온 인류의 관계를 나타내셨습니다. 태초에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게 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고후 4:6). 그분은 해와 달과 별의 빛이십니다. 그분은 상징과 표상과 예언으로 이스라엘을 비춘 영적인 빛이셨습니다. 그러나 유대 민족에게만 그 빛이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햇빛이 세상의 가장 멀고 구석진 곳까지 빛을 비추듯 의의 태양께서 모든 영혼에게 빛을 비추십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위대한 교사들, 뛰어난 지성과 심오한 연구 능력을 갖춘 사람들, 말로써 사상을 자극하고 광대한 지식의 분야를 개척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민족의 안내자와 보호자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높은 분이 계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2, 18). 우리는 인간의 기록이 미치는 먼 옛날까지 세상의 위대한 교사들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빛은 그들보다도 먼저 있었습니다. 달과 행성이 모두 태양의 빛을 반사하여 비추는 듯 진실을 가르치는 세상의 위대한 사상가들도 의로운 태양이신 분의 빛을 반사합니다. 주옥같은 사상이나 빛나는 지성 하나하나가 세상의 빛이신 그분에게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시대의 소망』, 464~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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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28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이스라엘의 왕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민 24:5~6)
    이 구절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번영을 자연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풍부한 수확물로 덮인 비옥한 골짜기와 마르지 않는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무성해진 동산 그리고 향기로운 침향목과 곧게 뻗은 백향목에 비유했습니다. 그중 마지막 묘사는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적절한 표현입니다. 동방 사람들은 누구나 레바논의 백향목을 소중하게 취급했습니다. 사실 백향목류에 속하는 나무는 세계 어느 곳에 가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열대 지역에서 냉대 지역에 이르기까지 더위에도 잘 자라고 추위에도 잘 견디는 백향목류는 물가에서는 매우 무성하게 자라고, 찌는 듯이 무덥고 메마른 황무지에서도 높게 성장합니다. 이 나무들은 바위산에서도 뿌리를 깊이 박고 있기 때문에 폭풍우에도 끄떡없습니다. 겨울에 다른 나무의 잎사귀가 모두 말라 죽어도 백향목의 잎사귀는 여전히 푸릅니다. 그중에서도 레바논의 백향목은 그 강도와 밀도와 방부성이 남달리 탁월합니다. 그래서 이 나무는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는 자들을 상징하는 데 사용됩니다(골 3:3). 성경에 따르면 “의인은…백향목같이 성장”(시 92:12)합니다. 하나님은 백향목을 삼림의 왕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잣나무가 그 굵은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가 그 가는 가지만 못하며 하나님의 동산의 어떤 나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합니다(겔 31:8). 백향목은 왕을 상징하는 데 종종 사용됩니다. 의인을 백향목에 빗댄 성경의 용례에서는 하늘이 하나님의 뜻 행하는 자들을 어떻게 여기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 왕이 아각보다 위대하고 강대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아각이란 그 당시에 매우 강성한 민족인 아말렉의 왕들에게 붙여진 칭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충성하는 한 이스라엘은 모든 원수를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장차 이 세상에 그분의 보좌가 세워질 것이며 그 권세는 세상 모든 나라 위에 뛰어날 것입니다.
    『부조와 선지자』,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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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27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무한하신 조력자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시 147:5)
    가톨릭 종교가 매력적이지 않고 그 예배는 지루하며 쓸데없는 의식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기만에 기초하지만 단순히 조잡하고 서투른 속임수가 아닙니다. 로마 교회의 종교 의식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 아름다운 장식과 엄숙한 의식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이성과 양심의 소리를 잠재웁니다. 눈을 현혹시킵니다. 화려한 건축물과 위풍당당한 행렬, 금제단과 보석으로 장식된 신당, 수준 높은 그림들과 정교한 조각상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채워 줍니다. 귀도 사로잡습니다. 이 세상에 음악을 능가하는 것은 없습니다. 깊은 톤으로 울리는 오르간의 풍부한 음색은 대성당의 높고 둥근 천장과 기둥 사이로 퍼지는 여러 음성의 멜로디와 어우러져 사람의 마음을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채우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죄에 시달린 영혼의 갈망을 조롱하는 듯한 외적인 화려함과 과시와 의식은 내적인 부패의 증거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종교는 그런 매력으로 눈길을 끌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뿜는 빛 아래 있는 진실한 기독교는 너무도 순수하고 아름답기에 겉치레는 오히려 본래의 가치를 가려 버리는 방해물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께 가치 있는 것은 경건의 아름다움과 온유하고 조용한 심령입니다.
    스타일의 걸출함이 순수하고 고상한 사고의 지표는 아닙니다. 차원 높은 예술성과 정교한 세련미는 순전히 세속적이고 관능적인 정신에서 비롯할 때가 많습니다. 사탄은 종종 그러한 것들을 사용해 영혼에 필요한 것을 잊게 하고, 장래에 누릴 불멸의 삶을 보지 못하게 하며, 무한하신 조력자에게 등을 돌리고 이 세상만을 위해 살게 합니다.
    변화되지 않은 마음에는 외형적인 종교가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거창한 가톨릭 예배 의식은 수많은 사람을 기만하는 매혹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로마 교회를 마치 하늘에 들어가는 출입문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진리의 기초 위에 굳게 발을 딛고 성령으로 마음이 새롭게 된 자들 외에는 아무도 로마 교회의 영향력에 맞설 수 없습니다.
    『The Signs of the Times(영문 시조)』, 1898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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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26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안식일의 주인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 12:8)
    무덤의 암울함을 밝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유일한 빛이 그들에게 비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집은 그들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랍비들의 전통을 깨뜨리고 그들의 권위를 무시하셨기에 그들은 그분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때와 장소와 상황 그리고 심각한 의회 분위기 이 모두가 합쳐져서 예수님이 산헤드린 앞에서 전한 말씀은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 나라 최고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회복자라고 선언한 예수님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께서는 안식일 법을 위반했다는 혐의에 대해 답변하도록 지상의 법정에 기소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선포하자 심문자들은 경악하고 격노한 감정으로 그분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반박할 수 없었기에 그분을 정죄하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심문하고 자신의 사업을 방해하려는 제사장들과 랍비들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그들에게 이러한 권위를 부여하신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자신들의 교만과 오만에 근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혐의를 씌우는 그들의 고소와 심문을 거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관원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 사과하거나 그 행위의 목적을 설명하시기보다 그들에게 맞섰고 그렇게 피고와 원고의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고집불통인 데다가 성경에 대해서도 무지하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배척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한 것이라고 그분은 선언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역사와 교훈, 예언을 막론하고 구약 성경의 모든 페이지는 하나님 아들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유대교의 모든 제도는 하나님이 제정하셨으며 그것은 복음을 가리키는 일종의 압축된 예언이었습니다.
    『시대의 소망』,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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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25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슥 2:8)
    소심한 아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때 비로소 삶을 버겁게 하는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시 34:7)라는 약속을 아이의 마음에 새겨 주십시오. 엘리사가 어느 산성에서 경험했던 놀라운 이야기를 읽게 하십시오. 엘리사가 원수의 군대에 포위되어 있을 때 둘 사이에는 강력한 천사들의 군대가 있었습니다. 또 사형 선고를 받고 투옥된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난 이야기를 읽게 하십시오. 그 천사는 무장한 병사들, 육중한 옥문들, 빗장을 걸어 놓은 철창문을 지나서 하나님의 종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바울이 만났던 바다의 광경에 대해서 읽게 하십시오. 폭풍우에 시달린 병사와 선원들이 고역과 불안과 여러 날의 굶주림으로 지쳤을 때 심문과 선고를 앞둔 수감자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능력의 통로가 되어 줄 믿음의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그때 못지않은 놀라운 방법으로 활동하실 것입니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 자립심이 없어서 선뜻 관리나 책임을 맡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세상에서 무익한 존재가 될 뻔했던 많은 사람이 바울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부당한 취급에 대하여 쉽게 분개하는 아이에게 믿음은 값진 교훈을 줍니다. 악에 대항하거나 잘못을 응징하려는 성격은 예민한 정의감과 적극적이고 의욕적인 기질을 지녔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아이에게는 하나님이 영원한 정의의 수호자이심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고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를 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고 다정하게 돌보시는 분입니다. 악을 행하는 모든 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교육』, 25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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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24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동정심 넘치는 구주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막 9:22)
    우리를 하늘과 연결시키고 흑암의 권세와 겨루어 싸울 힘을 주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악한 기질을 굴복시키고 그 어떤 시험이라도 모두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그리스도 안에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여기면서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져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무력함과 무가치함을 느끼더라도 동정심 넘치는 구주의 자비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자신을 보지 말고 그리스도를 쳐다보십시오. 사람들과 함께 거하면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마귀를 쫓아내신 그리스도는 오늘날도 똑같이 전능하신 구속주이십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는 그분의 약속을 굳게 붙잡으십시오. 그분의 발아래 나아가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당신께서 도와주소서”라고 부르짖으십시오.
    …사랑받은 제자들은 잠깐 사이에 영광과 치욕의 양극단을 보았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기도 하고 사탄의 모양으로 전락하기도 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들은 산 위에서 예수님이 하늘의 기별꾼들과 만나는 모습을 보았고, 눈부신 빛 가운데서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산에서 내려온 뒤에는 매우 거북하고 역겨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일그러진 얼굴로 이를 갈며,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고통에 경련을 일으키는, 귀신 들린 소년이 예수님 앞에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제자들 앞에서 영광을 받으셨던 위대한 구속주께서는 몸을 굽혀, 땅 위를 뒹굴고 있는 사탄의 희생자를 일으키시고 그의 심신을 회복시켜서 그의 아버지와 가족에게 돌려주십니다.
    이것은 구원에 관한 실물 교훈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신 거룩하신 분께서는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몸을 굽히십니다. 이것은 또한 제자들의 사명을 상징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예수님과 산 위에서 영적인 깨달음을 얻으며 시간을 보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는 아래에 내려가 할 일이 있습니다. 사탄에게 사로잡힌 영혼들이 자기를 해방시켜 줄 믿음의 말과 기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대의 소망』,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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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23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죄악 세상을 위한 보증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째 나아가서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또다시 흑암이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으로 그분의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에게 위안이 되는 말, 자기를 짓누른 어둠의 속삭임을 물리칠 위로의 몇 마디를 건네줄 친구를 또다시 간절히 찾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어떻게 대답해야 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고뇌의 피땀으로 얼룩진 그분의 얼굴을 보고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분의 모습이 그 어느 사람들보다 더 상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나아가서 가능하면 이 잔이 자신에게서 옮겨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의 마음에는 죄의 결과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분리되리라는 극도의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사탄은 그분에게 말하기를 만약 그분이 죄악 세상을 위한 보증과 대속물이 된다면 두 번 다시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없으며 자신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세 번이나 기도를 올리셨지만 항상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마치셨습니다. 그 잔이 고난당하는 종에게서 지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세상의 기초가 세워지기 전에 계획되었고, 아담의 범죄 이후에 바쳐진 모든 희생 제물이 상징했던 그리스도의 희생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천사들이 살펴보고 깨닫고자 간절히 원했고, 예언 속에서 반복되었으며, 원형과 그림자의 기초가 되었던 것이 끝내 수포로 돌아가 사탄과 반역의 무리와 악의 동맹에게 승리를 안겨 줄 수는 없었습니다.
    아,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얼마나 많은 고난을 이미 치르셨던가요?
    『The Signs of the Times(영문 시조)』, 1897년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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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22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긍휼히 여기는 중보자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시 103:13)
    그리스도께서 하늘 법정에서 탄원하고 계시는 영혼에 대해 우리가 무관심해서야 되겠습니까? 무자비한 바리새인, 비난하고 파괴하려 사탄을 따라 행동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대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뻣뻣하고 차가운 마음을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탄의 음성을 멀리하고, 그의 뜻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그와 반대로 예민하고 부드러운 배려심의 소유자요 괴롭고 고통당하는 자들의 처지를 자신의 처지로 여기는 예수님의 곁에 서서 그분의 성품을 배우십시오. 더 많이 용서받은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중보자이며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십니다. 하늘의 주재시요, 영광의 왕이신 그분은 사탄의 계략이 지닌 파괴력을 아시며, 그의 유혹에 굴복하는 유한한 인류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7~18).
    형제여, 그대에게 호소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길을 따라 행하기를 연습하십시오. 그대는 절대로 냉정함의 옷을 입고 유혹에 넘어간 자들을 비난하거나 정죄하거나 작은 무리에서 내쫓지 마십시오. 그와 반대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동역자가 되어 영적으로 병든 자들을 치유하여 주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십니다(사 40:28). 그분의 마음을 가졌다면 이것이 그대가 해야 할 일입니다.
    Manuscript(원고), 1893년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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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21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진정한 교육자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잠 2:6)
    마지막 시대를 위한 진리가 첫째와 둘째와 셋째 천사의 기별의 선포를 통하여 세상에 알려졌을 때 우리는 우리 자녀들의 교육에 다른 형태의 질서가 도입되어야 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의 사업은 개혁적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의 교육 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사업의 탁월성을 통하여 사람들이 멸망해 가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한 마지막 큰 노력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우리 교육 기관들은 수준을 낮춰서는 안 됩니다. 지금보다 수준을 더 높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이 단순히 교과서의 지식에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과서만으로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훈련을 제공할 수 없고, 진정한 지혜를 줄 수 없습니다. 우리 학교들의 목적은 주님의 계획에 따라 그분의 어린 신자들이 성장하고 발달하며 훈련받을 수 있는 장소들을 제공하는 데 있습니다.
    사탄은 매우 교묘한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계획과 원칙들을 교육 제도에 끼워 넣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고 있습니다. 사탄의 술책을 좌절시키는 것이 진정한 교육자의 임무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양육하고, 그들의 재능을 세상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데 사용하도록 가르치겠다고 하나님께 서약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창조주의 형상으로 지어졌으며, 그리스도를 모본으로 삼고 따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의 지식을 가르쳐 주고 하나님의 삶과 성품을 닮게 하는 교육에 가장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금실처럼 우리의 생애를 아름답게 엮어 주는 하나님의 사랑과 영혼의 순결입니다.
    『교회증언 6권』, 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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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20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모든 사람의 종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 13:15~17).
    인간에게는 자신을 남달리 높이 평가하고, 사리를 추구하고, 높은 자리를 탐하는 기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악한 추측과 매서운 정신에 빠져듭니다. 성만찬에 앞서 수행되는 예식은 이런 불화를 제거하기 위해, 이기심을 버리고 자화자찬하는 자리에서 내려와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이 예식이 진행될 때면 거룩하신 순찰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 시간이 심령을 살피고 죄를 뉘우치며 죄 용서라는 복된 확증을 얻는 기회가 되게 하십니다. 은혜가 충만한 그리스도께서 이기심을 타고 흐르는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놓으십니다. 성령께서 주님의 본을 따르는 자들의 감각을 활성화시키십니다. 우리 때문에 주님이 굴욕을 견디셨다는 생각이 들면, 생각에 생각이, 기억에 기억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하나님의 위대한 선하심과 이 땅의 친구들이 베푼 호의와 친절에 관한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언제든지 이 예식이 바르게 거행되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거룩한 교제를 나누며 서로를 섬기고 축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타적인 사업에 삶을 바치기로 서약할 것입니다. 서로에게 봉사하는 데만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주께서 펼치신 사업처럼 그들의 봉사 영역이 폭넓어질 것입니다. 세계에는 우리의 봉사가 필요한 사람으로 가득합니다. 가난하고 무기력하며 무지한 자들이 각처에 있습니다. 다락방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성찬식에 참여한 자들은 그리스도처럼 봉사하러 갈 것입니다.
    만물의 섬김을 받으셨던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려고 오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섬기셨으므로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섬김과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속성에 참여하여 그분과 함께 구원받은 영혼들을 바라보는 기쁨을 나누고 싶은 자들은 그분의 이타적인 봉사의 모본을 따라야 합니다.
    『시대의 소망』, 65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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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