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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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10월 10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다정한 구주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13)
    그리스도께서는 극심한 번뇌 속에서도 고문하는 원수에게 조금도 굴하지 않으셨습니다. 악한 천사들의 군대가 하나님의 아들을 둘러쌌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천사들은 그 진을 뚫고 들어가 비웃고 조롱하는 원수들과 싸우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고뇌하는 하나님 아들의 마음을 북돋는 일이 하늘의 천사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끔찍한 흑암의 시간에 아버지는 얼굴을 감추셨고, 악한 천사들의 군대가 그분을 감싸고 있었으며, 세상의 죄가 그분 위에 얹어졌기에 그분의 입술로부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는 말씀이 터져 나왔습니다.
    순교자들의 죽음은 하나님의 아들이 겪으신 고뇌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의 삶과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우리는 더 넓게 더 깊게 이해해야 합니다. 속죄를 바르게 이해해야 영혼 구원의 무한한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영생을 위한 사업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다정한 구주께서 주시는 권고가 얼마나 무시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세상에 마음을 쏟고 이기적인 생각에 빠져서 하나님의 아들을 향한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위선과 교만, 이기심과 욕심, 시기와 악의와 욕망이 가득하기에 사람의 마음에는 그리스도께서 차지할 공간이 없습니다.
    그분은 한없이 부유하셨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셨고, 그분의 가난함으로 우리는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그분은 영광의 빛을 입으셨고 하늘 천사들은 그분을 둘러싸고 그분의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인간의 본성을 입으려고, 죄를 짓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과 함께 머물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식을 초월한 사랑입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우리는 인간에게 보이신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에 매료되어 힘과 생기를 얻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 신비한 사랑을 이 땅에서 반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증언 2권』, 214~215
    4 min
  • [10월 9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의인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5)
    스데반은 자신을 고소한 구실이 되어 버린 진리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맑고 떨리는 음성으로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유창한 말로 선민(選民)의 역사를 낱낱이 설명했습니다. 그가 유대인의 제도를 자세히 알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는 그 영적인 의미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제시했습니다. 그는 메시아에 대한 모세의 예언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유대 신앙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드러내는 한편 유대인들이 구원을 얻고자 의지했던 율법이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에서 구원할 수 없었던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모든 유대의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켰습니다. 또 솔로몬의 성전 건축 및 솔로몬과 이사야의 말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스데반이 여기까지 말하자 난리가 났습니다. 그 예언에 그리스도를 연결시키고 성전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자 대제사장은 공포에 질린 체하며 자기의 예복을 찢었습니다. 그 행위는 스데반의 음성을 영원히 침묵시키겠다는 신호였습니다. 스데반은 자신의 말이 저항받고 있음을 알았고, 자신이 최후의 증언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설교 도중 돌연히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역사적인 설명을 중단했고, 격분한 재판관들에게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을 듣고 제사장과 관원들은 미친 듯이 분노했습니다. …그는 주위의 잔인한 얼굴들을 보고서 자신의 운명을 알아차렸으나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적』, 99~100
    4 min
  • [10월 8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갈릴리에서 온 선지자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요 6:14)
    학식 있고 영향력이 있는 많은 사람이 갈릴리에서 온 선지자의 기별을 듣고자 몰려들었습니다. …이 큰 무리 가운데는 각계각층의 사람이 섞여 있었습니다. 가난한 자, 무식한 자, 누더기를 걸친 거지, 험상궂은 도둑, 장애인, 방탕한 자, 상인,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자도 있었습니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자 입추의 여지없이 모여들었습니다. 교양 있는 사람들은 그 이상한 군중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러한 사람들로 구성되는 것인가?’라고 자문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의문에 대하여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 13:33)라는 비유의 말씀으로 응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때로 누룩을 죄의 상징으로 사용했습니다. 유월절이면 그들은 마음속에서 죄를 없이 하듯이 그들의 집에서 모든 누룩을 없애버리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눅 12:1)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비유에서 누룩은 하늘나라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누룩은 하나님의 은혜가 발휘하는 신속한 흡인력을 예증합니다.
    이 능력이 미치지 못할 만큼 극악하고 타락하고 저속한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성령의 활약에 굴복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생명의 원리가 심어지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의지력으로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사람은 이러한 변화를 일으킬 능력이 없습니다. 외부에서 누룩을 가루에 넣어 섞지 않으면 기대하는 변화가 생길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영광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려면 죄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세상이 제공하는 모든 교양과 교육으로도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자녀를 하늘 자녀로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거듭남의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변화는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실물교훈』, 95~97
    4 min
  • [10월 7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옹호자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시 18:2)
    만약 주의 사업을 위해 자신이 큰 희생을 치른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치르신 희생을 그들에게 상기시키십시오. 인류는 사망의 정죄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께서 신성 위에 인성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살고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타락한 천사들의 군대와 맞섰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옹호자가 계십니다. 그분이 오셨을 때 그분은 인성을 입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인류를 괴롭히는 유혹들을 겪고 어떻게 경건한 자들을 유혹으로부터 건져 내야 할지 이해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인류의 편에서 인류의 선두에 서심으로 우리를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천사의 무리를 이끌고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왕복과 왕관을 벗고 최고 사령관의 지위를 버리고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셨습니다. 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 우리는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궁정에서 수립된 계획입니다. 구주께서는 가난하게 태어나야 했고, 노동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와 함께 목수의 일을 하셨는데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작업은 완전했습니다. 때로 그분의 동료들은 그분이 너무나 철저한 것이 결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는 한 완벽에 가까워질 때까지 해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고개를 든 그분의 얼굴은 하늘의 빛으로 빛났고 그분을 비난했던 자들은 부끄러워하며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분은 핀잔을 들을 때 맞대응하기보다는 시편 중 하나를 노래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면 조금 전에 그분을 비난했던 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분을 따라 노래하곤 했습니다.
    Manuscript(원고), 1905년 58
    3 min
  • [10월 6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유일하고 안전한 안내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시 25:12)
    사도 바울은 그의 형제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들의 구원을 이루실 분으로 높였습니다. 공간 속에서 세계를 유지하고 온 우주의 만물을 질서 정연하게 배열하며 끊임없는 활동을 주관하는 손이 바로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손이라고 바울은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타락한 인류를 끌어 올리려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을 사랑한 아흔아홉 마리의 양, 곧 하늘에 있는 무죄한 세계를 떠나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림을 당하시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함”을 받으셨습니다(사 53:5). 그분은 모든 일에 자기 형제들같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은 육신이 되셨습니다. 배고픔과 목마름과 피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셨습니다. 음식으로 원기를 얻고 수면으로 피로를 푸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에서 나그네와 행인이 되었고 세상에 있었으나 세상에 속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오늘날의 남녀들처럼 유혹과 시련을 당했지만 죄가 없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부드럽고 친절하며 동정이 많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사려가 깊으셨던 그분은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은혜와 진리가 충만”(요 1:14)했습니다.
    이교의 행습과 감화에 둘러싸인 골로새 신자들은 복음의 단순함에서 떠날 위험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경고하면서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유일하고 안전한 안내자로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적』, 471~472
    3 min
  • [10월 5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모든 참된 즐거움과 만족의 근원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신앙 훈련은 가장 엄숙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지되 가능한 한 온갖 유쾌함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지루해질 만큼 길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젊은이들은 신앙이 무미건조하고 재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제대로 가르침을 받았으면 세상과 교회에 축복이 될 수 있었던 많은 사람이 원수의 편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학교와 가정에서 드리는 안식일 집회와 조석 예배가 계획성이 없고 성령의 감동도 없으면, 젊은이들에게는 그 시간이 아무런 재미와 매력이 없는 형식적인 시간으로 인식될 뿐 아니라 모든 학교 활동에도 부담이 될 것입니다. 모든 친교 집회와 신앙 훈련은 매우 잘 계획되고 유익해야 합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매력이 넘치고 유쾌해야 합니다. 함께 기도할 때는 마음을 하나로 묶어 하나님과 연결되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공개적이고 대범하게 고백하고 그분의 온유와 겸손과 사랑을 성품에서 반사하면 사람들은 경건의 아름다움에 이끌릴 것입니다.
    이 모든 경우에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 가운데에 뛰어”난 분이자 “전체가 사랑스”러운 분으로 제시되어야 합니다(아 5:10, 16). 그분은 모든 참된 즐거움과 만족의 근원이자 온갖 훌륭하고 완전한 선물의 시여자이며 모든 복의 창시자이자 영생의 소망으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어떤 신앙 훈련이든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신앙생활의 기쁨이 아름답게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 구주께서는 우리를 모든 죄의 결과로부터 회복시켜 주시는 분으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이런 결과를 얻으려면 우리는 편협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진지하고 열렬하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교사들에게는 열성적이며 능동적인 경건이 필수적입니다. 우리에게는 얻고자 하면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감사히 여기면 주어지는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대상의 가치에 걸맞게 절실한 마음으로 구하기만을 성령께서는 기다리고 계십니다.
    『교회증언 6권』, 174~175
    4 min
  • [10월 4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생명의 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 5:11)
    하나님의 아들은 죄와 슬픔과 사망의 그림자로 어두워진 이 세상에 용서와 평화와 영생을 가져오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요 5:26)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스도를 미워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완전한 순결이 자신들의 극악무도함과 너무도 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생명의 주를 배격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셨고 인간의 시선으로부터 감추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여전히 인류의 구주이십니다. 그분은 여전히 포도나무요 영적인 생명의 근원이며 유지자이십니다. 은혜와 능력과 구원이 여전이 그분의 충만함에서 비롯됩니다. 비록 그 포도나무가 이제는 보이지 않더라도 그 가지는 눈에 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시선으로부터 사라지셨지만 그분의 생명과 능력은 그분을 따르는 자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포도는 여전히 나무에 달려 있습니다. 잎사귀도 생명력도 전혀 없는 잘린 가지를 살아 있는 줄기에 접붙이면 그것이 포도나무의 생명력을 흡수하여 마침내 거기에 순이 돋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인이 회개와 믿음으로 자신을 그리스도와 연결시키면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서 말과 행동을 통해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 속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죄악으로 죽어 가는 영혼들에게 이 생명을 값없이 나눠 주십니다. 그뿐 아니라 그분은 자신의 순결과 특권과 기쁨까지 그들에게 나눠 주십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요일 3:1). 살아 있는 나무에 접붙인 마른 가지는 나무의 일부가 됩니다. 그것은 나무에 붙어 있는 한 살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그리스도와 결속되어 있기에 살아갑니다. 그렇게 죄 많은 인간의 본성과 거룩하신 하나님의 본성이 연결됩니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83년 9월 11일
    4 min
  • [10월 3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나사렛의 어린이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
    어린이들은 누구나 예수님처럼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늘 아버지와 친숙하게 되려고 노력하면, 천사들은 우리를 가까이하고, 우리 마음은 견실해지고, 우리의 성품은 고결해져서 우리는 더욱 구주와 같아집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볼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애정이 생깁니다. 우리의 정신은 경외감에 젖어 들고 우리의 영혼은 자연을 통하여 무한한 분과 접촉하며 활력을 얻습니다. 기도로 하나님과 소통하면 지적·도덕적인 역량이 늘어납니다. 그리고 신령한 일들을 더 깊이 생각할수록 우리의 영적인 능력은 강해집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평판이 나빴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는 나다나엘의 질문에서 그들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사렛은 예수님의 성품이 시험받을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늘 경계하면서 자신의 순수성을 보존해야 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곤경을 당하셨습니다. 이는 그분이 유소년기뿐 아니라 청년기나 장년기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모본이 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사탄은 나사렛의 어린이 예수를 정복하려고 끈질기게 노력했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늘 천사들의 보호를 받으셨음에도 그분의 생애는 흑암의 권세에 대항하여 싸워야 하는 긴 투쟁의 생애였습니다. 지구에서 죄악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은 흑암의 왕에게는 불쾌하고 당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리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도 우리 구주처럼 그같이 치열한 시험과 투쟁 속에서 거룩한 생애를 살도록 부름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가난했으므로 매일 수고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빈곤과 극기와 궁핍을 잘 아셨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그분에게는 안전장치가 되었습니다. 그분의 부지런한 생애에는 시험을 끌어들일 만한 한가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시대의 소망』, 70~72
    4 min
  • [10월 2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참된 유월절 어린양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눅 22:15)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어느 집 다락방에 올라 제자들과 같이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경축하러 모였습니다. 구주께서는 오직 열두 제자와 이 절기를 지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때가 왔음을 아셨습니다. 그분 자신이 참된 유월절 어린양이었으며 유월절 양을 먹는 그날에 희생되었습니다. 그분은 이제 곧 진노의 잔을 마시고 마지막 고난의 침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몇 시간이 남아 있었기에 그분은 이 시간을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보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이타적인 봉사의 생애였습니다. 그분의 모든 행동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마 20:28)려 한다는 교훈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도 그 교훈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님은 한 가지 모본을 통해서 그 교훈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증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교훈은 그들의 마음과 정신에 영원히 새겨졌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담 시간은 대체로 잔잔한 기쁨의 시간이자 모두에게 매우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유월절 만찬 자리는 언제나 특별한 관심이 집중되었지만 이번만큼은 예수님께 괴로운 자리였습니다. 그분의 마음은 무거웠으며 그분의 얼굴에는 침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다락방에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무엇인가가 그분의 마음을 무겁게 억누르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그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그분의 슬픔에 동조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갈 시간이 되었음을 아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에 있는 자신의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시대의 소망』, 642~643
    3 min
  • [10월 1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생명의 샘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몸과 마음의 참된 치료와 회복은 인위적이고 건강에 해로운 자극제로 생기는 흥분과 망각이나 저급한 식욕과 정욕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자들 중에는 하나님을 모르고 소망도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충족되지 못한 욕망과 열정의 장애 그리고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그들에게 이생의 소망은 사라지고 있고, 내세의 소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경박하고 흥분을 일으키는 방종을 허용함으로 유익을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그들의 삶에 이미 저주가 되었습니다. 이런 것에서 만족을 찾고자 한다면 영혼의 주림과 갈증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기적인 쾌락의 샘에서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들뜬 기분을 힘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흥분이 끝나면 들뜬 마음은 가라앉고 그들에게는 불만과 낙담만 남습니다.
    한결같은 평안과 진정한 영혼의 안식은 한 가지 근원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근원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그분과 동떨어진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안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영접해야만 그 평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더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오는 치유의 능력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자신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인내와 겸손과 간절한 마음으로 배워야 합니다. 어두운 영혼의 밀실에 하나님의 사랑이 빛과 같이 비추면, 끝이 없던 염려와 불만은 사라지고 흡족한 기쁨이 정신에 활력을 주며 신체에 건강과 에너지를 선사할 것입니다.
    『치료봉사』, 246~247
    4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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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