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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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9월 20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부활하신 구주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마 13:23)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기에 앞서, 그분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베풀려는 필수적이고 완전한 선물에 대해 제자들에게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 선물을 통하여 그들은 무한한 은혜의 근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이렇게 구주께서는 성령이 자신의 대리자로서 위대한 사업을 행하러 오실 때를 가리키셨습니다. 수 세기 동안 축적되어 온 죄악은 성령의 능력으로 격퇴되어야 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 주신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부활하신 구주에 대한 기쁜 소식이 땅끝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구원과 은혜의 기별을 선포했을 때 사람들의 마음은 그 기별의 힘에 굴복했습니다. 교회는 각처에서 모인 회심자로 넘쳤습니다. 뒤로 물러났던 사람들이 다시 회심했습니다. 죄인들은 값진 진주를 구하며 신자들과 연합했습니다. 복음을 가장 심하게 반대했다가 복음의 옹호자가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형제들에게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나타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 가지 관심사가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했고, 한 가지 주제가 다른 모든 주제를 삼켰습니다. 신자들은 열정을 다하여 그리스도 같은 성품을 드러내고 그분의 나라를 확장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수고로 교회에는 택함을 받은 사람이 늘었습니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을 받고 그들의 마음을 평화와 기쁨으로 충만하게 한 그 소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에 삶을 걸었습니다.
    『사도행적』, 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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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19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위대한 모본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엡 5:1~2)
    여러분은 남에게 속아서 자기 재산을 무가치한 자들에게 거저 준 적이 있기에 궁핍한 자들을 도와야 할 때 망설이게 된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에게 저는 예수님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그분은 타락한 인류를 구하고, 자기 백성에게 구원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자비를 모욕과 경멸로 대했고 급기야 자기들에게 생명을 주러 오신 그분을 죽였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주께서 인류를 외면하셨습니까? 아흔아홉 번의 선행이 실패처럼 보이고, 모욕과 책망과 미움만 받았다 할지라도 만약 백 번째에 성공하여 한 영혼이라도 얻는다면 그 얼마나 큰 승리입니까? 한 영혼이 사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고, 한 영혼이 은혜를 입고, 한 영혼이 용기를 얻는다면 여러분의 노력은 천 배나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생애를 본받고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 좋은 일을 하다가 자신이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움츠러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남을 돕다가 어려움에 빠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남의 편리를 위해서 불이익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우리의 모본이시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세베대의 두 아들 중 하나는 보좌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위대한 모본이신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사람은 이 단계를 밟으면서 그분께서 행하신 대로 행하겠다고 서약한 것입니다.
    『교회증언 2권』, 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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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18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하늘의 왕

    “그의 행하시는 일이 존귀하고 엄위하며 그의 의가 영원히 서 있도다”(시 111:3)
    그리스도께서는 승천 후에 지상에서 자신의 사업을 수행할 교회를 조직하기 위한 첫 단계로 열두 제자를 안수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 3:13~14).
    그 감동적인 광경을 바라보십시오. 자신이 선택한 열두 제자로 둘러싸인 하늘의 왕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은 그 사업을 위하여 그들을 구별하십니다. 이 연약한 대리자들과 자신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그분은 모든 사람의 손에 구원을 가져다주시려고 계획하십니다.
    하나님과 천사들은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사람들에게서 하늘의 빛이 발산되고 자기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는 그들의 말이 각 세대를 거쳐 마지막 때까지 퍼질 것을 아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자신들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보고 들은 것을 세상에 선포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직무는 이제까지 사람이 받은 직무 중 가장 중요했고 그리스도의 직무에 버금갔습니다. 그들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구약의 열두 선조가 이스라엘을 대표했듯 열두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대표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상 봉사의 기간에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온 인류에게 구원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비록 유대인이었지만 자유롭게 사마리아 사람들과 사귀었고 이 멸시받은 백성에 대한 유대인들의 바리새인적인 관습을 무시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집에서 주무셨고, 그들의 식탁에서 잡수셨으며, 그들의 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구주께서는 이스라엘과 다른 민족들 사이에 있는 “중간에 막힌 담“을 허는 진리, 즉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인과 함께 “상속자”가 되리라는 진리를 제자들에게 드러내고 싶으셨습니다(엡 2:14; 3:6).
    『사도행적』,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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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17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의로운 왕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6)
    침례 요한은 메시아의 영광을 그린 이사야의 영감적인 묘사를 밤낮으로 연구했습니다. 그분은 이새의 뿌리에서 나온 가지이고, 공의로 다스리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하시는 임금이시며, “광풍을 피하는 곳”이자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이 되는 분이셨습니다. (사 11:4; 32:2; 62:4). …외로운 은둔자의 마음에 영광스러운 광경이 가득 찼습니다.
    아름다우신 왕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을 잊어버렸습니다. 거룩하신 임금을 바라보며 자신의 부족과 무가치함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았기에 그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늘이 보낸 기별꾼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는 만왕의 왕 앞에 숙여 경배했으므로 세상의 군주들 앞에서 두려움 없이 곧게 설 수 있었습니다.
    요한은 메시아 왕국의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적대 국가들로부터 구원받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의로운 왕이 강림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거룩한 나라로 건설되는 것이 그가 바라는 큰 목표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날 때 주어진 예언이 성취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눅 1:72~75).
    그는 동족들이 속임과 자기도취에 빠져 죄 중에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들을 깨워서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전하라고 주신 기별은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하여 무감각 상태에서 깨어나게 하고 자신들의 큰 악행 때문에 두려워 떨게 하려고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복음의 씨가 뿌려지기 전에 마음 밭의 흙을 갈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치유를 구하기 전에 먼저 죄의 상처에서 오는 위험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시대의 소망』, 10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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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16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하늘에서 오는 신랑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마 25:8)
    지혜로운 건축자는 불편을 무릅쓰고 반석이신 그리스도 예수 위에 집을 짓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의를 자신의 의로 그리고 구원의 유일한 소망으로 받아들이며 사람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공로 위에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건축자는 부주의함과 편견, 거듭나지 않은 심령의 거짓으로 말미암아 모래 위에 집을 짓습니다. 그는 자기 의를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지혜가 차지할 자리에 인간의 지혜를 둡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으로 끔찍합니다.
    세상에는 지혜롭지 못한 건축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유혹의 폭풍이 불어 그들에게 부딪히면 그들의 기초가 연약한 모래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들은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 믿음도 원칙도 기초도 없이 남아 있습니다. 미련한 처녀 다섯 명도 복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무엇이 의의 완전한 표준인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를 사랑했기 때문에 열정이 사그라졌습니다. 자신을 높이고 자기 즐거움을 위해 살았기에 등잔을 채울 은혜의 기름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종종 곤경에 빠졌는데 왜냐하면 원수가 그들의 약점을 알고 빛으로 위장하여 그들 앞에 나타나 어둠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주는 고귀한 진리가 자신들에게 불필요해 보였습니다. 사탄은 그들의 맹목성과 무지와 연약한 믿음을 이용했습니다. 불확실한 원리에 기초하다 보니 그들은 일희일비의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하늘에서 오시는 신랑을 기다리는 사람은 비유 속에서 모두 졸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랑의 도착이 지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분이 오신다는 기별을 듣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적인 삶에는 기름이 채워졌습니다. 영적인 식별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에 그들은 곧 삶을 재정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잡자 신앙적인 경험은 왕성하고 풍성해졌으며 그들의 애정은 하늘에 고정되었습니다.
    『The Bible Echo(성경의 메아리)』, 1894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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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15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오실 자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마 2:16)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실 때 사탄은 하늘 천사의 무리가 가져온 영광으로 베들레헴 평원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라고 부르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흑암의 왕은 빛으로 환하여진 평원을 바라보고 경외심으로 가득하게 된 목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경이로운 영광에 도취되었고 그 현상을 보고 떨었습니다. 반역의 우두머리도 목자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0~11)고 전하는 천사들의 선언을 듣고 떨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인류를 파멸시킬 계획을 수립하여 성공을 거두며 더 대범해지고 강해졌습니다. 그는 아담 이후로 그리스도께서 처음 오실 때까지 인류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의 왕국과 그의 생명에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구주께서 타락한 세상에 오신다고 선언하는 하늘 기별꾼들의 노래 그리고 이 놀라운 사건에 관하여 표현된 기쁨이 자신에게 좋지 않은 징조임을 사탄은 알았습니다. 메시아의 초림이 세상에 미칠 영향이 그의 왕국에도 미치리라는 생각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가 바로 자신의 권세를 꺾고 자기의 왕국을 정복할, 오실 자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는 타락한 헤롯의 마음을 움직여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두 살 이하의 아이를 모조리 죽이게 했습니다. 그는 이 계획을 통해서 어린 왕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자신의 계획과 달리 하늘의 권세가 작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어린 구주의 생명을 보호했습니다. 요셉은 꿈을 통하여 애굽으로 피신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방의 땅에서 구세주를 위한 망명지를 찾았습니다.
    『대결』, 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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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14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행복의 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잠 19:23)
    종교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견해가 이 사회의 일부 계층에서 편만한데 그것은 가장 해로운 오류 중의 하나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며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낸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잠 19:23).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신체적, 정신적, 도덕적으로 하나님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신앙은 자제와 침착과 절제를 가르칩니다. 신앙하는 사람은 정신과 취향이 고결해지고 판단력이 투명해집니다. 하늘의 순결함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믿으면 걱정과 근심이 누그러집니다. 일이 잘 풀릴 때나 어려울 때나 마음에 기쁨과 만족이 넘칩니다. 신앙이 생기면 건강에 직접적인 유익을 얻고 수명도 늘고 온갖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결코 마르지 않는 행복의 샘이 열립니다. 그리스도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그분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 그들은 자기 영혼에 가장 큰 상처를 입히고 자신을 매우 부당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가장 좋은지 아시는 하나님, 피조물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이 금하시는 길이라면 거기에는 진정한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범죄의 길은 불행과 파멸로 이어지지만 지혜의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잠 3:17)입니다.
    …인간의 정신과 신체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신체를 다스리는 법칙들에 주의해야 합니다. 강인하고 균형 잡힌 품성을 얻으려면 정신적, 신체적 능력 모두를 단련하고 개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경이로운 신체 기관과 건강 법칙을 연구하는 것만큼 중요한 연구가 어디 있겠습니까?
    『부조와 선지자』, 600~601
    0 min
  • [9월 13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인류의 스승이자 구주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신 32:2)
    그리스도인에게는 언제나 강한 조력자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어떻게 도우시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압니다. 원수의 목적이 성취되지 못하도록 주께서 얼마나 자주 길을 이끌어 주셨는지를 그리스도인이 깨닫는다면 불평하면서 비틀거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께 머물며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지혜와 능력이라고 인정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하려는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학개를 통하여 주신 열렬한 호소와 격려는 스가랴에 의하여 강조되고 추가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스가랴를 일으켜 학개의 편에 서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을 다그쳐서 주님의 명령대로 일어나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스가랴는 자신의 첫 기별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고 보증했고, 예언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복을 얻는다고 약속했습니다.
    들판은 폐허가 되었고 얼마 남지 않는 식량마저 바닥이 났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우호적인 민족들에게 에워싸여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기별꾼들이 전하는 호소에 응답하여 믿음으로 전진했고 폐허가 된 성전을 복구하고자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굳게 의지해야 하는 사업이었습니다. 백성이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면서 마음과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새롭게 되기를 구했을 때, 그들의 신앙이 보상을 받겠고 그들이 세우고 있는 성전의 영광이 다함이 없을 것이라는 보증의 말씀이 학개와 스가랴를 통해서 그들에게 연속적으로 주어졌습니다. 때가 이르렀을 때 인류의 스승이자 구주시며, 만국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 건물에 나타나십니다.
    이와 같이 성전 건축자들은 홀로 씨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스 5:2) 도왔고 만국의 여호와께서도 친히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학 2:4)고 선언하셨습니다.
    『선지자와 왕』, 576~577
    0 min
  • [9월 12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연합의 돌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고전 1:13)
    의견이 갈리는 정치적인 주제가 제시되었을 때 교회는 섬광처럼 일어나는 편견을 피해야 합니다. 아무도 민족적인 반감과 분파적인 정서를 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있는 자들은 다른 깃발 아래에 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왕의 왕, 주의 주이신 분의 최고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이사나 빌라도에게 호소해서는 안 됩니다. 때가 되면 그리스도께서 밤낮으로 자신에게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을 위해 원수를 갚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어느 시대이든지 연합의 돌 곧 큰 주춧돌이셨습니다.
    믿음의 선조들과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 그리고 신약의 교회는 모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전부이시며 우리의 모든 것 가운데 계셔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고전 1:13)라고 물었습니다. 우리의 머리는 한 분이시지 않습니까? 따라서 마음이 억눌릴 때에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시 61:2)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분의 대속적인 희생과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는 너무도 귀합니다. 대속하신 그분의 모든 공로와 성결하게 하는 의는 너무나 값집니다. 그분이 주시는 무한한 충족과 만족은 매우 고귀합니다. 여러분도 “그 안에서 충만”해졌고(골 2:10)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요 1:16)입니다. 다른 기초는 모두 모래와 같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남자이든 여자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몸이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이십니다.
    『Manuscript』, 1898년 89
    0 min
  • [9월 11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십자가에 못 박힌 나사렛 예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고전 1:23)
    바울이 고린도의 그리스인에게 소개하려고 했던 예수님은 전설적으로 악한 마을에서 자라난 천한 가문의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분은 자기 민족에게 거절당하고 흉악범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스인은 인류에게 향상이 필요하다고 믿었지만, 철학과 과학을 연구해야만 참된 향상과 영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이름 없는 유대인을 믿으면 인류의 능력이 향상하고 고상해진다는 바울의 말에 그들이 설득되었겠습니까?
    오늘날 사람 대부분에게 갈보리의 십자가는 거룩한 역사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들에게 십자가의 장면은 신령한 개념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당시의 사람들은 십자가를 혐오와 공포의 감정으로 대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사형당한 분을 인류의 구주로 높이는 일은 당연히 조롱과 반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의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가 자기의 메시지를 어떻게 생각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고전 1:23)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유대인 청중 가운데는 그가 선포하려는 기별로 분노하게 될 사람이 많았습니다. 헬라인들도 그의 말을 터무니없고 어리석은 말로 평가할 것입니다. 십자가가 인간의 향상이나 인류의 구원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려고 하다가 오히려 저능한 자로 여겨질 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십자가는 가장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한때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힌 나사렛 예수의 추종자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에서 돌아선 이후로는 끊임없이 십자가를 드높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관하여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의 생애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고, 그의 계획과 목적은 모두 하늘과 조화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죄인이 일단 아들의 희생으로 나타난 아버지의 사랑을 바라보고 거룩한 감화에 굴복하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며 그 후로는 그리스도가 가장 귀중하게 된다는 사실을 바울은 몸소 경험으로 터득했습니다.
    『사도행적』, 24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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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