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Download on the App Store

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8월 31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자비로운 의사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렘 8:22)
    사람들은 기운이 약해지고 생명이 고갈되는 듯할 때 기도해야겠다고 느낍니다. …자비하신 우리 하나님은 자기에게 진심으로 도움을 구하면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그분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그리스도께는 지상에서 봉사하시던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자비로운 의사이십니다. 어떤 질병도 낫게 하는 향유와 약한 것을 모두 고치는 능력이 그분에게 있습니다. 오늘날의 제자들도 과거의 제자들처럼 병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회복이 따를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능력이 있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앞세울 수 있는 잔잔한 믿음의 보증이 있습니다.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8)는 주님의 약속은 사도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신뢰할 만한 약속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녀의 특권을 나타내며 이 말씀이 아우르는 모든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그분의 통로입니다. 그분은 그들을 통해 일하시며 그들을 통해 자기의 치유 능력을 발휘하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병자와 아픈 자들을 믿음의 팔로 안아 하나님께 데려다주는 것입니다. 그들을 가르쳐 위대한 치료자를 믿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만 우리는 그 약속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의 순종이 반신반의하는 부분적인 순종이라면 그분의 약속은 우리에게 성취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병자의 회복을 위해 특별한 기도를 드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가장 엄숙한 행위이므로 우리는 심사숙고하지 않은 채 그런 기도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치료봉사』, 225~227
    0 min
  • [8월 30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천사들에게 숭배를 받으실 분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 26:53)
    예루살렘에서 거주하는 예수님의 청중 가운데는 그분을 대적하는 관원들의 음모를 아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자신들이 그분께 이끌리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이 마음을 무겁게 내리눌렀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의심을 불러일으킬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여 잠시 뒤에 사라질 것이며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부터 두 번째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태생적으로 메시아는 인류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기원에 대해 알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을 때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관원들은 그리스도를 죽이고자 그분을 체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분노를 제한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그들을 막았습니다.
    …백성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고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라고 말했습니다. 근심스럽게 사건의 추이를 바라보던 바리새파 지도자들은 그분에게 동조를 보내는 군중의 표현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들은 급히 대제사장에게 달려가 예수님을 체포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백성 앞에서 감히 예수님을 잡을 수 없었으므로 그분이 혼자 계실 때를 기다렸습니다. 역시 예수님은 그들의 목적을 읽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머지않아 그분은 그들의 조소와 증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피난처를 찾습니다. 그분은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다시 천사들에게 숭배를 받으실 분이었던 것입니다.
    『시대의 소망』, 457~458
    0 min
  • [8월 29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오랫동안 기다린 구원자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시 34:17)
    구주께서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메시아와 그 과업에 대한 그들의 일반적 개념이 매우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통과 형식주의에 빠져서 그들은 참된 신앙 정신을 잃었고, 세상을 사랑하는 교만한 생각에 맞춰 예언을 해석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장차 오실 분을 죄에서 구원해 줄 구주가 아니라 유다 지파 사자의 권세 아래 모든 나라를 복종시킬 위대한 왕으로 기대했습니다. 침례 요한이…회개하라고 외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요단강 가에서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던 일도 허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사야가 예언한 고난의 구주께로 이끌고자 하셨지만,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의 교사와 지도자들이 삶을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은혜에 굴복했다면 그분은 그들을 자기의 특사로 삼으셨을 것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기별과 회개하라는 호소는 유대 땅에 먼저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지도자들은 나사렛에서 온 그 겸손한 스승을 영접하고자 마음을 낮추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 두 번째 방문하셨을 때 예수님은 산헤드린 의회에 소환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했지만 백성이 두려워 계획을 시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산상 설교를 하시기 전에 수개월 동안 그 지방에서 자신의 사역을 계속하셨습니다. 그분이 갈릴리 전역에 선포하신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는 기별은 모든 계층의 사람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들의 야심 찬 희망의 불길을 더욱 부채질했습니다. 이 새로운 교사의 명성은 팔레스타인 경계 너머까지 퍼져 갔습니다. 그리하여 성직자들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분이 오랫동안 기다린 구원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산상보훈』, 1~3
    0 min
  • [8월 28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유일하게 참되신 안내자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민 22:12)
    모압 백성은 타락하여 우상을 숭배했지만 이스라엘에 맞서 사술의 힘을 얻기 위해 진지하고 열렬하게 줄기찬 노력을 쏟았습니다.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이 배운 대로 행했던 그들의 죄는 발람의 죄만큼 크지는 않았습니다. 발람은 스스로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자처했습니다. 따라서 그가 하는 모든 말은 주 여호와에게서 나와야 했습니다. 즉 그는 자신이 선택한 것을 말하도록 허용되지 않았고 하나님이 주신 기별을 전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방자한 선지자를 기만과 위선으로 더러워진 남자로 여기셨고 비뚤어지고 완고한 그의 형편에 맞게 그를 다루셨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모든 세대의 유익을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자기 뜻을 완고하고 꿋꿋하게 따르겠다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은 위험한 짓입니다. 오늘날도 발람과 비슷한 길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안내와 통제를 받은 체하지만 실상은 자기 길을 걸으며 자기 마음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고집스럽게 자신을 속이는 이런 자들의 기도는 그들을 부추기는 영에 걸맞은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서 종종 그들이 제멋대로 가도록 놔두십니다. 그렇게 그들은 사탄이 그 주위에 불어넣은 짙은 안개 같은 공기 속을 걷습니다.
    유일하게 참되신 안내자를 버리고 자신의 지혜와 빛으로 세상의 위기와 곤경을 통과할 안전한 길을 찾으려는 사람의 길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떨어져 온몸이 부서질 수 있는 미끄러운 낭떠러지를 기어오르는 등반가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악한 길을 걸으면서 잠시 번영하는 듯 보이는 자들에게 닥칠 위험을 다윗은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The Signs of the Times(영문 시조)』, 1880년 11월 25일
    0 min
  • [8월 27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요새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슥 9:11~12)
    교회마다 자기 지역의 죽어 가는 자들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살아 있는 돌처럼 빛나며 하늘의 빛을 반사해야 합니다. 계획도 없이, 닥치는 대로 무질서하게 일해서는 안 됩니다. 멸망 직전의 영혼들을 찾는다는 것은 술주정뱅이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한 뒤에 그가 울면서 자기 영혼의 불결을 고백하면 그에게 구원을 선언하는 식으로 끝나 버리는 게 아닙니다. 그 싸움은 계속 거듭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마다 이웃을 위한 봉사를 자신의 특별한 의무로 느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은 누구나 구주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 일에 전념하는 자들은 선을 행하되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면, 고귀한 영혼들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 바쳐진 신실하고 꾸준한 노력 덕분에, 요새로 도망하라는 애원과 열렬한 설득 덕분에 거기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했던 자들은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인기 많은 교회의 목사들은 설교단에서 진리가 전해지게 놔두지 않습니다. 그들은 원수에게 이끌려 냉소적이고 악의적인 태도로 진리를 거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유대 관원들을 상대하셨던 그리스도의 경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발산되는 그분의 빛을 차단하려고 힘을 다합니다. 과거에 제사장들과 관원들을 통해 일했듯이 그는 이제 목사들을 통해 일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아는 자들이 사탄의 편이 되어 하나님의 방식대로 일하려는 자들, 암흑 세상에 진리의 표준을 세우려는 자들을 방해하고 괴롭히고 좌절시키려 한단 말입니까?
    『Counsels on Health(건강에 관한 권면)』, 356~357
    0 min
  • [8월 26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8)
    율법주의적인 종교는 사랑도, 그리스도도 없는 종교이므로 사람을 결코 그리스도께로 이끌지 못합니다.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정신으로 하는 금식이나 기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합니다. 엄숙한 예배, 집회, 반복적인 종교 의식, 외형적인 겸손, 남의 이목을 끄는 희생 제사 등을 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의롭고 하늘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기만입니다. 우리는 결코 행위로 구원을 살 수 없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영적 결핍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런 기별이 이르렀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7~18). 믿음과 사랑은 불로 연단한 금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금은 빛을 잃었고 가득했던 보화는 사라졌습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의는 입어 보지 못한 두루마기이자 사람의 손이 닿은 적이 없는 샘과 같습니다.
    …사람은 먼저 자아를 비워야 합니다. 온전히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먼저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자기를 버려야 주님께서 그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신자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를 바라보는 사람에게서는 그리스도의 성품이 나타날 것입니다.
    『시대의 소망』, 279~280
    0 min
  • [8월 25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모든 참된 교훈의 중심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그리스도는 모든 참된 교훈의 중심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과 자연계에서 참된 신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영생에 대한 우리의 소망도 주님 안에 있습니다. 그분에게 배우는 교사만이 안전합니다.
    지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성경을 통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먹어야 할 영적인 양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행적을 묵상하며 우리가 배운 교훈들을 자녀들에게 거듭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솜씨와 능력 그리고 그분이 창조하신 것들 속에 감추어진 그분의 위대함을 바라보도록 그들을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놀라운 분이십니까! 그분은 성실과 배려로 자기의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자기 백성을 범죄의 결과에서 보호하기 위해 그분은 십계명이라는 울타리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품성의 완전은 오직 그분의 말씀과 친숙해질 때에 얻을 수 있다고 그분은 가르치십니다.
    선지자들의 글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홍보석으로 네 성벽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 너는 공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며 공포도 네게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라”(사 54:11~14).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34).
    『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453~454
    0 min
  • [8월 24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 103:8)
    여러분의 삶에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이 배제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기계적인 형식이 진심 어린 섬김을 대신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이름만 들어도 타오르던 심령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스도께 마음을 바쳤던 초기에는 영혼에 대해 뜨겁지 않았습니까? 그들에게 구주의 사랑을 나타내고자 간절히 구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그러한 사랑이 사라지고 여러분은 냉랭하고 비판적이며 까다롭게 변했습니다. 그 사랑을 힘써 되찾으십시오. 영혼들을 힘써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십시오. 여러분이 이 일을 거부하면 여러분보다 빛을 덜 받았거나 경험이 부족하고 기회가 없었던 자들이 대신 자리를 채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게을리했던 일을 그들이 수행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혹에 빠지고, 시험을 당하며, 멸망해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 사업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봉사를 제시하십니다.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날 교회가 베푼 선행과 자기 부정의 행위를 하나님은 모른 체하지 않으십니다. 하늘에는 이 모든 것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교회가 본연의 사명 수행을 중단한다면 구원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날의 지독한 나태와 무관심이 끝나지 않는 이상 교회는 갈수록 힘을 얻는 게 아니라 계속 몰락해서 약해지고 격식만 남을 것입니다.
    개혁을 위해 결정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대들의 등불은 깜빡거리고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어둠 속에서 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십시오. 지금 열린 기회는 길지 않을 것입니다. 은혜와 회개의 시기가 개선 없이 지나 버린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경고하십니다. 이것은 오래 참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86년 11월 30일
    0 min
  • [8월 23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거룩한 기별자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성에 당당하게 입성하셨을 때 군중의 박수갈채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사람들은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기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그 도성을 보고 흐느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머지않아 수많은 사람이 멸망하는 도성과 운명을 같이할 것을 그분은 내다보셨습니다. 스스로 족쇄를 채우고 파멸을 확정 지으며 먹구름처럼 여호와의 진노를 끌어들이는 그 민족을 생각할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너희는 나의 모든 애원을 반항적으로 거부했다. 거듭거듭 나는 공의의 화살을 유보했다. 나는 사랑으로 너희의 참회와 회개를 기다렸다. 아비가 아들에게 인내하듯 너희를 참아 왔다. 내게 왔으면 생명을 얻었을 텐데 너희는 내게로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눈물은 예루살렘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회개하지 않은 세상에 내릴 끔찍한 징벌을 생각하며 탄식하셨습니다. 그분은 죄인을 구하고자 여전히 인내와 사랑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거룩한 기별자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려고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성령께서 죄인들과 씨름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자기 발 앞에 앉아 자기에 대해 배우고, 굴복과 순종의 멍에를 지라고 그리스도께서 죄로 병든 영혼에게 권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분은 그 땅 사방을 다니며 가는 길마다 복을 퍼뜨리지 않으셨던가요? 그분은 인내하다가 지치거나 사랑을 억제하지 않으십니다. 연약한 자, 지친 자, 의지할 데 없는 자에게 전하는 그분의 음성을 들어 보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그분의 은혜로 돌 같은 마음을 부드럽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리뷰 앤드 헤럴드』, 1901년 12월 3일
    0 min
  • [8월 22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신체의 법칙을 만드신 분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렘 32:17)
    건강은 복이지만 그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의 정신과 신체의 능률은 주로 건강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정서와 열정이 자리하는 곳도 우리의 신체입니다. 따라서 재능을 잘 활용하려면 신체가 지극히 영적인 감화 아래서 최상의 상태로 보존되어야 합니다.
    체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무엇이든지 정신력을 약화시키며 선과 악을 헤아리는 판단력을 둔하게 합니다. 그러면 선을 택할 힘이 줄어들고 옳게 여기는 것을 실천한 의지력도 약해집니다.
    체력을 남용하면 하나님을 드높이기 위해 사용해야 할 생명이 단축됩니다. 또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업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나쁜 습관을 기르고,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탐식하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운동을 등한히 하고, 심신을 지나치게 소모하면 신경 계통에 균형을 잃습니다. 신체의 법칙을 무시해서 수명이 짧아지고 봉사할 능력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료 인간에게 절도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복을 전할 기회 그리고 자신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에서 이루려는 사업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더 짧은 기간에 해낼 수 있었던 일까지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끼칠 수 있던 유익이 우리의 악습 때문에 차단됩니다. 하나님은 그것에 대해 우리에게 죄를 물으실 것입니다.
    신체의 법칙을 범하는 것은 곧 도덕 법칙을 범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도덕 법칙뿐 아니라 신체의 법칙을 만드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손가락으로 사람의 모든 신경과 근육과 기관(器官)에 친히 자신의 법칙을 기록하셨습니다.
    신체 조직의 어느 부분이든지 남용하는 것은 곧 법칙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추어 주님의 사업을 행하기에 적합한 건강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실물교훈』, 346~348
    0 min

About 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From the publisher's feed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