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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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7월 14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세상을 치유하는 자비의 샘

    “인자는 사람들의 생명을 멸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려고 왔느니라”(눅 9:56, 한글킹제임스)
    예수님은 일을 즐겁고 재치 있게 하셨습니다. 성경에 기초를 둔 신앙을 가정생활과 일터에서 응용하고, 세상의 사업에 힘을 기울이면서도 일편단심으로 하나님의 영광만을 염두에 두려면 많은 인내와 영성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러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는 이웃을 돕는 자가 되셨습니다. 그는 하늘의 일을 생각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세상의 관심사에 몰두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주 하늘의 시와 노래를 부르며 마음속의 기쁨을 표현하셨습니다. 나사렛의 주민들은 그분이 음성을 높여서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를 올리는 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그분은 노래로써 하늘과 소통을 유지하셨습니다. 그분의 동료들은 일이 피곤하다고 불평하다가도 예수님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가락에 원기를 회복하곤 했습니다. 그분의 찬미 소리는 악한 천사들을 쫓아 버리고 향연처럼 그곳을 향기로 채우는 듯했습니다. 그분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인 자들의 마음은 지상의 포로 생활에서 떠나서 하늘 본향으로 이끌렸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치유하는 자비의 샘이셨습니다. 나사렛에서 은둔 생활을 하신 기간에 그분에게는 동정과 친절의 시내가 흘러나왔습니다. 연로한 자, 슬퍼하는 자, 죄 짐을 진 자, 순진하게 웃으며 노는 어린이, 숲속의 작은 피조물들, 무거운 짐을 짊어진 가축들을 막론하고 모두 그분이 함께 계심으로 더 행복해졌습니다. 능력의 말씀으로 여러 세계를 붙들었던 그분이 상처 입은 새 한 마리를 살리려고 몸을 굽히곤 하셨습니다. 그분의 눈길을 끌지 못한 것은 없었고 봉사할 가치가 없다고 무시당한 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라면서 더욱 하나님과 사람의 총애를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몸소 모든 사람을 능히 동정할 수 있음을 보임으로 모든 사람의 공감을 얻으셨습니다. 희망과 격려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분은 모든 가정에 복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선지자의 교훈을 낭독해 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으셨는데 그것을 듣는 자들은 익숙한 말씀에서 나오는 새로운 빛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과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사렛에서 사는 동안 그분은 결코 이적을 행하거나 능력을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높은 지위나 칭호를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시대의 소망』, 7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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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13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거룩한 입법자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이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사 33:22)
    요한이 언급한 주의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위대한 창조 사역을 마치고 쉬신 바로 그날이며, 쉬면서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날입니다. 요한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안식일이면 말씀을 전했듯이 밧모섬에서도 그날을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주변의 황량한 바위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바위산 호렙을 떠올렸고 거기서 하나님이 자기 율법을 백성에게 공포하실 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라는 말씀을 어떻게 하셨는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산꼭대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위를 자신의 성소로 삼으셨습니다. 무궁한 세월을 견딘 바위 언덕들이 그분의 성전이었습니다. 거룩한 입법자께서 바위산에 내려와 모든 백성이 들을 수 있도록 율법을 말씀하셨고 웅대하고 엄청난 그 능력과 영광을 보면서 백성이 깊은 인상을 받고 계명을 어기는 일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산꼭대기를 두르고 있는 짙은 구름 속에서 번개와 뇌성 중에 말씀하셨으며 그 음성은 굉음을 발하는 나팔 소리 같았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변경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단단한 석판에 율법을 기록하여 자신의 교훈이 불변임을 나타내셨습니다. 바위산 호렙은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모든 사람에게 성스러운 곳이 되었습니다.
    요한이 호렙산의 광경들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제칠일을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는 거룩한 율법을 범한 아담의 죄와 그 범죄로 인한 두려운 결과에 대해 깊이 생각했습니다. 잃어버린 인류를 구속하고자 독생자를 내주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은 너무도 커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편지에 그 사랑을 소개하면서 그는 그 사랑을 바라보라고 교회와 세상을 향해 말합니다(성화, 74).
    안식일을 하나님과 자신 사이의 표징이라고 여기는 사람은…하나님 나라의 원칙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법을 매일 실천할 것입니다.
    『My Life Today(오늘 나의 삶)』,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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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12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생명의 떡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떡을 주시나니”(요 6:32)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 치신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했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셨습니다(요 6:26~29).
    그분은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시면서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32~33절)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단순한 대화의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그 진리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듣기를 거절하며 그리스도에게서 돌아섰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거절함으로써 그들은 최종적으로 그 진리를 거절한 셈이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그분과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주는 생명의 떡이시며 영원한 영과 생명의 근원이자 양육자요 후원자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6장 35절에서 자신을 하늘의 떡으로 비유하셨습니다.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그분을 하늘이 보낸 교사로 영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분에 대한 믿음은 영적인 생애에 필수 조건입니다. 말씀으로 배부른 자들은 절대 굶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으며, 그보다 더 좋고 훌륭한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너는 공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며 공포도 네게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라 보라 그들이 분쟁을 일으킬지라도 나로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니 누구든지 너와 분쟁을 일으키는 자는 너로 말미암아 패망하리라 …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이 쓸모가 없을 것이라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모든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공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54:14~15, 17).
    Manuscript(원고), 1906년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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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11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위대한 옹호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끝없이 약속과 은혜를 베푸십니다. 은혜의 보좌는 가장 매력적인 장소입니다.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우리에게 허락하신 분이 거기 앉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 구원의 법칙이 달성됐다고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약속대로 자신의 제단에 우리의 본성을 입으신 옹호자를 두셨습니다. 우리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나님께 그분의 자녀로 소개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영접한 자들을 위해 중재하시며, 자신의 공로를 기초로 우리에게 왕족의 일원이자 하늘 왕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그러면 하늘 아버지는 그리스도의 친구인 우리를 자기의 친구로 영접하고 환영함으로써 자신의 피로 속전을 치르신 그리스도에 대한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은 이루어진 속죄에 만족하십니다. 그분은 아들의 성육신과 생애와 죽음과 중보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자마자 위대한 옹호자의 의뢰인이 됩니다. 용서를 바라는 그의 참회와 호소의 첫마디에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말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것으로 삼으시고 그 간구를 마치 자신의 요구인 양 아버지께 제시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변호하실 때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이용할 수 있도록 모든 은혜의 보화를 개방하여 그것들을 누리고, 남들에게도 전해 줄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구하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시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 이름을 사용하라. 그러면 너희의 기도가 효력이 있을 것이며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녀들이 복을 달라고 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 찬미와 감사를 드리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능력의 근원이십니다. 그분은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위하여 사막을 비옥한 땅이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택함을 받은 백성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에 감사가 우러나오게 할 만한 일들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그분께 드려지는 찬양이 거의 없기에 슬퍼하십니다.
    『교회증언 6권』, 363~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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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10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우리의 의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자신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값없이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입혀진다는 것은 고귀한 사상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원수 마귀는 이 진리가 분명하게 드러나기를 원치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 진리를 받아들이면 자신의 힘이 사라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마음을 지배하여 의심과 불신과 어둠이 그들의 경험에 스며들게 한다면, 사탄은 그들을 미혹하여 정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는 단순한 믿음을 장려해야 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반드시 지녀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공로로 자기의 죄를 사하여 주셨다고 믿는 사람은 시험에 빠져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요일 1:7) 하셨다고 말뿐 아니라 삶으로 선포할 만큼 믿음이 점점 강해져야 합니다.
    세 천사의 기별에 깃든 정신과 능력을 받고 싶다면 반드시 율법과 복음을 함께 소개해야 합니다. 그 둘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무저갱에서 올라온 세력이 불순종의 자식들을 뒤흔들어 하나님의 율법을 폐기하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라는 진리를 짓밟고 있을 때, 충성스런 자들의 마음에는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여 율법을 드높이고 예수님을 온전한 구주로 받들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면 거짓 교리와 거짓 사상에 사로잡혀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잃어버리고 그들의 믿음에는 능력과 생명력이 사라질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교회와 새 전도 지역에서 그리스도를 온전하게 제시하여 듣는 자들이 이성적인 믿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구원이시며 의(義)라는 진리를 사람들은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복음교역자』, 16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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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9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진리의 창시자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하나님은 자연계, 표상과 상징, 선조과 선지자들을 통해 줄곧 세상에 말씀하셨습니다. 교훈들은 인간의 언어로 그들에게 전달되어야 했습니다. 언약의 사자께서 말씀하셔야 했습니다. 그분의 음성이 자신의 성전에서 들려야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하고도 확실히 이해될 수 있는 말씀을 하기 위해 오셔야 했습니다. 진리의 창시자인 그분은 진리를 가려 버린 잡초 같은 인간의 말로부터 진리를 구별해 놓으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원칙들과 구원의 계획이 명백하게 설명되어야 했습니다. 구약의 교훈들이 사람들 앞에 온전하게 제시되어야 했습니다.
    유대인 중에 거룩한 혈통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간직해 온 견실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조상들에게 주어진 약속의 소망을 여전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행 3:22)고 모세를 통하여 주신 보증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믿음을 다졌습니다. 그들은 또 여호와께서 한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시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신다는 말씀을 읽었습니다(사 61:1~2). 그들은 어떻게 주께서 “정의를 세우”시고, 어떻게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며, 나라들이 그의 빛으로, 왕들이 비치는 그의 광명으로 나오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 읽었습니다(사 42:4; 60:3).
    야곱이 임종 시에 전한 말 때문에 그들은 희망으로 부풀었습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창 49:10). 쇠락하는 이스라엘의 국력은 메시아의 강림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다니엘은 메시아가 다스릴 나라의 영광을 묘사하며 그 나라가 세상 모든 나라를 계승할 것이며 “영원히 설 것”(단 2:44)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명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던 반면 이스라엘에 왕국을 세우고 민족들의 구원자로 오실 강력한 군주에 대한 기대는 팽배해 있었습니다. 때가 찼고, 죄악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더욱 쇠퇴한 인류는 구세주의 강림을 필요로 했습니다.
    『시대의 소망』,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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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8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친애하는 교사이자 친구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요 13:36)
    거룩한 사랑과 가장 부드러운 동정심으로 제자들을 바라보면서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요 13:3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는 다락방을 떠나고 없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열한 제자와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가온 이별을 고하려 하셨으나 그전에 자신이 완수해야 할 사명의 큰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그 일을 염두에 두셨습니다. 자신이 받는 모든 수모와 고통으로 아버지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어 기뻤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의 생각이 무엇보다 이것으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다정하게 “작은 자들”이라고 부르시며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요 13:33).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그들은 구주의 주위로 바싹 다가갔습니다. 자기들의 스승이자 주님이시며 친애하는 교사이자 친구이신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생명보다 소중했습니다. 제자들은 어려울 때마다 그분에게 도움을 얻었고, 슬프거나 실망할 때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분은 외롭고 의지할 곳 없는 그 무리를 떠나셔야 했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신 구주의 말씀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원수의 맹렬한 공격을 받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원수의 술책이 곤경에 짓눌린 자들에게 매우 잘 통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시선을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고후 4:18)으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생각을 정처 없는 세상에서 하늘 본향으로 돌리셨습니다.
    『시대의 소망』, 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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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7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모본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엡 5:1)
    홍수 이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면 그들은 홍수로 멸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특별한 복을 부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식욕과 방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비뚤어진 식욕의 방종 때문에 그들은 온갖 추악한 죄를 지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택해 주신 합당한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의 요구를 첫째로 생각하고 신체적인 욕구를 둘째로 생각했다면, 그들 중 아무도 광야에서 멸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비옥한 가나안 땅에 거룩하고 건전한 백성으로 살 수 있었을 것이며 모든 지파 중에는 단 한 사람도 허약한 사람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의 구주께서는 인류를 위하여 죄가 되셨습니다. 인류를 대신해야 했기에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들의 권세를 드러내지 않고 인간의 자손과 자리를 같이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그분은 가장 극심한 환경에서 인간으로 시험당하는 고난을 견뎌야 했고 하늘 아버지를 믿고 완전히 신뢰하는 본을 남겨야 했습니다. 아버지께 영광이 된다면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음식을 공급해 주실 것임을 그리스도는 아셨습니다. 이 혹독한 시련으로 말할 수 없는 굶주림을 겪으면서도 그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험을 한 점이라도 덜어 내고자 성급하게 신적 능력을 발휘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평탄한 길로 이끌릴 때는 자신을 위해 기적을 발휘할 능력, 고통과 괴로움에서 자신을 구원할 능력, 원수에게 승리할 능력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인류를 곤란한 상황으로 인도하셔서 그분의 사랑과 능력에 대한 그들의 믿음과 신뢰심을 시험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의 믿음을 입증하고 성품을 계발할 기회는 주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하나의 완전한 모본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고 신뢰해야 한다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모본과 교훈으로 늘 가르치셨습니다.
    『가려 뽑은 기별 1권』, 277~278
    0 min
  • [7월 6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만세의 반석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벧전 2:4~5)
    사도들은 확실한 기초 곧 만세의 반석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 기초에 그들은 세상에서 채석한 돌들을 가져왔습니다. 건축자들이 방해받지 않고 일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그들의 일은 극도로 힘들어졌습니다. 그들은 거짓을 기초로 삼고 있는 이들의 아집과 편견과 증오에 맞서야 했습니다.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수고한 사람들은 느헤미야 시대의 성벽 건축자들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느 4:17).
    왕, 총독, 제사장과 관원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자들이 투옥과 고문과 죽음을 무릅쓰고 사역을 진행했고 구조물은 아름답고 균형 있게 지어졌습니다. 때로 그 일꾼들은 주위를 두르고 있는 미신의 안개에 가려 거의 시력을 상실할 뻔했습니다. 때로 그들은 대적들의 폭행에 거의 압도당할 뻔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변함없는 용기로 그들은 그 사업을 밀고 나아갔습니다.
    건축자들 중에서 최선봉에 선 사람들은 하나둘 원수의 손에 쓰러졌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고, 야고보는 칼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목 베임을 당했고,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요한은 유배를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성장했습니다. 새로운 일꾼들이 쓰러진 사람들을 대신했고 돌 위에 돌이 놓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교회라는 성전은 서서히 지어졌습니다.
    교회가 세워진 이후로 여러 세기 동안 격렬한 박해가 잇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 세우는 일을 생명보다 귀하게 여긴 사람들이 부족했던 적은 결코 없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사람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6~38).
    『사도행적』, 596~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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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5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지혜롭고 능하신 지도자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9)
    하나님은 여러분이 사랑받고 있다는 신뢰감을 불어넣고자 하십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다잡도록 생각의 문을 통제하시며 여러분을 끊임없이 보호하고자 하십니다. 하염없이 자기 연민에 빠져들면, 원수가 찾아와서 여러분에게 유익하고 이롭기만 한 사람에 대해서도 언짢은 마음과 철없는 생각이 들게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뜻을 중요히 여기며 위로와 힘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을 염두에 두십시오. 그래서 삶이 그분의 방식을 보여 주는 일종의 전시장이요 증거가 되게 하십시오. 그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자녀에게 바라는 그대로 여러분 자신도 항상 하늘 아버지를 따라 행동하십시오. 하나님의 생각은 측량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찾아 발견할 수도 없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스올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욥 11:7~8).
    성경은 삶의 모든 국면에 실제적이고 유용합니다. 혼란스러울 때마다 하나님께 가십시오. 사람들과 있을 때는 재갈을 물린 듯 입을 단속하고 하나님께만 말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도받고 다스림 받는 삶에서는 오빌의 순금처럼 깨끗하고 고결한 품성이 자라납니다. 예수님은 시련의 밤에 자기에게 오면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9~30)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조언을 따른다면 지혜롭고 능하신 지도자요 홀로 참된 안내자요, 여러분에게 평화와 행복과 완전한 기쁨을 주시는 분을 떠나 곁길로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모든 것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숨을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면 아버지와도 하나가 된 것입니다. 아무리 깊고 엄숙한 열망이 있더라도 여러분의 모든 능력을 성령의 지배 아래 두어서 일이 단순하고 원만하게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Letter(편지), 1894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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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