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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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7월 4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희망의 별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갈 4:4)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과 권위에 반역하여 파멸을 자초했습니다. 자기 아들에게 지도받는 영예를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셨기에 그들의 죄는 더 무거웠습니다. 그리스도가 모세의 법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유대인의 비난은 아무런 근거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으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 순간까지 유대인에게 구속력이 있었던 율법을 준수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표상이 원형과 만나자 가축의 피로 드리는 제사는 더 이상 소용없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목숨을 내주어 단번에 위대한 제물을 드리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이전의 모든 희생 제물로 예표 되었던 것이며, 구약의 율법이 규정하는 모든 희생 제물의 의미를 완결 지었습니다.
    타락한 이후로 인간은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과 직접 소통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별한 의미에서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의 문제를 자기 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원 사업을 짊어지셨습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할지라도 그 율법의 존엄성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것이 그분의 목적입니다. 경이로운 속죄를 믿고 자비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종적인 사람을 그분은 율법의 저주에서 모두 속량하실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창조받았을 때부터 첫 율법에 대한 지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들의 마음에 각인되어 있었고 그것이 자신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들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범하고 무죄한 상태로부터 타락하여 죄인이 되었을 때, 타락한 인류의 미래에는 한 줄기의 희망의 빛도 비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죄의 책임을 짊어짐으로 그들을 구원하려는 계획을 창안하셨습니다. 땅과 인류에게 저주가 선포되었을 때는 그 저주와 관련된 한 가지 약속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범했을지라도 그리스도를 통해 희망과 용서가 주어진다는 약속입니다. 그들의 앞날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지만 구속주에 관한 약속 안에서 빛나는 희망의 별이 인류의 어두운 미래에 빛을 비추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에게 최초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진정으로 후회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약속을 믿었고 처절한 멸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75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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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3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진리의 투사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사탄은 인류에 대한 적개심이 불타올랐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 사업을 무너뜨리고 더럽혀서 인류를 구속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고 하나님께 치욕을 안기고 싶어 합니다. 그는 하늘에 슬픔을 가져오려 하고 땅을 재난과 황폐로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고는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한 결과로 이 모든 불행이 생겼다고 지적합니다.
    사탄에 대한 사람들의 적개심은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심어 주시는 은혜 때문에 생깁니다. 이처럼 회심시키는 은혜와 새롭게 하는 능력이 없다면 인간은 계속 사탄에게 사로잡혀 그의 지시만을 기다리는 노예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생긴 새로운 원칙 때문에 지금껏 평화롭던 곳에 투쟁이 일어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인간은 찬탈자요 폭군인 사탄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죄를 사랑하는 대신에 미워하는 사람, 마음을 지배하는 정욕에 저항하여 이긴 사람은 전적으로 하늘에서 말미암는 능력의 작용을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과 사탄의 영 사이에 존재하는 적의는 세상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유대인이 예수님을 거절한 이유는 그분에게 세상의 부귀와 영화와 권세가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러한 외적인 상태의 부족을 채우고도 남을 능력이 그분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사악한 이들이 증오를 품은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순결하고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극기 그리고 순결한 헌신의 삶은 거만하고 방탕한 이들에게 끊임없는 견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적개심이 생긴 것입니다. 사탄과 악한 천사들은 악한 사람들과 합세했습니다. 모든 반역의 세력은 진리의 투사이신 분에게 대적하고자 꾀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그들의 주님이 만났던 똑같은 적의를 경험합니다. 죄의 가증한 성질을 깨닫고 위로부터 오는 능력에 힘입어 유혹을 거절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탄과 그 부하들의 분노를 일으키게 됩니다.
    『각 시대의 대쟁투』, 506~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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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2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변함없는 조력자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단 5:25)
    그 손은 사라졌지만 공포의 네 마디 글씨는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다니엘이 그 뜻을 풀이해 주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단 5:25~28).
    벨사살이 베푼 잔치를 지켜보는 증인이 계셨듯, 신성을 모독하고 비웃는 모든 현장에도 지켜보는 증인이 계시며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라고 기록하는 천사가 있습니다. 억제의 노력에도 부절제는 늘어만 갑니다. 부절제의 증가를 막기 위해 기도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타락한 자들을 일으키고 약한 사람을 유혹에서 보호할 수는 없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손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변함없는 조력자가 계십니다. 인간이 아무리 깊은 슬픔과 몰락을 겪더라도 그리스도의 팔이 거기까지 뻗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은 부절제라는 이 끔찍한 악령을 정복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 작업이 실제로 시작되어야 할 곳은 가정입니다. 젊은이를 교육하고 그들의 성품을 빚어내야 할 이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자녀들이 올바른 습관과 순수한 취향을 익히고 도덕적인 힘과 진실한 도덕관을 기르도록 돕기 위해 어머니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자녀를 가르쳐서 남에게 휘둘리거나 그릇된 영향력에 굴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리어 선한 감화를 끼치고 만나는 이들의 마음을 북돋고 발전시키는 사람이 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그분을 힘입어 맹렬한 유혹도 물리칠 수 있다고 가르치십시오.
    다니엘은 바벨론 궁전에서 죄의 유혹에 둘러싸였지만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자신을 온전하게 지켰습니다. 주변에 놓인 온갖 수단을 가지고도 유혹에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늘 책에 이름을 등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능력으로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악에 맞서기가 힘든 상황에 우리를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를 보호하고 힘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Christian Temperance and Bible Hygiene(그리스도인의 절제와 성경의 위생)』,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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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1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주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요 2:24)
    끊임없이 새로운 은혜를 공급받는 사람만이 하루하루 필요한 힘과 그 힘을 사용할 재능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특별하게 영적인 능력을 부여받아 기적적으로 영혼 구원 사업에 적합하게 될 어떤 미래를 고대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자신을 하나님께 복종시켜서 그분께 적합한 도구가 되고자 할 것입니다. 그들은 날마다 삶의 범위 안에 있는 봉사의 기회를 활용합니다. 가정에서 하찮은 일을 하든지, 공공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든지 그들은 어디서나 주를 증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 날마다 필요한 은혜를 새롭게 공급받고자 하늘 아버지께 간구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사람들을 굳세고 복되게 하셨습니다. 헌신적인 일꾼들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귀중한 위안을 얻습니다. 하늘 아버지께 엎드려 기도하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십시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기도로써 자기 믿음을 굳게 하셨고 하늘과 교통함으로 악에 저항하며 사람들의 필요를 채울 능력을 얻으셨습니다. 그분은 인류의 맏형이셨습니다. 따라서 죄와 유혹의 세상에서 결함투성이로 살면서도 여전히 그분을 섬기려는 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셨습니다. 그들이 연약하고 과오를 범하는 자들임을 아셨지만 그분은 그들을 파송하기에 적합하다고 보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자기에게 전적으로 헌신하는 모든 사람에게 거룩한 도움을 약속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 그분의 사업에 아낌없이 헌신하는 믿음으로 열렬하고 끈질기게 구하는 사람은 죄와 싸울 때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예수님이 직접 모본으로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는 일꾼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추수를 무르익게 하려고 교회에 약속해 주신 능력을 받아 사용할 준비를 갖출 것입니다. 매일 아침 복음의 사신들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께 헌신의 서약을 새롭게 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성령의 임재와 더불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거룩한 능력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매일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나아갈 때 성령께서 자신들을 “하나님의 동역자”(고전 3:9)가 되게 해 주신다고 확신합니다.
    『사도행적』, 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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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30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성결하게 하시는 분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출 31:13)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빠져나와 지상의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안식일이 그들을 구별하는 징표였듯이 오늘날도 안식일은 세상에서 벗어나 하늘의 안식으로 들어가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별해 주는 표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며, 그들이 율법을 존중한다는 징표입니다. 그것은 그분의 신실한 신민과 범죄자들을 구분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표시하기 위해 세상에 주어진 안식일은 성결하게 하시는 분으로 하나님을 소개하는 표이기도 합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영혼을 재창조하는 능력이 되기도 합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자들에게 안식일은 성결의 표입니다. 참된 성결은 하나님과 조화되며 그분의 품성이 구현된 원칙들에 순종할 때 그 일이 이루어집니다. 또 안식일은 순종의 표입니다. 진정으로 넷째 계명을 지키는 자는 율법 전체를 지킬 것입니다. 그는 순종을 통하여 거룩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랬듯이 안식일은 우리에게도 “영원한 언약”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분의 거룩한 날을 중요하게 여기는 자들에게 안식일은,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된 자기 백성으로 인정하시는 표입니다. 안식일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언약을 성취하신다는 보증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상징하는 표를 받아들이는 자는 모두 자신을 거룩하고 영원한 언약 아래에 두는 것입니다. 그는 약속의 고리들로 이어진 순종의 황금 사슬에 자신을 단단히 결속시킵니다.
    열 계명 중에서 오직 넷째 계명만이 위대한 율법 제정자, 즉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의 날인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그분의 이름이 주어지며, 그에 따르는 모든 복이 그들의 것이 됩니다.
    『교회증언 6권』, 349~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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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29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여호와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막 15:13~14)
    그리스도에게 치유를 받은 자들은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외쳤던 폭도와 한패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께 동정심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큰 긍휼과 놀라운 능력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들의 구주이심을 알았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심신의 건강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을 들었으며,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간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사자들이 되었으며 그분이 베푸시는 구원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성전에서 도망갔던 무리는 잠시 후에 슬금슬금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사로잡았던 공포에서 얼마간 회복되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기색이 여전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고 놀랐으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 예수에게서 성취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성전을 더럽힌 죄는 주로 제사장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들의 결정에 따라 성전 뜰은 시장이 돼 버렸습니다.
    …제사장과 관원들은 그 누구보다 예수님이 여호와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손에는 그리스도의 사명을 묘사한 성경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고, 예수께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실 때에 초인간적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그들은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심히 미워했지만 그분이 성전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런 두려움에서 생긴 존경심을 가지고 그들은 예수께 가서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시대의 소망』, 16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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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28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거룩한 치유자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히 2:3)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영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사탄의 포로가 됩니다. 사탄이 그들을 얼마나 깊은 죄로 끌어들일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은 악에서 쾌감을 느끼는 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들과 어울리는 결과가 어떠할지를 내다보고 그는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창 49:6)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회합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에게 위험 신호를 보낸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 같은 경고에 반응하여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고 했습니다(엡 5:11; 고전 15:33).
    사람이 이스라엘의 주 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세속적인 방침이나 인간적인 착안들을 의지한다면 기만당하고 말 것입니다. 주 예수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의심과 시련의 때에 그분보다 더 훌륭한 조언자가 어디 있으며, 위험이 닥칠 때에 그분보다 더 든든한 방어벽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지혜를 제쳐 두고 인간의 지혜를 따르는 사람은 파멸에 이르는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감화를 거절할 때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되는지 보고 싶다면 유대 나라의 제사장과 장로들의 선동에 의해서 격분한 폭도들이 재판정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요구하는 광경을 보십시오. …빌라도가 예수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눅 23:21)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성은 같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고 그 본성을 고양시키시려는 거룩한 치유자를 경멸한다면 동일한 정신이 인류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마음을 의지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께 대한 충성심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가려 뽑은 기별 2권』, 129~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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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27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계시록의 마지막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계 1:17)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시고 그날을 어떻게 거룩히 지켜야 할지 가르쳐 주셨던 그 예수님은 창조의 시작이십니다. 그분은 성육신하심으로, 타락한 세상을 속량하기 위해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심으로 우리가 착실하게 각 시대를 헤쳐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재판을 받으셨지만 정죄를 당하지 않으셨습니다. 정죄할 만한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그분을 심문한 뒤에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죽임을 당하도록 넘겨졌습니다. 그분의 친백성이 그분을 질시하였고 미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죄인으로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무덤에 안치되셨지만 사흘 후에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 요셉의 무덤 위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께로 승천하셨고 지금은 하늘 법정에서 우리를 위해 변호하고 계십니다.
    구약 성경에서 신약 성경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마침내 이런 말씀을 듣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여기서 우리는 창세기의 시작이요 계시록의 마지막인 분을 만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일에 그분과 협력한 사람 모두에게 복이 약속되었습니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97년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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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26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온몸의 머리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렘 17:14)
    팔이 몸통에 연결되어 있듯이 의료 선교 사업도 복음 사업과 동일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외의 다른 방식을 제시하신 적이 없습니다. 복음 사업은 진리를 선포하고 아프거나 건강한 사람들을 위한 사업의 진척에 필요한 일종의 유기체입니다. 이것이 몸통이라면 의료 선교 사업은 팔이며 그리스도는 온몸의 머리이십니다. 이 일은 그렇게 저에게 제시되었습니다.
    …의료 선교 사업은 몸에 붙은 팔이기 때문에 동일하게 존중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이 사업에 뚜렷한 관심을 기울이기를 바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 사업의 모든 분야에 연결되어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치우침이 없습니다. 병자들을 치유하실 때 그분은 의사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진리를 선포하노라면 병자들이 그분께 고침을 얻기 위해 나왔고 그분은 자신에게 그들을 온전하게 할 능력이 있음을 그들이 믿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분은 항상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프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안수하실 준비도 되어 있으셨습니다. 그분은 진리를 선포하실 때뿐 아니라 집을 방문하실 때에도 그렇게 하셨는데 왜냐하면 병자들의 치유는 복음 사업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지위와 조건과는 상관없이 그들이 있는 곳에서 마음을 얻고,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사람들을 돕는 것이 복음의 직무입니다. 목회자는 병자의 가정을 방문하여 ‘나는 당신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나는 의사는 아니지만 목사로서 병자와 고통 당하는 자들에게 봉사하기를 좋아합니다.’라고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몸이 아픈 자들은 거의 대부분 마음도 아프며, 마음이 아프면 몸도 병들게 됩니다.
    『의료 봉사』, 237~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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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25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겸손한 교사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눅 4:15)
    니고데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예수님은 구원의 계획과 세상을 위한 자신의 사명을 펼쳐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뒤에 전한 설교 중에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에 대해 그처럼 자세하고 단계적으로 설명하신 적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마음의 문을 연 산헤드린의 일원이요 공인된 교사에게 이 진리를 공개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씨를 뿌린 밭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늦은 밤, 고적한 산에서 한 사람에게 하신 그 말씀은 잊히지 않았습니다. 니고데모는 얼마 동안 그리스도를 공개적으로 시인하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생애를 주목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숙고했습니다. 그는 산헤드린 회의에서 예수를 죽이려는 제사장들의 계획을 거듭 좌절시켰습니다. 예수께서 마침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니고데모는 감람산에서 주신 가르침, 곧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는 교훈을 기억했습니다. 그 은밀한 대화에서 비쳐 오는 빛이 갈보리 십자가를 환히 비췄으며 니고데모는 예수께서 세상의 구주이심을 보았습니다.
    주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박해를 받아 흩어졌을 때에 니고데모는 담대하게 전면에 나섰습니다. 그리스도가 죽으면 소멸될 것으로 유대인들이 예상했던 어린 교회를 유지하고자 니고데모는 자신의 재물을 사용했습니다. 그렇게도 조심스럽고 의심이 많던 그는 교회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 바위처럼 굳세게 서서 제자들의 믿음을 격려하고 복음 사업을 진척시키기 위하여 재물을 공급했습니다. 그는 전에 자기에게 경의를 표하던 자들에게 조롱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는 가난하게 되었으나 예수님과 만났던 날 밤에 시작되었던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니고데모는 그날의 일화를 요한에게 설명했고 요한은 자기의 붓으로 그 이야기를 수많은 사람을 위해 기록했습니다. 그 유대의 관원이 어두운 밤, 깊은 산속에서 생명의 도에 관하여 갈릴리의 겸손한 교사로부터 배웠던 그 진리들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합니다.
    『시대의 소망』, 17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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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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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