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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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4월 16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하늘의 도움이신 분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치료에는 늘 사랑의 힘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 사랑에 믿음으로 호응할 때만 우리는 그분의 사업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맺는 신성한 관계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생명의 에너지를 풍성하게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불신 때문에 주님께서 많은 이적을 행하지 못한 곳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불신은 하늘의 도움이신 분을 교회에서 끊어 버립니다. 영원한 실체를 붙잡는 교회의 힘이 약하기 그지없습니다. 교회에 믿음이 부족하면 하나님은 실망하시고 그 영광을 빼앗기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일을 할 때 그분의 임재를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가서 모든 족속을 가르치라고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분의 멍에를 메는 것이 그분의 능력을 받는 첫째 조건입니다. 교회의 생명은 주님의 대사명을 성실하게 완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 게으르면 여지없이 영적으로 나약해지고 쇠퇴합니다. 남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지 않으면 사랑이 시들고 믿음은 희미해집니다.
    교회에서 목사들이 복음 전도 교육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뜻입니다.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들이 과연 이 일을 하고 있습니까? 슬프게도 교회 안에서 꺼져 가는 생명의 불꽃을 살리느라 애써 부채질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 밖으로 나가야 할 이들이 병든 양 돌보듯 교회를 보살피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와중에도 수백만의 사람이 그리스도 없이 계속 죽어 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류를 위하여 한없이 물결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큰 사랑을 누리는 이들이 단지 겉치레로만 감사하는 모습에 천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인간 영혼에 대한 무관심에 하늘은 분개합니다. 만약 자녀가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었는데 충분히 구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는 바람에 그 자녀가 죽어 버린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가슴 찢어지게 슬프지 않겠습니까? 눈물처럼 뜨겁고 사랑처럼 맹렬한 분노로 그 살인자들을 고발하지 않겠습니까? 각 사람이 겪는 고통은 곧 하나님의 자녀가 겪는 고통입니다. 죽어 가는 동료에게 아무런 도움의 손길도 뻗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분을 자아냅니다. 이것이 어린양의 진노입니다.
    『시대의 소망』, 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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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15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승리한 왕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8)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무덤에서 일어난 포로들은 그분이 승리한 왕으로서 쟁취한 전리품입니다. 이로써 그분은 사망과 무덤에 대한 자신의 승리를 증명하셨고, 죽은 의인 모두가 부활하리라는 약속과 보증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무덤에서 부름 받은 이들은 성읍에 들어가 부활한 자신의 모습을 많은 사람에게 보였고 예수님이 참으로 죽음에서 부활하셨으며 자신들도 그분과 함께 부활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죽은 자들에게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는 음성이 들렸고 그 음성은 돌무덤 벽을 꿰뚫어 잠자는 자들을 일으켰습니다. 하늘과 땅을 흔들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 때도 그와 똑같을 것입니다. 그 음성은 무덤을 뚫고 들어가 문빗장을 풀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강한 지진이 일어나 세상은 술 취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흔들릴 것이며 그때 영광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있는 모든 천사의 수행을 받으며 나타나실 것입니다. 나팔이 울려 퍼지고 생명의 시여자께서 죽은 의인들을 일으켜 불멸의 삶을 주실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 몇 사람이 예수님의 부활 때 살아났다는 소식을 제사장과 관원들은 익히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부활한 그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 아니라 생명의 왕, 다시 말해 제사장과 관원들이 죽인 그분이 살아나셨다는 증언까지 그들에게 들었다는 믿을 만한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무덤에서 자기 주인의 시신을 훔쳤다는 거짓 소문이 신속히 퍼져 그 소문을 믿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 거짓 발표를 모의한 제사장들은 스스로 제 꾀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편견에 눈멀지 않은 의식 있는 사람들은 그 발표의 거짓을 누구나 알아챘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거리를 걷다가 혹은 자기 집에 있을 때 혹시라도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만나지나 않을까 줄곧 두려워했습니다. 자신들을 위한 안전장치가 하나도 없음을 실감했습니다. 빗장과 창살도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듯했습니다.
    『The Spirit of Prophecy』, vol. 3, 22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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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14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힘없는 자들의 친구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 10:5). 개혁을 이루려면 가장 먼저 상상력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악한 방향으로 이끌리는 마음을 억눌러 순결하고 고상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부도덕한 상상에 빠지려는 유혹을 받을 때는 은혜의 보좌로 도망치십시오. 그리고 하늘의 능력을 구하며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으로 상상력을 훈련하면 순결한 하늘의 것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원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이 세상의 악한 지식에 바보가 되어야만 합니다. 눈을 질끈 감아 어떤 악도 배우지 말아야 합니다. 귀를 틀어막아 악한 것을 듣지 말고, 순결한 생각과 행동을 더럽히는 지식을 배우지 말아야 합니다. 또 혀를 지켜서 부도덕한 대화를 하지 말고 간교한 술책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주어진 유예의 기간에 벌인 행동 하나하나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누구나 자기 행동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생각과 행동이 그다지 덕스럽고 순결하지 않다면 힘없는 자들의 친구이신 분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 본성의 연약함 모두를 익히 알고 계시므로 간절히 구하면 가장 강력한 유혹도 능히 이길 힘을 주십니다. 겸손하게 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짐을 지고 수고하는 사람을 모두 기쁘게 초대하십니다. 죄인의 친구인 자기에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아무리 꼬치꼬치 캐묻기 좋아하는 사람도 그리스도의 학교에 있으면 현재와 영원한 삶에 유익한 것을 거리낌 없이 배울 수 있습니다. 불안하고 불만스런 사람도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생각과 애정을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면 이 땅의 보물보다 값진 참된 지혜를 얻습니다.
    『A Solemn Appeal』, 7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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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13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성결의 모본이신 분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책임 있는 자리에 오른 사람이 하나님께 영적인 에너지를 얻지 못한 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선언한다면 그들은 터무니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며 자신의 수고에 따르는 성패를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은 위대한 봉사나 원대한 포부가 아니라 크든 작든 봉사에 깃들어 있는 사랑과 헌신입니다. 거센 반대와 거절을 당하여 그분의 날개 아래서 피난처를 찾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뒤덮인 구름 속에서 우리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라는 그분의 음성을 듣습니다.
    …숨을 내쉬며 제자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으시고 자신의 평화를 나눠 주신 그리스도의 행동은 오순절에 주어질 풍성한 소낙비에 앞선 몇 방울에 불과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점을 제자들에게 깊이 각인시키신 이유는 장차 그들이 맡은 일을 수행하면서 이 사업의 본질과 이 땅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는 방식을 더 잘 깨닫도록 이끌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증인으로 임명받았으므로 그분의 부활에 관하여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해야 했습니다. 주님의 입술에서 나온 은혜로운 말씀을 거듭 전해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그분의 거룩한 품성을 익히 알았습니다. 그분은 태양 아래 있지만 어떤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는 천사와 같았습니다. 제자들이 맡은 거룩한 과업은 그리스도의 흠 없는 품성을 사람들에게 삶의 표준으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성결의 모본이신 분과 매우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기에 품성 면에서 그분과 어느 정도 닮아 있었고 그분의 가르침과 모본을 세상에 알리는 데 특별히 적합한 상태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주님의 생애와 품성을 깊이 생각하면서 그분과 더 많이 교제할수록 더욱더 그분을 닮아 가고 더 훌륭하게 그분의 진리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위대한 모본이신 분의 생애에 나타난 모든 특징을 주의 깊이 연구해야 합니다. 산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그분과 긴밀한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결점투성이인 인간의 품성이 그분의 빛나는 품성으로 바뀝니다. 진리를 전하는 교사는 이런 식으로 준비되어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것입니다.
    『The Spirit of Prophecy』, 24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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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12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하늘 궁전의 친구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이렇게 고백했던 초대 교회의 제자들처럼 오늘날 우리가 이 생생한 희망을 굳게 믿고 기뻐하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요셉의 새 무덤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분은 부활하여 승천하셨고, 우리는 믿음을 발휘해 우리가 지닌 산 소망을 세상 사람들에 알리고 하늘 궁전의 친구이신 분을 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희망을 안고 다시 태어났고, 하늘에 보존되어 썩지도 더럽혀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유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유업은 썩지 않습니다. 이것은 상상에 불과한 게 아니라 하늘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5~7).
    우리는 시험을 만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고 하나님이 시련으로 우리 믿음을 검증하시는 것임을 잊어버리는 듯합니다. 주님은 각 사람을 서로 다른 환경으로 이끌어 향상시키고자 하십니다. 자신도 모르는 결점을 깨닫고 극복해 내도록 그분은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그분의 섭리 안에서 우리는 갖가지 상황을 겪습니다. 환경이 바뀔 때마다 또 다른 시험이 찾아옵니다. 무언가 어려운 사정이 생기면 우리는 ‘이건 정말 아니야. 그냥 예전처럼 지낼 수 있기를 그렇게도 간절히 바랐건만.’ 하고 생각합니다. 왜 믿지를 못하는 것입니까?
    …주님의 섭리로 시련을 당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긴급한 상황에 결연하게 대처하면서 품성의 결함을 이겨 내야 하는 것입니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89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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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11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죄가 없는 그분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눅 23:26)
    구주께서 힘없이 비틀거리며 발걸음을 옮겼지만 뒤따르는 군중 가운데 동정을 나타낸 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옮기지 못하는 예수님을 비웃으면서 그들은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거듭거듭 그 짐이 그분의 어깨에 지워졌고 그분은 또다시 기절하여 땅에 쓰러졌습니다. 박해자들은 더 이상 그분이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이 굴욕의 짐을 누구에게 지워야 할지 그들은 난감했습니다. 유대인은 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 때문에 부정해지면 유월절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뒤따르던 폭도 중에 아무도 몸을 굽혀 십자가를 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시골에서 올라온 이방인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군중과 맞닥뜨립니다. 사람들이 퍼붓는 욕설과 비난이 그의 귀에 들립니다. “유대인의 왕이 지나가니 길을 비켜라!”라며 경멸조로 외치는 소리가 계속 들려옵니다. 시몬은 이 광경에 몹시 놀라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측은하게 쳐다보는 시몬을 붙잡아 그의 어깨에 십자가를 지웁니다.
    시몬은 예수님에 관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시몬의 아들들은 구주를 믿었으나 그 자신은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까지 간 것이 시몬에게는 큰 복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이 섭리에 늘 감사했습니다. 이 경험으로 그는 자진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되었고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 밑에서 섰습니다.
    그토록 잔인하게 죽임 당할 만한 죄가 없는 그분에게 인파가 몰렸고 거기에는 여인도 꽤 많았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에게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여인들 중에는 전에 예수님을 보았던 이도 있었고 환자와 고통 당하는 사람을 그분께 데려온 이도 있었습니다. 직접 병 고침을 받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장면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을 증오하는 군중을 보면서 여인들은 기가 막혀 가슴이 녹아 터져 버릴 지경이었습니다. 미쳐 날뛰는 군중의 행동과 제사장과 관원들의 짜증 섞인 말에도 불구하고 여인들은 그분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눌려 실신하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며 통곡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눈길을 끈 유일한 모습이었습니다.
    『시대의 소망』, 74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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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10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모든 생명력의 원천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1~22)
    생명은 의인이 받을 유업이며 사망은 악인의 몫입니다.
    죄를 짓는 영혼은 영원한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부활의 희망이 없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그리고 그제야 하나님의 진노가 사라집니다.
    “범죄 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는 성경 구절을 ‘죄인은 죽지 않고 영원히 고통 받는다.’라는 뜻으로 믿게 하는 데 사탄이 크게 성공한 것을 보고 저는 경악했습니다. 그러나 한 천사는 “고통스럽든 행복하든 삶은 삶이다. 죽음에는 고통도 기쁨도 증오도 없다.”라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도록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치욕적인 상황에서 고뇌 어린 죽음을 겪으셨습니다. 죽음을 정복하기 위해 그분이 귀한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무덤에서 일어나셨습니다. 내버린 생명을 예수께서 다시 취하는 모습을 천만 천사가 목도했습니다. 그분이 요셉의 갈라진 무덤 위에 서서 승리의 기쁨으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요 11:25)이라고 외치는 음성을 그들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미 답이 주어졌습니다. 죄의 형벌을 지심으로, 무덤에 내려가심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믿음 안에서 죽는 모든 자를 위해 무덤을 환히 비추셨습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생명과 불멸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자기를 믿는 자 모두를 위해 영생을 쟁취하셨습니다. 죽임을 당함으로써 그분은 죄와 불충성의 창시자에게 죄의 형벌, 즉 영원한 죽음을 선고하신 것입니다.
    영생의 소유자이며 영생의 시여자이신 그리스도는 죽음을 정복할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대속자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생명 자체이십니다. 사망 권세 잡은 자를 멸하기 위해 죽음을 통과하신 그분은 모든 생명력의 원천이십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고 크신 의원이 계십니다.
    『The Faith I Live By』,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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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9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생명의 샘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골 1:9)
    골로새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이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의 참된 증인에게서 나타나는 목적의 단순성과 숭고함이 무엇인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하늘로 향하는 자신의 발걸음을 막거나 다른 사람을 좁은 길에서 떠나게 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매일 자비와 친절과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보다 높고 순결하고 고상한 삶의 힘입니다. 세상이 우리의 생각을 너무나 많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하늘 왕국에 대해서 우리는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이상에 이르기 위해 어떤 것에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덕적·영적 완전이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을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의 근원, 생명의 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인도하시며 죄에 병든 영혼을 치유하는 생명나무 잎사귀를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하나님의 보좌로 인도하시고, 그분과 가까이 접촉할 수 있는 기도를 우리 입술에 담아 주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하늘의 전능한 일꾼들이 활동하게 하십니다. 매 발걸음 우리는 그분의 산 능력에 접촉합니다.
    “모든 지혜와 영적 지각 안에서 그분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케”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발전에 제한을 두지 않으십니다. 깨어 기도하며 지식과 이해력이 자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힘을 통해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도록 준비됩니다. 하나님은 순결하게 성화된 인간이 그분을 돕는 손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큰 특권을 주신 하나님, “빛 가운데 살아가는 자녀들을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 “어둠의 세력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사랑하는 아들의 왕국으로 우리를 옮겨”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사도행적』, 477~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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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8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가장 사랑하는 아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7)
    복음이 신속히 전파되거나 가로막혀서 생기는 결과를 우리는 기껏해야 자신이나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로만 여깁니다. 이것이 하나님과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죄가 우리의 창조주께 가한 고통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온 하늘이 그리스도의 고뇌로 말미암아 함께 고통을 겪었지만, 그 고뇌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오셨을 때 시작되거나 끝난 것이 아닙니다. 죄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의 마음에 고통을 안겨 주었고 십자가는 우리의 둔한 감각에 그 고통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옳은 길에서 떠날 때마다, 잔인한 행동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이상에 도달하지 못할 때마다 하나님은 슬픔을 느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난 결과로 원수에게 정복되어 압제와 무자비와 죽음의 재난을 맞이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습니다(삿 10:16; 사 63:9).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롬 8:26).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을 때(롬 8:22), 무한하신 하늘 아버지의 마음은 연민으로 고통을 겪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거대한 수용소 같아서 그 모습은 생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비참합니다. 이 현실을 그대로 인식한다면, 우리는 마음에 너무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그대로 느끼고 계십니다. 죄와 그 결과들을 멸하고자 하나님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아들과 협력하여 이 비참한 광경에 종지부를 찍게 하셨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교육』, 263~264
    0 min
  • [4월 7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복된 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세상의 샘을 찾는 사람은 또다시 목마를 뿐입니다. 어디서든 사람들은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그들은 영혼의 결핍이 채워지기를 갈망합니다. 오직 한 분만이 그 공백을 채울 수 있습니다. 세상에 필요한 것, 다시 말해 ‘만국의 소망’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께서만 나눠 줄 수 있는 거룩한 은혜는 생수와 같아서…순결하고 유쾌하게 하며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수를 그저 한 모금 마시는 걸로 충분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본 사람은 계속하여 그것을 더 갈망하며 그 외에 다른 것을 찾지 않습니다. 그는 세상의 재물과 영광과 쾌락에 미혹되지 않습니다. 그는 ‘주님을 더 원합니다.’라고 끊임없이 마음으로 외칩니다. 영혼에 필요한 것을 보여 주시는 분께서 그 허기와 갈증을 채워 주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인간의 힘과 수단은 모두 실패할 것입니다. 그 우물은 바닥을 드러내고 샘은 마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주는 마르지 않는 샘이십니다. 마시고 또 마셔도 늘 신선한 물이 넘칩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그 안에서 복된 샘,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을 지닌 것입니다. 필요한 힘과 은혜를 이 샘에서 전부 길어 올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생수에 관해 말씀하셨을 때 그 여인은 놀라움으로 그분을 주목했습니다. 그분은 그녀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방금 언급하신 그 선물을 갈망하게 일깨우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야곱의 우물이 아님을 그 여인은 깨달았습니다. “주여!”라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그 여인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분의 말씀에 감동받았습니다. 여인은 자기 동족의 제사장이나 유대인에게서 이렇게 다정다감한 말을 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자기의 과거 행적이 펼쳐졌을 때 그 여인은 자신의 부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수가의 우물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영혼의 갈증을 깨달았습니다. 이제까지 관계하던 어떤 것도 자기의 필요를 이처럼 크게 일깨워 준 적이 없습니다. …’혹시 이분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아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그녀의 마음속에 일어났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에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저희에게 모든 것을 다 알려 주시겠지요.”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시대의 소망』, 187~190
    0 min

About 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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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