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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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3월 27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늘 살아 계시는 구주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너희가…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교회의 고백, 즉 하나님의 진리, 사랑, 신실하심, 능력에 관한 증거를 널리 알리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하늘이 선택한 수단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성령에 감동받아 증언할 때 사람들은 구원을 그토록 소홀히 여겼던 잘못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 회심한 사람은 선조들과 선지자들을 통해 드러난 그분의 능력을 인정할 뿐 아니라 현재 개인이 경험하고 있는, 늘 살아 계시는 구주인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기적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인내, 사랑에 관한 이 엄청난 고백이 한결같은 삶에서 계속 이어지면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생깁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마음으로 받아들인 중요한 진리 하나하나가 삶 속에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만큼 사람들은 그 사랑의 힘을 남에게 전하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전하는 행위 자체는 자기 영혼에 부여되는 가치를 더 크고 강력하게 해 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사람은 마음에 퍼지는 위로, 소망, 평화를 드러내고픈 열망도 넘칩니다.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의 감정을 그들은 똑같이 느낍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리뷰 앤드 헤럴드』, 1889년 2월 19일
    0 min
  • [3월 26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대장 선교사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모두 그리스도의 사업에 충성하는 종이 되기로 결심해야 하며 학생 하나하나가 성실하고 순결하고 거룩하게 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직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않은 이들을 열심히 인도해야 합니다. 매일 그들은 조용하고도 신실한 감화력을 발휘하면서 이 세상의 대장 선교사이신 그리스도와 협력할 수 있습니다. 남녀 젊은이 모두에게 탁월한 품성과 헌신, 순결함, 거룩함을 길러 주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면서 믿음의 원수에게 패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거룩한 믿음의 띠로 하나가 되어 온전히 주님의 편에서 응집된 감화력을 끼치어, 만나는 이들이 변화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생생하게 연결되어 있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큰 뜻을 품고 있으며, 자기 생명을 내주신 분을 드높이고자 아름다운 품성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주님께 속량받은 자들을 위해 마련된 길을 그들도 걷게 하십시오. 우리 학교의 학생들이 하나님의 뜻을 좋아하도록 가르침 받으면 그 길은 상대적으로 쉽게 다가올 것입니다.
    학생들이 타인의 품성에서 결함을 찾아냈다면, 이런 문제들을 분별하고 경계할 수 있게 된 점에 대해 감사하게 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온순함과 겸손함을 배우지 못한 채 자랑하고 뽐내기 좋아하는, 경솔하고 세속적인 이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한 유일한 치료법은 예수님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분의 품성을 탐구할 때 그들은 허황되고 경솔하고, 우둔하고, 상스러운 것들이 싫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품성은 너그러움, 인내, 선량함, 자비, 비할 데 없는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품성을 바라보면, 불경하고 밉살스럽게 지내던 천박함을 내버리게 될 것입니다. “우쭐대는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고 가식적인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겠어.”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라는 말씀을 그들은 실감할 것입니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94년 1월 16일
    0 min
  • [3월 25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맏형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9~30)
    여기서 그리스도는 인간 모두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각하든 못하든 인간은 모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입니다. 모두를 짓누르고 있는 그 짐은 그리스도께서만 벗겨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고 있는 가장 무거운 짐은 죄의 짐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이 짐은 우리를 짓뭉개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죄 없는 분께서 우리의 자리를 대신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그분이 우리의 죄 짐을 떠맡으셨습니다. 피곤한 우리의 어깨 위에 있는 짐을 그분이 취하실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쉼을 주실 것입니다. 걱정과 슬픔의 짐 또한 그분이 지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염려를 자기에게 내맡기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가슴에 품으십니다.
    인류의 맏형이신 분이 영원한 보좌 곁에 계십니다. 그분은 자기를 구주로 믿고 찾는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보십니다. 인간의 약점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우리가 겪는 유혹이 어느 면에서 강렬한지를 그분은 경험으로 아십니다.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았으면서도 죄는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떨고 있는 우리를 그분이 보살피십니다. 여러분이 시험을 받고 있습니까? 그분이 건져 주실 것입니다. 힘이 없습니까? 그분이 강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앞길이 막막하십니까? 그분이 깨우쳐 주실 것입니다. 상처를 입었습니까? 그분이 고쳐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는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 분입니다(시 147:3~4). “내게로 오라”고 그분이 초청하십니다. 여러분의 염려와 시련이 무엇이든 주님 앞에 사정을 털어놓으십시오. 그러면 견뎌 낼 힘을 얻을 것입니다. 난처하고 어려운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자신이 약하고 속절없음을 알면 알수록 그분의 능력 안에서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짐을 져 주시는 분에게 그 짐들을 내려놓는다면 더욱 복된 쉼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쉼은 조건적이지만 이 조건들은 뚜렷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따를 수 있는 조건입니다. 그분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주는 쉼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알려 주고 계십니다.
    “나의 멍에를 메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멍에는 봉사의 도구입니다. 소들은 일하기 위해 멍에를 메며 효과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멍에는 꼭 필요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봉사를 위해 부름 받았다고 그리스도께서 이 예화를 통해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멍에를 지고 그분의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대의 소망』, 328~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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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24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하나님이 보내 주신 교사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요 13:13)
    하나님이 보내 주신 교사는 하늘에서 내린 최고의 위대한 선물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의회에 함께하시는 분, 영원하신 하나님의 지성소에 거하시는 분께서 인간이 되어 인류에게 하나님을 알려 주도록 선택되신 것입니다.
    타락한 이 세상에 다다르는 신성한 빛줄기는 모두 그리스도를 통해 전달된 것입니다. 그분께서 각 세대에 걸쳐 각 사람을 통해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류에게 선포하셨습니다. 지구상의 가장 위대하고 고상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탁월함은 모두 그분의 모습을 반사한 것입니다. 요셉의 순결함과 선행, 모세의 믿음과 온유함과 끈기, 엘리사의 확고부동함, 다니엘의 청렴결백과 견실함, 바울의 열정과 자기희생, 또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난 정신적·영적 능력은 그리스도의 눈부신 영광을 어렴풋이 전달하고 있을 뿐입니다. 완벽한 이상은 그분 안에 있습니다.
    이 이상이야말로 달성해야 할 유일하고 참된 표준임을 세상에 알려 주기 위해서 그리고 인간 각 사람이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다시 말해 신성에 힘입은 인성이 내면에 자리 잡을 때 그분을 영접하는 사람 모두가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오셔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에 걸맞게 가꾸어지는 법, 이 땅에서 하늘의 원칙을 실천하고 하늘의 삶을 살 수 있는 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선물을 주셔서 인간에게 가장 절실한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세상의 어둠이 짙을 때 빛이신 분이 나타나셨습니다. 거짓 가르침으로 인간의 마음은 오랫동안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세상에 퍼진 교육 제도와 인간 철학이 하나님의 계시를 대신했습니다. 하늘에서 알려 준 진리의 표준 대신 인간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표준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빛이신 분에게서 벗어나 자신들이 일으킨 불꽃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교육』, 7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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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23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거룩한 일꾼

    “때가 낮일 동안에 나는 나를 보내신 분의 일들을 행하여야 하리라”(요 9:4, 한글킹제임스)
    하나님이 자녀들에게 시련을 허용하실 때는 목적이 있습니다. 만약 그 시작과 끝을 내다볼 수 있고 자신들이 성취해 가는 목적에서 나타나는 영광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이 기꺼이 선택했을 그 길로만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을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단련하셔서 겸손하게 하시며, 시련과 고난 속에서 본인들의 약점을 발견하면서 자기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게 하십니다. 자기에게 도움을 부르짖을 때 그분은 “내가 여기 있노라”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보석입니다. 그분을 위해 영롱한 빛을 발하며 그분의 사랑을 밝힐 수 있습니다. 갈고닦을수록 빛은 더욱 반짝입니다. 더 반들반들하게 연마될지 말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전에 거하려면 누구나 연마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갈고닦는 주님의 손길 없이는 평범한 자갈 이상으로 광이 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의 것이다. 내가 너를 샀다. 지금은 거친 돌에 불과해도 자신을 나에게 맡긴다면 내가 너를 빛나게 하겠다. 아무도 너를 내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 너를 나의 특별한 보물로 삼겠다. 나의 대관식 때 너는 내 왕관의 보석이 되고 기쁨이 될 것이다.”
    거룩한 일꾼이신 분은 가치 없는 물건에 조금도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십니다. 귀한 보석만을 궁정의 양식대로 거친 부분을 깎아 내며 갈고닦습니다. 이 과정은 혹독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인간적인 교만은 타격을 받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자만에 빠져 완벽하다고 자부하는 경험 깊숙이 침투하시며 품성에서 자기 자랑을 떨쳐 내십니다. 불필요한 표면을 잘라 낸 뒤 돌을 연마기에 넣고 짓눌러 거친 면을 모조리 갈아 버립니다.
    그런 다음 명장이신 그분께서는 그 보석에 빛을 비추고 표면에 반사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보석함에 넣어도 손색이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돌멩이가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고 생생하게 빛나는 것은 아무리 그 과정이 혹독하더라도 복된 일입니다.
    『리뷰 앤드 헤럴드』, 1907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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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22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위대한 치유자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8)
    이 세상은 거대한 나환자 병원이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병자를 고치러, 사탄의 포로들에게 해방을 선언하러 오셨습니다. 그분 자신에게 건강과 힘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병자, 괴로워하는 자, 귀신 들린 자에게 자신의 생명을 전해 주러 오셨습니다. 자신의 치유력을 힘입고자 하는 사람을 그분은 단 한 명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자들의 병은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것임을 아셨지만 그럼에도 그분은 치유를 거절하시지 않았습니다. 가련한 영혼에게 그분의 능력이 파고들었을 때 그들은 자신의 죄를 깨달았고 영적인 병은 물론 신체적 질병까지 치유받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복음에는 지금도 동일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 똑같은 능력을 오늘날이라고 목격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는 고통 받는 각 사람의 문제를 아십니다. 악령이 인간의 몸을 갈가리 찢을 때 그리스도께서 그 괴로움을 느끼십니다. 열병으로 생명력이 타들어 갈 때 그분께서 고통을 느끼십니다.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을 때와 똑같이 그분은 지금도 병자들을 기꺼이 치유하고자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종은 그분의 대표자이며 그분의 일을 이루는 통로입니다. 그들을 통해 그분은 자신의 치유 능력을 발휘하고 싶어 하십니다.
    치유하시는 주님의 방법에서 제자들이 배워야 할 점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 그분은 맹인의 눈에 진흙을 바르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라고 하셨습니다. 맹인은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습니다(요 9:7). 치유는 오직 위대한 치유자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자연의 단순한 수단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분은 약물 치료를 장려하지는 않았지만 단순한 천연 치료의 활용은 허락하셨습니다.
    괴로움을 당하다가 치유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요 5:14). 이렇듯 그분은 질병이 하나님의 자연적·영적 법칙 모두를 어긴 결과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고대 이스라엘의 지도자며 교사이셨고 건강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한 보상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시대의 소망』, 823
    0 min
  • [3월 21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영혼의 치유자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
    오늘날도 중풍병자처럼 신체의 질병으로 고통 당하면서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는 말을 애타게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허다합니다. 이들의 질병은 불안과 끝없는 욕망이라는 죄의 짐에서 비롯합니다. 그들은 영혼의 치유자를 만나야만 나을 수 있습니다. 그분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를 얻어야 마음에 활력이 생기고 몸이 건강해집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셨고 “그 안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살려 주는 영”이십니다(요일 3:8; 요1:4; 10:10; 고전 15:45). 이 땅에서 병자를 고치고 죄인에게 용서를 선언하셨을 때와 똑같은 능력이 지금도 그분에게 있습니다.
    …중풍병자의 치유는 사람들에게 마치 하늘이 열리는 듯한 결과를 거두었고 더 나은 세상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치유받은 그 사람이 발걸음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깃털처럼 가볍게 자기 짐을 들고 군중 사이로 지나가자 사람들은 뒷걸음질하여 길을 터주면서 경외심 어린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고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라고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놀라서 할 말을 잃었고 패배감에 짓눌렸습니다. 자신들의 질투심으로 사람들을 선동할 만한 기회는 전혀 엿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자’로 취급한 존재에게 기적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깊이 감동했고 랍비들의 존재는 한동안 잊혔습니다. 하나님께만 있다고 생각했던 능력이 그리스도에게도 있음을 바리새인들은 확인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분의 위엄은 부드러웠고 자신들의 오만한 태도와는 뚜렷하게 대조되었습니다. 그들은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웠고 더 뛰어난 존재가 앞에 있다고 느꼈지만 그것을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 죄를 사할 권세가 예수에게 있다는 증거가 더 확실해질수록 그들은 불신하기로 더욱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중풍병자가 나았던 베드로의 집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의 아들을 침묵시킬 새로운 음모를 꾸몄습니다.
    『시대의 소망』, 270~271
    0 min
  • [3월 20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거룩한 파종자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막 4:14)
    이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놀라운 증언을 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리스도께서는 이해가 더딘 제자들을 나무라셨습니다. 그들은 처세훈과 전통의 유혹에 영향 받았기에 이 세상의 가장 위대하신 스승이 전하는 진리를 잃어버릴 때가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가치를 거의 모르고 있는 제자들이 진리를 습득하도록 자신이 그들을 인도했음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부활한 뒤 예수님은 두 제자와 함께 엠마오를 향해 걸으면서 그들의 이해력을 넓혀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을 그들에게 풀어 주셨고 성경을 기록한 당사자들도 발견하지 못했던 의미를 제자들이 그 가르침 속에서 찾아내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먹자 제자들의 이해력은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숨은 보화를 찾듯 진리를 부지런히 탐구할수록 그리스도의 은혜와 의에 담긴 가치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깨닫고서 그들은 새벽의 미명에서 정오의 광채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인간의 작품은 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지능은 한계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자원은 심히 풍부하다 해도 무궁무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높고 깊고 넓은 상상력의 날개를 펼쳐도 하나님은 찾아낼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것 너머에는 무한함이 존재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계시된 표면적 진리에 만족하고 마는 사람이 많습니다. 진가를 모르기에 귀중한 보석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있습니다. 성경을 연구할 때는 마음을 다 쏟아야 합니다. 그 의미가 표면 아래 숨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얻은 지식은 거룩한 파종자가 심은 하늘의 씨앗처럼 작용할 것입니다.
    『Signs of the Times』, 1898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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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19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구주이신 목자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바위 언덕을 넘고 수풀과 황량한 계곡을 지나 초록이 무성한 강가로 무리를 인도하는 목자, 한밤중이면 산 위에서 홀로…무리를 살피고 약탈자를 감시하면서 병들고 허약한 양을 돌보는 목자, 그의 생명은 어느덧 양 떼의 생명과 하나가 됩니다. 목자는 자신이 돌보는 무리와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애정으로 묶여 있습니다. 아무리 수가 많아도 목자는 한 마리 한 마리를 개별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양은 저마다 이름이 있고 목자가 이름을 부르면 응답합니다.
    이 땅의 목자가 자기 양을 알고 있듯 거룩하신 목자께서도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자기의 양 무리를 아십니다.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34:31). 예수님은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라고 말씀하십니다(사 43:1; 49:16).
    예수님은 우리를 개별적으로 아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이름을 모두 아십니다. 어느 집에 살고 있는지, 누가 살고 있는지 이름을 알고 계십니다. 때때로 그분은 특정 도시, 거리, 집으로 자신의 종들을 보내어 한 마리 양을 찾게 하십니다.
    마치 그 한 사람을 위해 구주께서 목숨을 버렸다고 할 정도로 예수님은 각 영혼을 완전히 알고 계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이 예수님의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도움을 찾는 부르짖음은 그분의 귓전을 울립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로 이끌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은 “나를 따르라”라고 명하시며, 그분의 성령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분에게 나아가도록 합니다. 그런 이끌림을 거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누구인지 아십니다. 또 누가 자기의 부르심을 기쁘게 듣고 목자의 보살핌을 찾아오려고 하는지도 아십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라고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마치 이 땅 위에 그 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각 사람을 돌보십니다.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옵니다. 동방의 목자는 자신의 양을 내몰지 않습니다. 목자는 폭력이나 위협을 사용하지 않고 양들 앞으로 가서 부릅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부르는 대로 따라갑니다. 구주이신 목자도 자신의 양 떼를 그렇게 돌보십니다.
    『시대의 소망』, 479~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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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18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7)
    예수님은 와서 우리와 함께 거하면서 인간과 천사 모두에게 하나님을 드러내셔야 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이셨고 하나님의 생각을 들려주셨습니다.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분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한 이유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단지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만을 위해 이 계시가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이 작은 세상은 우주의 교과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놀라운 뜻, 구원하시는 사랑에 담긴 신비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주제이며 천사들은 영원 무궁히 이것을 탐구할 것입니다. 구속받은 자들과 타락하지 않은 자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과학임을 깨닫고 거기서 자신들이 부를 노래를 찾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에서 빛나는 영광은 자기희생적 사랑의 영광임이 드러날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는 사랑의 법칙이 땅과 하늘을 위한 생명의 법칙이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은 하나님의 가슴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이 갈보리의 빛을 통해 알려질 것입니다. 아무도 다가갈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이, 온유하고 겸손한 분 안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모든 창조물 속에서 드러났습니다.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세운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의 손이 모든 세상을 허공에 달아매고 들의 꽃을 만들었습니다.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시 65:6),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시 95:5). 이 땅을 아름다움으로 채우고 대기에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하신 이도 그분입니다. 땅과 대기와 하늘에 있는 모든 것에 그분께서 아버지의 사랑을 기록하셨습니다.
    그런데 죄가 하나님의 완전한 작품을 망가뜨렸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자취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만물은 하나님의 눈부신 탁월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숲속의 나뭇잎, 들판의 풀잎 그 어느 것 하나도 봉사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나무와 덤불과 잎사귀들은 사람과 동물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명의 요소를 쏟아 내며 사람과 동물 역시 나무와 덤불과 잎사귀들이 생명을 유지하도록 돕습니다. 꽃들은 향기를 발산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세상에 행복을 선사합니다.
    『시대의 소망』,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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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