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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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3월 17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동역자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하늘에서 처음 전쟁이 시작할 때부터 반역이 영원히 정복되고 죄가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의 대쟁투 역사 또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주의 통치자는 은혜의 사역을 혼자서 수행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에게는 동료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해하는, 피조물에게 행복을 베풀 때 그 기쁨을 함께 나눌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요 1:1~2). 말씀이시요, 하나님의 독생자인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아버지와 본성, 품성, 목적이 일치했고 유일하게 하나님의 모든 생각과 목적에 관여할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사 9:6).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또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내가 세움을 받았나니…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잠 8:22~30).
    아버지께서는 하늘의 모든 존재를 창조할 때 자신의 아들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6). 천사들은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그분의 임재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빛을 내뿜으면서 빠른 날개로 신속하게 날아다니며 그분의 뜻을 실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요, “그 본체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신 아들은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모든 천사를 다스리십니다(히 1:3). “영광스러운 높은 보좌는 태초부터 우리 성소가 있는 곳”이었습니다(렘 17:12, 한글킹제임스).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입니다(히 1:8).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시 96:6).
    『부조와 선지자』, 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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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16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거룩하신 분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
    사도 요한은 삶에서 참된 성화의 모본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가까이 지내는 동안 그는 주님께 경고와 주의를 받은 적이 많았고 그 견책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거룩하신 분의 품성이 나타났을 때 그는 자신의 결함을 인식했고 겸손해졌습니다. 매일 그는 자신의 난폭한 정신과 대조되는 예수의 친절과 관용을 보았고 겸손과 인내에 관한 그분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날마다 그는 그리스도께 마음이 이끌렸고 마침내 주님을 향한 사랑 속에서 자신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하나님 아들의 일상에서 권능과 친절, 위엄과 온유, 능력과 인내를 보며 경탄했습니다. 그는 분기탱천하고 야심만만한 기질을 주님의 손에 맡겼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품성을 변화시켰습니다.
    그의 동료 제자 유다의 경험은 요한의 삶에 나타난 성화와 정반대입니다. 유다 역시 자기는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요한과 똑같이 말했지만, 그는 경건의 모양만을 따랐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품성에 나타난 아름다움에 무감각하지 않았고 구주의 말씀을 들으며 죄를 깨달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겸비하게 하거나 자신의 죄를 고백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룩한 감화를 거절했기에 자기가 사랑한다고 했던 주님께 욕을 돌렸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결점에 맞서 열렬하게 싸웠지만 유다는 자신의 양심을 거스르고 유혹에 굴복했습니다.
    …요한과 유다는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대표합니다. 두 제자 모두에게 거룩한 모본을 연구하고 따를 수 있는 동일한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두 사람은 그리스도와 친밀히 교제하고 그분의 가르치심을 듣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각자는 심각한 품성의 결함이 있었고 품성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겸손히 예수님께 배운 반면, 유다는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기만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한은 날마다 자신에 대하여 죽고 죄를 극복함으로 진리를 통하여 성화되었지만 유다는 변화시키는 은혜의 능력을 거절하고 이기적인 욕망을 품다가 사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적』, 557~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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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15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매일의 선물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 3:22~23)
    하늘의 선물과 복이 끊임없이 흘러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인류가 생존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누도록 하나님은 사람에게 끊임없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재정을 베풀어 주신 만큼 예물과 헌물도 반드시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취급하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돈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돈이며 하나님의 창고에 예물과 헌물이 공급되지 못한다면 그분의 사역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을 빌려주셨고, 우리는 그분의 것을 그분께 돌려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충실하게 의무를 다한다면 국내와 해외 선교를 위한 자금이 언제나 넉넉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기쁨과 감사로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봉사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세상에 주신 선물에 비하면 미천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매일의 선물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이 세상에 주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인간 대리자들에게 맡긴 은사들을 은혜롭게 취하십니다. 따라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라고 우리가 인식하고 인정하고 있음을 우리는 철저하게, 전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와 함께 일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메시지를 그분은 여러 방식으로 우리에게 보내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들어야 할 사람에게 성경 말씀을 읽어 주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전하는 이들과 협력하십니다. 참된 목자인 목사는 백성에게 말씀을 베풉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열심히 활동하며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 대리자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는 씨를 심습니다. 이것일지 저것일지 어떤 것이 잘 될지는 알지 못하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시고 인도하시고 마음을 살피십니다.
    사업은 가정에서 또 지경을 넘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사업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돈이 필요합니다.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돈과 헌신이 요구되는 일을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주님은 직접 자신이 세상에 와서 금과 은을 전해 주겠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선물을 돌려 드린다고 해서 가난해지는 게 아닙니다. 움켜쥐고 있어서 가난해집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활용하는 가장 큰 목적은 넓은 추수 밭에서 활동하는 일꾼들을 후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Manuscript』, 1898년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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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14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하늘과 땅의 창조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 10:1~2). 고넬료는 로마 사람이었으나 참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우상 숭배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유대인들과 관계를 맺지 않았으나 도덕법을 잘 알고 순종했습니다. 그는 할례를 받지도, 희생 제사에 참여하지도 않았기에 유대인들은 그를 부정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는 유대인들의 행사에 아낌없이 기부했고 자선과 자비의 행동이 원근 각지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의 의로운 생애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서 좋은 평판을 얻었습니다.
    고넬료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했지만, 예언을 믿었고 오실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사랑과 순종으로 그는 하나님께 더욱 다가갔고, 구주를 발견하면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비난은 주어진 빛을 거절하는 사람에게나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 백부장은 명문가 출신이었고 높은 신뢰와 명예를 받는 지위에 올랐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도 그는 고결한 품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참된 선함과 위대함이 결합하여 그의 도덕적 진가를 드러냈습니다. 그와 접촉하는 사람은 모두 유익한 감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유일하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를 믿었습니다. 그분을 존경했고, 그분의 권위를 인정했고 일평생 모든 일에서 그분께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는 공적인 책임뿐 아니라 가정의 의무에서도 충실했고 집 안에 하나님의 제단을 세웠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감히 자신의 계획을 수행하지 않았고, 무거운 책임을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많이 기도했고 그런 도움을 위해 진지하게 간구했습니다. 믿음이 그가 하는 모든 일에서 나타났고, 하나님은 그의 행동에서 나타난 순결함과 관대함을 인정하셨습니다.
    『The Spirit of Prophecy』, vol. 3, 32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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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13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일깨우는 분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통해 자신을 인격적 존재로 드러내셨습니다.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이시며 “그 본체의 형상”(히 1:3)이신 예수님은 인격적 형체를 지닌 구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격적 형체를 지닌 구주로 승천하셨습니다. 인격적 형체를 지닌 구주로서 그분은 하늘 법정에서 중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인자 같은 이”(계 1:13)가 우리를 위하여 봉사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신성에서 나오는 눈부신 광채를 가리고 인간들 사이에서 사람으로 살기 위해 오셨습니다. 인간이 소멸하지 않고 그들의 창조주와 친숙하게 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셨을 때 외에는 어떤 사람도 어떤 때든지 하나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것을 그리스도께서 가르치러 오셨습니다. 우리는 하늘 저 위에서, 땅에서, 넓은 대양에서 하나님의 작품을 봅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사랑을 증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별들이나 바다나 폭포에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것만큼 하나님의 성품을 제대로 배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품성과 인격을 정확히 드러내기 위해 자연보다 더욱 분명한 계시가 필요하다고 보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들을 인간의 시력이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계시하고자 그분은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만약 자연의 사물, 즉 꽃, 나무, 풀잎에 직접 거하는 분으로 자기를 나타내고자 하셨다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그 점을 제자들에게 언급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하나님은 절대 그런 식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하나님이 인격적인 존재라는 진리를 분명하게 가르쳤습니다.
    죄 많은 인간이 죽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한도까지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분은 거룩한 교사이며 일깨우는 분입니다. 그리스도와 자신의 기록된 말씀으로 전달한 것 외에 다른 계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주셨을 것입니다.
    『교회증언 8권』, 265~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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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12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거룩한 교사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시 32:8)
    주기도문의 마지막 문장에서는 첫 문장과 같이 우리의 하늘 아버지를 모든 능력과 권세와 이름 위에 뛰어나신 분으로 지목합니다. 구주께서는 자기의 제자들 앞에 다가올 시절들을 내다보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꿈꾼 대로 눈부신 세속적 번영과 명예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사탄이 분노를 퍼붓는 어두운 광풍의 세월입니다. 국가적 분쟁과 파멸 속에서 제자들의 발걸음은 위험에 휩싸이고, 때때로 마음이 공포에 짓눌릴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전이 무너지고 제사가 영원히 끝나고 황량한 해변에 난파된 배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나라로 흩어질 것을 그들은 목격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6~8).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소망이 사라졌다거나 하나님께서 세상을 버리셨다는 생각으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권세와 영광은 하나님의 것이며 그분의 위대한 목적은 흐트러짐 없이 완성을 향하여 계속 전진해 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매일 필요한 것을 기도로 아뢰면서 악의 권세와 지배 너머에 계시는 그들의 주 하나님, 세상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며 그들의 아버지이자 영원한 친구가 되시는 그분을 쳐다보라고 지시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이 세상을 뒤덮을 마지막 파멸을 상징했습니다. 예루살렘의 파괴를 통해 부분적으로 성취된 예언들이 마지막 시대에 더욱 명확하게 적용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크고 엄숙한 사건 직전에 서 있습니다. 세상이 한 번도 겪지 못한 위기가 우리 앞에 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만물을 다스린다는 보증은 초기의 제자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기쁨이 됩니다. 다가오는 사건들에 대한 계획이 창조주의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하늘의 주권자께서는 나라들의 운명을 쥐고 계실 뿐 아니라 자신의 교회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고레스에게 말씀하신 것을 거룩한 교사께서는 자신의 계획을 수행하고 있는 모든 일꾼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사 45:5).
    『산상보훈』, 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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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11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생명의 포도나무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주님을 향한 요한의 애정은 단순한 인간적 우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받았음을 느끼고 통회하는 죄인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섬기면서 일하고 고난 받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내준 모든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그의 종교는 실천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그분의 자녀들을 향한 사랑으로 드러난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그는 여러 번 반복하여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이 사도의 삶은 그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그의 마음에서 빛나는 그리스도를 향한 그 사랑이 동료 인간들, 특히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있는 형제들을 위해 가장 성실하고 지칠 줄 모르는 수고를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는 힘 있는 설교자였습니다. 열렬했고 참으로 진지했으며 그의 말에는 확신에서 오는 무게가 실려 있었습니다.
    요한의 삶과 성품에 나타난 허물없는 사랑과 사심 없는 헌신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말할 수 없이 귀한 교훈을 제시합니다. 이런 사랑은 하나님의 은혜로 지니게 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나면서부터 품성에 심각한 결점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랑하기 좋아했고 야심적이었고 무시와 모욕을 당하면 곧잘 화를 냈습니다.
    요한이 주님에게 그토록 깊고 열렬한 애정을 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그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 때문에 요한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처럼 되고자 갈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오는 변화시키는 감화 아래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게 되었습니다. 자아는 예수님 안에 감추어졌습니다. 그는 생명의 포도나무에 꼭 붙어 있었기에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통하면 언제나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성화입니다.
    사람마다 성품에 뚜렷한 결함이 있을지 모릅니다. 악한 기질, 짜증내는 성향, 시기, 질투에 휘둘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면 하나님의 은혜로 능력을 얻어 새로운 피조물이 될 것입니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81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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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10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갈릴리의 선생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4)
    스데반이 죽은 뒤 예루살렘에 있는 신자들에게 매우 혹독한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는 훗날 이 잔인한 행위를 저질렀던 자신의 열심에 대해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했다고 말했습니다(행 26:9~11). “많은 성도를…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다는 사울 자신의 말을 미루어 볼 때 죽임을 당한 자는 스데반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위기의 때에 니고데모는 두려움 없이 나아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주를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회원이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의 가르침에 감동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업을 목격하면서 이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갈릴리의 선생에게 동조하면서도 너무도 교만하여 한동안 공개적으로 시인하지는 않았고 비밀리에 만나 대화를 나누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만나 구원의 계획과 세상을 위한 자신의 사명을 펼쳐 보이셨지만 니고데모는 여전히 머뭇거렸습니다. 그는 마음속에 진리를 감추어 두었기에 3년 동안 뚜렷한 결실이 거의 없었습니다. 공개적으로 그리스도를 인정하지는 않았어도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그리스도를 죽이려는 제사장들의 음모에 대해 거듭 반대했습니다.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순간, 니고데모는 감람산에서 밤중에 만났을 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4)라고 하셨던 그리스도의 말씀을 떠올렸고 예수님이 세상의 구주이심을 깨달았습니다.
    니고데모는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장례 비용을 부담했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빠져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와 요셉은 담대히 나서서 그들을 도왔습니다. 부유하고 명망 높은 그들의 도움은 그 어두운 시간에 매우 요긴했습니다.
    『사도행적』, 10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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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9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위대한 일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 5:17)
    하나님의 일을 그분의 손에서 낚아채 자기의 유한한 손으로 움켜쥐는 이들 때문에 진리를 전파하는 일이 실제보다 열 배나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자기 생각에 사람들이 꼭 해야 할 무언가를 그들은 끊임없이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데 시간을 소모한 결과로 하나같이 일은 더 복잡해집니다. 위대한 일꾼이신 분께서 정작 자기 유업을 살필 기회를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남의 불완전한 품성을 어설프게 손보려고 하다가 문제는 더 악화되기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도록 놔두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들에게는 품성을 개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물드는 것입니다. 그분의 능력을 붙들면 그분과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면 동료 일꾼들과도 충분히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람의 정신과 품성에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이 부족할수록 자기 방식은 더 완전하게 보이고 남의 방식은 더 불완전하게 보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책은 깨어 기도하고 서로 권면하면서, 하나님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시므로 우리 자신뿐 아니라 다른 형제들까지도 지켜 주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신실하게 연구하고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듯 너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그분의 분명한 명령을 일꾼들이 무시하고서야 어떻게 형제들이 유한한 인간의 규율과 활동 규정과 세부 지침에 귀 기울여 주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처방되는 지혜는 초자연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사람을 고치기는커녕 죽이는 돌팔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아야 하며 오만한 정신을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다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19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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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8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희생 제도의 중심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9)
    구주의 죽음은 표상과 그림자에 해당하는 법을 끝나게 했지만, 도덕법의 의무는 조금도 손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도덕법의 위반을 속하기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 자체가 도덕법의 불변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율법을 폐지하고 구약을 없애러 오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유대인의 시대를 암흑의 시대라고 말하며, 히브리인의 종교가 단순히 형식과 의식으로만 이루어졌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민을 이끄신 방법을 기록하고 있는 성스러운 역사의 페이지마다 위대한 ‘존재자(I AM)’의 불타는 흔적이 어려 있습니다. 그분이 이스라엘에서 유일한 통치자로 인정받고 자기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을 때만큼 자신의 능력과 영광을 인간 자손에게 공개적으로 드러내신 적은 없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인간도 흔들 수 없는 왕권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보이지 않는 왕께서 위풍당당하게 진행하시는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위대하고 경이로웠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이 모든 계시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구주의 강림뿐 아니라 타락과 구원의 약속 이후 각 시대에 걸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을 하나님 자신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고후 5:19, 쉬운성경). 그리스도께서는 족장 시대뿐 아니라 유대 국가 시대에도 희생 제도의 중심이자 기초이셨습니다. 우리의 첫 조상이 죄를 범한 후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교통이 없어졌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세상을 그리스도의 손에 맡기셔서 그리스도가 자신의 중보 사업으로 사람을 구원하고 하나님 율법의 권위와 신성성을 옹호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늘과 타락한 인류 사이의 소통은 모두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져 왔습니다. 우리의 첫 조상에게 구속을 약속하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조에게 몸소 나타났던 이도 그분이십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는 복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부조와 선지자』, 365~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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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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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