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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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2월 25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리스도께서 응당 우리가 받아야 할 취급을 받으신 이유는 우리로 그분에게 합당한 대우를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죄를 대신해 그분이 자신에게 해당하지 않는 정죄를 받으신 이유는 우리 몫이 아닌 그분의 의로 우리를 의롭다 칭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당할 죽음을 그가 당하신 이유는 그분의 생명을 우리가 받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자신의 생애와 죽음으로 그리스도는 죄로 인한 파멸로부터의 회복 그 이상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영원히 떼어 놓는 것이 사탄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타락하지 않을 때보다 더 밀접하게 하나님과 결속됩니다. 구주께서는 우리 인성을 취하심으로 결코 끊어지지 않는 줄로 자신을 인간에게 붙들어 매셨습니다. 그는 영원히 우리와 연결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신 것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뿐 아니라 속죄 제물로 죽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은 타락한 인류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변치 않는 평화의 계획을 우리에게 보장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주셔서 인간 가족의 하나가 되고 영원히 인간의 특성을 지니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을 성취하신다는 보증입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통해 인성을 취하셨고 바로 그 아들을 가장 높은 하늘로 옮기셨습니다. 우주의 보좌에 함께 앉으시는 분은 “인자”이십니다. 그 이름이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라고 불리실 분은 바로 “인자”(사 9:6)이십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그분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서 양편에 자기 손을 얹으십니다. 그는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지만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십니다(히 7:26; 2:11). 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의 가족과 하늘의 가족이 결합합니다.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형제이십니다. 인간 속에 하늘이 새겨져 있고 무한한 사랑이신 분의 가슴속에 인간이 간직된 것입니다.
    『시대의 소망』, 25~26
    0 min
  • [2월 24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어린 양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우리 주께서는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3~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육신적 생활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이 세상 삶도 그리스도의 죽으심 덕분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양식은 그분의 부서진 몸으로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도 그분이 흘리신 보혈로 얻은 것입니다. 성자든 죄인이든 그리스도의 몸과 보혈에 힘입지 않고서는 결코 매일의 양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모든 떡덩이마다 갈보리 십자가의 인이 찍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영적 생활에서 그리스도 말씀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훨씬 더 크지 않겠습니까? 예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을 가졌나니”라고 선언하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갈보리 십자가에 쏟으신 생명을 받아 삶을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은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이 명하신 일을 행함으로 받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가 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 6:56~57)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특별한 의미에서 이 성경 말씀은 성만찬 예식에 적용됩니다. 믿음으로 우리 주님의 위대한 희생을 깊이 생각할수록 영혼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삶을 더욱 닮아 갑니다. 그런 사람은 성만찬 예식에 참여할 때마다 영적으로 힘을 얻습니다. 이 예식으로 살아 있는 관계가 형성되어 신자는 그리스도와 한데 묶이고 따라서 하나님과도 하나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부서진 몸과 흘린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즙을 받을 때 우리는 상상 가운데 다락방에서 거행된 성만찬에 참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한 그 투쟁을 목도합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으로 제시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를 바라노라면 우리는 하늘의 주권자께서 치른 희생이 얼마나 크고 의미 있는지를 더 깊이 깨닫습니다. 구원의 계획이 우리 앞에서 찬란히 빛나며 갈보리를 떠올리는 우리의 마음에는 거룩한 감정이 생생하게 일깨워집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목소리로 하나님과 어린양을 찬양합니다. 갈보리의 광경을 기억 속에 뚜렷하게 간직하는 영혼에게는 교만과 자기 숭배가 발을 뻗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소망』, 660~661
    0 min
  • [2월 23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주님이시며 주인이신 분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 13:8)
    이 말씀은 신체의 정결 그 이상을 뜻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차원 낮은 발 씻는 행위를 통해 차원 높은 죄 사함에 대해서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목욕하고 온 사람은 깨끗하지만 샌들을 신은 발이 곧 더러워져 다시 씻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와 동료들은 죄와 불결함을 씻기 위해 열려 있는 위대한 샘에서 씻었습니다. 그리스도께는 그들을 자신의 제자로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험받아 죄악으로 이끌렸고 여전히 그분의 씻어 주시는 은혜가 필요했습니다. 수건을 가져와 허리에 두르고 제자들의 발에서 먼지를 씻으면서,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에서 반목과 질투와 교만을 씻어 버리고자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먼지 묻은 발을 씻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그들이 지녔던 정신으로는 한 사람도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없었습니다. 겸손과 사랑의 상태로 돌아가기 전까지 그들은 유월절 만찬이나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기념 예식에 참여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씻어 내야 했습니다. 교만과 이기심으로 불화와 미움이 생겼으나 예수님은 그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이 모든 것을 씻어 버리셨습니다. 그들의 감정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바라보며 “너희가 다 깨끗”하다고 말씀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겸손하게 배우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유다를 제외한 모두가 가장 높은 자리를 서로에게 양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부드럽고 우아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처럼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았지만 죄악과 접촉해 순결한 마음을 더럽힐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씻어주시는 은혜를 찾아 그분께 나아가야 합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더러운 발이 주님이시며 주인이신 분의 손에 닿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죄 많고 더러운 마음을 그리스도의 마음에 들이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의 악한 기질과 허영과 교만 때문에 그분이 얼마나 가슴 아프시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결점과 더러움을 모두 예수께 가져가야 합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깨끗하게 씻어 주십니다. 그분의 은덕으로 깨끗해지지 않는 한 우리는 그분과 교제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시대의 소망』, 646~649
    0 min
  • [2월 22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거룩한 중보자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출 34:33)
    모세는 40일간 산에 머물렀고 이 기간 내내 첫 번째와 같이 기적적으로 생명을 보존했습니다. 아무도 모세와 함께 산에 오르거나 모세가 떠나 있는 동안 산에 접근하도록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석판 둘을 준비하여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다시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습니다.
    그 긴 기간에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모세의 얼굴은 하나님의 임재에서 비롯한 빛을 반사했습니다. 자신은 정작 의식하지 못했지만 모세가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은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스데반이 재판장 앞에 섰을 때도 그와 같은 빛이 얼굴에 비추었고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행 6:15). 백성은 물론 아론도 모세를 피하며 “그에게 가까이하기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이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모세는 그 이유를 몰랐고 그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재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빛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기 율법의 거룩하고 존엄한 특성과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복음의 영광을 각인시키고자 하셨습니다. 모세가 산에 있는 동안 하나님은 그에게 율법이 담긴 석판뿐 아니라 구속의 계획도 보여 주셨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희생이 유대 나라 시대의 온갖 표상과 상징으로 예시되었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율법의 영광과 마찬가지로 모세의 얼굴에서 빛나는 광채도 갈보리에서 흘러나온 하늘의 빛이었습니다. 그 거룩한 광채는 모세가 가시적인 중보자 역할을 했던 세대의 영광을 상징했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의 표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중보자가 그 영광을 견디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 자기의 얼굴을 가렸듯이 거룩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께서도 세상에 오실 때 자신의 신성을 인성으로 가리셨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을 입고 오셨다면 죄 아래 있는 인류에게 접근할 방도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임재의 영광을 견뎌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은 타락한 인류에게 다가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어 “죄 있는 육신의 모양”(롬 8:3)이 되신 것입니다.
    『부조와 선지자』, 329~330
    0 min
  • [2월 21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창조주

    “내가…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마 13:35)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니…이는 선자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마 13:34~35). 자연의 사물은 영적인 사물의 매개체입니다. 자연의 사물 그리고 예수님의 청중이 삶에서 얻는 경험은 말씀에 기록된 진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자연 세계를 영적인 왕국으로 이끄는 그리스도의 비유는 인간과 하나님, 땅과 하늘을 한데 묶는 진리의 연결 고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연 세계를 통해 교훈을 전하면서, 자신이 직접 만들고 특성과 능력을 부여한 사물들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본래 완벽하게 창조된 사물들은 하나님의 사상을 나타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살 때 자연 세계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으로 가득했고 하나님의 교훈이 넘쳐났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눈으로 지혜를 보고 마음에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부부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율법을 범하자 그분의 얼굴에서 비치던 찬란함이 자연 세계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지금의 지구는 죄로 손상되고 오염됐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 황폐함 속에서도 아름다운 부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실물 교훈은 없어지지 않았으며, 바른 이해력을 지닌 사람에게 자연은 창조주에 관하여 말해 줍니다.
    그리스도 당시에는 이러한 교훈들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물에서 하나님을 거의 식별해 내지 못했습니다. 인류의 죄가 만물의 아름다움을 덮어 버렸고 하나님을 드러내기보다 그분을 숨기는 장벽이 되었습니다. 인류는 “창조주 되신 하나님보다 지음 받은 피조물들을 더 예배하고 섬겼습니다.” 따라서 이방인들은 “헛된 것을 생각했으며,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은 어둠으로 가득 찼습니다”(롬 1:25, 21, 쉬운성경). 이스라엘 백성 역시 사람의 교훈으로 하나님의 교훈을 대신했습니다. 자연 세계뿐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라고 주신 제사 제도와 말씀까지도 너무 뒤틀려 하나님을 가리는 수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실물교훈』, 17~18
    0 min
  • [2월 20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이스라엘의 위로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눅 2:29~30)
    영적인 일은 영적으로 분별됩니다. 장차 해야 할 일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성전에서 봉헌되었습니다. 제사장은 여느 아이를 대하듯 그 아기를 대했고 남다른 특별함을 발견하거나 느끼지 못했지만, 세상에 자기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행위는 인정받은 것입니다. 아무도 그리스도를 인식하지 못한 채로 이 상황이 그냥 지나가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시므온이 성전에 들어오고 제사장 앞에서 자신들의 맏아들을 봉헌하는 가족을 발견합니다. 행색으로 미루어 그들은 가난해 보이지만 시므온은 성령의 통보를 숙지하고 있었기에 여호와께 봉헌되고 있는 그 아기가 이스라엘의 위로이자 그 자신이 그토록 기다려 왔던 분이라는 강렬한 인상을 받습니다. 뛸 듯이 기뻐하는 시므온을 보고 제사장은 깜짝 놀랍니다. 마리아가 아기를 다시 돌려받자 시므온이 그 아기를 팔에 안고 하나님께 드립니다. 전에 느끼지 못했던 기쁨이 영혼에 밀려옵니다. 하늘을 향해 아기 구세주를 높이 들고서 그는 말합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예언의 영이 임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그 말에 놀라며 곁에 서 있는 동안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했고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시대의 소망』, 55
    0 min
  • [2월 19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정복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의 기초요, 생명이셨습니다. 성전 봉사는 하나님 아들의 희생을 표상했습니다. 제사장 직분은 그리스도의 중보자적 특성과 그분의 사역을 드러내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희생 예배의 방식 전체가 세상을 구속하기 위한 구주의 죽음을 예표 했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희생 제물들이 가리켜 온 위대한 사건이 마침내 성취되는 순간 이러한 희생들은 효력을 상실합니다.
    모든 예식 체계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므로 그분을 떠나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죽음에 넘겨주어 그분을 확실하게 거절했고 이로써 그들은 성전과 그 봉사에 의미를 부여했던 모든 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성전과 그 봉사의 신성성은 사라졌습니다. 성전은 파괴당할 운명에 빠졌습니다. 그 순간부터 제물과 그에 관련된 봉사는 의미를 잃었습니다. 가인이 드린 제물처럼 그것들은 구주를 믿는 믿음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내몰아 버림으로 사실상 자기들의 성전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성소 안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두 갈래로 찢어졌습니다. 그 사건은 위대한 최후의 제물이 방금 드려졌으므로 희생 제물을 드리는 제사 제도는 영원히 끝났다는 상징입니다.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구주께서 죽으셨을 때 어둠의 권세가 승리한 듯 보였고, 그들은 승리에 기뻐 날뛰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셉의 무덤을 가르고 정복자로 부활하셨습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5). 그분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닌 “성소와 참장막에서 섬기는 이”가 되셨습니다(히 8:2). 사람들이 유대 성막을 세웠습니다. 사람들이 유대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러나 위에 있는 성소는 지상 성소의 원형이며 인간 건축가에 의해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리니”(슥 6:12~13).
    『시대의 소망』, 165~166
    0 min
  • [2월 18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형제보다 더 가까운 친구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잠 18:24)
    주님은 여러분을 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부드러운 애정으로 여러분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분의 성령께서는 흑암의 권세에 맞서 주도권을 얻으려고 계속 애쓰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생명의 떡과 생수를 갈망하며 목마른 채로 그리스도께 온다면, 변치 않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동정의 정신에 반대되는 모질고 냉정한 이기심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며 들어가기를 요청하십니다. 그분의 입장을 거절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귀한 손님으로 그분을 영접하시겠습니까? 그분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은 온 세상보다 더 귀합니다.
    그 사랑의 길이와 깊이와 높이와 넓이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사랑으로 마음이 활짝 열리고 하나님을 새롭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부르심과 초청은 가장 강력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돌아오기를 주님께서 간절히 바라십니다. 여러분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또 주님 역시 여러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나의 증인”(사 43:10)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얼굴을 돌린다면 매우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겁내지 말고 전적으로, 결연하게 자신을 바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향해 거침없이 자신을 던지십시오. 그처럼 무한히 순결한 은혜는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손길 안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하심, 오래 참으심, 자기희생적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게 될 것이며 이것을 세상에 드러낼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자기 속사정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이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상황을 아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능력이나 지혜가 없다는 것도 아십니다. 또 여러분이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조차 모른다는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겠다고 그분은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약속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얻는 기쁨과 희망을 잃어버려서 울고 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너의 마음 문을 열고 나를 안으로 들여보내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형제보다 더 가까운 친구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여러분은 모든 시련과 모든 슬픔, 필요한 모든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분은 금이나 은보다 더 귀한 수많은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평화와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Letter 109, 18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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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17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교회의 위대한 머리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겔 3:17)
    그리스도께서는 사심 없는 봉사에 관하여 자신의 삶과 교훈으로 완전한 모본을 주셨습니다. 그 봉사는 하나님에게서 비롯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세상을 창조하고 만물을 붙들면서 끊임없이 다른 존재들에게 봉사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마 5:45). 아버지께서는 이와 같은 이상적인 봉사를 자기 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머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본으로 가르치셔야 했습니다. 그분의 온 생애는 섬김의 법칙을 따랐습니다. 그분은 만민을 섬기고 만민에게 봉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거듭거듭 이 원칙을 제자들 사이에 세우고자 애쓰셨습니다. 으뜸이 되고 싶어 하는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을 듣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6~28).
    승천하신 뒤 그리스도께서는 택하신 대사들을 통하여 지금까지 이 땅의 사역을 진행해 왔고, 그들을 통하여 인간 자녀들에게 말씀하시고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십니다. 교회의 위대한 머리이신 그분께서는 자신의 대표자로 일하도록 하나님께 임명받은 남녀를 도구로 삼아 사업을 지휘하십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도록 하나님께 부름 받은 이들에게는 막중한 책임이 따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되어 사람들 모두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호소해야 합니다. 위로부터 지혜와 능력을 받을 때만 그 사명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이들을 보살피는 영적 수호자들입니다. 그들의 일은 파수꾼의 직무와 같습니다.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성령의 감화로 촉촉해져서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고 안전한 곳을 가리켜 주는 것이 시온의 성벽 위에 있는 파수꾼들의 특권입니다.
    『사도행적』, 359~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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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16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하나밖에 없는 중보자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자신의 죄에 대해 핑계하거나 죄를 숨기려고 애쓰면서 죄를 고백하지 않고 용서받지 않은 채 하늘 책에 기록을 그대로 남긴 사람은 모두 사탄에게 제압당할 것입니다. 그들이 신앙을 더 크게 떠벌릴수록, 그들의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하나님은 통탄스러워 하시며 큰 원수의 승리는 더욱 확실해집니다. 하나님의 날에 대한 준비를 미루면 환난의 때나 그 이후의 어떤 시간에도 준비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모두 가망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죄와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을 고백할 필요는 없습니다. 불신자들을 기세등등하게 만드는 고백은 여러분의 의무가 아닙니다. 그러나 적합한 사람, 즉 여러분의 잘못을 악용하지 않을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고백하고 기도를 부탁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행동을 받아 주시고 고쳐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서 영원한 문제가 걸려 있는 일을 철저하게 해내십시오. 교만과 허영을 버리고 옳게 행하십시오. 양 떼로 다시 돌아오십시오. 목자이신 주님께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대로 하십시오. 다시 한번 주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구주이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겸손한 고백을 악용하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적인 죄를 지었다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하나밖에 없는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에게 그 죄를 고백하십시오.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와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죄를 지었다면 여러분의 잘못을 하나님과 교회에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말 3:10)에 들이라는 하나님의 경고에 주의하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은 납득할 수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알고 있는 모든 죄를 고백하기 전까지 만족해서는 안 되며 죄를 고백한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받아 주신다고 믿는 것이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어둠을 헤치고 승리를 가져다주기를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얻은 즐거움은 모임이 끝날 때까지만 지속될 뿐입니다. 감정에 기대서가 아니라 원칙에 입각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일상의 업무 때문에 이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시간을 내어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들어주신다고 믿으십시오.
    『교회에 보내는 권면』, 258~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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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