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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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3월 7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거룩한 모본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눅 12:12)
    그리스도의 종들은 위대한 세상 사람들 앞에 끌려갈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이런 방법이 아니면 복음을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제껏 진리는 오해되었고 그들은 그리스도인 신앙에 가해지는 그릇된 비난을 들으며 지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진리의 진면목을 배울 유일한 통로는 신앙으로 재판을 받는 자들의 증언밖에 없습니다. 심문 과정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대답하라는 요구를 받고 재판관들은 그들의 증언을 듣게 됩니다. 그 위기를 이겨 내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그분의 종들에게 제공됩니다. “그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자기 종들의 마음을 밝히셔서 진리가 신성한 능력과 고귀함을 지닌 모습으로 제시될 것입니다. 진리를 거절하는 자들은 제자들을 비난하고 압박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자녀들은 손해와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리면서도 거룩한 모본이신 그리스도의 온유함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사탄의 대리자들과 그리스도의 대표자들 사이에 대조적인 모습이 드러날 것입니다. 관원들과 사람들 앞에서 구주께서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런 은혜가 필요하기 전까지는 순교자의 용기와 의연함을 부여받지 못했습니다. 이후 구주의 약속은 성취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증언할 때 사람들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을 깨달았습니다(행 4:13). 스데반과 관련하여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행 6:15).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것을” 사람들은 능히 “당해 낼 수” 없었습니다(행 6:10, 바른성경).
    …그리스도의 종들은 심문을 받을 때 정해진 답변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귀한 진리를 쌓으면서 또 믿음을 굳세게 하는 기도를 통해서 그들은 준비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재판에 끌려갔을 때, 성령님께서 꼭 필요한 진리를 기억나게 해 주셨습니다.
    『시대의 소망』, 354~355
    0 min
  • [3월 6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위대한 선교사이신 분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영혼 구원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입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충만한 능력으로 자신의 백성을 강하게 하셔서 그들을 통해 온 세상이 은혜의 분위기로 둘러싸이기를 바라십니다. 사람들이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내맡기고 그 앞에서 겸손하게 믿음으로 걸어갈 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자신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실 것이며, 그들이 조화롭게 일하면서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세상에 전하게 해 주십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 곧 남녀노소를 사용하셔서 세상에 빛을 비추고 자기 계명에 충실할 백성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혼 구원이라는 가장 큰 목적을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왕복과 면류관, 하늘의 영광, 천사의 경배를 희생했고, 자신의 신성을 제쳐 두고 이 땅에 와서 인성을 취하여 수고와 고통을 감내셨습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모양으로 변화된 사람, 위대한 선교사이신 분의 정신을 간직한 사람에게는 자기 지역을 넘어서 구주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려는 열망이 가득합니다. 그는 영혼을 구하기 위해 시간과 힘과 수단과 감화력을 활용합니다.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이끌고자 애쓰면서 자신이 지닌 능력을 전부 사용합니다. 그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드려진 희생에 감동하여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기울이며 쇠하지 않는 열심을 냅니다. ‘나는 실패하지도 낙담하지도 않겠다.’라고 결심하며 한결같은 삶으로 주변 사람들을 구주께로 이끕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참된 행복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관심사와 기도는 자아를 훨씬 뛰어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전도하면서 자신들도 성장합니다. 가장 원대한 계획들, 가장 가슴이 뛰는 사업들에 친숙해집니다. 이처럼 빛과 복의 통로가 되면 성장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모든 계획을 수행하면서 점점 더 그분처럼 됩니다. 영적으로 침체될 겨를조차 없습니다. 숭고하고 거룩한 열망에 끊임없이 심취하므로 자기 야망과 자기 본위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리뷰 앤드 헤럴드』, 1907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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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5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거룩한 정복자

    “이에 내가 보니 흰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계 6:2)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보좌로 올라가실 때가 이르렀습니다. 거룩한 정복자로서 승리의 전리품을 지니고 하늘 궁전으로 돌아가야 할 순간입니다. 돌아가기 전에 그분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그 일을 완성하였나이다”라고 아버지께 선언했습니다(요 17:4, 한글킹제임스). 부활하신 뒤 그분은 잠시 이 땅에 더 머무셨고 제자들은 부활하여 영화롭게 된 그분과 친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떠나실 준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들과 함께 거할 때 자신의 등장으로 종종 신성하게 되었던 곳을 승천 장소로 택하셨습니다. 다윗성이 있는 시온산도, 성전이 위치한 모리아산도 그런 영광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거기서는 그리스도가 조롱을 받고 거절당하셨습니다. 계속 더 큰 사랑의 파도가 되어 돌아오는 자비의 물결은 거기서 바위처럼 굳은 마음들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치고 마음이 무거워지면 예수님은 쉴 곳을 찾아 감람산으로 오시곤 했습니다. …그분이 이 산에서 하늘로 올라가려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오실 때 그분은 이 산의 꼭대기에 발을 디디실 것입니다. 그때는 ‘슬픔의 사람’(사 53:3)이 아니라 영광과 승리의 왕으로서 감람산에 서실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의 할렐루야가 이방인들의 호산나와 섞이고, 구속받은 자들의 음성이 강한 군대처럼 환호하며 높아질 것입니다. “만유의 주이신 그분께 면류관을 드리세!”
    …감람산에 이르러 예수님은 산꼭대기를 넘어 베다니 근처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발길을 멈추었고 제자들은 그분 주위로 모여들었습니다. 사랑 어린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시는 그분의 얼굴에서 사방으로 빛줄기가 퍼지는 듯했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결점과 실패를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귀에 마지막으로 들린 것은 주님의 입술에서 나온 가장 다정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을 보호하고 돌보겠다고 보증이라도 하시는 듯 그분은 은혜의 손을 펴신 채로 이 땅의 중력보다 더 강한 힘에 이끌려 그들 사이에서 천천히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제자들이 여전히 위를 쳐다보고 있는데 웅장한 음악과도 같은 소리가 그들을 향해 울려 퍼졌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시대의 소망』, 829~832
    0 min
  • [3월 4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하늘의 선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9)
    칠십 인을 보내면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명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환영받지 못하는 곳에 머물려고 애쓰지 말라’라고 그들에게 명하셨습니다. “너희가 어떤 성읍에 들어갔을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든, 그 성읍의 거리로 나와서 말하기를 ‘너희 성읍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도 너희에게 떨어 버린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라.’라고 하여라.” 분하거나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의 기별과 주님의 기별꾼을 거절하는 일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보여 주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종을 거절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갈릴리호수 둘레에 있는 분주한 마을들에 하늘의 가장 귀한 복이 아낌없이 제공되었습니다. 날마다 생명의 왕께서 그들 사이에 드나드셨습니다. 선지자들과 왕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하나님의 영광이 구세주께서 발걸음을 옮기시는 곳을 따라 몰려든 무리 위에 비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의 선물을 거절했습니다.
    랍비들은 자못 신중한 척하면서 이 새로운 선생의 새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경고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론과 행실이 조상들의 가르침과 대립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자기 스스로의 확신을 얻고자 애쓰지 않고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제사장과 관원들을 높였고, 자기들 고유의 전통을 지키고자 진리를 거절했습니다. 감동을 받아 거의 마음이 기울어졌지만 믿음을 실천으로 옮기지 않아서 그리스도의 편이 되지 못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빛이 어둠처럼 보일 때까지 사탄은 유혹했습니다. 영혼의 구원을 확증해 줄 진리를 그런 식으로 거절한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참된 증인이신 분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계 3:20)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기별꾼들을 통하여 전달되는 경고, 책망, 탄원 하나하나가 마음 문을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들어가고 싶다고 청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오늘 무시한 성령님의 감화력은 내일이면 그만큼 강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대의 소망』, 489~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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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3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아버지께서 부르십니다!’라고 힘차게 말하는 천사의 음성이 그리스도의 무덤에 들렸을 때, 구주께서는 자기 안에 있는 생명으로 무덤에서 나오셨습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요 10:17~18)라는 그분의 말씀이 이제 진실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요셉의 갈라진 무덤 너머로 승리를 선언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이 말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말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뜻과 능력으로 삽니다. 그 생사 여부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가장 높은 스랍으로부터 가장 낮은 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생명의 근원이신 분에게서 생명을 공급받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신 그분만이 ‘나는 내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신성 안에 죽음의 속박을 깨뜨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요제(搖祭)의 원형이신 그분은 여호와 앞에 요제를 드리는 바로 그날 부활하셨습니다. 이 상징적인 의식은 1,000년 이상 거행되어 왔습니다. 수확하는 밭에서 처음 익은 곡식의 이삭을 모으고 유월절에 백성이 예루살렘에 올라오면 처음 익은 곡식단을 여호와 앞에서 감사의 예물로 흔듭니다. 이 예물을 드린 후에야 곡식에 낫을 대어 단으로 묶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바친 곡식단은 추수를 예표 했습니다. …그분의 부활은 죽은 의인 모두가 부활할 것을 상징하고 보증합니다.
    …부활하면서 그리스도는 사로잡혔던 한 무리를 무덤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그분이 숨을 거두실 때 지진으로 그들의 무덤이 갈라졌고 그분이 부활하실 때 그들은 주님과 함께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동역자이며 목숨 바쳐 진리를 증언했던 자들입니다. 이제 그들은 죽음에서 자신들을 일으키신 분을 위한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시대의 소망』, 785~786
    0 min
  • [3월 2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멸시받는 나사렛 사람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눅 17:25)
    재물이란 일종의 힘이며 유익을 가져다줄 수도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올바로 사용한다면 재물은 끊임없는 감사의 근원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때는 하나님의 선물에 감사하며 그것을 주신 분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고통 받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쓰지 않는 것은 도둑질이며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정의로운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온갖 좋은 선물을 맡기신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무지와 약점과 속절없는 상태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우리를 사망에서 구원하기 위해 그분은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을 값없이 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것을 그분께서는 자신의 것이라고 하십니다. 고통 당하는 가난한 자들을 홀대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홀대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은 이 땅에 있는 자신의 대표자들이라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고 잊어버리거나 차가운 표정과 모진 말로 대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성도들의 모습으로 와 계시는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있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고통 당하는 사람의 관심사가 곧 우리 주님의 관심사입니다. 고통 당하는 자녀를 보고 안쓰러워 애가 타는 부모처럼 우리 구주께서도 이 땅에서 가장 가련한 자기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고통 받고 압제당하는 자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일깨우기 위해 그분은 그들을 우리 가운데 두셨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모욕하고 홀대하고 학대하는 사람은 그분께 심판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모든 불행과 슬픔, 가난과 고통을 보듬어 자기 경험의 일부로 삼으셨음을 잊지 맙시다. 그분은 생명의 왕이셨지만 위대하고 존귀한 자들의 자리가 아니라 미천하고 억눌리고 고통 받는 자들의 자리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멸시받는 나사렛 사람이었습니다. 머리 둘 곳조차 없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고, 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 우리는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이제 영광의 왕이십니다. 만약 그분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오신다면 수백만 명이 경의를 표할 것입니다. 저마다 앞다투어 그분을 공경하며 그분과 함께 있고자 간청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성도들의 모습으로 와 계신 그리스도를 영접할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교회증언 4권』, 620~621
    0 min
  • [3월 1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하나님의 보좌에서 변호하시는 분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제자들이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슬픔과 혼란과 패배로 얼룩져 있으리라는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그들의 표정은 기쁨과 환희에 차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소망이 꺾였다고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구주를 보았습니다. 그분이 승천하면서 남긴 약속의 말씀들이 귀에 쟁쟁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에서 아버지의 약속, 곧 성령의 부어 주심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빈둥거리며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그들이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눅 24:53). 또 제자들은 함께 모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늘 아버지께 자신들의 요구를 아뢰었습니다. 하늘에는 대리자, 곧 하나님의 보좌에서 변호하시는 분이 계심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3~24)라는 보증을 되풀이하며 그들은 엄숙한 경외심으로 머리 숙여 기도했습니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라는 강력한 논증으로 그들은 믿음의 손을 더욱더 높이 뻗었습니다.
    약속이 실현되기를 기다리면서 제자들은 참된 회개로 마음을 낮추었고 자신들의 믿음 없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기 전에 자신들에게 하신 말씀을 회상하면서 그들은 그 뜻을 더욱 온전히 깨달았습니다. 기억에서 사라졌던 진리가 마음에 다시 떠올랐고, 서로에게 이것을 되새겨 주었습니다. 그들은 구주를 오해했던 자신들을 나무랐습니다. 그분의 경이로운 삶이 한 장면씩 눈앞으로 행진하듯 지나갔습니다.
    그리스도의 순결하고 거룩한 생애를 명상하면서 그들은 그분의 아름다운 인품을 자신들의 삶으로 증언할 수 있다면 어떤 수고나 희생도 힘들거나 아깝지 않으리라고 느꼈습니다. 지나간 3년이 다시 돌아오기만 한다면 자신들의 행동은 완전히 달라지리라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사도행적』, 35~36
    0 min
  • [2월 28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신성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약 2천 년 전에 오묘한 뜻이 담긴 음성이 하늘의 하나님 보좌로부터 울려 퍼졌습니다.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10:5~7). 이 말씀에서는 영세 전부터 숨겨져 있던 목적의 성취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려고, 곧 육신이 되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는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지녔던 영광을 그대로 지니고 오셨다면 우리는 그분의 광채를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광채를 보고 죽지 않도록 그 영광의 출현이 가려졌습니다. 그의 신성이 인성으로 가려졌습니다. 보이는 사람의 형체 안에 보이지 않는 영광이 감추어진 것입니다.
    이 위대한 목적이 표상과 상징으로 예표 되었습니다. 불붙은 떨기나무 안에서 그리스도가 모세에게 나타나셨고 하나님이 계시되었습니다. 신성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된 상징물은 이목을 끌지 않는 단순한 덤불이었습니다. 여기에 무한한 분이 계셨습니다. 한없이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가장 초라한 표상으로 가리셨기에 모세는 그것을 보고도 살 수 있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교통하시며 그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억제하고 위용을 가렸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미약한 시력으로 그것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의 낮은 몸”(빌 3:21), 즉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그분에게는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이며 하늘과 땅의 빛이셨습니다. 그의 영광이 가려지고 탁월한 위용이 숨겨진 이유는 슬픔과 시험에 빠진 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할 성소를 나를 위하여 그들로 만들게 하라”(출 25:8, 한글킹제임스)라고 명하셨고 백성 한가운데 있는 성소에 거하셨습니다. 광야의 고달픈 여정 속에서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 언제나 그들과 함께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인간의 진영 가운데 자기의 장막을 세우셨습니다. 그가 사람의 장막 곁에 자신의 장막을 치신 이유는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를 자신의 거룩한 품성과 생애에 친근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시대의 소망』, 23
    0 min
  • [2월 27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사탄보다 더 강하신 분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에게 영광과 부를 얻고, 시련이 없는 생애를 살리라는 희망을 제시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극기와 비난의 길로 자기를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그분은 연합한 악의 무리에게 훼방을 받았습니다. 무자비한 동맹 세력인 악인들과 악한 천사들은 평화의 왕을 반대했습니다. 그분의 말씀과 행동은 모두 거룩한 동정을 드러냈지만 그분은 세상과 구별되었기에 모진 반대를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성령을 받는 이들에게는 박해와 비난이 따릅니다. 박해의 성격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그 기초가 되는 정신은 아벨 이후로 주의 택하신 사람들을 살해한 정신과 똑같습니다.
    각 시대마다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했습니다. 사탄은 그들을 고문하고 사형에 처했지만, 그들은 죽음으로 승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탄보다 더 강하신 분의 능력을 증명했습니다. 악인들은 육체를 고문하고 죽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자기 안에 감추어 놓은 생명을 건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감옥에 가둘 수는 있어도 정신까지 결박할 수는 없습니다.
    시련과 박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품성이 택하신 자들에게 나타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세상의 증오와 박해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그들은 좁은 길을 걷지만 시련의 풀무를 통해 순결해집니다. 그들은 괴로운 투쟁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따르고 극기를 실천하며 쓰라린 실망을 경험하지만, 죄의 책임과 저주를 깨닫고 그것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그들은 어둠 너머의 영광을 바라보고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적』, 576~577
    0 min
  • [2월 26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신비로운 희생 제물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계 15:4)
    갈보리 십자가에서 사랑과 이기심이 맞닥뜨렸습니다. 둘의 특성이 여기서 숨김없이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는 오로지 위로하고 축복하며 사셨고 사탄은 그분을 죽임으로써 하나님에 대해 악의에 찬 증오를 드러냈습니다. 사탄이 반역을 저지른 이유는 하나님을 보좌에서 몰아내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준 그리스도를 멸하려는 것임이 명백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으로 인간의 생각 또한 드러났습니다. 구유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삶은 자신을 내려놓고 고난에 동참하는 삶이었습니다. 그 삶은 사람들의 목적을 드러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의 진리를 가져오셨고, 성령의 소리에 귀 기울인 이들의 마음은 모두 그분께로 이끌렸습니다. 자아를 숭배하는 자들은 사탄의 왕국에 속합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대하는 태도로써 자신이 어느 편에 섰는지를 나타낼 것입니다. 이처럼 모두 각자가 스스로에게 판결을 내리는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 날이 이르면, 구원을 저버린 모든 영혼은 진리를 거절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것입니다. 십자가가 나타나고, 죄로 눈멀었던 각 사람이 그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신비로운 희생 제물이 달려 있는 갈보리의 광경 앞에서 죄인들은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 거짓 변명은 하나도 통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배교라는 가증스러운 특성이 있는 그대로 드러날 것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은 보게 될 것입니다. 지난한 투쟁을 벌였던 진리와 오류에 대한 문제가 그제야 분명해질 것입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악의 존재와 지속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는 분으로 서 계십니다. 하나님의 법령이 악을 방조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에는 아무런 흠이나 불평의 요소가 없었습니다. 각 사람의 마음이 공개되면 충성한 자와 반역한 자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이렇게 선언할 것입니다. “성도들의 왕이여, 주의 길은 의롭고도 진실하나이다. 오 주여, 누가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리이까? …이는 주의 심판이 나타났기 때문이니이다”(계 15:3~4, 한글킹제임스).
    『시대의 소망』, 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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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