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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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9월 27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상징의 해석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지혜자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단 2:27~28)
    낯선 장소에서 기능을 수행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현지 언어의 글자조차 모를 때는 더더욱 그렇다. 언어의 역사를 연구하는 언어학자들이 고대 상형 문자를 해독할 때 바로 그런 어려움을 겪었다.
    약 1,000가지의 서로 다른 그림으로 이루어진 이집트 상형 문자는 수백 년간 미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1799년에 로제타석이 발견되어 세 가지 언어가 나란히 적힌 비문을 언어학자들이 해독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 1822년 9월 27일, 마침내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의 보고서가 프랑스 파리의 아카데미에서 발표되면서 그 과정이 결실을 보았다. 성공적인 성과 덕분에 이집트 종교 문화의 많은 부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1790년대 후반의 두 가지 주요 사건은 성경 연구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하나는 1799년의 로제타석 발견으로 수많은 고고학적 발견의 문이 열리면서 성경 기록의 역사성이 확인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사건은 1798년 교황 비오 6세의 투옥으로 성경의 예언에 대한 엄청난 관심이 촉발된 것이다. 마침내 다니엘서의 봉인된 부분(단 8:26; 12:4)이 열렸고(계 10장), 수많은 묵시적 상징과 예언 기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묵시적 상징은 성경 해석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다니엘은 이런 상징을 한낱 인간의 지혜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단 2:27~28).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이들 상징을 해석하는 열쇠이다. 예를 들어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는 요한복음 1장 29절은 요한계시록의 어린양이 누구를 상징하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수많은 거짓 억측과 편견을 피할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기원/이용숙 선교사 부부(대만)
    접촉하고 있는 구도자들의 삶이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 예수님 중심으로 변화되기를
    4 min
  • [9월 26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중대한 결단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 26:39)
    1983년 9월 26일 이른 아침이었다. 소련 모스크바 인근 작은 마을에 배치된 컴퓨터의 조기 경보 시스템이 울렸다. 미사일을 감지한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미사일이 모두 미국에서 날아오고 있는 것으로 감지됐다. 이러한 위협에는 핵 공격으로 대응하는 것이 소련의 군사 규약이었다. 그날 당직 사령관인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는 적국의 명백한 미사일 발사를 알리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경보의 신뢰도는 ‘최고 수준’이었고 선택할 수 있는 명령은 ‘발사’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사실을 상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잘못된 경보라고 묵살했다. 수년 뒤 그는 “나에게 모든 데이터가 있었고 상부 지휘 계통에 보고했다면 아무도 반대의 소리를 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고했으면 당연히 전 세계에 핵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나중에 조사한 결과 “소련 위성이 구름에 반사된 햇빛을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의 추진체로 착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페트로프는 단순하게 미국이 미사일 5개로 공격을 개시할 리 없다고 확신했기에 그 경보를 오류라고 결론지었다. 더군다나 새로 적용한 미사일 감지 시스템만 작동하고 지상 레이더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엄청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에 대해 페트로프는 단순히 경보를 알리는 자신의 임무만 수행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책임을 떠넘기지 않았고 인류의 미래가 달린 중대한 순간에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께서는 훨씬 더 중대한 결정을 내리셨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그분은 세 제자에게 고백하셨다. 그리고 홀로 기도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8~39). 만물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고 “운명의 잔이 고통받는 이의 손에서 위태로이 흔들리던 순간이었다”(소망, 693). 그러나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고 우리를 구하기 위해 값을 치르셨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양희원/현아름 선교사 부부(대만)
    한국어 캠프와 대도시 전도회에서 만난 청년 구도자들을 위해
    4 min
  • [9월 25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해외 선교를 위한 열정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2016년 10월 22일 안식일 저녁, 나는 스위스 트라멜란의 어느 지역 교회의 헌당 130주년 기념식에 참여했다. 정말 인상 깊은 기념식이었다. 그 아름다운 나라에 재림교인이 등장한 것은 훨씬 오래전의 일이었다. 1866년 2월 7일, 미하엘 체호프스키는 뇌샤텔 호수에서 루이 피게론과 장 다비드 고이메에게 침례를 주었다. 그들은 스위스에서 최초로 침례를 받은 재림교인이었으며 유럽 전체에서도 최초이거나 두 번째였다.
    미하엘 벨리나 체호프스키는 1818년 9월 25일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톨릭 사제가 된 뒤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와 만나기 위해 로마로 떠났다. 그곳에서 가톨릭에 대한 환상이 깨진 체호프스키는 성직을 포기하고 1851년에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미국으로 이주했고 체호프스키는 침례교 복음 전도자로 사역했다. 1856년에는 안식일 준수 재림주의자들을 만났고 새롭게 싹트는 이 운동 조직의 목회자가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체호프스키는 유럽에 재림 기별을 전해야겠다는 부담을 느꼈다. 당시 막 발걸음을 뗀 재림교회는 그를 도와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일요일 준수 재림주의자를 설득하면서까지 선교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다. 그렇게 1864년 5월 14일, 체호프스키와 아내 애니 버틀러는 유럽으로 향했고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프랑스, 헝가리, 루마니아에서 재림 기별을 전했다. 그리고 10년 뒤 스위스 재림교회의 요청으로 파견된 J. N. 앤드루스는 재림교회 최초의 공식적인 해외 파송 선교사가 되었다.
    유럽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체호프스키는 1876년 2월 2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숨을 거뒀다. 그는 헌신적인 봉사의 유산을 남겼다. 체호프스키 덕분에 회심한 이들과 그 후손들은 세계 곳곳에서 재림교회 선교사로 봉사했다. 작은 씨앗이 큰 수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체호프스키는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우리는 남의 도움 없이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도 재림 기별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기노혁/윤재나 선교사 부부(튀르키예)
    선교 훈련을 받고 이란으로 돌아간 재림 성도들의 안전을 위해
    4 min
  • [9월 24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금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사 54:2~3)
    재림교회의 교육은 영원한 성경 지식과 가치를 전하는 학습 환경을 조성한다. 이 숭고한 이상을 따라 헌신적으로 선교사를 양성하고 격려하며 재림 기별을 세상에 전하는 데 본보기가 된 학교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네브래스카주 링컨에 있는 유니언 대학이다.
    1891년 9월 24일에 유니언 대학이 설립됐을 때 초대 총장인 W. W. 프레스콧은 모든 교육의 중심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를 소개한 당시 『애드벤트 리뷰 앤드 사바스 헤럴드』지의 기사는 다음과 같이 통찰력 있는 전망으로 글을 맺었다. “유니언 대학은 사업의 힘이 될 것이며 많은 영혼을 마침내 영광으로 이끄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예측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1906년 5월 20일 일요일 저녁 졸업식 때 그해 졸업생들은 거대한 세계 선교 지도를 헌납했고 C. C. 루이스 총장이 지도를 건네받았다. 지도에는 유니언 대학에서부터 유니언 대학 출신 선교사들이 봉사했던 세계 곳곳의 지점을 연결해 놓은 금색 실들이 수놓여 있었다. 이 지도는 학교 교회 앞 벽에 걸렸고 졸업생들이 새로운 선교지로 떠날 때마다 금색 실이 추가됐다.
    1936년, 금색 실을 수놓던 M. L. 안데르센 총장은 학교를 금실 대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 학교가 그들의 성공과 안전을 위해 기도한다는 뜻으로 모든 동문 선교사들에게 금색 실을 보내자고 제안했다. 그 후로 금색 실은 선교지에서 고난과 외로움 가운데 봉사하는 이들에게 소속감과 유대감을 고취시켰다.
    여러분이 지금 어디에 있든지 선교지에서 헌신하며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라. 여러분이 아는 선교사가 있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짤막한 메시지를 보내도 좋을 것이다. 사소한 것이지만 생각하고 있다는 제스처와 응원이 그들에게 큰 변화를 줄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북한선교부
    북한 이탈 주민들의 정착을 돕기 위한 하나센터 유치를 위해
    4 min
  • [9월 23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프라하의 히에로니무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눅 22:61~62)
    열두 사도 중 하나인 베드로는 그리스도께 충성을 맹세했지만 그분이 체포되자 자기는 모르는 사람이라며 예수를 부인했다. 그런 직후 그는 참회의 눈물을 흘렸고 일평생 헌신하며 그리스도를 따랐다(눅 22:31~33; 54~62). 보헤미아의 웅변적인 종교 개혁가이자 얀 후스의 친구인 프라하의 히에로니무스(1365~1416)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옥스포드에서 공부하던 히에로니무스는 교황권에 맞서는 존 위클리프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주권과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다가 로마 가톨릭의 거센 반발을 샀다. 1415년 4월 히에로니무스는 체포되어 콘스탄츠 공의회에 넘겨졌다. 모진 압력에 진이 빠진 그는 1415년 9월 23일, 이른바 존 위클리프와 얀 후스의 이설을 철회한다는 문서에 형식적으로 서명했다. 그러나 일부 성직자들은 히에로니무스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1416년, 히에로니무스는 재판에 회부됐다.
    5월 26일, 히에로니무스는 자신의 철회를 공개적으로 취소했다. 심지어 공의회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힌 것만큼 괴로운 죄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5월 30일, 공의회는 히에로니무스가 다시 이설에 빠졌다며 그에게 화형을 선고했다. 집행관들은 그의 뒤에서 불을 붙이려 했으나 히에로니무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리 와서 내 앞에다 불을 붙이게. 그걸 겁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걸세.” 그는 기도하며 죽었다. 그리고 후스와 마찬가지로 그의 재는 라인강에 뿌려졌다.
    베드로나 프라하의 히에로니무스처럼 공식적으로 주님과 구주를 부정한 적이 없더라도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충성, 그분의 말씀을 향한 헌신, 그분의 교회를 향한 지원은 베드로와 히에로니무스만 못할 수 있다. 어쩌면 결코 지키지 않을 약속을 하나님께 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 두 명의 위대한 그리스도인처럼 그리스도와 그분의 뜻을 위해 삶을 바치기로 새롭게 결심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남웅/심은정 선교사 부부(대만)
    신좡 행복국제교회의 제자 훈련과 영적 성장을 위해
    4 min
  • [9월 22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하나님은 하나님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11)
    C. S. 루이스(1898~1963)는 1898년 11월 29일,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1929년에 무신론자가 되었는데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아서 화가 났다.” 어느 날 밤, 그는 그리스도인인 옥스포드의 동료 두 명과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튿날 1931년 9월 22일, 그는 형 워니와 함께 동물원에 갔다. 루이스는 그날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출발할 때만 해도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동물원에 이를 때쯤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 “항복했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했다.” 루이스는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 사상가가 되었다.
    진화론에 맞서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태양계가 우연한 충돌로 생겨났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기체의 출현도 우연이고, 인간의 진화 과정 전체도 우연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모든 생각도 우연에 불과할 것입니다. 원자들의 움직임에 따른 우연한 부산물에 불과하겠지요. 이것은 다른 모든 사람은 물론 유물론자들과 천문학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들의 생각 즉 유물론과 천문학이 그저 우연의 부산물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왜 그것들이 옳다고 믿어야 합니까? 저는 한 가지 우연이 다른 모든 우연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할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유 단지를 엎어 우연히 생겨난 모양을 보고, 그 단지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왜 엎어졌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다. 하나님께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는 인간과 하나님의 입에서 끝내 ‘그래 네 뜻대로 되게 해 주마’라는 말을 듣고야 마는 인간이다.” 또 그리스도인의 소망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더듬어 보면 이 세상을 위해 가장 많이 일한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다음 세상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했던 이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대부분이 저 세상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면서, 기독교는 이 세상에서 그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무신론자와 비신자를 위해 계속해서 기도하라. 그들도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봉길/최경미 선교사 부부(에티오피아)
    예멘인 선교를 위해 학습 중인 아랍어를 잘 배울 수 있도록
    4 min
  • [9월 21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루터의 성경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역사상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이 바로 성경이다. 오늘날 성경의 일부는 최소 3,50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가장 유명한 성경 번역자 중 한 사람으로 마르틴 루터를 꼽을 수 있다. 사실 루터의 성경이 출간되었을 때는 이미 14가지 고지 독일어(高地獨逸語) 역본과 4가지 저지 독일어(低地獨逸語) 역본이 나온 뒤였다. 루터의 번역이 유독 인기를 끌고 영향력을 떨친 이유는 무엇일까? 몇 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다.
    바르트부르크성에 머물 때 루터는 1521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 초까지 3개월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신약 전체를 번역했다. 놀라운 성과이다. 몇 차례 개정을 거쳐 독일어 신약은 1522년 9월 21일에 처음 인쇄했다. 그 뒤로도 루터는 수정을 거듭하는 동시에 구약 번역을 진행했다. 마침내 1534년 루터의 첫 성경 완역판이 나왔다.
    이전의 독일어 성경은 모두 라틴어 불가타 성경에 바탕을 두었기에 신학적 오류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루터의 성경은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람어 원문을 기반으로 본래의 의미를 되살리는 데 집중했다. 루터의 성경 덕분에 불가타역의 오류가 수정된 것이다.
    평범한 사람도 성경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루터는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사용했다. “집에 있는 어머니, 거리의 아이들, 저잣거리의 평민들에게 조언을 구해야 한다. 그들의 언어와 어투를 참조해 그에 어울리게 번역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은 이 책을 독일어 성경으로 인식할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마르틴 루터의 성경이 현대 독일어에까지 영향을 미쳤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물리적으로 접근을 차단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말을 사용하면 사람들은 성경과 거리가 멀어진다. 성경은 “발에 등이요 …길에 빛”이다(시 119:105). 따라서 그 메시지는 가장 믿을 만하고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전달되어야만 한다. 루터의 성경은 이 점에서 훌륭한 본보기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조성규/최지혜 선교사 부부(대만)
    싸루 교회에서 복음을 접한 구도자들의 삶에 희망이 생기기를
    4 min
  • [9월 20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때 이른 죽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마 19:14)
    지역 교회 목회자, 장로들과 집회를 마친 뒤 공항으로 막 출발하려는데 마음에 무거운 짐이 있는 사람을 만났다. 그의 아내는 임신부였는데 며칠 전 병원에서 태아가 무뇌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의사는 중절 수술을 권유했지만 아내는 아이를 낳고 싶어 했다. 몇 달이 지났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 아이가 태어나 2주 동안 살면서 엄마와의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이를 유산하거나 어린아이가 고통받고 일찍 죽을 때는 가슴이 미어진다.
    1860년 9월 20일, 엘렌 화잇은 넷째 아이 존 허버트를 출산했다. 나중에 화잇은 이렇게 기록했다.
    “12월 14일(금요일)에 호출을 받았다. 아이의 상태는 심각해졌다. 힘겹게 숨 쉬는 소리가 들렸고 손목에는 맥박이 느껴지지 않았다. 더 이상 살지 못하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차가운 죽음의 손길이 아이에게 닿아 있었다. 미약하고 가쁜 숨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우리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와 함께 오크힐 공동묘지로 향했다. 거기서 아이는 생명의 주인이 오실 때까지 쉴 것이다. 그분은 무덤을 깨뜨리고 아이를 깨워 불멸을 입혀 주실 것이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집은 쓸쓸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했지만 허탈하고 우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영적 선물, 296).
    어린아이가 죽으면 어떻게 되냐고 묻는 이가 많다. 화잇은 이 질문에 도움이 될 만한 영감적인 통찰을 전했다. 믿는 부모의 아이는 구원을 받을 것인데 이는 “하나님이 애굽의 장자를 심판하실 때와 같이” 부모의 믿음이 “아이를 덮어 주기” 때문이라고 그는 진술했다(3기별, 313). 이어 엘렌 화잇은 “믿지 않는 부모의 자녀가 구원받는지는 알 수 없다. 하나님은 그 문제에 대해 자기의 뜻을 알려 주지 않으셨다.”라고 덧붙였다(앞의 책, 315).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든 그분이 어린아이들을 사랑하고 보살피신다는 사실은 복된 일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종철/윤미경 선교사 부부(몽골)
    지역 사회와 교감할 수 있는 보다 더 적극적인 선교 통로가 생기기를
    4 min
  • [9월 19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기도와 수고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도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은 그것이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내릴 것입니다”(고전 9:16, 쉬운)
    제임스 허드슨 테일러(1832~1902)는 1832년 5월 21일, 잉글랜드 반즐리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십 대 시절 믿음에 회의를 느낀 그는 세속에 물들었다. 어느 날 허드슨의 어머니는 응답받을 때까지 그를 위해 기도하기로 결심했고 바로 그날 허드슨은 놀라운 회심을 경험했다. 그리고 선교사가 되어 중국으로 떠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다. 그는 만다린어(표준 중국어)와 함께 그리스어, 히브리어, 라틴어를 공부했다. 중국선교협회의 도움으로 그는 런던의 어느 병원에서 의료 교육도 받았다. 1853년 9월 19일, 허드슨은 나이 21세에 덤프리스호에 올라타 영국 리버풀을 떠났고 1854년 3월 1일, 중국 상하이에 도착했다.
    1863년에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 CIM)를 세웠다. 자신의 저서 『중국의 영적인 필요와 요청』(1865)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영국에 넘쳐 나는 지식, 지금의 영국이 있게 한 지식, 지금의 우리가 있게 한 지식을 알지 못해 이토록 많은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영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팔짱만 끼고 있을 셈인가? 주께서 뭐라고 하셨는가? 한 마리 양을 잃으면 남은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서라도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이 그분의 가르침이 아니던가? 그런데 비율로 따지자면 이곳의 상황은 정반대이다. 집에 남은 양이 한 마리이고 아흔아홉 마리가 죽어 가는데도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에서 51년 동안 헌신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에는 열정과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허드슨이 무릎을 꿇지 않는 날에는 중국에 해가 뜨지 않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테일러가 임종할 무렵 중국에는 CIM 선교센터 205곳에서 선교사 849명이 활약했고 그리스도인도 12만 5,000명이나 되었다. 어느 곳에서 주님을 섬기든 우리에게도 허드슨 테일러와 같은 영혼 구원의 열정과 선교적 결심이 넘쳐 나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효신/이은화 선교사 부부(아드라 캄보디아)
    캄보디아 교회와 아드라 사업의 협력 선교를 위해
    4 min
  • [9월 18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성경을 따르라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내 뜻을 이루며 내가 의도한 목적을 성취할 것이다”(사 55:11, 현대인)
    여러분은 성경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얼마나 자주 읽고 있는가? 2013년 4월, 릴리전 뉴스에서 ‘미국인은 성경을 사랑하지만 많이 읽지 않는다’는 제목의 기사로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성서공회장 더그 버드설은 “이 현상이 미국의 비만 문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자신이 과체중임을 알면서도 다이어트는 하지 않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영적인 건강을 돕는 성경의 가치를 알지만 읽지는 않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일은 미국 전반의 문제일 뿐 아니라 기독교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2008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한 대총회 연례 회의에서는 개인별, 그룹별 성경 연구를 장려하는 ‘성경을 따르라’ 대회를 열었다. 행사에는 언어가 각기 다른 특별한 66권의 성경이 헌납되었다. 마닐라에서 출발한 이 성경은 20개월 동안 전 세계를 돌며 성경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쏟도록 호소하는 시각적 홍보물 역할을 했고 2009년 9월 18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도착했다. 텔아비브는 성경의 사건 대부분이 발생한 곳이자 성경 여러 권이 처음으로 기록된 곳이다. 그 성경은 2010년 조지아 애틀랜타에서 열린 대총회 총회에 도착하면서 여정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지금은 메릴랜드 실버스프링의 대총회 본부에 영구 전시되어 있다.
    우리는 반드시 성경을 읽어야 한다. 기도력의 주제 성경절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오늘날 가장 두드러진 죄는 ‘수박 겉핥기’이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이해 없이 말씀을 듣기만 하고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셨다(마 13:19~21). 엘렌 화잇 또한 “사람마다 지적 탁월함에 도달해야 할 의무감을 느껴야 한다.”면서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과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교훈을 이해하는 데 달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복음, 279, 281). 영감의 권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성경을 깊이 파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황자연/데니 홍 선교사 부부(케냐)
    섬기고 있는 병원에 꼭 필요한 직원들과 임원들을 보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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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