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Download on the App Store

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8월 8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자만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는 법은 알지만 내려오는 법은 모르는 사람이 종종 있다. 앨빈 토플러(1928~2016)는 “어제의 성공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경고했다. 알론조 T. 존스(1850~1923)는 재림교회 복음을 받아들이고 워싱턴 월라월라에서 침례를 받았다. 1878년 8월 8일에 그는 목사 안수를 받았고 교회에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고 1888년 미니애폴리스 대총회 총회에서는 엘릿 J. 왜거너와 함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의사 존 H. 켈로그와 함께하면서 그는 자만에 빠졌고 1901년 이후로는 조직에 반감을 품었다. 존은 대총회장 아서 G. 대니얼스의 지도력을 끈질기게 깎아내렸다.
    일찍이 1892년 9월 19일에 엘렌 화잇은 이렇게 진술했다. “존스와 왜거너 목사는 원수의 유혹에 넘어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하나님께 받은 기별이 없었다거나 그들의 업적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겸손하지 못했고 정작 자신이 수천 명에게 전했던 기별대로 살지 않았다. 결국 켈로그, 왜거너, 존스 세 사람은 모두 교회를 떠났다.
    1907년, 존스는 목사 신임서를 반납하도록 요구받았고 이듬해에 교회에서 제명됐다. 그는 1909년 워싱턴 D.C.에서 개최한 대총회 총회에서 청문회를 요구했다. 청문회에서 그는 장황한 자기 합리화와 함께 비난하는 발언을 했고 교회의 핵심 지도자와 세 차례 만났다. A. G. 대니얼스 대총회장은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화해를 호소한 뒤 탁자 너머로 손을 내밀며 “돌아오세요. 존스 형제, 돌아오세요.”라고 말했다. 존스는 일어서 천천히 손을 내밀다가 갑자기 뒤로 빼며 “아니요.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거요.”라고 선언했다. 그는 끝내 교회로 돌아오지 않았다.
    시작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멋진 결말이다. 교만과 자만에는 값비싼 대가가 따른다. A. T. 존스가 만약 주님께서 자신에게 이루어 주신 일에 겸손히 감사했다면 이야기의 결말은 달라졌을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1000명선교사 운동
    61기 선교사 모집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많은 청년이 지원하도록
    4 min
  • [8월 7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하나님의 사랑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뛰어난 작가와 작곡가들은 가장 웅변적인 언어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했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프레데릭 M. 레만(1868~1953)이다. 1868년 8월 7일, 독일 메클렌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4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레만은 수백 곡의 노래를 지었고 다섯 권의 노래책을 엮었다. 그러면서도 그 어떤 인간의 표현으로도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1917년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서 그는 이라는 멋진 찬미를 지었다. 그 찬미의 후렴구에서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다 측량 못하며”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내용은 30년 앞서 엘렌 화잇이 전한 말을 떠오르게 한다.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온 아버지들의 사랑을 다 합친다 해도, 사람들의 마음에서 솟아난 자비의 샘을 모두 모은다 해도, 하나님의 무한하고 다함이 없는 사랑과 비교하면 그것은 망망대해 옆의 실개천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혀로도 말할 수 없고 붓으로도 묘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매일 그것을 명상하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성경을 탐구한다 해도 또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을 깨닫기 위하여 모든 힘과 재능을 총동원한다 해도 저편의 세계는 무한합니다. 아무리 오래 연구한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세상을 위해 목숨을 버리게 하신 그 사랑의 길이와 넓이와 깊이와 높이는 결코 완전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영원 자체도 그것을 결코 완전히 드러낼 수 없습니다”(5증언, 740).
    하나님의 사랑을 명상하라. 그리고 그 변화의 능력을 향해 마음을 열라. 여러분의 삶은 결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진성/김종숙 선교사 부부(튀르키예)
    이스탄불 현지인 청년 교회 세우기 프로젝트를 위해
    4 min
  • [8월 6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다윗왕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29)
    비평가들은 성경의 역사 기록 중 동시대의 다른 문서로 검증되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 오랫동안 의구심을 품었다. 예를 들어 고고학적으로 그 존재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다윗왕은 수많은 신화적 인물 중의 하나로 취급받았다. 그런데 1993년 7월, 이스라엘 북부 텔단 지역에서 이스라엘 고고학자 아브라함 비란이 이끈 발굴로 돌비의 파편이 발견되었고 거기에는 아람 왕이 “이스라엘 왕”과 “다윗 가문의 왕(유다)”에게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1993년 8월 6일 자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에서 보내온 다윗 가문의 뉴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서는 성경학자들이 “경이롭다.” “충격적이다.” “깜짝 놀랄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2016년 11월, 성경고고학협회는 이 사실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석비 조각에 새겨진 내용으로…성경에 등장하는 다윗왕이 실존 인물이었으며 성경이 후대에 의한 창작물이 아님이 입증됐다. 무엇보다 다윗의 사후 100년이 지나 이스라엘의 가장 사나운 적들이 세운 이 돌비에서 다윗을 여전히 유다 왕국의 창건자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성경의 진술보다 외부 자료를 더 신뢰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접근이 필요할까? 성경을 한낱 고대의 종교·문화적 표현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면 그 역사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외부 자료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성경의 역사적 진술을 의심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벧후 1:19~21; 계 22:18~19).
    “인간의 자부심이나 편견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인류 역사의 기록”은 성경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의 이해관계, 권력, 야망의 배후와 그 상부 또 그 진행 과정 속에서 자비가 충만하신 하나님의 일꾼들이 묵묵히 인내하며 그분의 뜻을 실현해 가는 모습”을 마치 “커튼이 걷힌 것”처럼 볼 수 있는 곳은 성경뿐이다(교육, 173).
    하나님의 말씀을 조건 없이 받아들일 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삶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운성/조선희 선교사 부부(대만)
    봉사대 활동을 통해 접촉한 구도자들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도록
    4 min
  • [8월 5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아타카마의 구조 작업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단 6:20)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산호세 탄광 뉴스에 온 세상이 관심을 기울였다. 2010년 8월 5일 오후 2시 5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두 배 규모인 섬록암 더미 70만 톤이 붕괴하면서 구리 광산의 주 진입로가 가로막힌 것이다. 다른 통로 역시 계속되는 낙석으로 진입이 어려웠다. 700m 지하에는 광부 33명이 갇혀 있었다. 대피소의 비상식량으로는 2~3일밖에 버틸 수 없었고 물과 산소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생존자를 찾을 수 있을까?
    지상에서는 입구 주변에 ‘희망의 캠프’를 세웠다. 그리고 2,000명이 넘는 가족, 근로자, 취재진 등이 그곳에서 재림교회 목사 카를로스 파라디아스의 도움을 받았다. 구조 작업에는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렸다. 17일이 지나서야 구조대는 6.5인치 드릴을 사용해 입구를 뚫었다. 광부들은 드릴 날에 쪽지를 붙여 보냈다. 쪽지에는 빨간 글씨로 “우리 서른세 명은 대피소에서 잘 지내고 있다.”라고 쓰여 있었다. 구조대는 구멍을 통해 필요한 물자를 공급했고 구멍을 더 넓혔다. 69일이 지난 뒤 33명 전원이 금속 캡슐을 통해 구출됐다. 광부가 한 사람씩 구출되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2,000만 달러가 투입된 이 작전은 역사에 길이 남을 고난도의 구조 작업이었다.
    산호세 광산의 광부처럼 인류 역시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죄의 굴레에 갇혀 죽을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놀라운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여 우리가 하늘에 이를 수 있도록 “새로운 생명의 길”을 마련하신 것이다(히 10:20).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라고 바울이 말할 정도로 그 구원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각 시대의 구원받은 모두가 하늘에 들어서며 축하받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우리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승리의 구원을 경험하는 대열에 서야만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권순범/강지희 선교사 부부(대만)
    베이툰 교회가 건강한 조직 교회로 승격될 수 있도록
    4 min
  • [8월 4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받은 대로 전해 주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 1:43~45)
    1853년 8월 4일 자 『애드벤트 리뷰 앤드 사바스 헤럴드』지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미시간주의 재림 기별 전파에 관한 내용이었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나는 방금 헤이스팅스에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다섯 차례 집회를 개최했고 주께서 성령으로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성도들은 위로받고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죄인들은 떨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집회에서 두 사람이 진리를 고백했고 또 다른 두 사람이 우리 주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우리에게 진리가 있음을 확인한 사람은 훨씬 더 많습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침례를 받을 사람도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셋째 천사의 기별이 신속히 떠오르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큰 외침을 위한 길을 열고 계신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이 기사를 쓴 사람은 누구일까? 미시간 배틀크리크의 첫 재림교인인 데이비드 휴잇이다. 그와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1852년 배틀크리크에 재림 기별을 전하려던 조지프 베이츠는 독특한 방법을 활용했다. 마을을 훤히 꿰고 있을 그 동네 우체국을 찾아가 “이 지역에서 가장 정직한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본 것이다. 우체국장은 데이비드 휴잇이라고 답했고 베이츠는 휴잇의 집을 찾아가 재림 기별을 전했다. 휴잇의 가족은 이 기별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기사에서 알 수 있듯 데이비드는 헌신적인 재림교회 선교사가 되었다.
    요한복음 1장 43~51절에는 예수께서 빌립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온다. 이 이야기에서 복음 선교의 특성이 드러난다. 전해 받은 자가 전해 주는 자가 된다는 점이다. “모든 참된 제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선교사로 태어난다. 생명수를 마시는 자는 생명의 샘이 된다. 받은 자는 주게 된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 영혼에 사막의 샘과 같다. 이 샘이 솟아나 모두에게 활력을 주며, 죽어 가는 이들이 생수를 마시고자 갈망하게 이끌어 준다”(소망, 195).
    복음을 우리에게만 감추어 두면 안 된다. 복음은 반드시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마 25:14~30). 이 놀라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겠는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해성/백관희 선교사 부부(네팔)
    현지인을 위한 성경 및 예언의 신 보급 운동이 잘 진행되도록
    4 min
  • [8월 3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재빠른 조치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
    미리엄 웰스와 존 웨슬리 테일러 5세는 버지니아 체사피크의 탠지어섬에서 아들과 멋진 주말을 보내기 위해 세심하게 계획을 짰다. 2012년 8월 3일 금요일 아침, 그들은 섬으로 갈 배를 타기 위해 정박지로 향했다. 워싱턴 D.C. 도심을 지나 4차선 고속 도로에 진입했고 미리엄은 시속 96km로 자동 정속 주행을 설정했다.
    처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설정한 속도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설정은 해제되지 않았다. 다른 방법도 써 봤지만 먹히지 않았다. 존은 미리엄에게 얼른 차를 길가로 이동시킨 뒤 시동을 끄라고 말했다. 시동을 끄자 차는 점점 속력을 잃더니 멈추었다. 존은 정비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동 주행 장치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정비사는 잘못된 배선의 위치를 찾아 비활성화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자동 주행 장치 없이 그들은 제시간에 정박지에 도착했다.
    살다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시동을 끄고 멈추는 일뿐인 때도 있다. 가령 도덕적인 문제에 휘말릴 때도 그렇다. 그럴 때는 재빨리 결단을 내리고 부도덕한 일을 멈춰야 한다. 그 결정은 단기적으로는 손해가 될 수 있어도 앞날의 재앙을 막아 준다. 또 불치병을 진단받았을 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는 차분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빅토르 E. 프랑클은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는 스스로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삶이란 실로 선택의 연속이다. 결정을 내리기 쉬운 일도 있지만 훨씬 어려운 일도 있다. 어떠한 경우든 라인홀드 니버의 는 언제나 도움이 된다. 그 기도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하나님, 바꿀 수 없는 상황을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은혜와 바뀌어야 할 것을 바꾸는 용기와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또 우리는 다음과 같은 누군가의 기도 역시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주님, 오늘 일어날 일 중에 우리가 함께 헤쳐 나갈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태영/전주은 선교사 부부(서인도네시아)
    훈련원을 섬기고 있는 모든 직원과 그 가족들의 영성과 건강을 위해
    4 min
  • [8월 2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드높이며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벧전 4:19)
    이른바 ‘긍정적인 고백’을 내세우는 이들은 우리의 말에 환경을 바꾸고 운명을 꼴 짓는 초자연적인 힘이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죄악, 질병, 아픔, 슬픔은 예수께서 지셨으므로(사 53:3~5) ‘나는 오늘 용서받고 치료받았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라고 고백하면 된다고 그들은 역설한다. 병든 몸이 치유되지 않는 이유는 단지 믿음이 부족해서라는 것이다.
    어느 목사의 아내가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었다. 1982년 8월 2일, 미국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프란시스 셰퍼(1912~84)는 그 목사에게 다음과 같이 위로의 편지를 썼다.
    “가끔은 주께서 곧바로 치료해 주시기도 합니다. 여러 해 동안 사역하며 저도 그런 모습을 본 바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근절되지 않는 치명적인 위험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진실하고 믿음이 넘치는 신자는 반드시 치유된다’는 그릇된 믿음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분명코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여러 지역에서도 결론적으로 그 당시의 그리스도인 모두가 치료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믿음에 빠진 사람은 하나님이 컴퓨터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사랑과 지혜가 무한한 인격적인 하늘 아버지임을 그들은 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 누구보다 신뢰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당신의 병이 낫지 않는 이유는 영성이나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주변의 말을 듣고 나서 좌절하는 모습을 저는 종종 보았습니다. 그 말이 맞을 때도 있지만 심각한 병을 앓는 사람에게 그것이 언제나 사실인 것처럼 말하면 불필요한 죄책감만 쌓이게 할 뿐입니다.
    …병마와 싸우는 이에게 불필요한 죄책감을 들이붓는 사람들만큼 잔인한 집단도 없습니다.”
    긍정 고백론은 십자가 없이 면류관을 얻게 해 주겠다는 이기적인 가르침이다(마 16:24). 그와 반대로 사도 바울은 육신의 고통을 감내하고 자신의 병을 기꺼이 받아들였다(고후 12:7~10). 베드로 역시 그리스도를 위해 고통당할 때 기뻐하라고 격려한다(벧전 4:13).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게 하자. 우리를 위한 그분의 계획을 받아들이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하나님의 마음으로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나아가는 한국 교회가 되도록
    4 min
  • [8월 1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부러진 기념탑이라니요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시 69:9)
    이탈리아의 유명한 인문주의자이자 출판업자인 알두스 마누티우스(1449~1515)는 “일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너무 많은 일을 해서 죽는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재림교회 개척자인 제임스 화잇(1821~81)은 후자에 속한다. ‘녹슬기보다 닳는 것이 낫다’는 좌우명으로 그는 튼튼한 몸조차 버텨 내지 못할 만큼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제임스는 44세에 뇌졸중 마비 증세를 겪었다. 그러나 회복되자마자 다시 격무에 뛰어들었다(1증언, 103).
    1881년, 아내 엘렌이 배틀크리크의 부담에서 벗어나라고 설득했지만 제임스는 완고했다. “이 일을 할 사람이 어디 있겠소? 기관의 유익을 위해 사심 없이 애쓰며 옳은 편에 서서 주변에 휘둘리지 않을 만한 사람은 어디 있겠소?” 그러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는 덧붙였다. “나는 이 기관들을 세우는 일에 삶을 바쳤어요. 죽어야만 그만둘 것 같소. 이 일은 마치 자식들 같아서 관심을 끊을 수가 없어요. 이 기관들은 특별한 사업을 위한 주님의 악기와도 같소”(1증언, 106).
    어느 안식일 아침, 화잇 부부는 배틀크리크 교회의 단상에 나란히 섰다. 이틀 뒤인 1881년 8월 1일, 제임스 화잇은 갑작스럽게 앓아누웠고 그 주 안식일에 배틀크리크 요양병원에서 숨을 거뒀다(1증언, 109~110). 직접적인 사인은 말라리아였지만 교회를 세우며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 탓이 컸다. 자신의 사역을 “끝마치지” 못한 채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제임스의 묘지에 부러진 방첨탑을 세우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엘렌은 “절대로 안 됩니다. …절대로요! 그이는 혼자서 세 사람의 몫을 해냈습니다. 그런 제임스의 무덤에 부러진 기념탑이라니요. 그건 안 될 말입니다.”라며 단호히 맞섰다(1기별, 104~105).
    슬픔에 잠긴 엘렌은 이렇게 기록했다.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해 36년 동안 우리는 나란히 손을 잡고 일했다. 우리는 함께 서서 승리로 장식되는 마지막을 보고 싶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젊은 날에 내가 택했던 지킴이, 내 인생의 동반자, 나의 수고와 고통을 함께 나누던 그가 내 곁을 떠났다. 나는 이제 홀로 남아 일하며 싸워야 한다”(1증언, 105).
    더 멀리 가려면 쉬는 시간도 필요한 법이다. 그 사실을 명심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하나님의 마음으로 온 세상을 품고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한국 교회가 되도록
    4 min
  • [7월 31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미지의 땅으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가정이란 삶이 시작하고 사랑이 끊이지 않는 사회 단위이다. 또한 부모와 자녀가 가장 소중한 순간을 늘 함께 나눌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죄가 등장하면서 하나님의 이상은 훼손됐고 건실한 가정도 이별의 고통을 겪는다. 성장한 아이들은 집을 떠나 학업을 계속하고 새로운 직장에서 일하고 자신의 가정을 꾸린다. 부모들은 빈 둥지 증후군에 빠지고 아이들은 날아가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임신한 아내와 함께 찾아간 병원에서 이런 인용구가 적힌 액자를 보았다. ‘자녀란 당신의 인생에 활짝 피었다가 어른의 세계로 사라지는 꽃과 같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부모가 귀여운 아기를 그리워하듯 나이 먹은 아이들도 집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을 때 중압감과 슬픔을 느낀다.
    루스 E. 밴 레컨은 1945년 7월 31일 미국에서 태어나 나이지리아에서 13년 동안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부모는 선교사였고 레컨은 6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기숙 학교에 들어가야 했다. 자신의 감동적인 책 『결코 보내지 않았던 편지』(1988)에서 루스는 모든 곳에 소속되었으면서도 아무 데도 소속되지 않은 자신의 느낌을 적어 놓은 편지들을 소개했다. 1951년에 기록한 첫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 저 너무 힘들어요. 제 속의 무언가가 저를 강하게 짓눌러서 숨을 쉬지 못하겠어요. 비행기를 타고 기숙 학교에 가면 재미있을 거라고 하셨지만 아직 모르겠네요. 비행기 안에서 울음이 그치지 않았는데 다른 아이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려 창밖을 쳐다보았어요. 제가 구름을 좋아해서라고 아이들은 생각했을 거예요. 오늘 오후 학교에 갔을 때도 계속 울었고 그칠 수가 없었답니다.”
    새는 언제까지 둥지에만 머물 수 없다. 자기 스스로 날아야 할 때가 온다. 그러나 그때가 오더라도 자신의 태어난 곳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이 이미 부모와 떨어져 지내거나 곧 집을 떠나게 된다면 여러분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이들과 계속 연락하며 지내라. 가족의 결속은 신성하다. 그렇기 때문에 꿋꿋하게 지켜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성용/장유진 선교사 부부(인도네시아)
    동인도네시아 1000명선교사 훈련원 40기 선교사 모집을 위해
    4 min
  • [7월 30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우정의 날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친구가 있으면 세상 살맛이 난다. 유명 강사이자 저술가인 스티브 마라볼리는 “친구란 상처 입은 마음의 치료제이며 영혼에 희망을 주는 비타민”이라고 말했다. 그리스의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격언에 따르면 “친구란 행복할 때가 아니라 어려울 때 사랑을 드러낸다.” 모두가 떠나가도 곁에 남는 게 친구라는 말이다.
    2011년, 유엔 총회에서는 7월 30일을 국제 우정의 날로 선포했다. “사람, 국가, 문화, 개인 간의 우정은 평화를 위한 노력을 증진하고 공동체 간에 다리를 놓아 준다.”는 생각에 기초한 결정이다. 우정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미니스트리』 1977년 12월 호에서는 ‘연결망을 사용하라’는 제목으로 머리기사를 실었다. 기사에서 당시 캘리포니아 허먼 재림교회 담임목사였던 클라크 B. 매컬은 ‘친절 통화’라는 자신의 성공적인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상냥하고 동정적인 마음을 품으면 지금 한 사람밖에 없는 곳에서 1백 명이 회심할 것”(9증언, 189)이라는 엘렌 화잇의 진술에서 착안한 프로그램이다.
    매컬은 교인들에게 매주 전화하기, 아기 돌봐 주기, 차량 제공, 가사 도우미, 방문 등의 친절 봉사를 자발적으로 실행하라고 요청했다. 이런 활동으로 편견의 벽이 점차 허물어졌고 성경 공부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자신이 사역하던 한 교회에서는 이 방식으로 전년도에 비해 월등히 많은 사람이 침례를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결실을 얻고 싶으면 친해지고 친절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유익을 갈망하면서 그들과 섞이셨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필요한 것을 채워 주셨고 신임을 얻으셨다. 그런 다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다”(치료, 143). 우정 전도 방식으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보자. 이 유쾌하고 효과적인 전략으로 전도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PCM(캠퍼스 선교사 운동)
    올해 파송된 5기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4 min

About 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From the publisher's feed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